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가 분명해-256화 (257/263)

#256화

빨간색과 검은색으로 알록달록하게 칠해진 장난감 증기 기관차가 엘리엇은 마음에 더욱 쏙 들었다.

“이거 내가 탔던 거랑 똑같아!”

엘리엇이 신나서 외쳤다. 그리고 모형 위를 들여다보려고 애썼다.

모형이 진열된 테이블 높이는 아이 눈높이에 맞게 낮게 만들어져 있었지만, 보는 것은 몰라도 중앙 쪽에 손을 대려면 발돋움을 해도 쉽지 않았다.

“금방 자라 버릴 테니까.”

황제가 미소를 지었다.

에리히가 엘리엇을 안아 주었다. 아이는 모형 위에 놓인 철도를 고심하며 들여다보았다. 어디가 자신이 지나간 자리인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여기.”

에리히가 클라우제너로 통하는 산맥 사이의 철도를 가리켰다. 그러자 엘리엇이 장난감 기관차를 쥔 팔을 힘껏 뻗었다.

“붕!”

에리히는 엘리엇이 기관차를 밀 수 있도록 몸을 구부려 줘야 했다.

다른 어른들은 웃으면서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황제가 친근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와 줘서 고맙네, 클레어. 힘들 텐데.”

“낮에 다녀가시고 저녁에 다시 부르시니, 임부에게는 조금 가혹한 일정이긴 해요.”

“솔직하군.”

황제가 미소한 채로 말했다. 이 정도면 거의 에리히에 필적하는 솔직함이었다.

본인들은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꼭 드리고 싶은 말씀도 있었으니, 괜찮아요.”

클레어는 방긋 웃으며 황제를 바라보았다.

“다름이 아니라 엘리엇 이야기인데.”

“어흠.”

황제는 다소 과장된 태도로 헛기침을 했다.

클레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모르지만, 무엇이 되었든 좋은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 역시 엘리엇에게 지나치게 오냐오냐했다는 자각이 있었다.

오늘 간식을 배부르게 먹여 버리기도 했고 말이다.

어린아이의 뱃구레는 왜 이리 작은지, 마음 같아서는 세상에 맛있는 것이라고는 전부 입에 물려 주고 싶은데, 간식 한 접시만 먹여도 벌써 안 된다고 했다.

클레어는 황제의 헛기침 정도에 할 말을 못 할 사람은 아니었다.

황제도 그 사실을 알았으나, 오늘은 클레어의 환심을 살 수 있는 확실한 카드를 갖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대에게 주고 싶은 게 하나 있다네.”

“네?”

“엘리엇을 잘 지켜 주고 돌봐 준 보답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아니요.”

클레어가 고개를 저었다.

“제게도 조카이고, 제 아이인걸요.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민망하고 곤란합니다.”

“물론 그것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을 부디 거절하지 말아 주게. 그대가 엘리엇의 어머니 대신이라는 것은 알고 있고, 또 에리히가 아버지 역할을 아주 잘해 주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황제가 미소를 지었다.

“엄밀하게 이건 누구의 역할, 저건 누구의 역할 하고 따지자는 것은 아니지만, 이모로서 엘리엇을 키워 준 것이 그대의 동생 대신이었다면, 내 아들의 빈자리를 채워 준 사랑도 있었지 않나.”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받겠습니다.”

양육비라고 생각하면 못 받을 것도 없다.

굳이 돈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런 식으로 정성을 보여 주는 게 고마웠기 때문에 클레어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제가 맡아 가지고 있다가 소중하게 엘리엇에게 물려주도록 할게요.”

“아니야. 제러드의 것은 당연히 엘리엇에게 상속될 테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네. 그것은 아직 먼 이야기이지.”

황제가 그렇게 말하면서 봉투 하나를 클레어에게 건네주었다.

“고맙다는 의미에서 그대에게 주는 선물일 뿐이야. 아직 내게 뭐라도 힘이 남아 있을 때 주고 싶었거든. 사실 이걸 얻어 내기 위해서 내각과 꽤 여러 가지 협상을 거쳐야 했다네.”

그가 웃었다. 클레어는 그 웃음에 조금 놀라면서 봉투를 열어 보았다.

그것은 델포드의 전신 사업권 특허장이었다.

설비에 투자하는 조건으로 향후 30년 동안 델포드와 에머슨의 전신 사용권을 보장한다는 내용이었다.

클레어는 깜짝 놀라 황제를 쳐다보았다.

“이걸 많이 탐냈다지?”

“폐하!”

“어차피 설비는 모두 그대가 해야 하니 선물이 되지는 못할까?”

“설마요.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균형 발전을 위해 당분간 남부에 집중적으로 전신이 설치될 예정이었다.

델포드에서 가까운 도시가 최우선 지역 중 하나였으므로, 거기에서부터 델포드까지만 연결하면 된다.

