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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분명해-211화 (212/263)

#211화 [S공금]

“말해 주지 않으면 몰라! 당연한 거 아냐?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건 모두 네 탓이야!”

리나의 말에 스테판은 신음하듯 목을 울렸다.

맞는 말이었다. 그는 리나에게 중요한 말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리나는 운이 나쁜 애였다. 만일에 그녀의 할머니가 숨어든 곳이 하필 그의 어머니 집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마르고트 에른스트의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래. 그게 리나의 목숨을 구하기는 했다.

카탸 보르얀스가 끌어들인 폭력배 따위가 어떻게 감히 에른스트의 감시를 뚫고 들어올 수 있겠는가.

세상일은 어떻게 굴러갈지 알 수 없는 법이다. 그의 어머니는 리나를 구했다.

그러나 그 사건은 카탸와 황후를 연결했으며, 백작 영애는 하녀 옷 속에 숨겨졌다.

그러니 그녀를 제자리로 돌려보냈다. 그건 스테판이 어머니 대신 져야 할 책임 중에 하나였으니까.

이제 그녀에게 남은 용건은 없었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일을 책임져야 할 때였다.

“이러지 마, 스테판. 난 널 알아. 넌 사실은 속이 깊고 다정한 사람이잖아. 네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리나가 간절히 말했다. 푸른 눈동자가 슬픔으로 젖어 있었다.

스테판은 주먹을 쥐었다. 귀찮게 굴지 말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는 아픈 목으로 중얼거렸다.

“넌 몰라. 나는, 내가…….”

그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황후의 자비로 살아 있으니까.”

죽이지 않은 것을 자비라고 말한다면, 분명히 황후는 그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그의 아버지에게도.

자신이라면 죽였을 것이다.

고귀한 귀부인이 그저 두어 번 품었을 뿐인 천한 남자를 살려 두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 이상으로 어리석었다.

그는 자신이 운 좋게 총애받은 하룻밤의 상대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황후의 정부가 되었다는 게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게 아니건만, 제 자식이 황제가 되고 그러면 황궁에 들어가 살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때까지 돈과 권력에 몸을 내준 적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홀리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상대가 너무 고귀해지자 그 위광에 넋을 놓은 건지,

그게 권력자에게 붙은 기생충과 무엇이 다른가. 남의 권위를 빌려 자신을 치장하려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다만 여우는 제 뒤를 따라오는 것이 범이라는 것을 알기라도 했었는데.

황후가 그냥 만족을 얻고 나서 아버지를 죽여 버렸다면, 어머니는 춤을 그만둘 필요도, 시골로 숨어들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어차피 두 번 찾지도 않은 상대가 아닌가.

하지만 그러지 않았기에 그와 어머니는 일평생을 저당 잡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황후는 자비를 베푼 것이다. 그가 살아남은 20년의 세월 동안 황후는 언제나 그를 죽일 수 있었다.

아우구스타는 그에게 너무 필사적이 되지 말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황후 폐하께서는 네 생각보다 널 더 아끼신단다.]

[터무니없는 말씀입니다.]

[터무니없다니. 그렇지 않아. 황후 폐하께서는 능력과 야심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시고, 너는 영민하고 아름다운 청년이니까.]

글쎄, 황후가 그의 얼굴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한순간이나마 그녀를 미치게 했던 것이 이와 거의 같은 얼굴이었으니까.

내면이 텅 빈 것이었으니, 그 흥미는 기껏해야 일주일도 가지 못했지만 말이다.

황후에게는 대화 상대도 되지 못하는 고양이를 키우는 취미가 없었다.

[아이러니한 일이기는 하지. 벤자민이 너처럼 똑똑하기까지 했다면, 아마 황후 폐하께서는 그를 사랑하지 않으셨을 테니.]

아무래도 좋았다.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능력을 증명했으며, 거기에는 용모를 통해 만드는 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능력을 평가해 준 것조차도 자비다.

리나는 숨 막힌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스테판의 얼굴에 들끓는 증오를 읽을 수 있었고, 그가 하는 말과 감정 사이의 일그러짐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질문은 명확하지 못했다.

“왜?”

왜 증오가 아니고 자비라고 부르는가. 무엇 때문에 증오를 품었는가. 그 질문을 더듬거리며 묻자 스테판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누군가의 자비로 생존을 잇고 있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그 자비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뜻이니까.”

자신이 넘겨주지도 않았는데 목숨이 타인의 손에 쥐어져 있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황후의 첩자가 된 것은 자비가 거두어져도 살아남을 구멍을 뚫기 위해서였다.

쓸모를 증명하여 자신의 삶과 자신이 책임져야 할 다른 두 삶을 물 위로 건져 올려야 했다.

