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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화 (182/263)

183화

율리아는 당황스러운 기분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리누스가 말했다.

“하원 의원에게 손대는 일이야. 일단 손대고 나면, 이제 이익을 나눠 주는 방식으로는 하원을 지배할 수 없어.”

“…….”

“그러니까 람스 뭐인가 하는 그놈에게 손을 댔다면, 최대한 참혹하게 죽여서 공포를 심어 줘야지. 지금까지의 방식을 모조리 뒤집는 일인데, 그걸 어머니가 너한테 맡길 리가 있겠냐?”

율리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치맛자락을 움켜쥔 자신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은 희생양으로 선택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그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다스리는 방식을 바꾼다. 그것을 확신하고 나자 꽉 막혀 있던 율리아의 사고가 한꺼번에 뻗어 나갔다.

그녀가 추문을 만들겠다고 말한 것은 어디까지나 이 모든 사건이 물밑에 있어야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 일이다.

클라우제너 공작 부인과 디트마어 람스베르크를 조용히 제거함과 동시에 도덕성을 떨어뜨려 사람들이 그들에게 실망하게 만들고, 그들의 뜻에서도 등 돌리게 하고자 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황후가 이제 물밑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대신 직접적인 방법을 취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런 식으로 사람들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다.

리누스가 이 사실을 어찌 알았는가 싶었다. 시선을 들자,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황자 전하께서는 왜 이런 곳까지 오셨습니까?”

약한 희망을 가지고 묻는 율리아의 질문에 리누스가 입가를 비틀었다.

“짜증 나서.”

“예?”

“구구절절 이런 이야기를 한 것도 짜증 나서야. 끔찍한 기분이 되라고.”

상상도 하지 못한 말에 율리아가 멈칫했다.

“네가 감히 클레어를 건드리려고 해? 그것도 이렇게 추잡한 방식으로?”

그게 대체 무슨 소린가.

율리아는 생각했으나, 질문할 기회는 없었다. 그 전에 리누스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그의 주머니에서 권총이 나왔다.

엠마가 겁에 질린 소리를 내며 헐떡거렸다. 율리아는 뒷걸음질 쳤다. 그녀의 얼굴에 총구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렇게 비합리적인 일을, 황후 폐하께서 허락하셨을 리가.”

탕.

율리아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유, 율리아! 아, 아악!”

엠마가 비명을 지르며 돌아서서, 달아나려고 문고리를 미친 듯이 당겼다. 하지만 밖에서 잠근 듯 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탕.

두 번째 총성이 울렸다.

리누스는 쓰러진 여자들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사람을 죽이면 절망감이나 비탄이 들 줄 알았는데.

어차피 세상에서 쓰레기를 둘 치운 것뿐이다. 몇 명 더 죽여도 될 것 같았다.

이 여자도 어머니의 동조자일 뿐이다. 그러고 보니 5년 전에는 몇 살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5년 전에도 시녀였다면, 좀 더 고통스럽게 죽였어야 했는데.

리누스는 좀 더 신중해져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방문을 열었다. 근위대원들이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의원은?”

“옆방에서 찾았습니다. 약으로 재워져 있었습니다.”

“노이만 의장의 집으로 보내.”

추문이 준비되어 있다면, 클라우제너 공작저로 보내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디트마어의 자택으로 보내는 것은 생색이 나지 않는다.

“나머지 쓰레기는 전부 알아서 치워.”

리누스는 그렇게 명령하고, 가벼워진 기분으로 황궁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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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처럼 은둔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황후도 황후궁 밖으로 자주 나오는 사람은 아니었다.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따로 만난 적도 없으니, 이것이 클레어와 황후의 첫 대면이었다.

생각보다 자그마한 체구를 지닌 중년 부인이었다. 머리칼이 반백에 가까운 탓에 제 연령보다 나이 들어 보였다.

클레어는 기묘한 감상을 느끼며 황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키가 큰 편이었기에, 이렇게 마주하자 내려다보는 느낌이 확연했다.

아마 황후는 모든 사람을 올려다보는 것에 익숙할 터였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황후 폐하.”

클레어는 몸을 구부려 그녀에게 예법대로 절을 올렸다.

“제가 클레어 델포드 클라우제너입니다.”

황후가 무덤덤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잠들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으나, 얼굴에서 피로의 흔적을 전부 숨기지 못한 모습이었다.

“만나서 반갑군, 클레어. 그렇게 불러도 되겠지? 내가 에리히의 외숙모이니.”

“아니요. 절 델포드 남작이나 클라우제너 공작 부인이라고 불러 주세요. 원래 남편의 친인척과는 거리감 있게 예의를 지키는 편이 좋다고 알고 있거든요.”

클레어가 말했다. 그 말에 황후가 약간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로 웃음을 머금었다.

“남작이 똑 부러지는 성격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정말이었군. 그리하지. 만나서 반갑네, 델포드 남작.”

황후가 손을 내밀었다.

