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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항상 아름답고, 항상 미쳐 있는 (6/171)

6. 항상 아름답고, 항상 미쳐 있는2021.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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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8447518101.jpg“마님! 마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다른 하녀가 헐레벌떡 응접실로 들이닥쳤다.

16558447518101.jpg“밖에서 누가 대공비 전하의 장례식에 다녀온 이를 불러 달라 찾아왔어요!”

1655844751811.png“뭐?”

16558447518101.jpg“마님! 밖에서 또 무슨 일이라도?”

내가 무슨 사고를 친 게 분명하다는 듯, 마지의 눈이 아무 의심도 없이 곧장 내게로 향했다.

1655844751811.png“뭐라 대답했느냐?”

16558447518101.jpg“예? 아, 마님을 직접 찾는 게 아니라 장례식에 다녀온 모든 사람이라길래 확인해보겠다고만 하고 바로 들어왔어요!”

1655844751811.png“내가 직접 나갈게.”

16558447518101.jpg“예? 무슨……! 이 밤중에 누군지 알고요? 누군지 알아보고 집사와 함께 1층 손님용 응접실로…….”

마지의 참견은 내 귓가에서 바스러질 뿐이었다.

1655844751811.png“아니, 내가 직접 나가 확인해야 할 것 같아.”

나는 허겁지겁 옷매무새를 정비했다. 노아다. 분명 노아야. *** 빈센토는 눈앞의 희게 질린 관능적인 입술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단순히 입술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평소 같았다면 거친 말부터 쏟아냈을 입이 움직일 생각도 안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6558447518101.jpg“전하?”

16558447546775.png“…….”

말없이 마차 밖을 응시하는 남자의 오만한 코끝에 희미한 빛이 스몄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줄곧 어두웠다. 어울리지도 않게 긴장한 낯이던 아름다운 부상자의 얼굴은 굳어 있는 것도 모자라 시퍼렇게 질리기까지 했다. 무수히 많은 시체나 마물을 봐도 눈 하나 깜빡 안 하던 전적을 생각하면 그가 시체가 된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드는 낯짝이었다. 빈센토는 그의 눈이 향하는 곳으로 자신 역시 시선을 던졌다.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흑발의 여인. 그리고 그 앞에서 머리를 긁적이며 뭐라 말을 하는 또 다른 부관, 닐. 닐을 경계하며 몇 마디 하던 여인이 다시 아카시아 백작저로 돌아가자 닐은 물론이고 제 앞의 주군까지 백작저 입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16558447546775.png“……이름, 뭐라고.”

여자의 얼굴을 확인한 후로 계속 시퍼렇게 질린 얼굴이었던 남자, 로아드네스가 한참 있다가 입을 열었다. 로아드네스는 닐이 그들에게로 돌아와 마차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듣지 못할 만큼 어딘가 정신이 팔려 있었다. 빈센토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대답 대신 마차 문을 열었다. 상기된 얼굴의 닐이 냉큼 마차로 들어와 앉더니 주절주절 말을 쏟아냈다.

16558447518101.jpg“마지라는 이름의 하녀랍니다. 트로비카 대공가의 묘지에 다녀왔고요. 아카시아 백작 부인이 말없이 사라진 바람에 찾느라 늦게까지 있었다는군요. 전하를 본 기억은 없답니다.”

16558447518101.jpg“……전하!”

기어이 마차 문을 박차고 나가려는 그를, 빈센토와 닐이 필사적으로 막았다. 큰 부상을 입었음에도 힘이 어찌나 센지 거대한 어깨와 팔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16558447518101.jpg“가서 뭘 어쩌시려고요!”

16558447518101.jpg“차라리 그냥 반했다고 하십시오!”

여전히 붉은 얼굴의 닐이 그리 말하자 싸늘한 기운이 마차 안에 감돌았다.

16558447546775.png“……미쳤느냐.”

지금 여기서 제일 미친 건 전하라고요! 닐이 터져 나오려는 말을 꾹 참고 겨우 입을 열었다.

16558447518101.jpg“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사내가 네가 묘지에서 마주쳤던 유령이냐 물으면 아가씨가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16558447518101.jpg“아가씨?”

16558447518101.jpg“아름답고 겁많은 아가씨였습니다! 전하가 찾는 유령이 아니라고요.”

빈센토의 물음에 닐이 대답했다. 그리고 닐은 싸늘한 로아드네스의 얼굴을 보자마자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아차 하는 새에 닐은 그대로 마차 밖으로 걷어차였다.

16558447518101.jpg“으악!”

16558447546775.png“감히, 유령이라 했느냐.”

16558447518101.jpg“전하! 전하!”

