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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분명해-234화 (235/263)

#234화

취지에는 공감했으나 찰스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사나 제니는 그렇다 치더라도, 하필 내가? 차라리 집사라거나…….]

[친척과는 아무래도 다르지. 게다가 엘리엇이 널 좋아하잖아. 아니면, 엘리엇이 생각보다 더 높은 신분이라는 걸 알고 나니까 더 이상은 외삼촌 노릇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진 않잖아.]

그게 찰스의 솔직한 본심이었지만, 클레어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이 아버지가 누구든 간에 결국은 엘리사의 아이야. 네가 외삼촌이고. 어차피 아버지가 클라우제너 공작이었다고 해도, 우리 집안 기준으로는 말도 안 되게 높은 신분이었다는 거에는 차이가 없잖아.]

[그, 그렇긴 하지.]

마음속으로는 차이가 없긴 왜 없냐고 생각했지만, 클레어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어차피 너무 격차가 커서 델포드와 비교 대상이 아니라는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클레어는 앞으로 엘리엇이 더 외로워질지도 모르니까, 가족과의 유대를 강하게 해 주고 싶었다.

일가친척만 생각하느라 암군이 될 우려는 하지 않았다. 엘리엇의 선량함을 믿어서가 아니라, 이미 제국은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왔다.

이러나저러나 찰스는 부담을 느꼈다.

그러나 엘리엇이 그가 움찔하는 것을 보더니, 평소처럼 달려오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고운 하늘색 눈동자에 아이답지 않은 그늘이 서렸다.

찰스는 클레어가 입버릇처럼 ‘애도 다 알아’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리고 반성했다.

엘리엇이 발목을 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외삼촌은 이제 내가 싫어?”

“그럴 리가. 이리 와.”

찰스는 용기를 내서 손을 뻗었다. 엘리엇이 조금 더 머뭇거리다가 그의 품에 안겼다.

그도 엘리엇을 사랑했다. 첫 조카였고, 찰스에게도 사랑을 줄 수 있는 첫 핏줄이었으니까. 해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지만 말이다.

그게 아니라도 엘리엇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이가 아닌가. 엘리사가 명예를 더럽혔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흠을 잡았던 제임스도 이것에는 동의했다.

“고생했다.”

“왜 안 안아 줬어?”

“황제 폐하랑 근위대장님이 무서워서.”

그는 엘리엇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대답했다. 그러자 엘리엇이 키들거렸다.

“황제 할아버지는 안 무서운데, 대장님은 무서워.”

“넌 모르겠지만, 황제 폐하가 훨씬 더 무서운 사람이야. 외삼촌은 황제 폐하에게 실수하면 큰일 난다고.”

“괜찮아, 여기는 아빠 집이니까.”

클라우제너 공작도 무섭긴 마찬가지였으므로 찰스는 고개만 저었다.

“외삼촌도 여기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방 엄청 많은데.”

“그건 좀 그렇고…….”

“안 돼?”

“나는 우리 집에 가야지.”

“웅…….”

“네가 오면 되잖아. 내가 집에 안 가면, 마리는 누가 돌봐 줘?”

엘리엇이 몹시 부러워하는 제 애마의 이름을 말하며 찰스는 아이의 엉덩이를 두드렸다. 그래도 엘리엇은 시무룩했다.

“마리 보고 싶다. 보리도 보고 싶어. 그리구 외삼촌 가는 거 싫어.”

“바로 안 가. 가긴 할 건데, 당분간은 수도에 있어야지. 클레어가 아기 낳는 것까지는 보고 가야 하니까.”

엘리엇의 눈이 똥그래졌다.

“아기?”

찰스는 아차 했다. 그러고 보니 엘리엇에게는 아직 알리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를 낳으면 첫째를 더 신경 써야 해서 신중하게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클레어가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엘리엇이 찰스의 무릎을 팡팡 때렸다.

“아기? 엄마가 아기 낳아?”

“어, 어…….”

찰스는 긍정의 대답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작게 흘렸다. 엘리엇은 그 소리를 끝까지 듣지도 않고 우당탕퉁탕 달려가, 문을 열려고 팔짝팔짝 뛰었다.

“야, 엘리엇!”

“갈래! 갈 거야! 엄마한테!”

찰스는 이게 자기가 수습하지 못할 일인 것을 알고 얌전히 문을 열어 주었다.

마침 저택의 경호 태세를 점검하기 위해 아이 방 앞 복도까지 와 있던 막시밀리안이 뛰어나오는 엘리엇을 보고 눈가를 접으며 웃었다.

“엘리엇 님.”

그렇게 뛰면 안 된다고 지적할 작정이었는데, 그럴 시간도 없었다. 엘리엇이 신발에 풍선이라도 달린 것처럼 방방 뛰었다.

“엄마한테 갈래!”

“기다리십시오, 엘리엇 님!”

