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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분명해-208화 (209/263)

#208화

사단장들이 다투어 말했다.

“꼭 한번 뵙고 싶다고 말씀 올리는데도, 황후 폐하께서 안전을 이유로 거부하셔서 몹시 안타까워했었습니다.”

“황후 폐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아무래도 군인에게는 주군이 중요한 법이라서요. 황자 전하의 얼굴을 한번 뵙는 쪽이 교육을 하는 것보다 나은 법이지요.”

극진한 말이 쏟아졌다. 황제의 관을 쓸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고 자신이라는 것을 리누스는 기이할 정도로 실감했다.

그는 표정을 냉담하게 가장했다.

로멜 귀족답게, 아니 황족답게. 아니 황제와 제러드가 황족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게 진짜로 황족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기대하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다.

사실, 실제로도 냉담한 기분이었기에 표정을 일부러 다스릴 필요가 없었다.

에리히처럼 냉철하게 다듬어진 엄격함을 드러내기보다는 지루해 보이는 표정이었으나, 그것 또한 지체 높으신 분답다고 말하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에른스트를 따르는 이들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수년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은 황자가 실은 잘못되었다는 소문이 상당히 오래전부터 있었다.

어린 시절에 그는 심약한 편이었고, 늘 창백한 얼굴에 마른 몸이어서, 에른스트 공작령에서 양육되는 동안에도 공작 내외의 얼굴이 펴지는 날이 없었다.

하지만 보라. 황자는 고귀한 피가 드러나는 미려한 모습이다.

황후를 따르면서도 어딘가 마땅치 않은 기분을 느끼고 있던 사단장들에게는 적잖이 안심되는 일이었다.

비록 에른스트에서 자랐을지라도, 그는 틀림없이 황실의 자손이다. 적어도 사단장들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에른스트의 가신들을 곁에 두는 것은 사단장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언제까지 아렌 촌놈들을 신경 쓰느라 예산을 낭비할 텐가.’

‘클라우제너는 품격이 높을지는 몰라도 너무 무심해. 진짜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몰라.’

‘황실의 뜻은 알지만, 결국 어미가 아렌인이면 자식도 아렌에 가깝게 키우는 법이 아닌가. 계승법은 지나치게 일방적이야.’

군은 대체로 언제나 아렌에게 적대적이었다.

결혼 병합 전에 있었던 전쟁이 아주 오래된 옛일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퇴역 군인들은 늘 가난했으나 그 이유를 위보다는 밑에서 찾았다.

군을 신경 써 주는 것은 에른스트뿐이다. 에른스트가 세울 황제는 진정한 로멜의 황제가 될 것이다.

리누스는 예민한 성미였으므로 이들의 믿음과 기대를 이미 알고 있었다.

전 같았으면, 그것이 몹시 혐오스러웠으리라.

그들이 실질적으로 제게 이득을 가져다줄 자를 원하는 것이라면 황후를 따라야 하고, 온전히 황실에 충성한다면 황제를 따라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저를 이용해, 충성한다는 위선을 잃지 않은 채 이득까지 취하려 한다.

그냥도 혐오스러운 존재이며, 그 때문에 자신이 태어났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이 순간에 그는 거의 그 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네 엄마가 아니야.]

그는 머릿속 한구석으로 클레어의 그 말을 계속 떠올리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리칼의 흔들림, 칼날 같았던 눈빛, 입술의 움직임까지 모두, 바로 몇 분 전의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리누스는 자신이 클레어에게 모성애를 구하고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아이 키우는 방식이 유난하다고 생각했고, 그게 옳지 않다고 여겼으며, 동시에 클레어답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것도 우스운 일이긴 했다. 답다, 답지 않다, 그런 말을 할 만큼 그녀와 잘 아는 사이도 아니니까.

그렇다면 이 욕심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는 질투 탓이라고 생각했었다. 엘리엇이 제러드의 아들이라서 갖고 싶은 것과 마찬가지로, 클레어는 에리히의 여자이니 갖고 싶은 것이다.

그들의 피와 외모를 훔치고 싶었듯, 아내와 아이도.

그러니 황후는 자신에게 그들을 주어야 마땅했다. 제러드의 것을 빼앗아 제게 주려는 게 바로 황후가 하려던 일이 아닌가.

그리고 제러드 때에 절망감만 느낀 것과 달리, 에리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그 마음은 탐욕에서 기묘한 희망으로 화했다.

정당한 주인은 사라졌으니, 자신이 훔쳐도 아는 자가 없으리라.

그러나 지난 몇 주 동안, 그는 에리히에 대해서도, 심지어 제러드에 대해서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

대신 그는 클레어를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네 엄마가 아니야.]

그는 또다시 그 말을 생각했다.

