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휴정 중에도 방청자가 점점 늘어났다.
의회가 이렇게까지 관심을 모은 것은 노이만 의장이 기억하는 한 20년도 넘은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에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가십지가 일을 이렇게까지 키울 수 있다니.’
하원 감찰청이 움직이기 직전에 몇몇 의원이 황후의 시녀로부터 미리 언질을 받았으나,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청문회를 가십거리라고 생각하고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도 몰랐고, 그런 주목이 이렇게 빠르게 분노로 전환될 줄도 몰랐다.
“체펠린 후작은 대체 무슨 생각이랍니까?”
하원 의원 하나가 툭 내뱉듯이 말했다.
감사관이 체펠린 후작의 피후원자라고 해서 그를 입 밖에 내어 지목하는 것은 도를 넘는 일이다. 그러나 의원이 실제로 말하고 싶은 게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클라우제너 공작은 무슨 생각인가.
하원 감찰청에서 가장 먼저 움직인 감사관이 황후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이 일을 먼저 안 자들은 그것으로 사건이 끝날 줄 알았다. 공작이 체펠린 후작에게 부탁하여 일을 무마하려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내가 반정부 단체와 엮이는 것을 방관했다. 그렇다면, 감사관을 움직인 것은 공작 부인 본인이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감사관은 그녀를 고발했다.
[조금 전에 들으신 황금 새싹단 간부의 증언은 사실입니다. 에머슨 공단에 고용된 자 중 약 200여 명이 특정 종류의 ‘계’에 소속되어 있으며, 급료는 지급되지 않았고, 계주 한 사람이 거래처로서 대금을 지급받았습니다.]
[계주는 대부분 계원의 신체 포기 각서나 매매 계약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중 상당수가 8세 미만 아이도 취급합니다. 에머슨 공단에서는 17세 미만을 고용하지 않으니, 이 아이들은 그 외의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델포드 남작은 거룩한 의무를 팽개치고 금전적 이득을 위해 시민권자를 노예화하고 있습니다.]
[이미 확보된 계주와 계원의 명단을 제출합니다.]
그 뒤로 방청석에 불온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대뜸 이 문제부터 제시되었다면 틀림없이 별거 아닌 문제로 치부되었으리라. 계약의 자유보다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미 황금 새싹단으로부터, ‘로멜인이 아렌인을 노예로 삼아 부리고 있는데, 거기에 공작 부인이 동조하고 있다’라는 발언이 먼저 있었다.
누군가가 명단을 공개할 것을 소리 질러 요구했다. 노이만 의장은 휴정을 선포했으나, 소란은 계속되고 있었다.
다른 하원 의원이 말했다.
“의사당이 시장통 바닥 같군요.”
“의사 진행을 방해당한 것이 아니라면, 하원은 방청자를 거부할 권한이 없소.”
노이만 의장이 말했다.
이미 방청석은 꽉 찬 지 오래였다. 마치 인기 있는 연극 공연 때처럼 좌석 사이사이 빈 공간까지 서 있는 자들로 가득했다.
그러고도 점점 늘어나서, 이제 복도를 꽉 메우고 창문에도 달라붙어 있었다.
선거권자는 언제든 방청이 허락되었다. 오늘 같은 상황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만들어진 법은 아닐 테지만, 지금 저 와중에 선거권 없는 자만 골라 쫓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황금 새싹단이 제멋대로 공작 부인의 이름을 이용했다는 것으로 결론짓고 끝내지요.”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그렇게 하면, 방청자들이 납득하겠습니까?”
그때 노이만 의장의 보좌관이 문을 두드렸다.
“또 무슨 일인가?”
“송구합니다, 의장님. 무어 공작 각하께서 오셨는데, 방청석을 따로 만들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귀족원에서 열네 분이 함께 오셨습니다. 모두 아렌의 영주이십니다.”
노이만 의장이 숨을 들이켰다.
40. 증인석
클레어의 삶에는 늘 그럴싸한 계획이 있었다. 일을 저지르기 전까지는.
욱하여 지나치게 일을 벌이는 것이 그녀의 결점이었다. 그렇다고 자기 입으로 뱉은 말을 팽개치고 달아나지도 못하여, 결국 눈물 콧물 쏟고 후회하면서 수습하는 것이 그녀의 인생을 관통하는 삶의 형상이었다.
“내가 또 왜 굳이 일을 이렇게까지 저질렀나 몰라…….”
클레어는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세상만사 중간만 가는 게 가장 편안한 삶일 텐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고효율로 단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들키지 않게 농땡이 치며 월급 도둑질을 하자는 것이 좌우명이었건만.
사업주가 되다 못해 정치판에 뛰어들다니.
