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북방군은 황제의 친필 서한을 받고 클라우제너 공작을 곧바로 황제 특사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사실이 아직 비밀에 부쳐 있음에도, 그가 북방군을 이끈다는 이유만으로 퇴역 군인과 각지의 독립 부대, 호위와 경호원을 사병처럼 이끄는 귀족과 왕당파 의용병이 모여들었다.
북방에서 클라우제너의 영향력은 수도보다 확실히 컸다.
보수적인 로멜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황후가 정권을 잡은 것 자체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황후라 해도 여자이고 안주인에 불과한데, 황권을 침해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숫자가 신념이나 황후에 대한 견해와 관계없이 오로지 클라우제너가 승리할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모여들었다.
보통이라면 북방군은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훈련되지 않은 병력은 발목만 잡을 뿐이다. 총알받이 정도로는 쓸 수 있겠지만, 이 싸움은 그런 총력전이 아니다.
기동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물자만 잡아먹는 신병은 족쇄가 될 뿐이다.
하지만 클라우제너 공작이 있으니 그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재를 풀었다. 막대한 양의 물자와 클라우제너에서 불러온 행정관들이 순식간에 북방군을 변화시켰다.
좋은 대우는 사기를 올렸으며, 뒤늦게 합류한 의용군 부대는 세밀하게 편성되었다.
공작은 퇴역 군인을 받아들여 소수의 신병을 지휘하게 함으로써 훈련도를 높였다.
이런 일은 설령 전권을 준다고 해도 북방군 수뇌부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열차를 확보한 것도 공작이 한 일이었다. 이것이 내전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부대를 철도로 수송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진입 루트가 명확하게 보일뿐더러, 황후는 철도를 확보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공작은 그것을 뇌물로 해결했다.
[이해득실로 길들인 자를 중하게 쓰면 안 되는 법이지.]
돈은 북방에서 바우어부르크까지 길을 훤히 열었다. 아니, 사실 그걸 막으려 해도 황후는 제대로 해내지 못했으리라.
클레어는 석탄 공급을 다시 풀었으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미 파기된 계약의 재협상은 난항을 겪고 있었다.
에리히는 물밑에서 추가적으로 손을 썼다. 공작령 밖으로 석탄이 나가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그러자 담당자들은 재계약을 막기 위해 각자 이유를 대며 시간을 끌었다.
북방군 부사령관 클라인은 거기까지는 알지 못했으나, 황후가 동력원을 아껴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철도가 중지되는 순간, 충성심은 하락했다. 뚫을 수 있는 구멍이 얼마든지 있었다.
바우어부르크에서 일단 진군을 멈춘 것은 여기서부터는 확실하게 황후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군요. 우리가 여기까지 와 있다는 것을 황후가 모를 리가 없는데.”
“…….”
에리히에게서는 대답이 없었다. 클라인도 굳이 대답을 요구하려던 것이 아니었으므로 말을 이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북방군을 손에 넣는 것일 텐데요.”
지금 황후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은 클라우제너의 호위병이 아니라 폭동과 이 자리에 있는 북방군일 것이다.
그것을 도외시하고 공작저를 건드리다니.
어떻게 해도 손해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 공작 부인은 아렌의 영웅인 동시에 로멜 귀족의 정점에 있다.
황제의 생존이 공표되지 않았으므로, 정통성을 따져 황자의 즉위를 지지하며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자들조차도 그녀를 건드리면 벌 떼처럼 항의할 것이다.
그러니 리누스 황자는 지금 이곳에 왔어야 했다.
적어도 왕당파와 보수적인 의용군은 공작과 황자 중 한쪽을 택하라면 황자를 택할 것이다.
[리누스 황자는 모친에게 휘둘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여기는 자도 적지 않았다.
이번에도 에리히는 대답하지 않았다. 클라인은 의아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에리히의 안색은 무서울 정도로 굳어 있었다. 클라인을 쳐다보고 있지도 않았다.
“각하.”
“별동대의 출군은 언제지?”
“두 시간 후입니다. 철도로 인근까지 이동한 후에 기병대로 움직일 예정입니다.”
“나는 거기 동행하겠네.”
에리히가 그렇게 말하고 일어섰다. 클라인은 깜짝 놀라 그를 붙잡았다.
“위험합니다, 각하.”
“상황이 급박해. 리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군. 내가 가는 쪽이 대처가 가장 빨라.”