이제 하나 남았다.

“그러니까 꺼져. 이건 내 일이야.”

스테판은 사납게 내뱉었다.

리나가 손을 선선히 놓았다. 놓으라고 소리 질렀던 주제에 스테판은 제풀에 놀라, 오히려 그녀를 밀쳐 내고 떠나지 못하고 움찔 그 자리에 굳었다.

리나가 후드 자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알았어.”

단단하고 맑은 목소리였다. 스테판은 그녀가 어떨 때 그런 목소리를 내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대체로 리나를 마음대로 다루었으나, 이럴 때는 도저히 꺾을 수 없었다.

“그러면 이제.”

“널 막을 거야.”

리나가 말했다. 스테판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네가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벌레 하나 못 죽이는 주제에.”

“노력은 해 봐야지. 네가 내 말을 들어주지 않겠다고 하니까, 다른 방식으로 애써 볼 수밖에.”

리나가 그를 올려다보고 말했다. 그 단호함에 스테판이 입술을 몇 번 달싹거리기만 하고 선뜻 거친 말을 꺼내지 못했다.

“너 혼자서 멋대로 날 휘두르게 내버려 두진 않을 거야. 내 인생은 내 거고, 나는 네가 더 이상 죄 짓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

그렇게 말하고 리나는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갔다. 그러면서 클레어를 떠올렸다.

그녀가 보기에는 세상에 못 할 것이 없을 듯한 클라우제너 공작을 향해서도 클레어는 틀렸다고 말한다.

누가 이기나 보자고 마치 내기라도 하듯, 농담처럼 웃고 말하지만, 사실은 진지하게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리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래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리나는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부터 스테판을 감싸서 모두 용서해 줄 마음은 없었다.

그렇게 가라고 소리 질렀던 주제에, 이번에는 스테판이 당황해서 그녀를 쫓아가 붙들 때였다.

“어쩌려는 거야!”

“나는 어디서든 신원을 증명할 수 있어.”

그녀는 얼굴이 아주 잘 알려진 유명 인사다. 용모도, 목소리도, 남이 따라 할 수 없었으므로, 그것은 신용의 다른 이름이었다.

과거에 이리스가 아편의 시작점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이제 이리스와 같은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녀로부터 시작될 것은 아편이 아니라 다정한 목소리일 것이다.

리나는 즉석에서 연설하는 사람들 사이로 끼어들어 갔다. 스테판은 그녀를 잡으려 했으나, 정체를 들킬 우려 때문에 결국 물러서고 말았다.

처음에 몇몇은 리나가 단상 위로 올라가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그녀가 후드를 확 걷는 순간, 모든 사람이 찰랑거리며 빛이 흐르는 금빛 머리칼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리나는 자신이 여러 의미를 띨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클레어 델포드의 입이 될 수 있었고, 디트마어와도 교류가 있었으며, 그녀 자신이 잃어버렸던 아이였다.

연설을 할 자신은 없었으므로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어 노래를 시작했다.

‘우리 아이를 부탁해.’

멜로디는 순식간에 군중으로 퍼져 나갔다. 이미 시위대에서 종종 불렀던 곡이므로, 공연에 간 적 없는 사람이라도 모르는 이가 없었다.

고저가 크지 않은 음조는 흥분을 가라앉혀서, 마구 흩어져 각자 원하는 방향을 향해 질러 대던 소리를 하나로 합쳤다.

총이 내려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총구를 내린 사람들은 비로소 원래 계획을 기억해 낸 것 같았다.

스테판은 조금 멍청한 기분이 된 채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총성이 멈춘 것을 깨달았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계엄군이 발포를 멈췄다. 그는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를 내도록 주먹을 쥔 채 망설였다.

그러나 결국 그는 황궁을 향해 달려가고야 말았다.

51. 북방군

그로버 탑이 불타고, 제3 친위사단이 움직였다.

그 보고가 전서구의 발목에 매달려, 거기서 기차로 아홉 시간 거리에 있는 바우어부르크 시에도 전해졌다.

시청에 있는 집무실 상석에 앉아 있던 에리히는 무심코 주먹을 움켜쥐어 전서를 구겼다.

“리누스 황자도 어리석은 선택을 했군요.”

북방군 부사령관 클라인이 말했다.

황후는 에른스트를 쥐고도 지금 황실조차 제대로 삼키지 못하여 이 사달이 났다.

아렌 왕실과 클라우제너 공작가가 손을 잡고 반역하면 에른스트가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아렌 왕실에서 군량을 대고, 클라우제너에서 돈과 자원을 풀면, 반군이 늘어나는 속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를 것이다.

지금 클라우제너 공작이 이곳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군영이 커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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