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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분명해-210화 (211/263)

#210화

입도 떼기 전이라, 허를 찔린 클레어는 어색하게 막시밀리안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미동 없는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클레어는 이번에는 요안나를 바라보았다. 요안나가 눈치 빠르게 무어 공작을 보고 말했다.

“일단 들어가세요, 공작님. 씻고 쉬시는 게 좋겠어요.”

무어 공작은 클레어와 막시밀리안이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을 알아챘지만, 클라우제너의 방침을 결정하기 위한 것이라면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니었으므로 순순히 요안나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응접실에 클레어와 막시밀리안, 빌헬름만 남았다. 클레어는 찬찬히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안 됩니다.”

막시밀리안이 다시 말했다.

“그 어떤 경우에도, 부인의 안전을 우선하라는 것이 각하의 명이셨습니다.”

“일단 의논을 하려고 했는데요.”

클레어가 약간 난처한 듯한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니 내가 안전 가옥 쪽으로 옮겨 가면 어떨까요? 아무래도 규모 큰 상아궁보다는 그쪽이 방어하기에도 더 좋을 것 같은데.”

“옳은 말씀입니다.”

빌헬름이 대답하고, 막시밀리안도 고개를 끄덕였다.

“안전 가옥들의 위치 자체는 대부분 황후궁에서도 파악하고 있겠죠?”

“그렇다고 전제하는 게 안전할 겁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저택처럼 큰 범위를 경호하는 것보다는 구멍이 적겠죠.”

“탈출이 용이한 장소였으면 좋겠군요. 리나 양이 준 통행증이 있으니까, 만약의 경우가 생기더라도 도망치기 쉽겠죠.”

사실 이것까지 쓰지 않더라도, 대개는 돈으로 해결될 것이다.

제아무리 친위 사단이니 계엄군이니 해도 뇌물이 통하지 않을 리 없다고 클레어는 생각했다.

빌헬름이 말했다.

“지금 그냥 먼저 수도를 빠져나가시는 쪽은 어떻습니까? 폭동이 설령 작은 규모로 끝난다고 해도, 이제 이 이상 수도에 머물러 계실 필요는 없습니다.”

“장거리 여행을 아기가 견딜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니까요. 만약의 경우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가능하면 움직이고 싶지 않아요.”

“예.”

빌헬름이 안타까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클레어는 막시밀리안을 돌아보고 말했다.

“내가 안전 가옥으로 이동한 다음이라면 어떤가요? 가 줄 수 있을까요?”

“…….”

“에리히가 나를 걱정하는 마음은 알지만, 디트마어 경이 죽는다면 나는 몹시 실망할 거예요. 그가 진짜로 죽어 버렸다면, 이제까지 해 온 일이 전부 무용해지니까요. 부탁해도 안 될까요?”

막시밀리안이 한숨을 쉬었다.

클레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는 게 아니었다. 줄곧 옆을 지켰는데,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움직이는지 모를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막시밀리안은 보수적이고 고지식한 편이었다.

더불어, 클레어의 행동을 알고 있다는 게 꼭 그녀의 신념을 이해하고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가 부탁이라고 말했다. 에리히의 명령은 절대적이지만, 여주인의 명령 역시 그러했다.

사실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그녀를 보호하는 걸 우선시하는 쪽이 옳을 것이다.

문제는, 클레어의 실망한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건 클라우제너 공작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빌헬름이 제안했다.

“사람을 푸는 것은 어떻습니까?”

“아니요. 클라우제너의 호위 병력이 여럿 폭도와 섞여 있으면 반역 누명을 쓸 수도 있으니까요. 게다가 어지러운 상황이니, 제가 가서 보고 오는 게 낫겠습니다.”

막시밀리안은 결국 그렇게 말했다.

“안전 가옥까지 직접 모실 겁니다. 그다음 확인만 해 보고 오겠습니다. 하지만 람스베르크 의원이 진짜로 가스 폭발에 휘말린 거라면, 뒤늦게 가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고마워요.”

클레어가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 막시밀리안은 무심코 그녀를 따라서 미소했다.

그녀는 이번에는 집사를 호출한 뒤 말했다.

“노이만 의장님을 모셔 와요. 내가 할 이야기가 있으니.”

원래는 이렇게까지 개입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을 다스릴 권리가 자기 자신에게 있듯이, 역사를 결정하는 것도 그 시대 사람들의 과업이다.

하지만 클레어는 이제 부평초처럼 세상의 흐름 위에 올라타서 떠갈 수는 없었다.

가족이 있다. 자신의 패배가 아이들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제 아이들에게 물려줄 의무가 있었다.

그러니 그녀 역시도 이 시대의 한 사람인 것이다.