무엇보다도 아내와 아이를 위험한 곳에 두고 혼자 안전한 군영에 있는 것이 제대로 된 남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말은 명령에 따라야 하는 군인들에게 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한 말이므로 그는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각하.”
클라인이 다시 염려스럽게 그를 불렀다.
에리히에게 만일의 일이라도 생기면, 지금 클라우제너의 힘으로 구축되어 있는 북방군이 와해될 우려가 있었다.
“걱정할 필요 없네. 리누스 따위가 나를 쓰러뜨리진 못할 테니.”
에리히가 무표정한 눈빛을 유지한 채 차갑게 말했다. 그리고 출진 준비를 위해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 * *
발포가 멈췄다.
노이만 의장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이게 진짜 효과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계엄군은 총구를 내렸다.
널찍한 대로에 모여든 시민군 앞에 하원 의원들이 일렬로 늘어서 가는 띠를 이루고 있었다. 소수이지만 아렌 귀족도 섞여 있었다.
이것은 클라우제너 공작 부인의 권고였다.
[이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미리 말씀드리는 거예요. 보나 마나 황후는 발포를 명령할 거예요. 지금은 공포로 다스리는 수밖에 없으니까. 일단 상황을 힘으로라도 무마하고 나면, 공포에 굴복했던 자들이 자기 정당화를 위해 황후도 정당화시켜 주리라는 것을 알고 있겠죠.]
[예.]
[그렇게 되지 않도록, 몸으로 막으세요.]
한순간 노이만 의장은 그녀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만 깜박거렸다.
공작 부인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약간 무심하고 냉정한 태도로 말했다. 그 얼굴은 공작을 꼭 닮아 있었다.
[아니, 강요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알고 있으니 말씀드리는 거예요. 남의 위에 서기 위해 피를 대가로 치러야 한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 지금 누구인지.]
[공작 부인…….]
[이제 겨우 다섯 살 난 내 아들이 피를 흘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의 말에 공작 부인은 잠시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오해를 사도록 말했군요. 제 아이 대신 피를 흘려 달라는 게 아니에요. 노이만 의장님, 이번 일이 지나가고 나면 아주 많은 것이 변할 거예요.]
[알고 있습니다.]
[에리히는 의회주의자이고, 나는 그보다 더 그래요. 황실의 권위는 이미 땅에 떨어졌고, 황제 폐하께서는 심병을 앓고 계시고, 엘리엇은 너무 어리죠. 하지만 이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과연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원을 신뢰할까요?]
노이만 의장은 어리석지 않았으므로 그녀의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들은 선거로 선출되기는 했으나 실제로는 후원자의 이익을 대변해 왔다.
그리고 선거권자들도 자연스럽게 인맥과 로비를 통해 그 세력의 일부가 되어 자기 뜻을 반영했다.
정치는 소수의 것이다.
하지만 지금 거리를 메운 것은 선거권자가 아닌 시민들이 태반이다. 그들은 피 흘린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지금의 하원이 그때도 권위를 갖고 있을 수 있을까? 그럴 리 없었다.
그러니, 자리를 유지하려면 그들도 피를 흘려야 한다.
[전 사실 이런 충고를 하지 않는 게 옳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구태를 남기는 일이니까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래도……, 너무 많은 피가 흘러 씻을 수 없는 원한이 생기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아이를 위해서.
엘리엇은 이미 머리 위에서 관을 벗을 수 없으니, 이왕이면 사랑받았으면 좋겠다고 클레어는 생각했다.
노이만 의장의 말에 우왕좌왕하던 하원 의원 다수가 마음을 굳혔다.
상당수가 이미 디트마어에게 마음이 기운 뒤였고, 울리히가 감옥에서도 테러를 당했다는 소식이 더욱 결정을 재촉했다.
몇 명은 피를 흘리게 될 것이고, 그것이 더욱 많은 피를 불러올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시위대의 맨 앞에 섰다.
이 중에는 나중에 클라우제너 공작가와 황손에게서 떨어질 이득을 생각하고 그러는 자도 있었으나, 또 많은 수가 진심이기도 했다.
계엄군은 당황했다. 지휘를 맡고 있던 제3 친위사단 소속의 장교는 머뭇거렸다.
하원 의원을 향해 발포하는 일을 그가 임의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당장 가서 사단장 각하께 이 소식을 알려라!”
전령이 황급히 달렸다. 그러나 야코프는 이때 제자리에 있지 않았다. 직접 클라우제너 공작저로 이동 중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