그러면 에머슨 공단과 델포드를 전신으로 연결할 수 있다. 그걸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면, 사업에 말할 수 없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다가 클레어는 잠깐 움찔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이제 델포드에서 1년 중 며칠이나 머무를지 모를 일이었다.

“그대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엘리엇의 고향이기도 하지 않은가. 멀리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감사합니다.”

클레어는 활짝 웃었다. 그러다가 힐끗 쳐다보자 에리히가 얼굴을 구긴 채 쳐다보고 있었다.

“클라우제너 공작님께서 전부터 저더러 자기한테 로비를 해 보라고 하시던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네요.”

그 말에 황제와 아렌 공왕이 둘 다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엘리엇만 혼자서 ‘로오비가 뭐야?’라고 묻다가 에리히가 대답해 주지 않자 또다시 토라지고 말았다.

60. 후일담

출산은 두려운 일이다.

산달이 되자 클라우제너 공작저에 팽팽한 긴장이 맴돌았다. 출산으로 인한 사망률이 10%에 가까운 시기다.

‘다들 잘 낳고 잘 살아’라고 말하기에는, 공작 부인이 너무 귀한 몸이었다. 신분이 귀한 것이 아니라,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그랬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공작 부인이 잘못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클라우제너 공작가도 끝일 것이다. 누구나 다 짐작할 만한 일이었다.

“건강하면 괜찮아. 의사에게 손 잘 씻으라고 말도 했고, 소독제도 만들었고, 외과 의사도 대기하고 있고.”

클레어는 주위에 그렇게 말했지만, 그래도 긴장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엘리사가 출산할 때도 이 정도의 준비는 했었다.

“입술이 파래, 클레어.”

배가 무거워서 자꾸 뒤척거리는 그녀 곁에 앉아 어깨를 감싸 안고 있던 에리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것만은 어떻게 해도 나눠 질 수가 없는 일이다.

그는 진심으로 아이를 원했으나, 클레어가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조금씩 후회도 들었다.

“그런 얼굴 하지 마요. 그렇다고 아예 아기를 안 갖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럴 방법이 있다면.”

“당신의 인내 말고는 방법이 있을 리가.”

에리히의 코끝이 찡그러졌다. 클레어는 그 코를 손으로 꾹 눌러서 더 찌그러뜨리고 말했다.

그리고 기분 전환 삼아 물었다.

“그래서, 딸이 좋아요? 아들이 좋아요? 아직도 대답 안 했어요.”

“…….”

“그렇게까지 고민할 일이에요? 아니면, 공적 입장을 생각하면 아들을 원할 수밖에 없으니까, 고민한다는 건 결국 딸이 좋은 거예요?”

“아니.”

에리히는 짧게 대답했다.

자신을 닮은 아들이 태어나 클레어의 무릎에 안겨 있는 것도 묘한 기분이 들 것 같긴 했다. 그렇다고 해서…….

“널 닮은 딸이면 좋겠다 싶긴 하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싫은 마음도 들어서.”

“태어나기도 전부터 사윗감한테 진상 부릴 생각부터 하는 거 봐.”

“진상이라니.”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당신한테 어느 쪽을 걱정해야 하는지 알려 주셨을 거예요.”

클레어는 그렇게 말했지만, 이내 웃고 말았다.

“아니 근데 생각해 보니, 당신을 보셨으면 날 걱정하셨을 거 같긴 하네.”

“내가 뭘. 아버님이 현명하셨군.”

에리히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클레어는 웃다 말고 문득 허리가 아픈 것을 느끼고 몸을 조금 들썩였다.

“널 닮은 아들도 좋겠군. 키우기는 힘들겠지만.”

“아주 똑똑하고 훌륭한 공작감이네. 좋아요, 날 닮은 아들을 힘껏 낳아 볼게요.”

에리히는 결국 피식 웃고 말았다. 클레어가 그 얼굴을 보고 또다시 잘생긴 콧대를 가볍게 쥐었다.

이걸 꺾어 놨어야 했는데 결국 실패했으니, 아들이든 딸이든 얼굴은 당신 닮는 게 낫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물론 성격은 좀 사양하고 싶었다.

‘진짜 닮은 아들이라도 나오면 알아서 키우라고 떠넘겨야지. 딸이면……, 예쁘겠다.’

도도한 공주님을 키울 생각을 하면 당장의 힘겨움도 잊고 행복해졌다.

손을 꼬집으려던 손가락이 붙들려 에리히의 입술 사이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문득 밑이 축축해졌다.

“클레어?”

“아!”

다음으로 진통이 찾아왔다. 클레어는 배에 손을 올렸으나 허리를 꺾지도 못하고 신음했다.

에리히가 깜짝 놀라 일어섰다. 소파까지 말간 양수로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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