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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분명해-230화 (231/263)

#230화

엘리엇은 밤중에 자다가 눈을 떴다. 사실 자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마사가 잠들면 밤에 몰래 침대에서 빠져나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다. 진짜 사실을 말하자면 깜빡 잠들었었다.

그렇지만 너무 피곤한 하루라서 어쩔 수 없었다. 이모할머니가 어려운 말로 선언을 했고, 증인이니 증거니 선서니 하는 것들이 계속 이어졌다.

의사당에서 어른들이 고개를 숙이는 순간은 엘리엇의 마음에도 뭔지 모를 선명한 인상이 남았지만, 솔직히 그 의미를 다 이해하고 있진 못했다.

그다음에는 마차를 타고 황궁으로 왔다. 황궁에도 사람이 잔뜩 있고, 엄청 시끄러웠고, 나쁜 냄새도 났다.

엘리엇으로서는 뭐가 뭔지 모를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만 어렴풋이 느꼈다.

이모할머니는 계속 같이 있어 주겠다고 하고서는 결국 무슨 바쁜 일이 생겼다며 저녁 식사 이후에는 엘리엇을 두고 가 버렸다.

집에 가고 싶었다.

여기는 로텐부르크가 아닌가. 아빠 집이 있을 것이다. 엘리엇은 혼자서 거기까지 찾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집이 엘리엇은 무척 좋았다. 거기에는 크고 훌륭한 자기 방도 있고, 해적선도 있고, 분수대도 있고, 진짜 멋진 자전거도 있었다.

그리고 엄마도 집에 있을 것이다. 바쁜 일 때문에 먼저 집에 가 봐야 한다고 했었으니까.

“이모 나빠.”

엘리엇은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나쁘니까, 엄마라고 안 불러 줄 거다.

사람들이 모두 하늘에 있는 엄마와 아빠 이야기만 하는 게 엘리엇은 섭섭했다. 지금 보고 싶은 것은 하늘에 있는 엄마보다 이모였다.

이모가 슬퍼할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엘리엇은 하늘에 있는 엄마보다 이모가 더 좋았다. 아빠도.

하늘에 있다는 진짜 아빠도 궁금했지만 지금의 아빠가 더 보고 싶었다.

집에 가면 아빠도 와 있을까? 만약에 자기만 빼놓고 또 둘이서만 놀고 있다면 너무 화가 날 것 같았다.

“치.”

엘리엇은 눈을 손으로 마구 비벼 닦았다. 그리고 곁에 누워 숨소리를 내며 깊이 잠들어 있는 마사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침대에서 기어 내려와 발꿈치를 들고 걸었다.

이럴 땐 항상 로저가 같이 화내 줬는데 요즘에는 그도 만나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그것도 서러웠다.

그레이는 만났지만, 사실 엘리엇은 그를 볼 때마다 조금 긴장하곤 했다. 맨날 어려운 이야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레이는 한 번도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적이 없었다.

달, 칵.

신중하게 문고리를 돌려 열었는데, 문밖에 낯선 사람이 서 있었다.

“이크.”

엘리엇은 깜짝 놀라 얼결에 소리를 내고는, 두 손으로 얼른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방 안을 돌아보았다. 다행히 마사는 깨지 않았다.

“휴.”

“전하.”

엘리엇은 그게 자기를 부르는 말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에, 방문 앞을 지키고 있던 근위대원을 올려다보고 어쩔 줄을 몰랐다.

“아저씨, 비밀로 해 주세요.”

“예?”

“절 여기서 본 거요.”

클라우제너 호위팀의 제복을 입고 있었다면, 문 앞을 지키는 사람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모르는 곳이었고, 상대도 모르는 제복을 입은 사람이었다. 엘리엇은 아예 상대를 우연히 마주친 남이라고 생각했다.

근위대원은 당황하여 조그만 황태손을 내려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딜 가시려고 하십니까?”

“아저씨는 몰라도 돼요.”

엘리엇은 당당하게 말했다. 이제 나이 이십 대 초반밖에 되지 않은 근위대원은 신분 높은 아이를 어찌 대해야 좋을지 몰라 머뭇거렸다.

“함부로 나가시면 안 됩니다. 유모는 무얼 하고 있습니까?”

“아저씨, 마사한테 이를 거예요?”

엘리엇이 깜짝 놀라 근위대원을 돌아보았다. 근위대원은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르다니요? 제가 황태손 전하의 일을 어떻게 함부로 누설하겠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혼자 나가시면 안 될 텐데요.”

빅토리아 대공이 어린 엘리엇을 재우기 위해서 예전에 황태자의 처소로 쓰이던 공간을 열게 했다.

그러나 이곳이 황궁 깊숙이 있어서 고요한 것이지, 모든 일이 끝난 게 아니었다. 아직도 그랜드 홀에서는 격렬한 싸움과 토론이 계속되고 있었다.

