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네 안에 있는 채로
맞붙는 입술은 다급했다.
그에게 밀리고, 밀리고 밀리다 문에 등이 닿자 뒤에서 딸각하는 소리가 났다.
살짝 열려 있던 문이 완전히 닫힌 것이었다.
움찔하고 뒤로 돌아보려는 고개가 도로 붙들려 입술을 다시 빼앗겼다.
등을 문지르던 커다란 손이 척추를 타고 목덜미로 올라가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목덜미를 지분거렸다.
단추를 찾지 못한 갈급한 손은 단번에 목 뒷부분의 얇은 천을 주욱 찢었다.
찢어발기려다 중간중간 이성을 잡는 듯 느려지는 손길과 달리 입술을 여전히 바삐 움직였다.
“로안, 안…….”
“응.”
“침대, 침대로 가…….”
“……어두운데.”
캐노피가 드리워진 침대는 그늘이 져 어두웠다.
“보고 싶어, 다.”
잠깐 떨어진 입술 새로 진득한 욕망의 목소리가 뚝뚝 떨어졌다. 나는 그를 뿌리치고 도망치듯 침대로 향했다.
번들거리는 그의 눈은 잠깐 사냥감을 놓친 맹수같이 빛났다.
나는 형편없이 망가진 옷 때문에 드러난 몸을 이불로 덮어 가려버렸다.
“너, 너부터 벗어.”
그는 이미 근육으로 꽉 짜인 상체를 다 드러냈는데도 나는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내뱉었다.
로아드네스가 천천히 걸어 캐노피 그늘 아래로 왔다. 무릎을 침대 끝에 걸친 그가 낮게 웃으며 젖은 입술을 엄지로 훑었다.
“……얼마든지.”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데 어둑히 잠긴 로아드네스가 망설임 없이 혁대 버클을 풀었다.
딸깍이는 소리가 못 견디게 자극적이었다.
순식간에 아래 속옷만 달랑 입은 차림을 보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까 바지 위로 느껴진 양감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부피의 것이 시선을 자극하자 나는 눈을 꼭 감아버렸다.
“아니, 아니 그냥 와…….”
내가 이불을 꼭 끌어안고 말했다.
“……분부대로.”
사박사박.
하얀 침구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힐 무렵 그의 손이 내가 끌어안고 있는 이불에 다가왔다.
“방해돼.”
단숨에 이불을 빼앗겨 휑한 느낌에 눈을 뜨자마자 다시 입술이 잡아먹혔다.
어느새 뒤가 다 찢긴 채 그의 손에 벗겨진 드레스를 찾아 침대를 더듬거리는데, 곧장 커다란 손이 내 손등을 감싸고 제 앞으로 가져갔다.
선명하게 느껴지는 감각에 몸을 움찔하며 손을 떼려 하자 파고드는 숨결이 더 거칠어졌다.
“피하지 마…….”
어마어마한 부피로 부풀어 있는 얇은 천이 내 손바닥아래 선명히 닿아 제 존재를 과시했다.
내가 다시 흠칫하자 로아드네스가 축축이 젖은 입술로 덧붙였다.
“이제 네 거니까.”
잡아먹을 것 같은 입맞춤과 비교해, 이어지는 손길은 더없이 부드럽고 조심스러웠다.
바스락거리는 침구 위에 몸을 맡기자 한참 입속을 헤집던 숨결이 목덜미로 옮겨갔다.
자연스레 내 손은 그의 깨끗하게 반짝이는 머리카락으로 향했다.
그의 입술이 여린 살을 문지르고, 음미하듯 지분거릴 때마다 나는 화답하듯 그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입속을 배회하던 뜨겁고, 축축한 감각이 온몸을 휘감고 뒤흔들었다.
천장이 빙글빙글 돌고,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 내 몸을 갈랐다.
숨을 멈추고 살려달라는 듯 그를 향해 손을 뻗자 로아드네스가 곧장 화답해 내 입술을 머금었다.
그는 쉴 새 없이 뭐라 낮게 중얼거리며 내 입술을 씹어 물고, 삼키기를 반복했다.
나를 제 그림자 안에 모조리 가둔 그 널따란 등을 나는 온 세상인 듯 끌어안고 손톱을 세웠다.
“……내가 어떻게 평생 수절하며 살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네.”