원래도 은은하게 미쳐 있는 주군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로아드네스의 눈은 오늘 새벽 대공비의 부고 소식을 들은 뒤로 줄곧 돌아 있는 상태였다. 그 얼굴로 물으면 누구든 도망간다며 겨우겨우 말린 참인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자 이성의 어디 한군데가 뚝 끊어진 듯이 구는 것이다.

16558447518101.jpg“도대체 누구길래 그리 찾으십니까?”

16558447546775.png“……알 것 없다.”

16558447518101.jpg“전하! 송구하지만…….”

빈센토는 온몸으로 로아드네스를 막으며 낮게 말했다.

16558447518101.jpg“전하의 지금 모습을 보면…….”

단순히 복부가 뚫릴 만큼 상처 입은 꼬락서니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팔 한쪽에는 빈센토가 급하게 끼워놓은 깁스를 하고, 복부에는 닐이 대충 감아준 붕대를 한 채 맨몸 위에 재킷만 걸쳐 입고 있는 로아드네스의 문제는 눈이었다.

16558447518101.jpg“아주 많이, 놀랄 겁니다. 잘 보여주시지 않는 존안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평민이니 더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16558447518101.jpg“예, 그 아가씨가 저를 보고도 얼마나 놀랐는데요! 붉은 눈을 보면 순식간에 몸이 딱 굳어서 어쩌면…….”

16558447518101.jpg“닐!”

빈센토의 낮은 외침에, 닐이 걷어차인 정강이를 부여잡느라 옹송그렸던 몸을 펴 경례를 했다. 평소처럼 욕을 하고 걷어찰 줄 알았던 로아드네스는 반대로 조용했다. 닐이 슬그머니 마차 밖으로 나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을 주군을 올려보았다.

16558447518101.jpg‘아…….’

아름답게 반짝이는 붉은 눈은 그에게로 향해 있지 않았다. 진득한 미련이 가득한 채로 아카시아 백작저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로, 그렇게나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16558447518101.jpg“일단 가시지요, 전하.”

16558447518101.jpg“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16558447546775.png“……네 놈 말이 맞다. ”

로아드네스의 눈에 비치는 뜨거운 감정은, 닐에게로 향하는 분노가 아니었다. 닐은 말없이 마차 안으로 들어가는 로아드네스를 보며 제 머리를 퍽퍽 쳤다. 찬란한 금발과 불길한 적안을 동시에 가진, 2황자 로아드네스. 아름다움과 강함으로 이름이 드높다 한들 일반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일 뿐이다. 레이디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지나치게 말한 것 같아 닐은 이번엔 빈센토의 손을 들어 제 입을 찰싹찰싹 때렸다. 드르륵. 그때 거짓말처럼 창문이 열렸다. 닐은 제대로 사과하려 그곳으로 다가가 군기가 바짝 든 경례를 보였다.

16558447546775.png“방금 들어간 그 여자, 자세히 조사해라.”

젠장, 그냥 넘어갈 리 없지. 빈센토는 얼어버린 닐을 보며 고개를 젓고는 응급처치한 로아드네스의 몸을 다시 살펴보고자 마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16558447518101.jpg“전하!”

아름다운 주군이 잘 빠진 턱에 바짝 힘을 주고 고통을 버티다가 결국 스르르 쓰러지는 장면을 보았다.

16558447518101.jpg“전하!”

16558447518101.jpg“닐! 너는 전하의 명을 수행해. 내가 모시고 환궁할 테니.”

빈센토가 마차 문을 사납게 닫고는 마부를 재촉했다. 닐은 너무 놀란 나머지 흙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지는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늘 새벽부터 난리였던 자신의 주군을 떠올렸다. *** 로아드네스 코즈마 드 론타는 항상 아름다웠고, 항상 미쳐 있었다. 찌르고, 베고, 죽이는 것 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전투에 임하고 모두가 본인의 체력을 따라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제 부하들에게 그 이상을 요구했다. 동시에 보석을 깎아놓은 듯 섬세하면서도 사내다운 이목구비는 과히 제국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주신이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진 않으셨는지, 그는 아름다운 얼굴과는 정반대로 몹시 비정했고, 듣기 좋은 말이라고는 눈곱만치도 할 줄 몰랐다. 그들끼리는 암암리에 그를 미친 ‘개황자’라 부르곤 했을 만큼 지독하기도 했다. 사방에서 여인들이 치맛자락을 걷어 올리고 붙어대면 태연한 얼굴로 ‘더 해보라’ 말한다는 제국의 탕아. 본인이 그토록 아름다우니 이름난 미인들이 다가와도 심드렁하다고 다들 떠들었다. 더군다나 로아드네스는 훗날 높은 작위를 수여받게 될지도 모르는 미혼의 황자였다. 어느 영지를 수호하러 행차하든지 그의 침실을 노리는 여인들이 부지기수였다. 오늘도 그랬다. 요 2년여간 안 그래도 미친 주군이 더 미쳐 날뛰고 있었는데, 새벽에 갑자기 나타난 집채만 한 마물을 해치우다가 크게 다치고 말았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는 것도 재주인 주군인지라, 대충 치료한 것이 걱정되어 그의 침실로 들어섰을 때 보인 것은 거의 벌거벗은 채로 벌벌 떨고 있는 여인. 자세히 보니 그들을 맞았던 영주의 딸이었다.