클레어가 어디에 있는지, 막시밀리안의 말은 듣지도 않고 엘리엇이 마구 복도를 달려갔다. 찰스가 어쩔 줄을 모르며 그 뒤를 따라갔다.

막시밀리안은 아이를 잡아채 안아 들 수도 있었지만, 잠에서 깨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아이의 심정을 이해했으므로 그냥 조용히 그 뒤를 따라갔다.

엘리엇은 복도를 가로질러 먼저 클레어의 침실로 갔다가 빈 것을 발견하고 곧바로 서재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서재도 비어 있었다.

“히잉.”

엘리엇은 발을 동동 구르다가 깜짝 놀란 듯한 얼굴로 이번에는 응접실을 향해 뛰었다.

생각해 보니 오늘 황제 할아버지가 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야, 엘리엇!”

찰스는 그 뒤를 따라 달리느라 숨이 턱에 닿았다. 뭔 어린애가 이렇게 체력이 좋은지, 몇 번 잡으려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엘리엇은 이제 찰스와 ‘경찰과 도둑 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신나서 까르르 웃음소리를 흘리며 달려갔다.

그리고 응접실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문고리를 잡으려고 팔짝거릴 필요도 없었다.

앞에 서 있던 시종들이 황태손의 모습을 보고 당연한 듯이 문을 열어 길을 틔워 주었기 때문이다.

황제의 모습에 놀라서 그 자리에 정지한 것은 찰스뿐이었다.

“힉!”

엘리엇은 개의치 않았다. 할아버지들이 무섭지도 않았지만, 클레어 외에는 문을 열어 준 사람이 있는지 어떤지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엄마! 엄마엄마엄마!!”

아이는 곧바로 클레어의 무릎으로 달려들었다. 클레어는 애써 그 몸을 받아 냈다. 앉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엄마 여기 있어. 아무 데도 안 갔어.”

얼마나 불안하면 이럴까 싶어 엘리엇을 안아 주면서, 엉거주춤 문간에 선 찰스에게 눈치를 주는데, 엘리엇이 눈알이 별똥별이 되어 튀어나올 만큼 반짝반짝 빛내면서 소리쳤다.

“엄마 아기 낳아?”

“응?”

“찰스 외삼촌이 그랬어! 엄마 아기 낳아? 나 동생 생겨?!”

“아.”

‘안심시켜서 잘 좀 데리고 있지’라는 눈총이 ‘애한테 무슨 소리를 했냐?’라는 칼날로 변했다. 찰스는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좀 더 진정된 다음에, 세상에서 널 제일 사랑하고, 아기가 태어난 다음에도 그럴 거라는 말과 함께 알려 줄 작정이었지만, 여기서 얼버무려 봤자였다.

일단 대답해 놓고 설명할 작정으로 긍정의 대답을 했는데.

“응.”

“동생!”

엘리엇이 신나서 펄쩍 뛰었다.

“언제? 언제 나와?”

“아직 멀었어.”

클레어가 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낳고 나서는 또 어떨지 모르는 일이지만, 일단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전에 코넬리아 부인을 만난 적 있지? 그만큼 엄마 배가 커져야 해.”

“웅…….”

엘리엇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아기는 엄마 배 속에 있는 거라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 엄마의 배 속에는 아기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직 너무 작아서 그래.”

“동생 생길 거라고 하니까 좋니?”

무어 공작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좋아요! 내가 핫초코랑 우유랑 먹여 주고 엄청 재밌게 같이 놀아 줄 거예요! 그리고 동화책도 같이 읽고, 같이 해적 놀이도 할 거예요! 아, 칼싸움도! 신사 놀이도!”

낳을 때 되면 엘리엇은 여섯 살에 가까울 텐데, 같이 놀기에는 터울이 크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클레어는 미소를 짓고 말았다.

황제가 눈을 가늘게 하고 다정한 웃음을 띤 채 말했다.

“실은 걱정을 좀 했었는데, 그럴 필요는 없겠군.”

공작가에 다른 아이가 생기면 엘리엇이 소외감을 느끼거나 서운해하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 기세를 보니 섣부른 걱정이었던 듯했다. 양육은 역시 이 집에 맡기는 게 옳았다.

“황제 할아버지!”

엘리엇이 신난 채로 돌아보았다가, 그제야 공왕과 황제를 보고 방글방글 웃었다.

“저 동생 생긴대요!”

자랑하듯 말하는 아이에게 황제가 손을 뻗었다. 엘리엇이 달려와 그의 손안에 머리를 비비고, 이번에는 공왕에게 가서 그 무릎 위에 올라앉았다.

기분이 좋아서 모든 사람에게 뽀뽀라도 할 작정인 모양이었다.

클레어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진짜로, 에리히를 닮았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사실, 나도 그 말에 동감이라네.”

손자를 쳐다보느라 여념이 없는 두 할아버지 몰래, 무어 공작이 클레어에게 몸을 기울이고 살짝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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