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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어머니의 목걸이 (98/171)


98. 어머니의 목걸이
2022.04.09.


처음 ‘안’을 맞이하던 때가 떠올랐다.

코완과 함께 놀던, 우리만 알던 그 비밀의 정원에서 보자고 했던 편지.

그날도 지금처럼 멀리서 아틸차드 홀의 음악 소리가 들렸고, 한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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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엔…… 아드리엔인가? 아드리엔!”

그날도 내 눈앞에는 이 남자가 있었다.

노에비안은 정원의 입구에 멈춰 서 있다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가 내 위로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나는 떨고 있는 그의 여윈 손에 시선을 주었다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건조한 내 눈을 맞이하는 그의 눈동자 아래에는 짙은 파문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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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러 온 건가.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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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황제를 알현하러 온다고 말끔하게 면도한 얼굴은 턱이 꽤 날카로워졌다.

지난 몇 년간 보아온 그의 얼굴 중 가장 마르고 볼품없었지만, 여전히 잘생긴 얼굴이었다. 물론 내게 감흥은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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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고, 언제고 이런 기회를 원했어.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더라도, 해야 할 말을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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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하지 마.”

급하게 쏟아내던 말이 일시에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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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나를 사랑한다는 이야기라면 더더욱 하지 마.”

내 단호함에 놀란 눈을 감추지도 못하고, 그는 고장 난 시계처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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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아드리엔. 당신은 들어야 해. 진실을 알아야 해.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고 원하는지도 알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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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 같잖은 사랑타령은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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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기다렸잖아. 로아드네스 같이 불길한 놈하고 있다간 언젠간 누군가의 표적이 될 거야. 내가 아무리 지금 구석에 처박혀 있더라도, 당신 하나 책임지지 못할까 봐. 당신이 아드리엔이라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잖아!”

감격에 젖어 들던 얼굴은 덤덤한 내 반응에 따라 점점 격양되었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던 얼굴이 점점 붉게 달아오르고, 금방이라도 내 어깨를 쥐고 흔들고 싶은 걸 참는 것처럼 손이 덜덜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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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하나 본데, 내가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말라비틀어진 당신 얼굴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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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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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놔.”

나는 고작 한 걸음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손을 뻗어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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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놔, 내 어머니의 목걸이.”

아. 언젠가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었던 얼굴이 내 앞에서 처참히 일그러졌다.

그를 무너뜨리던 순간, 내게 아주 기분 더러운 희열을 안겼던 표정이었다.

그의 말대로 나는 노에비안 트로비카라는 남자를 너무 잘 아는 바람에. 그 표정의 의미가 무엇인지 곧바로 알아챘다.

어머니의 목걸이를 운운하는 나를 보며, 그는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던 그래도 설마……. 라는 의심을 단번에 날려버린 게 분명했다.

블리에 아카시아의 몸에 아드리엔 피레타가 들어와 있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대한 마지막 의심 말이다.

노에비안의 길쭉한 목에 핏대가 울룩불룩 솟았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곧이어 차가운 그의 손이 목걸이 대신 내 손에 내려앉고, 그대로 나를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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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엔!”

나는 그대로 그의 품에 안겼다. 턱, 하고 몸이 부딪히는 순간 덜 회복된 옆구리가 찌르르 울리며 통증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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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엔, 아드리엔 날 버리지 마. 당신을 사랑해. 당신이 없는 세상은 지옥이야.”

정수리, 귓불, 귓바퀴, 이어 목덜미. 겨울바람에 차게 식은 숨결이 차례로 내려앉았다.

이전보다 확연히 여윈 몸이었지만 한때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사내의 힘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목덜미를 지분거리던 메마른 입술이 턱 끝을 타고 올라 입술에 닿기 직전.

나는 가차 없이 그의 뺨을 올려붙였다.

밀어내듯 때린 것이기에 짝, 소리가 아닌 퍽 소리가 났다.

나는 잠깐 정신을 차린 듯한 노에비안을 피하기는커녕 얼굴 가득 경멸을 담은 채 흐트러진 그의 옷섶을 멱살을 쥐듯 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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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걸이가 없다.’