16558447518101.jpg“화, 황자 전하……!”

여자는 바들바들 떨면서도 발그레한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황자를 힐끔거렸다. 그런데 로아드네스는 아직 피를 닦아내지도 않은 검을 그대로 여인의 코 앞에 들이대고는

16558447546775.png“꺼져라.”

라며 잇새를 짓씹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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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의 딸은 누가 봐도 눈이 돌아갈 만큼의 미인이었는데! 괜히 침을 꿀꺽 삼킨 닐은 나가지 않고 서 있는 여자를 보았다.

16558447546775.png“귓구멍이 막혔느냐.”

16558447518101.jpg“저, 저는 그저…… 신문을 전해드리려고…….”

로아드네스는 두 번 말하지 않았다. 눈 깜빡할 새 여자의 머리카락을 일부 베어내고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사라질 때까지 분위기는 살얼음판이었다.

16558447518101.jpg“……신문은 죄가 없습니다. 전하.”

괜스레 제게 불똥이 튈까, 영주의 딸이 핑계 삼아 가지고 들어온 제국 일보를 주워다 그에게 넘겼다. 평소 같았으면 서슬 퍼런 검으로 주욱 베어버리고 너마저 사라지라 했을 로아드네스는 그대로 굳어 있었다.

16558447518101.jpg“전하?”

순식간에 자신의 손에서 신문이 거둬졌다. 얼음물에 씻고 온 듯 냉기를 풍기던 황자가 갑작스럽게 잘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16558447546775.png“……이게 무슨 개소리지?”

16558447518101.jpg“뭡니까?”

낮게 욕설을 씹어뱉은 로아드네스가 옷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나가려는 것을 겨우 말려 정복을 챙겨주고 구겨진 신문을 빠르게 훑었다.

16558447546775.png“!”

  「충격! 트로비카 대공비, 새벽녘에 만성적인 지병으로 사망!」 전하께서 트로비카 대공비와 그리 가까운 사이였나? 고민하는 와중에 사납게 허공을 가르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 혼비백산하며 창문을 열었다.

16558447518101.jpg“이런, 미친…… 전하! 전하?!”

먼동이 터오는 이른 새벽, 그는 이미 망토를 펄럭이며 말을 몰아가는 미친 황자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 로아드네스를 태운 마차가 뒷꽁무니도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지자, 닐이 그제야 굳었던 몸을 풀고 입매를 우그러뜨렸다. 착각일는지는 모르지만, 방금 쓰러지던 주군의 뺨에 언뜻 눈물이 흐른 것도 같았다.

16558447518101.jpg‘잘못 봤겠지. 개황자가 울어?’

닐은 자신의 미친 주군이 누가 죽었다는 이유로 울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지라는 여자에 대해 제대로 알아봐야 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 말에 올라탔다. *** 노아가 아니었다. 노아는 날 찾아오지 않았다. 하다못해 그의 부관인 짐스커 경도 아니었다.

16558447518101.jpg“마님, 혹시 대공 전하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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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지의 실망하는 얼굴을 외면했다. 실망은 내가 더 했는데. 하지만 나는 그녀를 탓하진 않았다.  

1655844751811.png‘저는 이 댁에서 일하는 하녀, 마지라 합니다.’

1655844751811.png“미안해, 마지.”

16558447518101.jpg“예……? 뭐가요?”

마지가 눈이 휘둥그레져선 사과하는 내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1655844751811.png“그냥.”

마지는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굳어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리 말하고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나를 찾아왔던 ‘닐’이라는 기사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손이 조금 떨렸다.

1655844751811.png‘거짓말을 한 건 어쩔 수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겁먹지 말자.’

노에비안을 제대로 만나기 전까지는 누구와도 접촉하고 싶지 않았다.

16558447518101.jpg“요나야, 약 좀 가져와라!”

16558447518101.jpg“왜요? 무슨 약이요, 마지 님?”

16558447518101.jpg“……마님께서 정말 어디가 단단히 잘못되신 게 분명해.”

그리고 여전히 어안이 벙벙해 보이는 마지가 날 먹일 약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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