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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분명해-238화 (239/263)

#238화

리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들은 클레어는 곰곰이 생각에 잠긴 채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다이아몬드 광고에 노이즈가 섞이긴 하겠지만, 뭐, 새로운 스타일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괜찮아요. 모던 한 디자인의 작은 보석도 애초부터 밀려고 했던 스타일이고…….”

“아뇨!”

리나는 깜짝 놀라 목소리를 높이고 황급하게 말했다.

“그런 걸 여쭌 게 아니라요! 원래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건 클레어 님이잖아요!”

클레어가 눈을 깜박였다. 리나는 두 손을 모으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저는 운이 좋은 풋내기 가수일 뿐, 정치 같은 건 몰라요. 그리고 사람들이 바라는 조언 같은 걸 해 줄 수도 없고, 자격도……!”

“글쎄요. 자격을 누가 결정하죠?”

“네?”

“폐하가? 의회가? 배웠다는 사람들이?”

“클레어 님…….”

“그건 아니죠. 하지만 내게 자격이 없는 건 확실해요. 클라우제너 공작 부인이 되어 버렸으니까.”

클레어가 검지에 낀 인장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황후가 있을 때는 괜찮았다. 적의 적은 아군이며, 황후와 대립하는 동안은 민중과 같은 편에 서 있을 수 있었으니까.

그녀의 공격 무기는 옳은 방향을 향해 휘둘러졌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황후가 사라졌으니, 클라우제너는 이제 민중의 반대편에 서 있다.

기껏해야 관대한 자선가 이상이 될 수 없고, 본디 자선가가 자선을 베푸는 것은 갈등을 사적인 영역에 국한시키고, 개인의 선량함으로 무마하는 일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녀가 의회에 얼굴을 내밀며 시민의 권리를 말해 보았자 기만에 불과하다.

클레어는 인간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것과 별개로, 아편과 노예 문제를 끌어낸 것으로 자신의 역할이 끝났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 이상 나서는 것은 황실을 클라우제너로 교체하는 일이 될 뿐이다.

그녀는 이기적인 이유로, 제 아이가 죽는 날까지 혈통의 업을 짊어지지 않고 운 좋게 얻은 부귀 속에서 살기를 바란다.

가능하면 더는 피를 흘리지 않고, 그 아이의 아이까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그들 부부가 새로운 왕이 될 수는 없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더욱 손을 놓는 것이 옳았다.

“디트마어 씨를 만나 주시지 않는 것도 그렇게 생각하시기 때문인가요?”

“생각해 봐요, 리나 양. 언젠가……, 아니, 보나 마나 30년도 지나지 않아서 ‘디트마어 람스베르크가 클라우제너 공작가의 명을 받아 황태손의 정적을 공격했다’라고 주장하는 역사서 같은 게 생기는 상황을. 어차피 날조라도 하는 자가 나오겠지만, 그래도 가능성은 줄이는 게 낫겠다 싶어서요.”

“그렇군요…….”

“그리고 리나 양이 얻은 영향력은 리나 양의 것이에요. 내 것이 아니라……. 목적이 위로였든, 혹은 다른 것이었든,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힘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죠. 그러니, 그 힘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리나 양이 결정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리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디트마어와 지인이 된 뒤로도 꽤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연락책으로도 활동했고, 클레어의 부탁이 아니라 그냥 디트마어를 돕기 위해 움직이기도 했다.

그러고서도 아무 생각도 없었을 리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에게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제겐 자격이 없어요. 저는, 스테판 때문에 나섰던 거예요. 제 쪽이 훨씬 더 자격이 없어요.”

클레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스테판의 이름을 아직까지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리나의 입으로는 더더욱.

한번 찾아보려고 했으나 그의 종적은 또다시 사라졌다.

리나 역시 그를 찾으면서도 그의 목적을 말해 주지는 않았으므로, 클레어는 지금쯤 그자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 * *

그로부터 얼마 후에, 재판소에서 내부 고발이 시작되었다.

순보, 주보가 중심이었던 신문은 매일 호외를 찍다 못해 이제 조간신문이 되었다.

귀족과 거부가 어느 판사에게 어떤 뇌물을 주었는지 기사가 실리기 시작했다.

젊고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여 장학금을 주고 후원자가 되는 것은 존경받을 만한 일로 여겨졌다.

재판소의 판사와 법률 사무소의 주인이 되는 것은 가난하지만 영특한 소년이 꿈꿀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출세 루트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것이 판결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후원자에게 올바른 조언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후원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판결하느라 상대에게 누명을 씌우거나 손해를 입히는 것은 부도덕한 일로 공분을 샀다.

사생활의 추잡함은 좀 더 적나라하게 밝혀졌다.

