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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분명해-258화 (259/263)

#258화

클레어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아기는 에리히를 꼭 닮아 어린 얼굴인데도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코가 높았다.

제러드 황태자와 에리히가 그토록 닮았으니 그 자식끼리도 닮은 게 자연스럽긴 하지만, 아기와 엘리엇은 육촌인데도 어쩜 이리 똑같은지 모르겠다.

엘리엇이 기쁜 듯이 웃었다.

어찌 보면 엘리엇의 얼굴에는 엘리사가 남아 있는 것에 비해 아기의 얼굴에는 그녀가 남아 있지 않아서, 닮은 부분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키우려면 힘들 거 같은데.’

성격까지 부친을 빼다 박았다는 보장은 없지만, 갓난아이 주제에 세상 장엄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맞을지도 모른다.

“내가 우유도 먹여 주려고 했는데, 안 된대.”

“아직 너무 어리니까.”

“내가 형아니까 잘 키워 줄 거야.”

클레어는 왠지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엘리엇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너도 아기인데.”

“그치만. 엄마도 하늘에 있는 엄마를 키워 줬다고 했잖아.”

“아니야.”

클레어는 자기가 언제 그런 말을 했던가 돌이켜 보았다.

엘리엇에게 딱히 직접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지만, 어른들끼리 있을 때는 간혹 엘리사를 보살폈느니, 이른 나이에 남작이 되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이래서 아이 앞에서는 함부로 말할 수 없다. 클레어는 엘리엇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마주 대고 말했다.

“그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가 대신 하늘에 있는 엄마한테 용돈을 줬다는 이야기고.”

“웅…….”

“엄마랑 아빠는 오래오래 살 거니까 엘리엇은 안 그래도 돼. 아기여도 돼.”

“그래도 형아야.”

“그럼.”

“내가 아주아주 잘 놀아 줄 거야! 보리 형아처럼!”

클레어는 웃어 버렸다.

보리는 델포드에 있는 강아지 이름이다.

엘리엇은 보리를 귀엽다 귀엽다 하다가, 저보다 세 살이나 더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형아구나!’라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아기 이름은 뭐야?”

“아직 안 지었어. 뭐라고 지을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나더니, 에리히가 방문을 열었다. 아기를 안은 채였다.

“안고 그렇게 돌아다녀도 돼요?”

아기는 우량아였으나 에리히의 손에 달랑 들려 있으니, 아기 싸개가 싸개가 아니라 포장지처럼 보였다.

그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기방이라고 벽이랑 바닥까지 끓이진 않으니까, 어디든 비슷하겠지.”

청소에 신경 쓰고 있는 건 클레어가 누워 있는 부부 침실이나 아기방이나 마찬가지였다.

클레어의 쇠약해진 몸에는 아직 감염의 위험성이 있었다.

윤나게 닦은 바닥을 밟은 것이 구두도, 고무 밑창을 댄 가죽 신발도 아니라 포근포근한 면 슬리퍼인 게 몹시 마음 편했다.

클레어는 저택 전체를 신발 금지 구역으로 삼을 수는 없을까 잠시 고민했으나, 온돌이 없으니 무리일 것이다.

‘온수 매트……, 전열선……, 황동 파이프……, 옥 장판……, 옥 장판?’

이거 의외로 될 거 같기도 한데. 보일러는 무리라도 전열 기구는 가능하니까, 그 위에 돌을 얹으면 될 게 아닌가.

안 그래도 침대를 평상으로 만들 작정이었으니까 아예 돌침대를…….

생각에 잠긴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고 에리히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또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시작한 건가?”

“쓸데없다니요. 다 미래의 삶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보려는 발버둥인데.”

물주머니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뜨뜻하게 등을 지지고 싶었다. 산후조리에는 아랫목이 최고인데 말이다.

그러는 동안 에리히가 확인했다.

“엘리엇, 손은 씻었지?”

“손, 발, 다 씻고 검사도 받았어요!”

에리히는 엘리엇의 손을 당겨 손톱 밑까지 꼼꼼하게 검사했다. 아이 손에서 비누 냄새가 났다.

발에는 에리히와 똑같이 면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잘했다.”

“히히.”

에리히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엘리엇이 방실방실 웃고는 아기를 들여다보았다.

클레어가 손을 내밀었다. 에리히는 그녀에게 아기를 안겨 주려고 했지만, 클레어는 아기가 아니라 에리히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머리 왜 이렇게 짧게 잘랐어요?”

길어졌던 머리가 이번에는 지나치게 짧게 잘려, 잡으려고 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또 내가 머리채 잡을까 봐?”

