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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화 (167/263)

168화

그렇다고 해서 불쾌감이 가시는 것은 아니다. 감히 클라우제너를, 나아가 자신의 아내를 공격하려는 것을 두고 볼 수 있을 리 없다.

설령 그게 클레어의 계획이라고 해도 말이다.

사실 그녀의 방식이야말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었다.

‘논리는 이해하지만.’

목표에 닿기 위해서는 그 방법이 효율적이라는 사실에 자신도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그 때문에, 수도 밖으로 멀리 나가서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는 점에 있었다.

[당신이 있으면, 싸움이 링 위에 올려지지도 않을 거잖아요. 나는 밀실 협상으로 에머슨 공단 일을 보상받으려는 게 아니라고요.]

클레어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우습게 보이는 쪽이 저쪽의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겠죠. 그러니 당신은 엘리엇이나 잘 데리고 있어요. 육아는 전쟁 아닌 줄 아나.]

비서가 조심스럽게 그의 눈치를 살폈다. 에리히의 얼굴은 평소와 똑같이 냉담했으나, 노하지 않았을 리 없다.

“바로 출발하실 겁니까? 기차를 시간 맞춰 대기시켜 두었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네.”

비서가 숨을 들이마셨다. 당연히 가장 빠른 교통편으로 수도로 돌아가리라고 생각해서 모두 준비해 두었다.

“클레어가 하는 일에 굳이 관여하지 마.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클레어의 말이 옳다. 자신이 개입을 망설이고 있다고 여겨지는 쪽이 사건의 진행을 더 빠르게 당길 것이다.

그리고 이쪽도 이쪽대로 전쟁이긴 했다.

그 전쟁의 교전 상대이자 보호 대상이 케이크의 당분이 남은 손으로 그의 뺨을 타박타박 만졌다.

“엄마한테 안 가요?”

“천천히 갈 거야. 공왕 전하와도, 황제 폐하와도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으니까.”

“엄마 보고 싶어.”

엘리엇이 문득 생각난 것처럼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에리히의 신경이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울음소리에 반응했으나, 지금은 울음을 뚝 그치게 할 마법 같은 말이 있었다.

“엄마한테, 남이 준 초콜릿 케이크 허락 없이 먹은 거 말하려고?”

“앗.”

엘리엇이 제 입을 두 손으로 막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39. 여론

그 시점에 나온 기사는 이런 것이었다.

《공작 부인, 고발되다!》

《반역 혐의? 설마!》

이미 에머슨 공단의 화재에 대한 기사가 한창 휩쓸고 간 뒤의 일이었다.

선거권을 가질 정도로 부유한 시민의 다수가 직접 에머슨 공단에 투자했거나 주위에 투자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 관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공단 전체가 불탄 것도 아니고, 공장 몇 개가 타들어 간 화재만 가지고는 몇 주나 계속 이슈를 끌고 갈 수 없다.

그 화재 소식이 사그라질 무렵 두 번째 이야기가 나왔다.

《반군의 수장, 공작 부인에게 집착하다.》

《질투인가? 원한인가? 혹은 사랑인가?》

이 헤드라인에는 클레어조차 입을 벌리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완벽했다. 어그로를 끈다는 측면에서도, 화제의 지속성을 유지한다는 측면에서도.

경제니 정치니 하는 것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는 사람조차도 신문을 사서 내용을 읽어 보게 만들었다.

역시 펜대로 사람을 사냥하는 기자들은 클래스가 달랐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효과였으나, 클레어가 사들인 신문사는 판매량에 비례해서 주기로 한 인센티브 이상의 흑자를 내고 있다.

짤랑짤랑 돈 떨어지는 소리가 시시각각 들리는 착각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왜 클릭 수 장사를 하는지 한순간 납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치정 문제로 가십을 만들라고 한 적은 없어요.”

황당해하는 그녀에게, 레비 순보의 편집장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게 제일 잘 먹힙니다. 부인께서 몇 달 전에 공작님과 세기의 결혼을 하신 덕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도 많고요.”

그를 데려온 케이시 모리스의 얼굴이 납빛이 되었으나, 편집장은 수줍게 말했다.

“부인께서 효율 좋은 방법은 무엇이든 쓰라고 하셨다고 들어서…….”

“아니, 내가 그러긴 했죠.”

확실히 목적 달성에는 이보다 더 확실한 수단이 없을 정도였다. 사교계부터 시장통까지, 모든 사람이 이 일에 관심을 갖고 떠들어 댈 정도였으니까.

이왕 버린 몸, 혼자 죽을 수는 없었다. 하는 김에 클레어는 최근 새로 개발되었다는 사진 기술을 시험하기로 했다.

뉴먼의 머그샷과 에리히의 초상화를 한꺼번에 레비 순보에 내준 것이다.

클레어를 대신해 이 일을 맡고 있던 케이시는 새파랗게 질렸다. 전자는 이러나저러나 상관없지만, 후자는 곤란하지 않은가.