이것은 자신이 아우구스타에게 했던 일에 대한 보복일까, 하고 클레어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내민 손을 무시할 수 없었을뿐더러 딱히 굴욕감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한쪽 무릎을 구부리고 그 손등에 키스했다.

황후가 이번에는 노이만 의장에게 손등을 내밀었다. 노이만 의장도 예법대로 한쪽 무릎을 꿇고 황후의 손등에 키스했다.

여상한 목소리로 자리에 앉으라고 권한 다음 황후가 물었다.

“그런데 의외로군, 노이만 경. 물론 경이 클라우제너의 은혜를 잊을 수 없는 입장이긴 하지만, 이 새벽에 공작 부인과 함께 찾아오다니? 이제 하원에서는 은퇴하기로 한 건가?”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노이만 의장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람스베르크 의원을 보호하고 계십니까?”

“그걸 왜 내게 묻는가?”

황후가 태연하게 물었다. 노이만 의장의 안색이 변했다.

“람스베르크 의원이 오늘밤 행방불명되었습니다. 부상당한 호위가 혼자 돌아왔습니다.”

“이것 참, 공작 부인이 호위를 보내 준 것으로 아는데, 실력이 별로 없는 자들이었던 모양이군.”

황후가 실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클레어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하긴, 증거도 없는데 황후가 안색 하나 관리하지 못하겠는가. 15년이나 숨긴 간자를 썼을 때는 그만한 준비가 있었으리라.

“이 일은 하원 의원이 위협당한 심각한 문제입니다, 황후 폐하. 하원은 절대로 이 일을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노이만 의장은 굳이 외교적 수사를 동원하지 않았다.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황후가 무섭도록 무표정한 얼굴을 했다.

표정을 숨긴다고 해도, 또 무조건 무표정이 능사는 아니다. 황후답지 않았다.

클레어가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황후 폐하께서 모르신다면, 클라우제너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일은 하원 의원이 위협당한 것일 뿐만 아니라 클라우제너의 식솔이 다친 일이기도 하니까요.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르고요.”

“그게 좋겠군.”

“연꽃 이궁과 랑 거리에 있는 레만 백작가의 부동산부터 찾아볼 작정이랍니다.”

아우구스타의 안색이 살짝 흐려졌다. 클레어가 황후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실은 그 허락을 받으러 찾아뵈었어요. 전 하원에서 물론 제게 이 수색에 대해서 만장일치로 면책 특권을 발급해 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황후 폐하의 별장이니 먼저 허락을 받는 게 옳다고 생각해서요.”

말씨는 평화로웠으나 협박이었다.

카탸가 죽은 뒤로 연꽃 이궁의 사업을 다른 장소로 이전했다. 그게 바로 랑 거리에 있는 안전 가옥이다.

연꽃 이궁의 존재 자체는 알아내기 쉬웠을 테지만, 랑 거리까지 알고 있다고? 아직 그쪽으로 본부를 이동한 것은 연잎 궐련 사업에 관련된 자들 중에서도 핵심적인 인물밖에 몰랐다.

아우구스타의 마음이 의혹으로 물들었다. 황후가 오래전부터 클라우제너에 사람을 심었던 것처럼, 클라우제너에서도 그러지 않았으리라는 법이 없다.

랑 거리를 알고 있다는 건, 다른 안전 가옥의 위치도 대부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사실 이번에 클레어가 의회에 제출한 에른스트의 노예계 목록은 확실히 내부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정보를 포함하고 있었다.

“이상한 협박이로군, 남작. 빈집을 조사하는 것은 그럴 수 있는 일이나, 굳이 내 별장부터 뒤지겠다는 말을 하러 오다니.”

“협박이라뇨. 예의를 지키고자 하는 것뿐이에요. 그리고 황후 폐하의 별장만이 아니라 꽤 많은 그럴 듯한 장소 목록을 갖고 있어요. 모두 찾아볼 작정입니다. 물론 경찰과 내각에도 협조를 요청할 겁니다.”

안 그래도 로멜의 사업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업은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그 안전 가옥에서 뭐라도 나오면 순식간에 시위로 번질 것이다.

“…….”

황후가 붉은색 눈동자를 가늘게 뜨고 클레어를 바라보았다.

“남작은 참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군.”

“황후 폐하께서 아침까지 저와 대화하고 싶으신 거라면, 5분만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비서가 따라와 있으니 황후 폐하께서 허락하셨다고 전달만 하면 되거든요.”

“……나도 람스베르크 의원을 찾아보라고 하지. 걱정할 필요 없네.”

황후가 피로 짙은 얼굴로 손을 저었다.

하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을 더 끌 작정인가 싶어 클레어가 일어서려 했을 때, 바깥에서 잠시 소란이 들리더니 비서가 다급히 들어와 무릎을 꿇고 쪽지를 건넸다.

클레어는 황후에게 양해를 구하고 쪽지를 폈다.

『4시 45분, 근위대원이 혼절중인 디트마어 람스베르크 의원을 노이만 저택에 이송했습니다.』

그녀는 놀라서 황후를 바라보았다. 황후가 숨기지도 않고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으로 보나 태도로 보나 황후가 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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