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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분명해-225화 (226/263)

#225화

이것은 리누스의 명령이 약간의 불운과 겹쳐져서 생긴 일이다.

약탈 문제는 계엄령이 내려진 직후부터 있었다.

친위사단이 스스로에게 느끼는 긍지와 별개로, 무소불위의 권위를 얻게 된 병사와 책임을 남에게 뒤집어씌울 기회를 얻게 된 불한당들이 약탈자로 돌변하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이번 것도 그런 경우였다.

합류 명령과 동시에 쾌속선을 징발하라는 명령을 받은 야코프 휘하의 병사 몇 명이 이것을 약탈 허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가져갈 게 많을 것 같은 가게나 집의 문을 박차 열었다.

문이 열렸는데도 숨죽인 채로 버틸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집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 수가 너무 많았다.

“헉!”

병사는 어두운 실내의 그늘 속에 숨어 있는 인기척을 느끼고는 비명 같은 숨을 들이켰다.

퍽!

문간에 있던 호위들이 단숨에 팔을 꺾어 잡고 무장 해제를 시킴과 동시에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기어이 총성이 터지고야 말았다.

탕!

어둠 속에 잠겨 있던 거리에 불길한 한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이게 무슨 소리냐?!”

리누스와 합류한 야코프가 물었다. 부관이 다급하게 말했다.

“이 거리에 무장 세력은 없을 겁니다. 아마 숨어 있던 일반인이 저항했거나……, 전하?”

리누스가 괴상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야코프는 의아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운이 닿는 것 같은데.”

“예?”

“장군, 총성이 난 건물을 포위해. 아무것도 아닌 장소에서 용감한 제3 친위사단의 병사들이 민간인을 상대로 총을 쏘았을 리 있나.”

리누스의 말에 야코프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만일에 민간인이 저항하다가 총을 쏘았다면, 지금쯤 끌려 나오고 소란이 벌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거리는 다시 고요 속에 잠들었다.

이 시점에 이 거리에서 무장 병력을 거느리고 숨죽인 채 숨어 있을 만한 사람은 무어 공작 아니면 클라우제너 공작 부인뿐이다.

어느 쪽이든 잡으면 향후 큰 도움이 되리라.

리누스가 턱짓했다. 야코프는 그에게 경례한 뒤 직접 군병을 이끌고 총성이 난 쪽으로 향했다.

리누스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 가까이 서 있는 호위의 손에서 기병단총을 빼앗아 들고, 성큼성큼 강변으로 내려갔다.

“전하!”

부관이 당황하며 그 뒤를 따랐다. 리누스는 싸늘하게 말했다.

“따라오든 말든, 마음대로 해.”

죽는 건 여전히 상관없었다. 아니, 살아 있는 느낌이 여전히 혐오스러웠다.

그러나 그 감각은 전과는 다른 기분이다.

예전에는 물속에 가라앉아 그대로 세상에 본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기를 바랐다면, 지금은 물이 아니라 불에 몸을 던져 전부 태워 버리고 싶다.

그는 문득 황제의 무심하고 신경질적인 시선을 생각했다.

같은 공간에 있었던 적도 드물었으나, 때때로 공적인 자리에서 마주치게 되면 자신을 바라보던 그 물 같은 눈동자를.

그건 바다 같은 빛깔이 아니라 한 컵 떠 놓은 말간 물색이었다. 분노와 혐오조차도 없는 무관심한 그 눈.

그는 물속에 들어가고 싶었으리라. 리누스는 문득 황제가 제 아내의 배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도 이제는 불에 몸을 던지고 싶어졌을까? 글쎄. 그는 그토록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을 때조차도 물속에 잠겨 있었다.

만일에 그가 불에 몸을 던진다면 그 불꽃은 아편의 연기를 피울 것이다. 그리고.

‘강가에 붉은 꽃이 피었으면 좋겠군.’

우스운 일이다. 제러드는 그를 전혀 닮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이 더 닮았을 터인데, 정작 이 혈관에 흐르는 피에는 그의 것이 전혀 섞여 있지 않다니.

혼자 죽을 용기조차 없으면서 증오만 품는 것까지 똑같은데.

* * *

클레어는 총성이 들린 순간 놀라서 일어섰다. 곧바로 조용해졌는데도, 그런 일에 둔감한 그녀조차도 알아챌 만큼 공기가 술렁였다.

빌헬름이 달려왔다.

“무슨 일이에요?”

“문을 부수고 들어오려 하던 자가 있었습니다. 제압했지만…….”

“이런.”

클레어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총성이 울렸으니 끝까지 숨어 있지는 못할 것이다.

“단순한 약탈자인가요, 아니면 저를 쫓는 자인가요?”

“후자일 가능성이 높지 않겠습니까?”

“지금 나가는 게 좋겠군요.”

클레어는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통행증을 쥐었다.

