158화
황금 새싹단의 단주, 뉴먼이 붙잡힌 것은 그로부터 고작 이틀 후의 일이다.
그는 언제든 몸을 뺄 수 있도록 기차역 인근에 있는 ‘동지’의 집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에머슨 공단 자경대의 검문이 두렵다거나 기차역에서 자체적으로 신원 검사를 하고 있다거나 하는 문제 때문은 아니다.
저 ‘위’에서 명령이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감사관이 갈 거야. 증언해.]
[에머슨 공단에 불을 지른 게 어떻게 델포드 남작에게 불리한 일이 될 수 있습니까?]
[네가 지금까지 아랫놈들에게 해 온 말을 그대로 하란 말이야. 델포드 남작이 너희를 배신했기 때문에 응징하려 한 거야. 정당한 복수였지.]
후드를 깊게 눌러쓴 여자는 차가운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빌어먹을.’
뉴먼은 그 입으로 숱하게 델포드 남작의 이름을 담아 왔으나, 진짜로 그녀를 건드릴 작정은 없었다. 그가 감당하기에는 위빙 상단이 너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너희들 부하인 줄 아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받아먹은 게 있으니 돈값을 해야 했다.
그래서 숨어 있었다. 그는 나름대로 준비도 하고 있었다. 끝까지 남아 있을 생각은 없었다. 자백서를 건네주고 도주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 전에 붙잡힌 것이다.
‘빌어먹을!’
그는 다시 마음속으로 욕을 뱉었다. 입 밖으로는 전혀 내지 않았는데, 마치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자경대원이 그의 뒤통수를 갈겼다.
“큭.”
통증도 통증이지만, 모욕감 때문에 뉴먼은 신음했다. 그는 우두머리 자리에 익숙했고, 남의 칭송과 열광에 중독되었다.
이런 대우를 참을 수 없었다. 이성이 냉정하게 자신의 현실을 알고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남작님, 말씀하신 자를 잡아 왔습니다.”
“잠깐 이거 놓으시오.”
뉴먼은 잡힌 팔을 뿌리치려 했다.
위빙 상단의 주인, 에머슨 공단의 설계자, 그 델포드 남작을 만나는 것이다. 적어도 몸차림을 가다듬고 제대로 된 만남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자경대원들은 그럴 여유를 주지 않고 그를 문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윽!”
거세게 꺾인 팔이 아파 뉴먼은 신음했다. 그는 그대로 사무실 벽에 붙이듯 놓인 의자에 팽개쳐졌다.
자경대원이 그의 팔을 팔걸이에 동여매려 했다. 차분한 여자 목소리가 그것을 제지했다.
“그러지 마세요.”
“예? 하지만 남작님.”
“놓아주세요. 내게 달려들진 못할 테니.”
그러자 자경대원이 물러섰다.
뉴먼은 그제야 사무실의 전경을 볼 수 있었다.
사무실은 귀족의 집무실이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장식적인 가구도, 골동품도, 부유함을 드러낼 만한 것도 일절 없었다.
깔끔하고 지적이었다. 단순한 목재의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책상에 앉아 있는 여자도 꼭 그에 걸맞게 훤칠하고 우아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양쪽 귓불에 걸린 붉은 다이아몬드가 발하는, 타는 듯한 광채가 더욱 눈에 박혔다.
델포드 남작이다.
뉴먼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호흡을 골랐다.
“만나서 반갑군요, 뉴먼 씨. 우리 초면일 거예요, 아마. 뉴먼 씨 주장대로 만난 적이 있다면, 내게 아무런 인상도 남기지 못해 잊힌 거겠죠.”
클레어는 웃음을 머금은 채 그렇게 말했다. 단숨에 자존심이 짓밟힌 뉴먼이 표정을 관리하지 못했다.
“날 어떻게 찾은 겁니까?”
“단원이 다섯 명이나 잡혔는데, 아무도 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요? 그 정도 신념을 심어 주었다고 자신해요? 진짜로?”
“…….”
뉴먼이 침묵했다.
잡힌 범인들의 입을 여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클레어는 다섯 명을 각자 한 명씩 이 사무실로 불렀다. 그리고 말했다.
[이 일을 사주한 사람에 대해 아는 대로 전부 말하세요. 이 제안은 당신들 모두에게 각자 하는 거예요. 유용한 정보를 말한다면, 죄를 덜어 주겠어요. 에머슨 공단의 변호사 말로는, 과실로 불을 낸 거라면 길어야 3년 정도의 노역형이 최대라는군요. 물론 우리 측에서 고발하지 않으면 벌금 정도로 끝나겠죠.]
[그런다고 해서 내가 배신할 것 같……!]
[대신, 나머지는 면죄받은 사람의 죄까지 뒤집어쓰게 될 거예요. 방화로 에머슨 공단을 불태우려고 했으니 형도 길겠지만, 그게 끝나도 평생 노역할 각오를 해야 할 거예요. 이걸 전부 갚을 때까지.]
