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가 분명해-228화 (229/263)

#228화

최초의 총성을 들었을 때는 아직 클레어가 기차에 다 오르기도 전이었다.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야코프가 그쪽을 돌아보며 어이없어했다. 상대의 수가 기껏해야 대여섯 명이었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몇 명이니 알아서 처리하리라는 야코프의 믿음과 달리 대열이 순식간에 흐트러지고 비명이 솟구쳤다. 누가 소리 질렀다.

“막시밀리안 경!”

동요가 순식간에 퍼졌다. 친위사단에는 그를 아는 자가 많았고, 군 복무 시절 막시밀리안 연대에 소속되어 있던 자들도 적지 않게 섞여 있었다.

야코프는 언성을 높였다.

“공작 부인을 기차에 태워! 빨리!”

공작 부인의 호위였으니, 그녀를 되찾으러 오는 것이다. 야코프는 순간적으로 그렇게 판단했다.

공작이 없는 동안 공작가를 지켜야 할 막시밀리안이 후계자를 품은 공작 부인조차 지키지 못했으니, 아마도 뭐라도 해내지 않으면 차마 공작을 볼 면목이 없기에 이런 무모한 짓까지 하는 것이리라.

“막아!”

일개인이 군대를 상대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묻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할 테지만, 그게 명성 높은 사람이라면 또 이야기가 달랐다.

설령 막시밀리안의 라인이 아니라도 친위대원들은 대부분 그를 존경하고 있을 터이다. 전설 같은 무용담도 숱했으니, 그 자체가 무기였다.

친위사단은 순간적으로 혼란에 빠졌다. 원래부터 기차에 탈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대응에 시간이 걸렸다.

막시밀리안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거침없이 부대를 관통했다.

그리고 그가 쏜 소이탄이 명중하는 순간.

쾅!!

역의 석탄 창고에 불이 붙고, 이어 폭발이 있었다.

지축이 통째로 흔들리고 귀가 순간적으로 먹먹해졌다. 야코프는 의식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착각과 함께 바닥에 엎드리면서 깨달았다.

이것은 절대로 단독 행동일 수가 없다. 총공세 전의 흔들기다.

두두두……!

땅거죽이 두들겨진 북처럼 흔들렸다. 기병대가 달려 내려와 대열을 이루지 못한 친위사단과 정면충돌했다.

야코프는 정신없이 머리를 털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기차로 달려 올라가며 소리를 질렀다.

“출발시켜!”

기관사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얼떨떨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서 출발하지 않고 뭐 하나! 황자 전하를 안전히 모셔야 한다!”

“아, 아……!”

상대가 노리는 것은 분명히 선로일 것이다. 선로가 파괴되면 리누스가 안전하게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야코프는 아직 의사당의 소식을 몰랐으므로, 리누스를 잃으면 에른스트가 그나마 얻을 수 있는 마지막 정통성이나 구심점까지 잃을 것을 염려했던 것이다.

기관사가 어쩔 줄을 모르며 기관차를 출발시켰다. 기적 소리가 울리고, 기차 바퀴가 구르기 시작했다.

에리히는 그 전에 열차의 꽁무니를 붙잡는 것에 성공했다. 달리기 시작하는 열차에 매달려 팔 힘으로 제 몸을 끌어 올려 안으로 몸을 던져 넣는다.

부관이 그 뒤를 따랐다. 다음 순간 총알이 머리 위로 날아와, 그는 바닥을 굴렀다.

“빌어먹을.”

몸을 단련하고 격투기를 배운 것은 사실 그냥 의무감 때문이었는데, 이렇게 물리적으로 구르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각하, 위험합니다.”

부관이 헐떡대며 말했다. 에리히는 앞머리가 헝클어진 모습으로 헛웃음을 머금었다.

“그래서, 뛰어내리라고?”

“그런 말씀은 아닙니다, 만!”

탕!

접근하는 자 하나를 쏘아 쓰러뜨리고 에리히는 자신이 걷어차 부순 뒷문 밖을 내다보았다. 기차는 제법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응사하는 총탄이 창문을 부수는 바람에 바람이 미친 듯이 불었다. 에리히는 짧게 명령했다.

“엄호해.”

“예?”

“몇 명이나 타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 쓰러뜨릴 순 없을 것 같으니.”

4량밖에 안 되는 기차라지만 호위가 몇 명일지 모르는 일이다. 그걸 다 뚫고 가느니 바로 리누스를 잡으러 가는 게 나을 것이다.

“어쩌실 겁니까?”

부관이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에리히는 도로 열린 문으로 나갔다.

탕!

“각하!”

탕!

부관은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착실하게 그를 엄호했다.

에리히는 사다리에 매달려 훌쩍 지붕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온몸을 때리듯이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몸을 낮추고 움직였다.

리누스와 클레어는 두 번째 객차에 있었다.

야코프가 초조한 듯 아랫입술을 문 채 다음 객차와의 연결부를 응시했다. 그 외에도 네 명의 호위와 두 명의 참모가 총을 그쪽으로 겨누고 서 있었다.

