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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분명해-219화 (220/263)

#219화

“사격을 멈춰!!”

아우구스타가 비명처럼 외쳤다.

“쏘지 마! 쏘면 안 돼!”

방패처럼 황후의 몸이 앞으로 내밀어지는 것을 본 아우구스타가 발광했다.

바리케이드 밖으로 몸을 내밀려는 그녀를 호위들이 간신히 붙잡아 끌어당겼다.

발포를 멈추는 것은 쉽지 않았다.

병사들의 흥분도 시민군에 못지않았고, 양쪽에서 모두 응사를 시작했기에 흥분과 원한이 피와 함께 한꺼번에 솟구쳤다.

계엄군 사령관 로타어가 리누스에게 다급히 말했다.

“몸을 피하십시오, 황자 전하.”

“이 와중에 나 혼자?”

“피하셔야 합니다. 황후 폐하께서도 이곳에 전하께서 계시는 것을 원하지 않으실 겁니다.”

리누스는 냉소적인 기분이 되었다. 황후가 그럴 리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니, 생각해 보면 로타어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는 ‘킹’이다. 그가 죽으면 결국 황후조차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기껏해야 제자리에서 한 칸씩밖에 움직이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딱 맞는 위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어차피 아무것도 못 해.”

리누스는 그 자리에 선 채 대꾸했다. 정신을 차린 아우구스타가 그의 등을 힘주어 밀었다.

“모셔라!”

“아우구스타!”

“황후 폐하를 생각해서라도 가셔야 합니다!”

“내가 이제 와서 이 자리를 피한다고 상황이 바뀔 것도 아닌데.”

“에른스트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로타어 경이 외쳤다. 호위들이 양옆에서 리누스를 붙잡아 그 자리에서 끌어냈다.

리누스는 아우성조차 치지 않고 창백하게 변한 채 끌려 나가 마차에 태워졌다.

아우구스타는 시뻘겋게 실핏줄이 터진 눈으로 바리케이드 밖을 바라보았다. 총성은 멈춰 있었다. 몇몇 남자가 목재를 들고 앞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즉석에서 단상이 만들어졌다. 황후는 그 위에 세워졌다. 눈을 뜨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의식을 잃고 있는 것 같았다.

“마르고트 님…….”

아우구스타는 이를 악물었다. 황후가 어쩌다 저자들의 손에 붙잡혔는지 모르겠다.

“사형!”

누군가가 소리쳤다.

“사형!”

“사형!”

“죽여라!”

기겁한 노이만 의장이 단상 위로 올라가, 황후를 붙든 남자들을 몸으로 가로막았다.

“이러면 안 돼! 그만두게!”

“비키십시오. 높은 분이신 건 알겠지만, 우리는 저 악녀를 처형해야겠습니다!”

“재판! 재판을 해야 해! 진짜 죄가 있다면!”

황족을, 하물며 황후를 재판하다니,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저들을 말리기 위해 그런 말이라도 해야 했다.

나이 든 귀부인을 처형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거나,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 황족에 대한 숭배가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니다.

황후가 비참하게 죽으면, 영웅이 된다. 비극은 고귀한 자의 것이며, 극적인 죽음은 전설에 가까워진다.

멀리서, 혹은 훗날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자는 황후를 연민하고, 그로 인해 오랫동안 제국에 분열이 일어날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절대로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조금의 부당함이라도 있는 상태로 죽이면 안 된다.

차라리 폭도 속에서 누구의 총탄에 맞았는지도 모르게 죽어 버리는 쪽이 나았으리라.

변변치 못한 죽음은 영웅을 채색하는 서사가 아니라 죽은 자를 시시하게 만들 뿐이니까.

“재판?”

다행히도, 노이만 의장의 말을 들은 시민들이 술렁거렸다. 아우구스타도 몸을 내밀었다.

“하원에서 특별 재판소를 구성하십시오!”

그녀로서는 어쨌든 일단 황후의 목숨을 이어 두는 게 가장 중요했다.

술렁임이 오가는 동안에, 물속에 잠긴 듯 오르내리던 황후의 의식이 문득 부상했다.

그리고 익사하려던 사람처럼 몇 번이나 쿨룩거리며 폐를 부풀렸다.

그녀의 입술에 젖은 손수건을 대려던 여자가 깜짝 놀라 움찔했다. 고운 금빛 머리칼을 보며 황후는 떠올렸다.

“카, 나리아.”

날개를 꺾어 죽였어야 했는데.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그것이었다. 그다음은 귀에 ‘재판’이라는 단어가 들려왔다.

흐린 눈에 사람들이 발밑에 모여 선 것이 보였다.

‘화형대인가.’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재판이라고? 차라리 지금 불에 태워지는 쪽이 낫다.’

“저 미친 여자가!”

“웃고 있어?”

그녀의 눈에 문득 군중 속에 서 있는 스테판이 들어왔다. 신기한 일이다. 단정한 생김새나 아름다운 용모가 많은 사람들 속에서 쉽사리 인지된다는 것은.

‘진짜로 너구나.’

