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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분명해-227화 (228/263)

#227화

클레어는 물에 젖은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

리누스가 무슨 대답을 기대하고 묻는 건지 모르겠으나, 아이는 완벽하게 키우기 위해서 낳는 것이 아니다.

공평하게 물려주려면 어쩌고 하는 말을 하곤 했지만, 그냥 농담이었다.

“내가 무슨 대답을 하길 원해? 낳으면 당연히 책임을 다할 거고, 온 힘을 다해 사랑해 줄 거야. 그리고 기르는 시간이 사랑을 더욱 쌓아 줄 거고.”

첫 아이라면 이렇게 말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엘리엇을 사랑해 봤으니, 둘째도 사랑하게 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 사랑에는 사랑으로 답할 수 있어.”

처음부터 엘리엇을 사랑했던 것은 아니다. 엘리사가 남기고 간 아이이니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다. 그렇게 사랑해 주는 아이에게 사랑을 돌려주지 않을 만큼 클레어는 차갑지 않았다.

두 시간에 한 번씩 잠에서 깨우고, 하루걸러 한 번씩 열이 났던 시기도 있었고, 일을 하러 가야 하는데 이모가 없으면 안 된다며 몇 시간이나 울어 젖히는 통에 차림새를 모두 갖춘 채 주저앉았던 적도 있다.

오로지 자신이 안아 줄 때만 울지 않아서, 무거운 아이를 부둥켜안고 제발 이제 좀 자자고 빌어 보기도 했다.

그래도 그 웃는 얼굴을 보려고 사무실에서부터 미친 듯이 달려서 집에 돌아온 날도 있었다.

조그만 입을 오물대며 먹는 것이 귀여워서, 온 얼굴에 묻히고 흘리는 것을 보면서도 그저 웃었다.

사랑하는 동생이 남긴 혈육이니 돌볼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언제부터인지 동생과 별개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홀로 남은 집에서 소파에 앉아 무의미하게 채널을 돌리던 때의 그녀가 바라던 일이었다.

삶을 나눌 가족이 생기는 일. 사랑으로 인한 고통, 단지 내일만이 아니라 더 먼 미래까지 기대와 기쁨으로 함께할 이유가 생기는 것. 자연스럽고 행복하게 사는 것.

리누스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클레어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네게도 있었을 텐데. 네 어머니가 아니라도, 널 아껴 준 사람이.”

“없어.”

“아니, 있어. 아기는 혼자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널 먹이고 입히고 씻긴 사람이 있었을 거야.”

클레어는 나직하게 말했다.

“아우구스타는 어때?”

“무슨 터무니없는.”

“그녀는 널 아끼는 것처럼 보이던데.”

“그렇겠지. 내가 어머니 아들이니까.”

“오히려 반대로 묻고 싶네. 이유가 그렇게 중요하니?”

클레어는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무슨 순수한 모성애의 화신이라도 되어서 엘리엇을 키운 것 같니? 동생의 아이라서 키운 거고, 키우다 보니 사랑하게 되었을 뿐이야.”

“그건 좀 실망스럽군.”

“너는 어때? 형의 아이라서 엘리엇이 마음에 들었던 것뿐이야?”

“……나는 엘리엇이 마음에 든다고 생각한 적 없어.”

리누스는 억양 없이 말했다. 엘리엇은 형의 아이도 아니고, 마음에 들었던 적도 없다. 애초에 그에게는 형이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했지만, 클레어가 똑바로 자신을 쳐다보는 눈이 불편했다. 리누스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뭐가 어찌 됐든, 달라질 건 없어.”

“날 보내 줘, 리누스.”

“안 돼.”

“네가 원하는 게 정말로 에리히를 죽이고 날 협박하는 건 아니잖아. 이런다고 해서 네가 원하는 걸 얻을 순 없어.”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해?”

리누스가 붉은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클레어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날 죽이고 나서 에리히를 협박하는 건 불가능한 일인데?”

“…….”

“네가 원하는 걸 얻고 싶다면……, 네 가족을 만들어야 해.”

클레어는 미치광이와 이야기를 계속한다고 해서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리누스가 자신에게서 환상을 보는 게 아니라 진짜 친밀감을 느껴야 섣불리 죽이지 못하리라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죽고 싶지 않았다.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 아직 그녀는 고백하지 못한 말도 있었고, 엘리엇이 혼자가 되게 둘 수도 없었다.

엄마를 두 번이나 잃기에는, 그 애는 아직 너무 어리다.

‘아…….’

그러다가 그녀는 주머니에 아직 총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의를 지키느라 옷조차 갈아입히지 않았으니, 몸수색도 하지 않은 모양이다.

애초부터 공작 부인이 총을 갖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물에 빠졌었는데 이 총을 쏠 수 있는 것일까? 젖어도 총이 발사되던가? 영화 같은 데서는 비가 오거나 물에 잠긴 채로도 총격전 하는 장면이 종종 나오지만, 이렇게까지 푹 담가진 상태에서도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애당초 기술도 꽤 다를 테고.

클레어는 복잡한 생각에 잠긴 채 손을 자연스럽게 치맛자락에 두었다. 긴장이 지나쳐 심장이 쿵쿵 뛰고, 속이 울렁거렸다.

“초콜릿이라도 줄까? 제대로 된 식사는 수도를 빠져나간 뒤에나 할 수 있을 테니.”

클레어는 손을 내밀었다. 리누스의 주머니에서 은박지로 포장된 초콜릿 몇 알이 나왔다.

