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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분명해-217화 (218/263)

#217화

황후의 안색이 변했다.

“고작 폭도 따위에게.”

걸음을 서두르기 위해 상대적으로 소수의 호위만 대동해서 이동 중이기는 했으나, 이쪽은 정예병이다.

폭도 따위에게 쫓겨 달아나야 할 이유가 없었다.

황후의 판단은 빨랐다. 이건 배신자다. 총격전이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마차에서 내리라는 것부터가 정상이 아니었다.

그녀의 소맷자락에서 조그만 권총이 나왔다.

탕!

총격전이 계속되고 폭도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는 와중이라 그 총소리는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다.

호위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황후는 마차에서 숄을 꺼내 걸치고 사뿐히 내려섰다.

동석하고 있던 레나테가 몸을 구부려 죽은 자의 옷깃을 젖혔다. 검은 연꽃 문장이 그려져 있었다.

“…….”

황후는 말없이 마차 앞으로 나섰다.

“황후 폐하! 마차 안으로 다시!”

호위대장이 소리쳤다. 황후는 그 말을 듣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한순간에 총격이 모두 정지했다. 그 누구도 황후가 진짜로 모습을 드러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황후는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온 기백이 그 자리의 모든 사람을 압도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황실에 탄원하는 자라면 감히 무기를 근위대에게 겨누지 않을 터, 그대들은 반역자인가?”

당황한 기색이 폭도들 사이로 술렁이며 퍼져 갔다.

증오와 분노에 사로잡혀 지금 당장 황후를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조차도, 정작 그녀를 앞에 두자 쉽사리 죽여 마땅하다고 외치지 못했다.

귀족은 푸른 피다. 황족은 그보다 더 고귀한 존재였다.

인간은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사상이 널리 퍼져 공감을 얻긴 했으나 여전히 마음 밑바닥에 박힌 오래된 감각은 사라지지 않은 채였다.

그리고 황후는 왜소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더없이 그런 감각을 건드리는 사람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바닥에서 흙이라고는 밟아 본 적 없을 것 같은 오만하고 위엄 있는 품격이 남아 있었다.

황후가 천천히 한 발을 내디뎠다. 호위대장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황후의 앞을 감히 가로막지 못하고 물러섰다.

“대답하라. 그대들은 제국의 반역자인가?”

“우리는 제국에 반기를 든 것이 아니라, 수도를 폐쇄해 놓고 혼자서만 달아나려 하는 황후를 막으려는 것뿐이오.”

누군가가 목쉰 소리로 답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냥 공격을 이어 나갔어야 했다.

이 중에는 사상적으로 완성되거나 확고한 뜻을 가진 리더가 없었다. 감정적으로 시작한 일이기에, 일단 기세가 막히자 그것을 뚫을 자가 없었다.

황후는 내심으로 생각했다.

‘이것도 에리히가 한 일인가?’

그가 했다기에는 지나치게 품위 없는 발상이지만, 그렇다고 클레어 같은 이상주의자가 할 만한 일도 아니다.

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혼자서 달아나려 한다고 누가 그러던가. 돌아가신 황제 폐하 대신 반역자를 무찌르기 위해 가는 길이다. 앞을 가로막는 자는 모두 반역으로 처벌하겠다.”

황후의 목소리가 피비린내 나는 길 위를 청청하게 가로질렀다.

스테판은 모자를 눌러쓴 채 어깨를 움츠리고 그림자 진 골목에 서 있었다.

‘대담하긴.’

최근에 꽤 망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본래의 대범하고 자신감 넘치는 기질이 단숨에 어디 가지는 않는 모양이다.

총격전 한중간에 황후가 몸을 드러내고 앞으로 나설 줄은 몰랐다.

그러나 설령 저기에 리더가 없다는 것을 꿰뚫어 보았다 할지라도, 자신이 여기 있는 줄은 알지 못하리라.

“벤, 부탁해.”

“어.”

곁에 선 동지가 총을 겨눈 채 신중하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바로 황후를 쏘아 죽일 생각은 없었다. 목적이 그것이라면, 스테판은 더 일찍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를 죽이는 것보다 굴욕스럽게 만드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명예로운 죽음, 자결 같은 것은 끼어들 틈도 없게 할 것이다. 황후는 자신의 자신감을 원망하게 되리라.

탕.

총성이 하늘을 찢었다.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구른 것은 황후가 아니라 그 곁에 서 있던 레나테였다.

“아악!”

호위대장의 시선이 재빨리 골목 쪽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스테판을 잡기 위해 움직이지는 못했다.

황후의 기세에 눌려 있던 분위기가 흩어져 순식간에 총격전이 다시 시작되었다.