말하려고 했지만, 제대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황후는 마음속으로만 내뱉었다.

검은 연꽃은 그녀의 정보망이었다. 만들 때는 직접 다스렸고, 그다음에는 아우구스타에게 맡겼다.

그러나 조직이 늘어나고 할 일이 많아지면서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다음에는 레나테에게 맡겼고, 레나테는 스테판에게 홀려 있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방치한 것은 자신이다.

모든 것이 갑작스럽게 머릿속에서 조립되는 느낌이었다. 정보 몇 가지가 늘 부정확했다.

제국 남부의 일까지는 알기 어렵다거나 하는 이유로 적당히 방치한 것도 있었고, 일이 많아 챙길 수 없다며 보지 않은 것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누구도 믿지 말았어야 했다.

[시위대가 모두 의사당과 황궁 앞으로 몰려들어서 오히려 길이 비었다고 합니다. 이동하실 길목에는 검은 연꽃을 배치해 두었습니다.]

레나테의 그 보고만 믿고 그녀는 호위 부대를 절반 떼어 내어 북방군과 대치 중인 곳으로 먼저 보냈다.

하지만 레나테도 한패였던 것이리라. 아니면 속았거나.

황후는 숨을 몇 번이나 들이마셨다. 레나테가 피거품을 섞어 내쉬던 마지막 숨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스, 테판…….]

그 뒤에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 시점까지도 황후는 이 일에 스테판이 개입한 줄 몰랐다.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제 손으로 한 명을 쏘아 죽인 뒤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모자와 겉치마를 벗었다.

은발이라기보다는 이제 흰머리 때문에 백발에 가까운 머리를 일부러 헝클어뜨리고, 꽃 같은 파니에와 금 단추가 달린 재킷을 벗어 던졌다.

그녀는 속치마와 블라우스 차림으로 바닥을 기어서 호위대에서 떨어졌다. 남들 앞에 한 번 모습을 드러냈다고 해도, 어차피 해가 진 시간이었다.

일단 골목으로 숨어들거나 군중에 섞이기만 하면, 자신을 알아볼 사람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가 일부러 그런 듯 소리 질렀다.

[황후 폐하, 피하십시오!]

자신을 정확히 가리켜 지목하면서.

흥분한 폭도들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황후는 어쩔 수 없이 두 명을 더 제 손으로 쏘았으나 그것으로 약실이 비었다.

호위대는 끝까지 저항했다. 차라리 그녀가 군중 속에 섞이려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 떨어져 있었다. 누군가가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끌어냈다.

[내가 황후를 잡았다!]

누군가가 함성을 질렀다. 그때 황후는 스테판의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정말 있었군.’

아우구스타가 멀리 보냈다고 했는데. 스테판이 제 혈육이나 가족에게 집착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랬다.

안 그래도 위태로운 리누스를 더 엉망으로 만들 수는 없었으니까.

“카나리아…….”

역시 죽였어야 했다. 카나리아를 손안에 가두고 있을 때나 쓸 수 있었던 놈인 것을, 너무 오래 고분고분해서 잊고 있었다.

출세도, 권력도 아니고 복수가 목적이었다니.

“큭.”

웃음이 나왔다. 아니, 애초에 스테판을 살려 둔 것부터가 어리석은 짓이었다.

놈이 플레이어로 판에 뛰어들지 않았다 해도, 그는 위험 요소가 될 뿐이었는데.

자신이 패배했다. 그녀는 스테판이 플레이어인 줄 알지조차 못했다.

드레스를 벗고 머리를 가려도 스테판이 거기 있는 이상 남의 눈을 피하지는 못했으리라.

어리석은 레나테. 그녀는 스테판이 자신을 살려 주리라고 믿었던 걸까? 아니면, 스테판이 은밀히 자신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다고 믿었거나.

어느 쪽이든 자신의 실패다. 레나테에게 스테판을 내보냈다고 말하긴 했던가?

정말 끔찍한 실패다.

평생 딱 한 번 충동에 몸을 맡겼고, 그 충동 때문에 가정 하나가 망가졌다.

그녀는 자신의 사감이 타인의 삶을 바꾸는 것을, 그때는 수치스럽게 여겼다.

자신의 역할은, 어깨에 지워진 운명은, 절대 사적인 것이 아닐 터였다.

하지만 결국 그 사적인 충동에서 이어진 일이 제 최후가 되었다.

“흐.”

황후는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소리를 냈다. 농락당한 셈인데, 생각만큼 처참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것도 좋지 않은가. 자신은 실패했으나, 이제 장엄하고 끔찍하게 죽어 제국에 지워지지 않을 상흔을 남길 것이다. 영웅적인 죽음이다.

그녀가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눈을 감았을 때였다.

“재판에 찬성합니다!”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사이에도 몇 명이 자기주장을 펼치러 단상 위로 올라오려 했지만 주위에 의해 저지되었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길을 열어 주었다.

황후는 도로 흐린 눈을 떴다. 그녀의 곁에 서 있던 리나가 입을 막고 소리쳤다.

“디트마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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