마약상과 사채업자의 정기적인 상납, 노예상과의 친분, 지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관계도가 그림으로 그려졌다.

젊은 법률가들은 이게 기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은 자신이 명예롭게 여겨 온 지위를 더럽힌 선배를 쫓아낼 기회이자, 청렴한 명성을 얻을 기회였다.

그리고 많지 않은 고위직 자리를 텅 비워 자신이 진출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혹은 여전히 자신을 농노나 하인의 자식으로 여기는 도련님에게서 벗어날 기회이기도 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귀족과는 다른, 지식에 의해 존경과 권력을 획득한 새롭고 정당한 통치 계급이지, 명예 없는 귀족의 노예가 아니었다.

익명의 투서가 슐츠에게 쏟아졌다. 슐츠는 늘어나는 영향력에 기쁨의 비명을 지르며 그 모든 내용을 검증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비밀은 없었다. 검증 과정은 공개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퇴진이 계속되었다.

또다시 하원 의원의 사무실로 편지가 쏟아지고, 신문사의 칼럼에 제 글을 실어 달라며 기고문을 보내는 사람이 숱하게 많았다.

정기적으로 의사당에 나와 총선거 준비를 지켜보던 시위대에서 피켓을 하나씩 추가했다.

『판사들을 처벌하라.』

『재판소를 정화하자.』

마침내 단체 하나가 과거의 판례를 거슬러 올라가며 목록으로 만들어 재판소 앞에 붙이기 시작했다.

재판소 앞에 돌이 쌓였다. 자칫하다가 또 피가 흐를 것을 염려한 노이만 의장이 황제에게 근위대 일부를 청하여 재판소를 지키게 할 정도였다.

대부분의 판사들이 몸을 사려 뒷문으로 몰래 들어가거나 아예 출근을 거부하는 와중에, 자존심 강한 재판소장이 기어이 법복을 입고 정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다가 관자놀이가 찢어졌다.

이 일로 인해 이번 회기의 하원이 입법한 마지막 법률은 이런 것이었다.

『의사당과 재판소에서 종이 외의 것을 던지는 자는 처벌한다.』

재판소 앞에 두꺼운 종이로 만든 슬링 탄을 파는 노점상이 생기고, 유리가 모조리 깨진 것은 그다음 날의 일이다.

* * *

아우구스타는 미칠 노릇이었다. 그녀는 거실을 뱅글뱅글 돌며 초조하게 입술을 짓씹었다.

“아우구스타 님, 잠시라도 눈을 붙이셔야 해요.”

시녀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말했다.

아우구스타는 무심코 그녀를 홱 노려봤다가, 곧 그녀를 책망할 일이 아님을 깨닫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마르고트 님께서 감옥에 계시는데, 내가 어떻게 푹신한 침대에 누울 수 있겠니?”

그녀는 아직까지 마르고트를 제대로 면회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르고트의 의식주를 생각하고 있는 게 현명한 일은 아니었다. 감옥에 있는 이상 한계가 너무 명확했으므로, 생각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지금 아우구스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았다.

그중에 오로지 딱 하나, 마르고트의 형을 줄이거나 무마하는 일만 하고자 해도, 나머지 모든 일이 어차피 그에 얽혀 있다.

비자금을 안전하게 옮기는 것부터 돈이 이동하는 루트, 비밀 정보와 안전 가옥을 숨기고, 에른스트 공작가와 수하들을 단속해야 했다.

그래야만 죄를 줄일 수 있다.

아직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황제는 불임약을 먹었다고 말했지만,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누가 알겠는가? 그리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어차피 그런 약의 효과는 백 퍼센트가 아니다.

리누스의 부친이 누구인지 법정에서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리고 설령 증명이 된다 하더라도, 고작해야 혼외자를 만들었다는 죄로 처형할 수는 없다.

그러니 다른 증거를 없애면 된다. 아편으로 만든 비자금 루트만 제대로 숨기면, 나머지는 통치 행위였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일단 시간부터 끌어야 했다. 세간의 관심이 사그라진 후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

황제와는 협상이 되지 않을 테지만, 클라우제너 공작 부인이라면 분명히 가능할 것이다.

일단 처형을 피하는 게 급선무였다. 특히 리누스는 그래야만 했다. 그러고 나면 사람을 바꿔 치든, 남몰래 빼돌리든 해야…….

“아우구스타 님.”

그때 누가 거실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이냐?”

또 나쁜 소식이 아니길 바라며 아우구스타는 날카롭게 물었다. 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 것은 스테판이었다.

아우구스타는 저도 모르게 표정을 풀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스테판, 도망쳤을 줄 알았는데.”

“수도의 경계 태세가 풀렸으니까요. 돌아왔습니다.”

스테판이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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