뒤쪽 차량에서는 아직도 총성이 계속되고 있었다. 몇 명이나 올라탔는지 여기서는 알 수 없었다. 이쪽의 숫자는 결코 많지 않았다.

저쪽도 많은 수가 올라타지는 못했을 테지만, 작전이고 뭐고 의미 없는 작은 기차 안이니 화력에 따라서는 역전될 수도 있었다.

클레어는 치맛자락을, 정확히는 주머니를 움켜쥔 채 조용히 서 있었다. 그녀의 곁에 서 있는 리누스는 표정에 변화가 없다.

그도 총성을 들은 경험은 없을 텐데.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두렵지 않은 걸까? 야코프조차 긴장하고 있는데 말이다.

클레어는 낮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리누스, 제발 그만해.”

“…….”

“내가 원하는 건 그냥 무사히 살아서 돌아가는 것뿐이야.”

“그럴 수 없습니다, 부인.”

리누스가 아니라 야코프가 대답했다. 그러나 동요가 전혀 없는 태도는 아니었다.

클레어는 리누스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눈만 움직여 야코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애써 낼 수 있는 가장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날 잡아서 이익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리누스가 안전한 것보다 지금 에른스트에 더 중한 일은 없지 않나요?”

“지금은 부인을 놔주는 것 자체가 더 위험합니다.”

“기차를 적당한 곳에 세워요. 수도를 벗어나서 해도 좋아요. 그때까지 서로 공격하지 말고 잠시만 참았다가, 나와 저들을 함께 내려 줘요. 그거면 되잖아요.”

야코프가 복잡한 얼굴을 했다.

“군인으로서 명예를 얻을 만한 대단한 작전도 아니고, 애꿎은 목숨을 버릴 만한 가치가 있는 일도 아니고, 위험만 안고 있는 일이잖아요.”

“그러나…….”

“만일에 저기 있는 것이 막시밀리안 경이라면, 내가 설득할 수 있어요.”

야코프의 얼굴에 가벼운 동요가 내비쳤다.

“안 돼.”

“하지만, 황자 전하.”

리누스가 클레어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야코프나 다른 사람의 존재는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클레어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날 살리고 싶은 것도 아니잖아.”

“내가 왜.”

클레어는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리누스의 붉은 눈동자가 유리알처럼 번들거리는 것을 보자 숨이 막혔다.

“난 네가 나와 같이 죽어 줬으면 좋겠는데?”

그의 손이 클레어의 머리카락을 만지려는 듯이 뻗었다. 야코프가 그것을 보고 리누스를 말리기 위해 조준하고 있던 총을 내려놓고 돌아섰다.

“황자 전하, 함부로 그런 말씀을, 헉!”

모든 것이 뒤집힌 것은 다음 순간의 일이다. 뒤쪽 차량과의 연결부가 아니라 앞쪽의 창문이 깨지면서 사람이 뛰어들어 왔다.

가장 먼저 반응한 호위가, 그게 누구인지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끅!”

클레어가 그 순간 주머니 위로 만지작거리고 있던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조준도, 뭣도 없었다. 총탄은 무사히 발사되어 야코프의 발에 꽂혔다.

“아악!”

야코프가 비명을 지르고 깜짝 놀란 리누스가 물러나는 찰나, 그녀는 힘껏 돌아서서 달아나려다가 그제야 상대를 알아보았다.

“에리히!”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클레어는 그의 뜻을 알아채고 바닥에 웅크렸다.

총알이 그녀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 클레어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던 리누스가 뒷걸음질 쳐 객차의 좌석 뒤로 숨었다.

남아 있던 호위들이 재빨리 태세를 바꿨으나, 야코프의 참모 중 하나가 배신하여 총구를 돌려 옆에 있던 동료를 쏴 버렸다.

“악!”

비명이 차량 안에 메아리쳤다. 그 뒤로는 총성과 아비규환이 이어졌다.

클레어는 바닥에 엎드린 채 숨도 쉬지 못하고 꺽꺽거리며 기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천천히 사격하며 다가온 에리히와의 거리가 0이 되는 순간, 눈물이 터졌다.

“괜찮아.”

웅크린 채 울기 시작한 그녀의 어깨를 에리히가 잡아 일으켜 세웠다. 클레어는 새파랗게 질린 채 휘청거렸다.

“앉아 있어. 잘했어. 총은?”

클레어는 주머니에서 젖은 총을 꺼내 보여 주었다. 에리히는 그것을 받아 창밖에 던져 버렸다. 두 번 무사히 격발되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는 대신 자기 허리춤에 차고 있던 권총 하나를 꺼내 안전장치를 푼 다음 후들후들 떨리는 클레어의 손에 쥐여 주었다.

“여기 있어. 기관사는 어차피 기관차에서 나오지 못할 테지만, 혹시라도 다가오면 쏴 버려. 누가 오든.”

“다, 당신은?”

철컥.

대답하기 전에 에리히가 황급히 몸을 돌리며 자기 총을 겨누었다. 리누스가 총구를 그에게 향한 채 서 있었다. 몸을 전부 아무렇게나 노출한 채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