지독히 낮은 목소리가 이성이 날아가 버린 내 귀에 뱀처럼 기어들어 왔다.
“로안, 로안 나…….”
“이렇게…… 네 안에 있는 채로 죽고 싶어.”
입술이 재차 맞닿고 커다란 손으로 뒤통수를 옭아맨 로아드네스는 무도한 정복자처럼 나를 얽고 탐했다.
움직일 때마다 끌어안은 등이 꿈틀대는 감각이 내 팔을 타고 심장을 간지럽혔다.
뜨거운 숨결을 섞을 때는 더없이 다정해지던 움직임은, 반대로 조심스레 내 입가를 핥고 다정한 말을 할 때는 흉포할 정도로 거칠어졌다.
비명 같은 숨을 토할 때마다, 로아드네스의 입술이 곧장 다가와 목소리를 삼켰다.
화난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는 그의 목 안을 온통 긁고 나와 내 귓속까지 침범해 마구잡이로 쑤셔댔다.
시간이 강물처럼 흘러갔다.
우리를 비추던 어둑한 노을은 온데간데없고 밤하늘이 이불처럼 우리를 덮은 시간.
뜨거운 숨을 토해내던 나는 몇 번째인지 모를 아득한 색으로 시야를 물들였다.
속절없이 흘러간 시간 내내 머릿속이 새하얀 도화지가 되고, 눈물이 양옆으로 떨어졌다.
온몸의 신경이 타닥타닥 타들어 갔다.
나는 이미 폭발하는 감각 속에서 거대한 하나의 불꽃이 된 것처럼 펑 터져버린 뒤였다.
기쁨인지 쾌락인지 모를 생소한 눈물이 다시 한쪽으로 또르르 굴렀다.
아직까지 등줄기를 긴장시킨 로아드네스가 깊은 한숨과 함께 떨어지는 눈물로 입술을 옮겼다.
뜨겁고 축축한 살덩이가 그 눈물마저 핥아내 거둬가는 게 느껴지자마자 나는 끈 떨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정신을 잃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나를 짓눌렀던 거대한 몸이 나를 완전히 감싸고, 무어라 쉴 새 없이 속삭이는 것 같았다.
“……아드리엔.”
나 못지않게 낮게 가라앉은 거칠고 쉰 목소리였다.
“……리엔.”
사랑해.
네가 내 숨이고, 네가 내 심장이야.
나는 널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꽉 붙잡아 놓고 아무도 내게서 널 빼앗아가지 못하게 할 거야.
꿈결처럼 들었지만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았다.
***
그 시각, 황태자비 궁.
카스타냐 공작은 상중에 술을 홀짝이는 도리스를 기가 찬 시선으로 보았다.
진즉에 상복을 벗어 던지고 하얀 드레스를 입은 딸의 모습을 보자 뒷골까지 저릿했다.
“……2황자는 절대 안 된다.”
“로아드네스가 아니면 싫어요.”
“인물이라면 9황자도 못지않아. 계승 서열이 위에 있다 해도, 황제가 현 황후 소생인 에페로 황자에게 무게를 실어주면 누구도 반박하지 못한다. 특히 황태자파의 세력들이 로아드네스를 그리 쉽게 쫓으려 하겠느냐? 그놈이 바르데날도처럼 사람들에게 굽힐 만한 인사도 아니고!”
카스타냐 공작의 목소리는 꽤 단호했다.
“엄한 생각 마라, 도리스. 그나마 네가 죽은 황태자와 함께 좋은 이미지를 가진 덕에 동정표라도 얻고 있는 중이니까. 둘 사이에 아이도 없으니 넌 재가할 수 있어.”
“이대로 황후 자리를 포기하란 말씀이세요?”
“아니. 무슨 소리냐.”
못마땅한 눈으로 그녀를 훑던 카스타냐 공작의 입에 곧 야비한 미소가 걸렸다.
“네 동생이 있지 않으냐.”
남은 술을 들이켜고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던 도리스의 손이 딱딱하게 굳었다.
“……뭐라고요?”
“아무리 네가 동정표를 얻는다 한들, 2황자가 황태자가 되든 변방으로 밀려나든. 동복형제의 아내를 가지려 하겠느냐?”
“그래서 이제 겨우 12살인 라파엘라를 로아드네스에게 준다는 말씀이에요?!”
“아니. 에페로에게지.”
