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의 장례식2021.05.15.
세상천지에 누가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을까. 진짜 내 몸은 저 앞에 있었다. 내 시신은 곱게 치장되어 100일 동안 전시될 것이다. 황족들은 대부분 그 배우자들까지 그런 방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신의 딸과 아들들.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고자 함인지, 황족이 귀족과 같은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선민의식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내 어린 시절에 돌아가신 레티나 황후 폐하의 장례를 기억했다. 그때 그분 역시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꽃으로 둘러싸인 채 유리관에 안치되어 100일 동안 장례를 치렀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그 풍경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한데, 그 관에 담긴 것은 이제 내 몸이었다. 유리관이 가까워질수록, 나도 모르게 모자에 달린 망사를 코끝까지 바짝 내렸다. 내 얼굴은 애초에 친하게 지내던 이가 아닌 이상 많은 귀족이 알지는 못했다. 데뷔탕트를 치르기 무섭게 결혼을 서두른 남편 노에비안 탓이었다. 싱그럽고 건강한 블리에의 육체를 가진 것까진 좋았지만, 이 엄숙하고 거대한 장례 행사에 와서야 나는 이 현실이 피부로 와닿기 시작했다.
'이건 신의 장난이야.‘
이 꿈같은 현실은 마냥 좋아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다. 이건 신의 장난이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장난.
'아-!‘
찬송가를 부르며 기도하는 사람들 사이로, 온갖 꽃에 둘러싸여 유리관 속에서 눈을 감은 '나’를 가까이서 보았다. 아름다운 것들로 덮여 얼굴만 내놓고 눈을 감은 창백한 시체. 돌아가신 레티나 황후 폐하의 장례식과 정말이지 똑같았다.
‘정말 죽었구나, 나. 정말로 죽어버렸어.’
내가 입은 검은 드레스에 검은 모자. 그 앞을 가린 검은 망사. 그러나 시커먼 것은 고작 그런 것들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말 그대로 마음이 시커멓게 타는 것만 같다.
“론타의 법으로 황족과 그 배우자는 100일간의 장례를 치릅니다.”
“주신께 영광을.”
“망자에게 영화를.”
죽어버리면 아무 쓸모도 없는 영화를 바라며, 사람들이 기도했다. 나는 흐릿해지는 눈으로 미친 듯이 남편을 찾았다. 노에비안은 유리관 앞에 우뚝 서서 그것을 멍하니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노……!”
반사적으로 이름을 부르려던 나는 곧장 고개를 드는 그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입에서 더 이상 그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이 ‘블리에’의 얼굴을 분명 보았을 텐데, 노에비안은 곧장 유리관 속 ‘나’에게로 눈을 돌려버렸다.
‘바보 같아.’
무엇을 확인하고자 그를 불렀는가. 무지한 하녀들의 한심한 착각일 것이라 생각해놓고서도 가슴속에 남아 있는 가느다란 의심 한 가닥을 놓지 못한 것이다. 아드리엔의 몸으로 단 한 번도 받아낸 적 없었던 차가운 눈을 마주하자 머리가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리고 갑자기.
“으윽…….”
노에비안이 울기 시작했다. 그가 저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은 처음이라, 귀부인들 사이에 스며들어 있던 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신관의 길고 긴 기도 소리가 끝날 때까지. 다른 사람들이 꼭 감았던 눈을 뜰 때까지. 슬픔으로 가득한 노에비안의 얼굴에 귀족들이 예를 다해 고개를 숙이며 조의를 표했다. 나는 그 뒤에서 내 장례식에 온 사람들이 누구인지 멍청하게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묘지에 방문하고, 다시 마차를 타고 나섰는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내가 이만큼이나 대단한 사람이었던가.’