맨가슴이 훤히 드러날 만큼 옷을 엉망으로 만들었지만,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오늘 같은 날 발이 이끄는 대로 이 정원에 올 남자라면, 어머니의 목걸이를 하고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산산이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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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알아?”

손안에 다 잡힌 것만 같았던 목걸이가 재가 되어 사라진 기분이 들어서, 나는 이미 사라져버린 목걸이를 부여잡듯 그의 멱살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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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참 쓸모없어.”

비소 섞인 그 말 한마디에 상처받는 남자의 얼굴이, 나를 더 화나게 했다.

나는 분노가 차올라 멍하니 서 있던 그를 가차 없이 퍽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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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걸이가 어디 있는지 말 안 할 거면, 꺼져.”

순순히 밀려났던 노에비안의 눈에 순간 번들거리는 이채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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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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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걸이 없이는, 내 눈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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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심이었어.”

그는 기어코 다시 밀어내려는 내 손목을 꽉 잡아 제 가슴에 가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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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거짓이었을지라도. 난 진심이었어! 사랑이었어! 지금도 사랑하고 있어. 지금도 나는 매일…… 매일…….”

그리고 아까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세게 끌어안고 드러난 내 어깨에 까칠한 입술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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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당신을 곱씹어서 미쳐가고 있는 게 나야.”

어깨를 살짝 깨물며 말하는 바람에 숨결이 내 살결에 흩어졌다. 소름이 돋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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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고, 로아드네스에게서는 절대로 받을 수 없을 행복을 당신에게 주었어. 안정과 존경 어린 시선들 같은 것 말이야. 나는 약속을 지키는 남자야.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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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놔!”

노에비안이 결국 무너졌다.

건조하게 메말라 있던 얼굴이 빠르게 젖어 들어가더니, 그는 내 다리를 끌어안은 채로 풀밭에 두 무릎을 꿇고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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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다시 날 사랑해줘, 제발. 날 선택해줘. 로아드네스를 버려. 내게 와. 제발. 당신이 없으면 난 살 수가 없어. 아드리엔, 아드리엔…….”

후회와 절망. 좌절과 분노로 점철된 광기 어린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쏟아지더니 강한 힘이 내 두 다리를 옭아맸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망만이 가득한 그 눈에 끌려들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품속의 단검을 더듬기 시작했을 무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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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부, 이게 무슨 추탭니까.”

흐트러진 차림의 황태자 바르데날도가 진한 술 냄새와 함께 등장했다.

***

바르데날도가 술에 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참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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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의 주인공은 전하가 아니시니 적당히 하시고 오늘 황태자비 궁으로 드세요.”

어쩐지 잠잠하다 싶었던 도리스의 합방일 통보 때문이었다.

도리스는 보란 듯 미소 짓는 블리에를 보며 격분하고, 제게 단 한 톨의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의 무심함을 곱씹으며 바르데날도를 향해 화풀이를 시작했다.

도리스의 무지막지한 권유로 시작된 음주는 걷잡을 수 없어서, 늘 반듯한 모습만을 보이던 그가 잠시 휘청거릴 정도였다.

그리고 이상하게 몸에 열이 올랐다.

황제보다 많은 손님을 상대하던 그레이스 황후가 황태자 부부를 걱정스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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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아드님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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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황제 폐하를 위한 파티인데 그 아드님께서 더 흥이 났나 봐요.”

황제가 노에비안 트로비카를 만나러 가는 틈을 타, 도리스는 다정하게 황태자를 부축해 제 침실로 이끌었다.

어찌나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던지 처음부터 오늘을 노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도리스는 주변을 경계하는 황궁 수비대는 물론이고 시종들까지 죄다 물렸다.

짝-!

그리고 술에 취한 황태자의 뺨을 사정없이 올려붙였다. 멍하니 뺨을 감싸 쥔 바르데날도를 침대 위로 밀어 넘어뜨리고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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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뭐가 문제야. 당신이 내가 아니었으면 황태자가 될 수 있었을 것 같아? 도대체 뭘 믿고 그러는데? 응?”

이미 약을 탄 술에 취해 더위를 호소하던 바르데날도였다.

침실에 들어서자마자 정복 재킷을 벗어던졌던 터라, 남은 셔츠 단추가 도리스의 손에 의해 후드득 떨어졌다.