“……길게 있었던 게 오래되었으니까 기분 전환 삼아 짧게 잘랐을 뿐이야.”

“당신이?”

클레어는 코웃음을 쳤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같은 길이로 같은 모양을 유지했던 주제에.

아마 에리히에게는 그것도 모양새를 갖춘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매너 비슷한 것이었을 텐데.

“뭐, 염려 말아요. 당신 머리에 땜통이 생기거나 모근이 약해져서 늙어서 민머리가 되어도 버리지 않을 테니까.”

“할 말이 그것뿐인가?”

“음……. 미안해요?”

에리히가 한숨을 내쉬었다. 미리 머리채 잡을 거란 선언을 듣고 잡힌 일로 더 트집을 잡을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클레어가 어색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아니, 근데 진짜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요.”

“알아. 고생한 건 내가 아니라 너지.”

에리히가 그렇게 말하면서 한 번 클레어의 손을 깍지 끼어 잡았다.

“고마워.”

“알고 있으니 다행이죠.”

그때 잠들어 있던 아기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빠, 아빠, 아기 울어!”

“엇.”

에리히가 당황했다.

“으응!”

아기가 조그만 소리를 냈다가, 다음 순간 우렁찬 울음을 터뜨렸다.

하루 사이에 그럭저럭 안는 것에는 익숙해졌지만, 돌보는 것을 배웠다고까지 할 수는 없는 에리히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거렸다.

배고픈가? 기저귀가 축축한가? 유모가 확인하는 순서를 알고 있었지만, 그는 아기를 침대에 내려놓고 기저귀를 확인해 봐야 할지, 클레어에게 넘겨야 할지, 아니면, 나가서 유모를 찾아야 할지.

손발이 세 개였으면 아마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손발은 두 개뿐이었고, 손과 발이 각각 따로 놀아 발도, 손도 멈칫했다.

“후앵, 응애, 후애애앵!”

“아빠!”

당황한 엘리엇이 에리히를 질책했다. 클레어가 한숨을 내쉬고 지시해 주었다.

“유모에게 데려다줘요. 당신이나 나보단 낫겠지.”

“아.”

아직 젖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몸도 슬슬 한계였다.

에리히가 깨달음을 얻기라도 한 듯한 얼굴로 밖으로 나갔다. 엘리엇이 얼른 그 뒤를 따랐다.

클레어는 아픈 몸을 부여안은 채로도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누가 저 사람의 저런 모습을 알겠는가. 놀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의 명예를 위해 덮어 두기로 했다.

* * *

리나가 방문한 것은 아기가 태어나고 나흘 후의 일이다.

“선물을 전해 드리고 싶어서 왔어요.”

리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몸에 바르는 크림, 실내용 양말, 장갑이랑 숄, 아기 싸개……, 어차피 전부 준비하셨겠지만, 그래도 뭐라도 도와 드리고 싶어서요.”

이웃의 출산을 몇 번이나 도운 일이 있었기에, 산모를 보살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러고 싶었지만, 때를 놓치고 말았다.

장례식을 치른 사람은 아기의 출산 장소에 가까이 오는 것이 아니다.

딱히 미신적인 뜻에서 한 것은 아니지만, 사흘 동안 몸을 씻고 마음을 정돈하고 나서야 겨우 깨끗하게 축하할 수 있는 마음으로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집사가 송구하다는 듯이 대신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만, 마님께서는 지금 손님을 맞이하실 수 없습니다.”

클라우제너 공작저는 지금 거의 문을 닫아건 듯한 상황이었다.

출산 당일에 달려왔던 가신들도 대부분 쫓겨났다.

아기님을 뵙고 싶다는 사람은 많았으나, 공작 부인은 푹 쉬어야 하고, 감염도 우려된다며 아예 사람의 출입을 금했다.

거의 모든 고용인들이 청소와 소독에 동원되었다. 그러나 공작이 직접 나서서 진두지휘를 하니, 감히 불만을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네. 알고 있어요. 푹 쉬셔야지요. 그래도 선물은 전해주세요. 꽃도요. 얼마 안 되지만…….”

그 말에 집사가 미소 짓고 말았다.

“꽃은 안 그래도 넘치고 있습니다. 주인님께서 수도의 모든 꽃을 전부 쓸어 올 기세시라서요.”

“아, 그래서군요. 아니 진짜로, 꽃 값이 엄청나게 올랐더라고요.”

이제 리나는 돈 문제로 아쉬운 생각을 할 입장은 아니었으나, 꽃 값도 꽃 값이고, 물량도 없어서 웃돈을 얹어 줘도 구하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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