자신은 그녀의 태내로 들어가고 싶기라도 한 건가. 그러면 결함 없는 아이로 태어나 모친의 사랑을 받으며 온전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글쎄,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늘 태어나기 전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 클레어는 그의 삶을 책임져야 했다.

바다에 몸을 던졌을 때, 그는 죽을 수 있었다.

차가운 양수 속에서 그의 몸과 의식을 건져 내고 숨을 불어넣어 살려 놓은 것은 클레어였다.

어머니에게 낳아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듯이, 그는 클레어에게도 살려 달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에게 멋대로 완벽한 로멜의 황제가 되기를 기대했다가 실망했듯이, 클레어 역시도 그가 제 뜻을 따르리라 기대했다가 실망한다.

그렇게 생각하자 갑작스럽게 증오심이 치솟아 올랐다.

“야코프 각하!”

그때였다. 누군가가 문을 다급히 두드렸다가 허락 없이 열었다. 제3 친위사단장인 야코프가 당황하여 물었다.

“황자 전하께서 계신데, 이 무슨 무례냐?”

“아, 화, 황공합니다! 하지만 사태가 급박합니다, 야코프 각하! 그로버 탑이 습격당했습니다!”

“뭐?”

야코프가 벌떡 일어섰다. 오늘 밤 수도를 지키고 있던 군병은 제3 친위사단에서 차출된 인원이었다.

“폭도들이 울리히 하비흐의 이름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로버 탑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아무래도 람스베르크 의원이 거기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소식이 전해지면서 폭도가 점점 늘어나는 중으로…….”

“황공합니다, 황자 전하.”

전령의 말을 끊고 야코프가 리누스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저는 먼저 나가 보겠습니다.”

“잠깐 기다려 봐.”

리누스가 일그러진 얼굴로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

“람스베르크는 아직 잡히지 않았을 텐데. 왜 그자가 그로버 탑에 있지?”

“정확한 사실은 아직 알 수 없습니다만, 아마 간수가 압박을 받아서 통과시킨 게 아닐지…….”

“아니면, 뇌물이거나.”

그건 그렇겠지만, 황자 앞에서 정치범 수용소의 간수가 뇌물을 받고 위험 분자를 통과시켰으리라고 말할 수는 없었으므로, 전령은 고개를 숙였다.

야코프가 미소 짓는 얼굴로 무마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둘 다 한꺼번에 잡아들이면 될 일입니다. 게다가 폭동에도 분명히 일조했을 테니, 이번에는 하원 의원의 면책 특권 같은 소리도 할 수 없을 겁니다. 반역죄는 그 무엇으로도 덮을 수 없는 법이니까요.”

“아니, 나는 람스베르크 따위에게 신경 쓰는 게 아니야.”

리누스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압력을 가했든, 뇌물을 주었든, 그걸 누가 해 주었겠느냐고 말하는 거지.”

“황자 전하…….”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입술을 비틀어 말아 올린 리누스가 누구를 지칭하고 싶어 하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윗사람의 눈에 들려는 음험한 책사라면 모르되, 제국의 총칼인 친위사단장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아무도 대신 말하지 않았으므로 리누스는 자기 입을 열어 명령했다.

“클라우제너를 부숴.”

“전하, 그것은 쉽게 결정하실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리누스가 명령하기에는 너무 큰일이다. 황후조차도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리누스는 증오심에 몸을 맡긴 채 눈앞이 붉어지는 착각을 느끼며 말했다.

“디트마어 람스베르크와 울리히 하비흐가 누구의 후원을 받는지는 명백한 일이야. 터무니없는 일처럼 느껴지지만, 클라우제너 공작 부인이 혁명 같은 소리를 입에 담곤 했던 것도 사실이지.”

“그것만으로 반역죄를 논할 수는 없습니다. 하원 의원을 후원한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디트마어 람스베르크 따위가 감히 그로버 탑의 잠긴 문을 열었단 말인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졌으나, 사단장들은 리누스가 몰라서 묻는 말인지, 당위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어쨌든 전자를 요구하면 모를까, 아니라면 그들은 후자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미래의 황제에게 간수가 뇌물을 받고 반역죄로 갇힌 수인을 외부와 접촉시켰다는 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클라우제너겠지. 공작 부인을 끌고와.”

리누스는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로 말했다.

“거부하면 저택 문을 부숴. 부황께서 돌아가신 지금, 내가 제국의 주인이다. 이것은 황명이야.”

사단장들은 난처해졌으나 표정을 솜씨 좋게 숨겼다.

전령이 조심스레 물러나는 것을 리누스는 흘끗 쳐다보았다. 아마도 황후에게 가는 것일 테지만, 상관없었다.

제게 권력의 맛을 보여 주고 싶다면, 이 정도도 못 하게 할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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