클레어는 그들에게 내역서를 한 장씩 건네주었다. 그것은 이번 화재의 피해 금액을 산정한 것이었다.
도무지 공장에서 일하던 일개 공인이 벌어서 갚을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물론 당신이 이 공장에 취직할 수 있도록 소개장을 써 주었던 사람 역시 연대 책임을 지게 될 거고.]
그쯤 되면, 어지간한 신념으로는 버틸 수 없다.
같이 가둬 놓았다면, 자기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정당성을 확신하며 결의를 다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방화범들은 이미 열흘 이상 독방에 갇혀 있었다. 그동안 두려움과 의혹은 조금씩 그들의 머릿속을 잠식했다.
‘델포드 남작이 배신자라는 단장의 말은 사실인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닌가?’
‘내가 입 다물고 있다고 해서 들통나지 않을 것도 아닌데.’
‘에머슨 공단의 배신자가 되면 나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까지…….’
‘저 돈을 갚으라고 하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다섯 명이 모두 아는 것을 부는 데는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황금 새싹단은 점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다섯 명이 알고 있는 정보에서부터 시작하여 조직도를 파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클레어의 사무실에까지 불려 온 사람은 모두 황송해하며 아는 것을 모두 말했다.
그렇게 해서 하루 반 만에 뉴먼에게까지 닿은 것이다.
[제가 황금 새싹단에 가입한 것은, 남작님께서 가장 큰 후원자라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정기적으로 활동 지원금을 납부했을 뿐입니다.]
[결국 알고 오셨군요. 죄송합니다. 저는 남작님을 비난하는 말에는 절대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아, 남작님께서 직접……. 영광입니다.]
클레어는 콜베르크 광산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상을 느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잘 모르고 있었다.
물론 그전에도 자신의 금력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단순히 돈이 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돈을 쓰는 법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로비, 매수, 인맥을 통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실제로 에머슨 공단을 위해서 몇 번이나 행사하기도 했다.
또한 델포드를 비롯하여 몇몇 지역에서, 지역 유지로서 꽤 많은 사람들을 따르게 할 수 있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는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아렌인들이 그녀를 긍지로 여겼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렌인은 정말로 감정적이고 게을러서 가난한가?
아렌인은 철과 증기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지 않은 사람인가?
아렌인은 구태의연하고 어리석은 농투성이이기에 말단에서 시키는 일 정도밖에 할 수 없는 존재인가?
그 모든 질문에 ‘아니다’라고 선언한 것이 클레어 델포드다.
아주 많은 아렌인들이, 그리고 특히나 허허벌판에서 공단이 올라서는 것을 지켜본 에머슨 사람들이 그렇게 여겼다.
클레어는 그 같은 감정에 휩쓸리기에는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제게 무엇을 기대했는지, 불을 놓은 황금 새싹단원들이 무슨 말에 현혹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날 아렌의 배신자로 만들었더군요.”
“제가.”
“아렌 여자라면 당연히 아렌 남자와 결혼해야지, 결국 망아지처럼 날뛰더니 막대한 돈을 바치고 로멜의 이름난 종마와 붙어먹었다고 말했다면서요.”
로저와 자경대원들의 얼굴이 분노와 수치로 시뻘게졌다. 막시밀리안마저도 가볍게 혀를 찼지만, 클레어는 태연한 얼굴이었다.
솔직히 성공한 여자가 듣는 말 중에는 그보다 훨씬 심한 게 많은 법이다.
‘몸을 팔아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성공한 여자가 종마를 사려고 돈을 썼다는 쪽이 낫지.’
어느 쪽이든 개새끼의 개소리에 어울려 줄 이유는 없었다.
“뭐, 무슨 욕을 했는지는 솔직히 상관없고.”
클레어가 손을 내저었다. 자경대원들이 움찔했다.
하지만 클레어는 다시 그들에게 나가라고 손짓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에머슨 공단 사람이 알아야 할 이야기가 아니었다.
자경대원들이 밖으로 나갔다. 사실 호위는 자경대원 수십 명보다 막시밀리안 하나가 나았다.
로저가 망설였다. 클레어는 그에게 머물러 있으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이제 알아야 할 때다.
클레어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뉴먼에게 물었다.
“조직을 키우는 동안 내 이름을 판 게 자발적으로 한 일인지, 황후의 명령인지 궁금한데.”
“뭐……라고요?”
“네 위에 있는 거, 황후 폐하잖아. 날 반정부 조직에 엮으려고 내가 황금 새싹단의 후원자라는 소문을 퍼뜨린 것 아닌가?”
위빙 상단 때문에 아마 미리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수작이리라.
하지만 에리히와 결혼함으로써 더 이상 반란죄로 몰아넣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이번에 소소한 불쏘시개로 이용하려 든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