그때, 클라우제너 공작저의 정문을 지키고 있는 보울러 백작은 친위사단의 제복을 입은 전령의 모습을 보고 크게 긴장하여 직접 문 밖으로 나갔다.

저택을 둘러싼 경호원들이 무기를 쥐었다. 보울러 백작은 손을 들어 일단 정지를 신호한 다음, 전령에게 외쳐 물었다.

“용건이 뭔가?”

“제1 친위사단의 슈뢰더 경으로부터, 막시밀리안 자작님에게 전언이 있습니다!”

전령이 외쳤다. 막시밀리안으로부터 슈뢰더라는 이름을 미리 들은 바 있으므로 보울러 백작은 그를 통과시켰다.

슈뢰더는 친위사단 안에 있는 막시밀리안 라인의 장교였다.

전령은 긴장과 땀에 전 얼굴을 하고, 낮은 목소리로 보울러 백작에게 빠르게 말했다.

“지금 제3 친위사단의 2개 대대가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리누스 황자 전하께서 클라우제너 공작 부인을 반역죄로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보울러 백작의 안색이 변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증거도, 재판도 없이 고위 귀족을, 그것도 지배 가문을 체포할 수는 없다.

이것은 전쟁을 해 보자는 뜻이었다.

“슈뢰더 경에게, 고맙다고 전해주게.”

“예.”

전령은 곧바로 다시 뒤돌았다.

보울러 백작은 경비를 강화하라고 명령한 다음, 서둘러 저택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 * *

그로버 탑의 폭도는 순식간에 시위대에서 시민군으로 돌변했다.

애초부터 무혈로는 원하는 것을 얻어 낼 수 없다고 주장하던 일군의 무리가 있었다.

디트마어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벌써 총칼로 무장하고 황궁을 향해 진격했을 것이다.

모아들인 무기와 화약이 손에서 손으로 건네졌다. 진작부터 오늘의 일을 기다렸던 과격파들은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그로버 탑의 수비대가 발포하여 피가 흐른 뒤로, 흥분은 성난 소 떼처럼 군중을 몰아붙였다. 거리에 사람들이 온통 쏟아져 나왔다.

리나는 거기에 휩쓸리지 않았다. 스테판이 그녀의 멱살을 잡은 채 흐름에서 벗어나 가까운 골목으로 들어갔다.

리나는 그가 자신을 성문 쪽으로 이끄는 것을 눈치채고 발버둥 치며 그의 손을 잡았다.

“혼자서는 안 가!”

“빌어먹을, 대체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내가 너한테 뭐 큰 거 바랐어? 그냥 얌전히 좀 있다가 안전한 곳으로 가라고 몇 번을 말했어?”

스테판은 언성을 높였다. 곧이라도 리나를 바닥에 내팽개치기라도 할 기세였다.

“망할, 혼자 못 가겠다면, 클라우제너 공작 부인에게 붙어 있기라도 하라고!”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는 황궁으로 가야 했다.

상황이 되어 가는 것을 보고, 소강상태가 일어난 곳을 부추기거나 계엄군의 구멍을 더 크게 뚫어야 한다.

말이 좋아 시민군이지, 제대로 된 조직도 없는 군중이 훈련이 잘된 친위 사단을 상대로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그가 황궁으로 길을 인도해야 한다.

리나가 아니었다면, 벌써 움직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오도 가도 못 하고 있었다.

리나가 그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버텼다.

그녀는 스테판의 계획을 몰랐으나, 그가 뭔가 흉흉한 이유로 자신을 떼어 놓으려 한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아니, 사실 항상 그랬다. 스테판은 중요하고 끔찍한 일을 할 때마다 자신을 떼어 놓았으니까.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처음에 소리 지른 바람잡이들, 너랑 아는 사이지?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나는 아무 짓도 안 했어. 내가 아니라도 어차피 사람들은 더 참지 않았을 거야.”

“아무리 폭발 직전이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참고 있었어. 설마 그로버 탑에 불을 지른 것도 너야? 디트마어 씨를 해쳤어!?”

리나가 친밀하게 부르는 호칭에 스테판의 안색이 얼어붙었다. 마치 얼음으로 머리를 맞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한순간에 불과했다. 생각해 보면, 그는 그 일을 리나에게 따질 자격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제야 왜 리나가 이러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미안하게 됐군. 그가 선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지만, 상황상 어쩔 수 없었어.”

“너, 뭔가 오해했지. 나는 디트마어 씨와 그런 사이가 아니야. 왜 네가 이런 짓을 하는지 알고 싶을 뿐이야!”

리나가 고함을 질렀다.

“이렇게 하면 죽는 사람이 나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잖아! 왜 그랬어!”

스테판이 그녀의 양 손목을 잡아 거칠게 제 몸에서 떼어 놓았다. 그리고 순진한 얼굴을 향해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증오를 느끼며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내 인생에 간섭하려 들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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