사교계에 데뷔하자마자 노에비안의 눈에 띄어 이른 결혼식을 치르고, 내내 병을 앓으며 저택에 갇혀 살았으며 22살이 되자마자 덧없이 죽어버렸다. 흐느끼는 사람들의 태반은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저 많은 사람 중 내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할 사람은 없겠지. 더 웃긴 건, 내 얼굴은 물론 체형까지 흡사한 이 정부의 몸 때문에 나는 내 본래의 몸이 유리관에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내가 죽은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받아들이는 데에는 한참이나 걸렸다. 노에비안이 눈앞에 있고. 내가 이곳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내게는 이것 또한 현실이었다. 누군가가 저 시체가 아닌, 나를 아드리엔이라고 불러주기만 한다면……. 그저 몸 상태가 좋은 나날 중 하루, 누군가의 장례식에 참석한 대공 부부라 우긴다면 나는 받아들일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나를 아드리엔이라 불러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피레타 소공작 부부가 트로비카 공동묘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손님이 반절은 떠난 뒤였다. 죽은 대공비의 오라비, 소공작 그레고리가 연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려 하는 동안 그의 부인인 비앙카가 힘껏 잡아주었다. 그러나 그녀 역시 검은 망사 사이로 비치는 얼굴이 한껏 젖어 있었다.
“리엔……! 아아-. 아아-!!”
“여보!”
결국 그레고리가 유리관 앞에 당도하자마자 주저앉고 말았다. 낮게 비명을 지른 비앙카 역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젊고, 아름답고, 창백한. 그래서 더 슬픈 시신이 눈에 가득 들어오자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온다.
“너, 이, 개자식!!”
“여보! 으윽…… 여보 그만 해요!”
“내 동생을 살려내! 리엔을 살려내!!”
“여보! 그가 최선을 다했다는 건 우리가 더 잘 알잖아요!”
엉엉 울어 재끼는 그레고리 피레타는 소문과 마찬가지로 시끌벅적한 인사였다. 남은 손님들은 그것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묵념하고 있을 뿐이다. 저런 추태는 장례식이라 용서가 된다. 귀족이든 황족이든 죽은 자 앞에서는 온갖 사람들이 울고 웃고 갖은 기행을 해대는 경우가 허다했으니까. 황제의 책사라 불리는 노에비안 트로비카의 얼굴은 이미 흠뻑 젖어 있었고, 대공비의 오라비인 그레고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참 의미 없는 몸싸움을 걸던 그레고리가 마침내 묵묵히 서 있는 대공을 부둥켜안고 끅끅대며 눈물을 삼켰다. 잔잔히 울려 퍼지는 찬송가와 함께 노부인들의 기도 소리도 커졌다.
“주신이시여-. 부디 망자에게 영화를!”
마찬가지로 검은 망사를 눈앞에 드리운 그들은 얼굴 한번 제대로 본 적 없는 대공비 아드리엔을 위해 그리 빌었다. 이윽고 황실에서 보낸 손님들과 화환이 도착했다. 그들이 망자의 관 앞에 화려한 꽃을 놓고 주신께 성호를 그었다. 이러나저러나 대공비는 대공비인 것이다. 그 외에는 별다를 바 없는 장례식이었지만, 노부인들 사이에 있던 아드리엔은 울음을 참느라 애쓰고 있었다. 노에비안의 오열 때문에 이미 눈물을 뚝뚝 떨구고 있던 차에, 그레고리와 비앙카까지 합세하니 더는 버틸 수 없었다. *** 초겨울에 죽었는데. 죽은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밤바람은 살을 에일만큼 날카로웠다. 묘지의 공기는 다른 곳보다 더 차가운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노에비안은 밤 동안 내 시신이 담긴 유리관을 대공저로 옮기기 위해 사람들을 감독하러 가고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올 것이다. 그는 한 번 맡은 일은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었으니. 뒷정리가 채 되지 않은 이 묘지를 확인도 안 하고 대공저로 돌아갈 리 없었다. 미련할 만큼 확신에 찬 내 얼굴은 감각이 없었다. 누군가 뺨이라도 후려갈긴 것처럼 아픈 것 같기도 했다. 하도 울어서 젖은 얼굴이 밤바람에 얼어버린 것이다.