하지만 일을 저질렀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다. 무덤을 팠으니, 누구라도 하나 걷어차 넣고 도로 덮어야 한다.
안 그러면 그 무덤에 자신이 들어가야 할 테니까.
‘그래도 청문회라니! 회장님 휠체어를 밀고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청문회라니!’
에리히가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냐고 대꾸하는 소리가 귀에 선했다. 좋아하긴 누가 좋아한다는 건지.
그레이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부드럽고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
“지금이라도 마음 바꾸셔도 괜찮습니다. 제가 대리인으로 출석하겠습니다.”
“아니야, 그럴 순 없지. 여기까지 떡밥을 뿌려 놓고 아무것도 안 하면, 오히려 내가 분노의 대상이 되어서 잡아먹힐걸.”
두 번의 기회는 없을 것이다.
솔직히 희생하고 싶은 마음까지는 들지 않았으나, 알아 버린 이상 외면할 수도 없지 않은가.
인파를 뚫은 마차가 의사당 앞에 멈춰 섰다. 막시밀리안이 밖에서 마차 문을 한 번 두드리고 열었다.
그레이와 요안나가 먼저 내렸다.
“와……!”
플래시 대신 함성이 몸을 때렸다.
정말 적응이 안 된다. 하지만 딱히 이번 일이 아니라도, 에리히와 결혼한 이상 어차피 레드 카펫과 포토 라인은 떠안아야 하는 업보였다.
클레어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고는 가슴을 쭉 폈다. 그런 후 막시밀리안의 손을 잡고 내렸다.
‘정말로 늙은이들이란 어쩔 수가 없군.’
서른 살의 하원 의원 울리히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이야말로 기회가 아닌가. 본회의장 안에 좌석을 차지한 방청자는 모두 선거권자인 게 확실하고, 단을 높여 한쪽에 마련한 자리에는 무어 공작과 그녀를 따라온 귀족들이 앉아 있었다.
꼭 무어 공작과 함께 온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렌 귀족만이 아니라 로멜 귀족도 다수 자리했다.
여기서 눈에 띄면, 일약 스타 정치인으로 부상할 수도 있었다. 거기까지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후원자를 갈아탈 수 있으리라.
이왕이면 클라우제너 공작이나 에른스트 공작이라면 더 바랄 게 없고, 체펠린 후작이나 기지 백작같이 귀족원에서 영향력이 있는 가문이라면 어디라도 좋다.
신문 기자도 한가득이었다.
정론지에서 이 사건을 무게감 있게 다루리라는 보장은 없다. 어쩌면 늘 그러는 것처럼 적당히 뭉개 없앨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는 타블로이드지 기자도 잔뜩이지 않은가.
물론 가십지가 주로 다루는 것은 염문과 추문이지만, 그들이 무슨 신념 같은 것을 가지고 화제를 선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화제는 무엇이든 다루니, 자신의 이름이 단독으로 호외에 오를 수도 있다.
그는 인지도와 정치적 영향력이 비례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클라우제너 공작 부인께서 당도하셨습니다.”
노이만 의장이 몇 번이나 나무망치를 내리쳐도 술렁임이 멈추지 않았던 본회의장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경비원들이 본회의장의 문을 양쪽 모두 활짝 열었다.
공작 부인이 들어섰다. 사람들의 시선이 쭉 그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기대한 것보다 미인이었다. 목 끝까지 올라오는 장식 없는 검은 드레스에 다이아몬드 목걸이만 하나 걸고 있었는데, 키가 크고 늘씬한 탓인지 조금도 소박해 보이지 않았다. 단정하게 틀어 올린 머리가 이목구비를 선명하게 보이게 했다.
노이만 의장이 일어서서 그녀를 손수 에스코트했다.
“어서 오십시오, 클라우제너 공작 부인. 불미스러운 일로 모셨는데, 이렇게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증인으로 부르셔도 당연히 협조해야 하는데, 지금 저는 고발당한 몸인걸요.”
의원들이 불편한 기색을 띠었다.
울리히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공작 부인이 법전에 손을 얹고 선서를 끝내자마자 가장 먼저 포문을 열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클라우제너 공작 부인. 울리히 하비흐라 합니다.”
클레어가 살짝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위빙 상단이 거두고 있는 놀라운 성공에 대해서 늘 감탄과 존경의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 감사관의 말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울리히는 빠르게 말했다.
“위빙 상단의 충격적인 성공 이유 중 하나가 노예상을 이용한 극단적으로 저렴한 인건비 때문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클레어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그 표정에서 당황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공작 부인의 눈동자는 노란색이라기보다는 달구어진 금이나 해를 연상시켰다. 울리히는 약간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는 듯한 긴장과 흥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