만일에 상대가 검문이나 강도질을 목적으로 들어왔던 것뿐이라면, 그냥 낡은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는 게 좋을 것이다.

아우구스타가 발행한 통행증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테니까.

하지만 자신을 노린 거라면, 고작해야 위장 신분으로는 숨길 수 없다.

“포위당하면, 나는 아무 쓸모도 없어요.”

안전하고 느리게 움직여야 한다.

아기 때문만이 아니라, 클레어는 운동 신경이 둔했고, 승마조차 서툴렀다. 마차를 타고 추격 부대를 뿌리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배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래요.”

클레어는 낡은 망토를 머리까지 뒤집어썼다.

거의 똑같은 망토를 요안나와 호위팀의 몇몇 여자 대원이 입었다. 클레어는 기가 막힌 기분을 느꼈다.

‘빌어먹을 전근대 사회.’

5년 전에, 엘리사와 함께 달아나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때 클레어는 이렇게 인권이 없는 사회라면 살인도 쉬울 테니, 자칫하면 대귀족에게 흔적도 없이 파묻힐 거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던지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웃긴다고 생각했던 모든 절차와 의식, 충성과 명예가 실제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고 만다.

요안나가 염려스럽게 말했다.

“막시밀리안 경이 남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어쩔 수 없지.”

그쪽에도 별일 없기를 바랄 뿐이다. 클레어는 빌헬름을 따라 비밀 통로로 빠져나가, 작은 기범선 앞에 섰다.

그리고 문득 그 앞에서 말했다.

“그런데, 함정이 없을까요?”

“이 강은 얕아서 군선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아뇨. 그게 아니라, 배가 갈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잖아요. 만일에 덫이 준비되어 있다면, 이런 작은 배로는 달아나기 힘들 것 같아서요.”

이 수로와 저택의 비밀 통로가 준비되었을 때는 아마도 열병기가 발달하지 않았을 것이다.

포탄을 쏜다 해도 피해 달아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폭탄 하나로도 이런 배에 구멍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타지 않는 게 좋겠어요. 차라리 수로로 기어갈게요.”

“클레어 님…….”

“행선지를 알려 주는 거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해요.”

“말씀하시는 의미를 알겠습니다. 그러면, 배는 배대로 출발시키겠습니다. 이것도 미끼 역할을 해 줄 테지요.”

클레어는 숨을 들이마셨다. 아니, 오로지 그녀를 위해서만 하는 일은 아닐 터이다.

클라우제너가 이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고, 또 그것을 등에 지고 있는 사람을 떠올렸다.

호위 중 하나가 그녀에게 권총을 건네주었다. 클레어는 그것을 쥔 채 손까지 오른쪽 주머니에 넣었다.

‘배워 두길 다행이지.’

최근에 혹시 몰라 안전장치 푸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실력은 형편없었다.

전생에 활과 총을 잘 다루는 게 민족적 특성이라는 농담이 있었기에 조금 기대했지만, 아무래도 민족성은 영혼이 아니라 핏줄에 깃드는 모양이다.

배가 먼저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클레어와 요안나, 그리고 몇 명의 호위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나서 수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음 순간 요안나가 그녀에게 달려들어 제 몸으로 그녀를 바닥에 덮어 눌렀다. 거의 동시에 폭음이 울렸다.

카앙!

쇳조각을 폭발시키는 듯하기도 하고, 교통사고 같기도 한 소리였다.

“아악!”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다. 배가 크게 흔들리면서 물이 솟구쳤다. 뒤이어 총탄이 쏟아지면서 금속성의 튀는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 울렸다.

클레어는 숨조차 쉬지 못하고 비명과 강물 속에서 일어나는 것 같은 폭음에 휘말렸다.

눈앞이 빙 돌고, 가슴 안쪽에서 장기란 장기가 모조리 뒤집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부인!”

누군가가 그녀를 끌어안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일제사격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테지만, 배가 공격당하면서 일으키는 물살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며 떠내려가고 말았다.

“……!!”

물이 폐 속 깊은 곳까지 차올랐다.

눈앞이 검푸른색으로 변하고, 물을 먹은 망토가 그녀의 몸을 강바닥까지 끌어 내리려는 듯 무겁게 가라앉았다.

누군가가 그 망토의 후드를 움켜잡았다. 클레어는 억지로 물 위로 끌려 올라갔다.

“쿠, 울럭! 쿡, 큭, 하……!”

입과 코로 물이 쏟아졌다. 어두워졌던 시야가 빙글 돌며 빛을 되찾았다. 몸이 추위가 아니라 공포로 벌벌 떨렸다.

“리, 리누스…….”

물에 젖은 리누스가 그녀의 멱살을 잡고 웃었다.

“이번엔 내가 구해 줬군.”

“너, 진짜…….”

미쳤구나.

클레어는 떨리는 입술로 그렇게 말하려다 말고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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