도리스는 히스테릭하게 제 옷을 벗어 던졌다. 치마를 부풀렸던 페티코트는 물론이고 머리 장식을 빼 들고 대리석 바닥에 집어 던졌다.

블리에 아카시아를 따라 했던 흑발이 쏟아져 내렸다.

쨍쨍거리는 소리를 내며 떨어진 티아라를 따라 움직이던 바르데날도의 시선은 나신이나 다름없는 도리스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도리스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모멸감을 느꼈다.

미약을 먹였음에도, 자신이 이 꼴을 하고 있음에도, 제 아래에 느껴지는 바르데날도의 앞섶이 전혀 부풀지 않았다.

심지어 바르데날도의 벗겨진 상체가 침대 밑으로 기울더니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우웩하는 토악질 소리를 듣던 도리스는 만신창이가 된 얼굴로 바르데날도를 노려보았다.

그는 엉금엉금 기어 급히 나이트 가운을 걸쳐 입고는 도리스의 침실에서 도망치듯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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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고자인 거야?”

도대체 뭐야.

무너진 도리스의 얼굴에 참담함과 동시에 희미한 해방감이 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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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까지 안 가려고 버티던 노에비안은 황태자를 뒤따라왔던 기사들에게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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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안 돼! 아드리엔! 아드리엔, 아드리엔!”

끝까지 시끄럽고 처절했다. 일견 북부로 쫓겨나던 날보다 더 날것의 쇳소리가 덩굴로 얽혀진 터널을 쩌렁쩌렁 울렸다.

황태자는 창백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나는 깊게 한숨 쉬고는 찡그려지는 인상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깊게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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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란하던 차에 잘 와주셨습니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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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까지 될 뻔한 분이…… 아무리 황궁 안이라지만 조심하셔야겠습니다. 숙부가 약을 자주 한다고 하던데, 돌아가신 대공비로 부인을 착각했나 봅니다.”

그는 날 나무라지 않았다.

에페로나 빅토르는 어디에 두고 혼자 어둑한 곳에서 노에비안을 만났느냐 캐묻는 것조차도 말이다.

두어 걸음 떨어져 있어도 선명히 냄새가 날 만큼 술에 취한 황태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찬바람에 정신을 차리려 애쓰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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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에겐 늘 미안하고, 또 고맙습니다.”

여러 감정이 담긴 목소리였다. 어쩌면 그 역시 내게서 대공비 아드리엔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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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로아드네스의 말처럼, 당신이 무고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영 바람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저 빛나는 성자의 얼굴을 보라!

뒤로는 교활한 짓을 해놓고 나를 보며 억지로 웃던 도리스의 낯짝을 생각하면 황태자야말로 성자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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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도리스가 날 죽인 거라면.’

내 적인 게 확실한 도리스가 나를 죽이기까지 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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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렇게 반듯한 당신도. 나도. 로아드네스도…….’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이기심이 저절로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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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전하께서 제 주군이시니, 그런 말씀은 마세요.”

술에 취하고, 흐트러져서일까.

조금 비틀거리던 황태자는 피식 웃으며 인사불성인 상태에서도 평소 성정에 맞게 내게 단정히 고개를 살짝 숙였다.

나는 넘어질 것 같은 그를 붙들어 세우며 덩달아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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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숨이 멈추었다.

나는 코앞에 있는 황태자의 맨가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이트 가운만 겨우 걸쳐 입은 황태자의 맨가슴에, 눈에 아주 익숙한 금줄이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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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차갑게 굳어버린 손에 피가 통하지 않았다.

아아.

어째서 어머니의 목걸이가 황태자에게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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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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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민망…… 민망한 차림이니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진심인 듯 얼굴을 붉히며 산뜻하게 뒤돌아 사라지는 황태자를 향해, 나는 파들파들 떨리는 팔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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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내 것이 아닌 듯한 낡은 쇳소리가 목에서 나왔다.

비명처럼 황태자를 부르려던 입을 내 손이 콱 틀어막았다.

대신 다리가 저절로 움직였다.

바르데날도가 미친 사람처럼 겨울바람을 헤치고 가는 곳을 나 역시 입을 틀어막으며 따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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