“이런 걸 갖고 다닐 줄 몰랐는데.”

“…….”

“챙겨 주는 사람이 있었던 거야?”

리누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먹기나 해.”

클레어는 은박지를 깠다. 구역질이 일었지만 억지로 입 안에 넣고 씹어 삼켰다. 조금이라도 손발에 열이 돌아오길 바라면서.

마차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야코프 장군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도착했습니다. 내리십시오.”

“…….”

“협조해 주십시오, 공작 부인. 회임 중인 몸을 거칠게 다루는 것은 저희도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클레어는 말없이 그의 손을 피해 스스로 마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뒤를 따라 리누스가 내렸다.

작은 기차역이었다. 철도가 멈췄기 때문에 사람 없이 써늘했다. 며칠 전까지는 여기에도 지키는 부대가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비어 있었다.

클레어는 다른 곳에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고 있으리라 추측했다.

4량밖에 되지 않는 작은 기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타십시오.”

“…….”

“거친 옷이지만, 갈아입을 것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키르헨 시까지 가면, 시중을 들어 드릴 하녀도 붙여 드릴 수 있을 겁니다.”

클레어는 거기에도 대답하지 않고 순순히 기차에 올랐다.

쾅!

그 순간, 포탄이라도 맞은 듯이 땅이 뒤흔들렸다.

* * *

에리히는 그때 이미 거의 동측 기차역에 당도해 있었다.

그의 뒤를 따르는 것은 도중에 합류한 근위대원 일부와 막시밀리안, 클라우제너 호위팀원 일부였다.

수도로 뚫고 들어오자마자 그는 가장 먼저 클라우제너 공작저로 향했었다. 수도 안은 마치 비워진 달걀 껍질 속처럼 고요했다.

오늘 밤,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사람은 의사당과 황궁에 모여 있을 것이다.

엘리엇도 염려되었으나, 그쪽은 빅토리아 대공과 근위대가 함께 있으니 그렇게 큰일은 생기지 않을 테고, 또 의사당에서 대회의가 시작됐다면 황후가 아니고서는 감히 누구도 그것을 무력으로 때려 부술 생각은 못 할 것이다.

하지만 공작저는 상대적으로 노리기 쉬웠다.

그가 북방군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황후는 당연히 가장 먼저 인질로 클레어를 사로잡는 것을 고려했으리라.

그리고 에리히는 이제 대의를 위해서 아내와 자식을 포기하는 일 같은 것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막시밀리안과 마주친 것은 공작저가 텅 비어 있는 것을 알게 된 직후의 일이다. 그가 밤길을 헤매는 것을 보고 에리히는 깜짝 놀랐다.

막시밀리안이 있으면 당연히 클레어도 함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그의 뒤를 보았지만, 그곳에는 호위팀원뿐이었다.

[죄송합니다, 각하.]

막시밀리안의 그 말에 불길함을 느낀 에리히의 낯빛에서 핏기가 빠졌다.

[클레어는?]

[리누스 황자 전하와 야코프 장군의 부대가 안가 밖에 잠복해 있었습니다. 여울에 덫을 설치하고 탈출용 요트를 폭파했습니다. 공작 부인께서는 다행히 거기 타고 계시지는 않았습니다만…….]

[공작 부인을 납치한 뒤 탈출할 계획이라고 생각됩니다. 황후가 사로잡히고, 각하!]

호위는 죄를 청하려다 말고 소리쳤다. 에리히가 보고도 끝까지 듣지 않고 이미 말에 박차를 가했기 때문이다.

막시밀리안이 그를 황급히 뒤따르며 소리쳤다.

[각하!]

[책임은 나중에 묻겠다.]

에리히는 짧게 말했다. 폐부 밑에 후회가 찬 바람처럼 돌아들었다.

더 빨리 왔어야 했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지원군을 부를 수 있을 만큼 불러와라. 동측 기차역으로 간다!]

그는 근위대원에게 반쯤 고함을 질러 명령했다.

황후가 사로잡혔다면 에른스트는 리누스의 탈출을 꾀할 것이다. 이미 이 일에 뛰어든 자들은 각자 살아남기 위해서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

에른스트 공작은 그럴 만한 그릇이 아니지만, 달라붙을 참모 역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리누스는 구심점으로 쓰기 딱 좋을 만큼 무력했다.

동측 기차역의 철로는 아직 살아 있었다. 진입로가 하나뿐인 데다가 규모가 작아서 대규모 수송에 부적합하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미뤄 두었다.

그걸 결정한 게 에리히 자신이었다.

하지만 병력이나 물자를 들여오는 게 아니라 소수가 탈출하는 게 목적이라면 아직 쓸모 있었다. 병력 역시 공백 상태니 빠져나가기 수월하기도 했다.

높은 지대에서 그는 막 출발하는 열차를 보았다. 야코프의 부대원들이 열을 지어 기차에 오르고 있었다.

에리히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서 숨을 들이마셨다.

잠시 뒤따르는 병력 모두의 장비를 눈으로 체크해 보았으나, 선로를 파괴할 만한 화력이 있는 무기는 없었다.

그렇다고 저 자리에 무작정 돌격하면, 수적 열세를 극복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가장 신뢰하는 사람을 불렀다.

“막시밀리안.”

“예.”

“미안하군.”

그가 낮은 목소리로 먼저 사과했다. 막시밀리안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두말하지 않고, 그 사과에 굳이 괜찮다고 대답하지도 않고 소수의 근위대원만 거느린 채 기차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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