“공작님께서 불쾌해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범죄자와 나란히 얼굴을 싣는 것도 그렇지만, 이런 노출을 내키지 않아 하는 분일 것 같은데요. 그것도 심지어 레비 순보에.”

“본인의 업보지. 자기가 나한테 청혼한다고 그 난리를 안 쳤으면 레비 순보가 내 손에 들어올 일도 없었고, 그러면 이렇게 타블로이드지에 초상화가 공개될 일도 없었잖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삽화 뿌려진 건 내가 먼저야.”

말하다 보니 울분이 차올라 클레어는 그때 에리히가 보도 지침을 내린 모든 신문사에 그의 초상화와 사진을 종류별로 골라 보냈다.

그러고 나니 오히려 분한 느낌이 들었다. 조악한 인쇄 질로 봐도 미남이라, 오히려 평판이 올라가는 게 아닐까 싶었다.

클레어는 잠시나마 본 목적을 잊고 이를 갈았다.

“이걸론 모자란데. 그때 내가 골치 아팠던 거에 비하면. 굴욕 샷을 보내야 되는데.”

사진을 남기려면 몇 시간 동안 가만히 있어야 하는 시대니, 아무래도 무리였다.

역시 신문 삽화를 그리는 초상화가를 찾는 게 빠를 것이다. 그렇게 풍자화에까지 손댈 생각을 하고 있는데, 케이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이런 기사를 내는 게 효과가 있겠습니까? 하원 의원은 대부분 ‘친로멜파’입니다.”

실제로 혈통이 아렌계인지 로멜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느냐 하는 것이다.

현재 하원 의원 대부분이 황후의 편에 기울어져 있다. 왕당파가 소수 있긴 하지만, 세력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황후파와 왕당파가 분리되어 있는 것도 좀 웃기긴 한데……. 왕당파가 더 진보적인 상태인 건 더 웃기고.’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었고, 다른 이들이 염려하는 부분이었다.

“공작님께서 직접 나서셔야 하지 않을까요? 친로멜파 의원은 대부분 클라우제너와도 연이 깊습니다. 셔우드 씨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렇게 하면 적어도 절반 이상이 최소 중립으로 돌아설 거라고 하던데요.”

“그러니까 부르지 않은 거야.”

“예?”

“에리히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건, 의원들이 황후에게 충성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의미니까.”

“예?”

“황후의 돈과 영향력에 충성하고 있는 거지.”

알트마이어가 황실에 바치는 것 같은 충성이 아니다. 그러니 오래가지도 않고, 배신이라는 생각도 없을 것이다.

황후는 정치 자금을 대고, 로멜 우월주의를 통해 선거권자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클레어는 친로멜파 의원들이 진심으로 거기에 경도되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돈에는 국적이 없고, 로멜 우월주의는 정치사상으로 기능할 만큼 충분히 가공되지 못했다.

“하원 의원 중에 작위를 가진 세습 귀족은 없어. 그러니 자기들의 힘이 의원이라는 사실에서 나온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거야.”

“대부분 전통 있는 명문 출신이거나, 자산가 계급이거나, 아카데미에서 학맥으로 연결된 엘리트들입니다.”

“그것만으로는 권력을 얻을 수 없잖아. 영주는 무조건 상원에 적을 둘 수 있지만, 저들은 그러지 못해. 돈과 영향력을 왜 필요로 할까? 선거에서 이겨야 정치판에 남을 수 있으니까.”

명문 출신으로, 학력과 업적이 있고, 심지어 고위 귀족의 지지를 받더라도 하원에 입성하지 못하면 정치판에 들어갔다고 할 수 없다.

권력에는 중독성이 있다고 한다. 둘만 있어도 권력관계가 생기는 게 인간이다.

일단 맛본 힘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 몇 퍼센트나 될까?

“나는 하원 의원들이 표 무서운 줄 모를 거라고는 생각 안 해.”

그러니 여론은 충분히 힘을 행사할 수 있다.

선거 기간이 끝났으니 내 알 바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도 돈과 영향력을 쥔 귀족이니까.

물론 그들이 황후에게 진짜로 충성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희망 없는 나라라는 걸 겸허히 인정하고, 에리히에게 떠넘기면 될 일이지.’

밀실에서 고위 귀족끼리 악수를 나누며 이것저것 갈라 먹든 말든. 언젠가 감옥 부서지는 날을 생각하면서 팝콘이나 튀길 것이다.

남편이 지배 가문의 가주인데, 설마 세 식구가 죽기야 하겠는가. 그냥 돈이나 쓰면서 귀하신 안주인으로 살면 될 일이다.

그러니 이것은 이제 황후가 에리히를 시험하는 일이 아니라, 그녀가 하원을 시험하는 일이었다.

감찰청이 그녀를 고발한 것은 이때의 일이었다.

이 상황에서 가장 난처해진 것은 황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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