“빅토리아 대공께서 밤에 함부로 방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엘리엇은 거기서 뜬금없는 것을 떠올리고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래서 얼른 두 손으로 입을 막고 푸른 눈동자를 휘둥그렇게 뜬 채 근위대원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까 좀 무서웠다.

복도는 바람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한 데다가 인기척이 없었고, 또 복도의 가구에는 하얀 천이 덮여 있었다. 커튼도 대부분 검은 암막이었다.

엘리엇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 혹시, 귀신 나와요? 유령이나…….”

“아…….”

그제야 아이의 아이 같은 모습이 눈에 들어온 근위대원의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휴.”

엘리엇이 노골적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근위대원은 애써 진지하게 말했다.

“단지…… 어리신 분이 혼자서 밤에 이렇게 돌아다니시면 안 됩니다. 바깥이 안전하지도 않고요.”

“그치만…….”

엘리엇이 시무룩하게 말했다. 맑은 호수 같은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들었다.

울먹거리기 시작하는 엘리엇을 보고 근위대원이 몸 둘 바를 몰랐다.

클라우제너 공작 영윤이라고 해도 부담스러울 판에, 상대는 5년 만에 되찾은 황태손이었다.

그는 근위대에 소속된 지 이제 3년 차였으나, 제정신이 아니었던 황제가 하나뿐인 손자를 되찾고 비로소 제시간에 밥과 물을 먹고, 매일 걷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 애쓰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여기서 울면 자신이 울린 게 되는 걸까? 감당 못 할 일이라고 생각했을 때,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가 일어났구나.”

다정한 목소리였다. 엘리엇은 움찔해서 그쪽을 돌아보았다.

“황제 할아버지…….”

보드라운 분홍색 입술이 서럽게 벌어졌다가, 울지는 않고 꾹 다물렸다. 황제는 아직 조금 위태로운 걸음으로 휘적휘적 엘리엇 앞으로 다가왔다.

피곤했으나 잠은 오지 않았다. 아직도 재판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시위에도 참여하지 않고 의사당에도 나오지 않은 하원 의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에른스트의 가신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밖에도 의논할 것이 많았다. 마르고트 에른스트를 재판한다면 재판소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재판소의 고위직도 지금까지 대부분 그녀의 사람이었으므로, 이대로는 재판을 해도 의미가 없었다.

손을 쓰지 않아도 눈치를 보아 손바닥 뒤집듯 태세 전환을 하는 자가 있을 테지만, 적어도 지금 그랜드 홀에 들어와 있는 시민들이 원하는 바는 그런 게 아닐 터이다.

의회에 맡기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의회를 어떻게 믿느냐는 의견도 많았다.

그렇다면 선거를 다시 할 것인가. 지금까지 희생된 자와 그 가족들은 대부분 선거권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당연히 피의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황제는 그 모든 일의 결정에서 한발 물러났다.

그는 황후를 폐위한다는 문서에 국새를 찍고, 그녀를 반역죄로 옥에 가두게 한 다음, 새 의회의 회기가 시작되면 모든 통치권을 위임하겠다는 서약서를 썼다.

그리고 그랜드 홀에서 물러났다.

이제 위임받을 의회가 지금의 의회인지 다음의 의회인지에 대해서는 투명하게 말할 수 없었으나, 오늘 밤 황제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물러났다.

그러고서도 그는 몇 가지 일을 더 해야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친위사단의 반역죄에 대해서만은 그가 정리해야 했다.

그를 보고 곧바로 물러나 길을 연 자들은 공과가 상쇄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북방군과 싸운 부대는 단순히 명령을 들은 것뿐이니 용납할 것인가.

그런 문제를 근위대장인 로건과 의논하고, 또 빅토리아 대공과 만나 귀족원의 태도를 듣고 돌아오니 이 시간이었다.

어차피 오늘 밤에는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사실 눕고 싶었다. 지금도 손발부터 등까지 무거운 쇠로 추를 달아 놓기라도 한 것처럼 바닥으로 꺼질 것 같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고, 미루고 싶었고, 결정은 오로지 머릿속에서 내리는 것으로 끝내고 싶었다.

그러면 아무 고통도 겉으로 생겨나지 않을 테니까. 모든 것에 둔감해지면 고통도 속에서만 맴도는 것으로 끝낼 수 있다.

그래도 이제는.

“왜 울고 있니?”

“안 울었어요.”

엘리엇은 얼른 주먹으로 눈을 비비고 손을 뒤로 감추었다. 젖은 걸 들킬까 봐 그런 것이다.

황제는 천천히 엘리엇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눈높이를 맞추었다. 아이의 볼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곧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이 실룩거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늘 힘들었지? 울어도 된단다.”

“용감한 소년은 울지 않는 거라고 아빠가 그랬어요.”

“가족이 함께 있을 때는 울어도 되는데?”

엘리엇이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마치 세상에 저 혼자가 된 양 억지로 용기를 끌어모으는 듯했다.

황제는 안쓰러운 기분으로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아이를 보듬어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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