‘얼른 와요, 노아…….’
나는 하얗게 빛나는 내 비석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 갔다. 누군가가 나를 쉬이 볼 순 없지만 나는 묘지의 입구가 잘 보이는 자리. 묘지 입구를 지키는 묘지기가 언제든 날 쫓아낼 준비를 하는 것만 같아 잘 정돈된 정원 수풀 뒤에 숨듯이 섰다. 입구를 지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는 묘지에서, 나는 그렇게 남편을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가뜩이나 희게 질려 있던 손이 점점 더 차가워져 꾹꾹 주무르고 있을 때쯤, 기적처럼 사나운 말발굽 소리가 이 무거운 정적을 갈랐다. 나는 곧바로 딱딱하게 얼은 몸을 세워 수풀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묘지기가 군기가 바짝 든 동작으로 누군가를 향해 경례를 했다. 말을 제대로 세우지도 않고 풀쩍 뛰어내린 인영이 마치 지옥에서 온 거대한 유령처럼 그림자를 드리우며 묘지 입구로 들어섰다. 노아일까? 부풀었던 나의 기대는 점점 사그라들었다. 척 보기에도 무장 같아 보이는 사내의 인영은 비석 주위를 밝히고 있는 가스등에 가까워지자 이만큼 먼 거리에서 봐도 압도될 만큼 거대했다. 노에비안이 아니었다. 그의 차분한 걸음걸이가 아닌 훨씬 사납고 다급해 보이는 걸음걸이였다. 정적을 깨부술 만큼 사납게 말을 몰아온 인영은 정작 비석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혼자 있을 때 보다 더 무거운 정적이었다. 달을 가리고 있던 구름이 거둬지자 사내의 뒤편에도 빛이 닿았다. 무언가를 감상할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폭력적일 만큼 반짝거리는 금발이 눈을 찔렀다. 언뜻 은발처럼 보이기도 했다. 누굴까. 나처럼 추위에 떨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남자는 얼어붙은 듯 한참 시신 없는 비석에 오도카니 서 있었다.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음에도 절망이라는 감정이 그 거대한 등을 타고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그리고 곧 그가 비틀거렸다.
“!”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가 금방 거두었다. 가까이 서면 까마득히 올려다봐야 할 만큼 기골이 장대한 남자는 곧 그대로 맨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가까스로 몸을 세워 앉았다. 나는 온몸에 빠르게 혈류가 도는 것을 느끼며 그것을 똑똑히 지켜봤다. 아직 이름밖에 새겨져 있지 않은 비석을 더듬어보던 남자는 넋이라도 나간 듯 앉아 있다가 별안간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우는 걸까, 웃는 걸까.
‘아니면 둘 다인가?’
기묘하게 어깨를 들썩이던 남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마치 화난 사람 혹은 미친 사람 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의 몸이 흔들리는 만큼 반짝이는 머리칼이 별처럼 부서졌다. 나는 뭐에 홀린 사람처럼 조금씩 그에게로 다가갔다. 노에비안과 가족 외에, 누구도 이 쓸모없는 비석 앞에서 감정을 내보이지 않았다.
‘당신은 누구예요?’
물어보고 싶었다. 누군데 아무도 없는 한밤중에 그토록 말을 달려와서, 그리 어깨를 떨며……. 홀린 듯 걷던 나는 중간 즈음에서 우뚝 멈추어 섰다.
‘다가가서 뭐라고 할 건데?’
저 사람은 ‘나’를 아는 사람이다. 모르는 이라면 이렇게 슬퍼하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지금의 내 꼴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불쑥 치솟은 궁금증보다, 지금의 나를 누군가 본다면 어찌 받아들일지부터 덜컥 겁이 났다. 자연스럽게 왔던 거리만큼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그 발걸음마저 다시 멈추게 한 것은 흐느끼는 듯한 남자의 숨소리가 툭, 끊어지고 바닥을 기어가듯 낮은 목소리가 정적에 스몄을 때였다.
“ ……아드리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