벤이 총을 움켜쥔 채 떨었다. 스테판은 그 손에서 총을 빼앗고 등을 밀었다.

“도망쳐! 의사당 쪽으로 가서 사람 사이에 섞여.”

“넌?”

“난 좀 더 여기 있을 거야.”

행여나 황후가 진짜로 상황을 정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벤이 재빨리 골목을 달려 달아났다. 스테판은 총을 쥔 채 폭동 속으로 뛰어들었다.

레나테의 비명이 귓가에 남았으나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애당초 써먹기 위해 유혹했었으니까.

그는 자신의 몸과 얼굴을 이용하는 것에 익숙했다. 거기 홀려 오는 자와는 인간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 상대도 자신을 인간으로 보지 않으니까.

황후가 그의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현실적인 이유로, 이왕이면 레나테가 아니라 호위대장을 맞혔다면 좋았으리라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표적을 항상 확실하게 사살할 수는 없는 법이다.

“스테판!”

누군가가 고함을 질렀다. 황후였는지, 레나테인지는 분간할 수 없었다.

호위대장이 황급히 황후를 다시 마차 안으로 모시려고 했다. 그러나 그 전에 폭도가 물밀듯이 밀어닥쳤다.

처음부터 숫자가 압도적이었고, 황궁으로 가는 길을 평화롭게 걸어가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자들이 총성을 듣고 합류하기도 했다.

“피하십시오, 황후 폐하……!”

호위대장이 소리쳤다. 누군가가 길가에 불을 질렀다.

황후는 총탄이 벽에 박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얼었다가, 다급히 드레스 자락을 뭉쳐 쥐고 몸을 구부려 작은 동물처럼 마차 뒤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미처 달아날 틈은 없었다. 길거리 위로 분류한 증오가 그녀를 휩쓸었다.

“잡았다!”

그녀의 팔을 잡아챈 누군가가 승리의 함성을 올렸다.

탕!

황후는 그자의 이마에 한 방 쏘아 쓰러뜨렸으나, 작은 권총에는 한계가 있었다.

53. 내전

하늘 위에서 이 모든 일을 내려다보는 자가 있다면 결론을 내리고 모든 사람에게 온당한 행동을 일러 주었을 터이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별동대의 지휘관 카를은 약간 걱정스러운 기분으로 울려 퍼지는 포성을 듣고 있었다.

생각보다 친위사단의 병력이 많았다. 화력은 애초부터 가장 강력한 부대였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 모조리 이쪽에 쏟아부은 모양이었다.

“정보가 사전에 유출된 모양입니다.”

“그랬겠지. 병사가 한둘도 아닌데 첩자가 없을 리도 없고, 내려오는 길에 있었던 행정관 중에도 황후의 사람이 있을 테니.”

클라우제너 공작이 냉한 목소리로 말했다. 카를은 우러러보는 듯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장 바로 옆에서 흙먼지와 포성이 터지고 있는데도 그의 얼굴에는 당황함이나 초조함 하나 보이지 않았다.

땀을 꽤 흘렸을 터인데, 하얀 얼굴에 힘겨워하는 흔적 역시 전혀 없었다. 피부 아래의 혈관에 붉은색이 흐르지 않는 것만 같았다.

“왜?”

공작이 물었다. 카를은 십수 년 만에 마치 신병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물었다.

“최초 작전 목표는 기차역의 확보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작은 이곳에 당도하여 갑작스럽게 철로 폭파를 명령했다.

“이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각하?”

공작의 파란 눈동자가 한순간 가늘어졌다. 카를은 긴장으로 숨을 들이마셨다.

수도의 철도다. 이 철로는 제국 전체의 심장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의 작전 목표가 무엇이든, 파괴했을 때의 후유증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니 저들도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는 것이리라.

“저쪽에서도 경과 똑같이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나중 일은 생각할 것 없어. 돈을 쏟아붓는 쪽이 흐른 피를 돌이키는 것보다 쉽지.”

“하지만…….”

“어차피 바우어부르크까지의 철로는 확보했고, 거기에서부터 여기까지는 도보로 진군하는 쪽이 훨씬 낫지. 에른스트에서 실려 올 총알받이를 막는 쪽이 더 중요하기도 하고. 애당초 우리는 모두 미끼야.”

“예?”

카를은 무심코 되물었다.

에리히가 하는 말을 하나씩은 알아들을 수 있었으나 모두 이어서 이해할 수는 없었다.

미끼라고? 무엇을 위한?

에리히는 그의 의문을 풀어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장갑을 고쳐 낀 뒤 옆구리와 가슴에 찬 무기를 확인했다. 카를은 당황하여 물었다.

“각하, 설마 직접 전투에 참전하실 생각입니까?”

“안으로 들어갈 예정이네.”

에리히는 짤막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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