“아버지!”
카스타냐 공작은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벌떡 일어났다. 도리스가 눈을 홉뜨며 따라 일어났다.
“지금 너는 에페로도 못 가져. 당장 법이라도 바꾸지 않는 이상. 너는 이대로 재산깨나 있는 황족과 재가를 하든, 타국의 왕족과 재가를 하든 내 힘을 써볼 테니 자중해라!”
그는 도리스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응접실을 벗어났다.
순식간에 홀로 남게 된 도리스는 밀려드는 배신감에 주먹을 꽉 쥐었다.
열린 문틈으로 노우라가 눈치를 살피며 몸을 밀어 넣자, 도리스의 충혈된 눈이 그곳으로 향했다.
“당장 레일론 백작을 불러와요, 당장!”
심상치 않은 기세에, 노우라가 황급히 문을 닫고 사라졌다.
“누구 마음대로 라파엘라에게 황후 자리를 줘?”
도리스의 검지가 엄지손톱 거스러미를 바득바득 긁기 시작했다.
***
잠결에 몸을 뒤척였던 것 같기도 했다.
뒤늦게 덮은 뽀송뽀송한 이불과 달리, 새벽이 다 지나도 끝나지 않았던 괴롭힘에 축축이 젖은 침대 시트는 조금 찝찝했다.
덩굴처럼 옭아매는 단단한 팔이 답답해 빠져나가려 하면 또다시 아득한 감각이 온몸을 휘감았다.
이미 물에 젖은 솜같이 무거운 몸에 내려앉는 더운 숨은 견디기 힘들었다.
로아드네스는 내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할 만큼 지치게 해, 제 품에서 벗어날 생각조차 못할 때까지 날 괴롭히고서야 순한 양의 탈을 쓰고 나를 끌어안았다.
맞붙는 몸은 지나치게 적나라해서 그의 뜨거운 체온이 내게 옮겨붙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 몸은 다소 서늘한 편이었기에 침실에 빛이 새어들기 직전까지 나는 그의 품에 파고들 수밖에 없었다.
밤새 시달려 정신이 혼몽한 와중에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그의 거대한 어깨 너머로 내게 아주 익숙한 침실 풍경이 보였다.
짙은 녹빛으로 뒤덮인 벽. 스스로 일어나 걸어갈 수도 없었던 거대한 창문. 앤티크한 가구 몇 가지들. 아드리엔 트로비카였던 내 침실.
“……아드리엔.”
잠깐 떠오르는 예전 기억에 심장이 조이는 것 같았는데.
이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그의 숨결이 내 귓가에 교차로 내려앉자 기이한 안정감이 내 몸을 덮었다.
모든 게 그대로인데, 동시에 모든 게 달라졌다.
노에비안 트로비카와 숨결을 나누던, 오로지 기다림밖에 없었던 적막한 공간.
내가 죽어갔고 노에비안을 지옥으로 빠뜨린 그 공간에서. 나는 로아드네스와…….
“아드리엔…….”
잡생각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가라앉은 목소리가 내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몸을 움찔 움츠리자 곧장 입술이 따라붙었다.
다시 아래로 내려가려던 입술은 내가 두 손으로 가슴을 감싸 안고 그를 등지자 내 날갯죽지에 닿았다.
“아.”
“사랑해.”
“로안, 아침인 것 같아…….”
“알아.”
그가 뒤에서 강하게 끌어안았다. 말도 안 되게 건강한 몸이 맞붙자 나는 조금 떨며 답했다.
“지금 하면…… 진짜 죽을지도 몰라.”
“……알겠어.”
그가 아쉬운 듯 뒤에서 몸을 잔뜩 구부려 내 귓불을 깨물고 핥아올렸다.
어깨를 움츠리자 겨드랑이 사이를 파고든 커다란 손이 내 턱을 쥐고 제 쪽으로 돌렸다.
간밤의 흉포함은 감쪽같이 감춰버린 채, 세상에서 가장 감미로운 숨결이 입안을 파고들었다.
그때였다.
똑똑-.
“마님, 급한 전갈이 왔어요.”
끝까지 놔주지 않는 손길을 밀어내자, 로아드네스가 여기 머무는 줄은 꿈에도 몰랐던 요나가 문을 열고 들어와 눈을 키웠다.
“저, 저…….”
“두고 가라.”
로아드네스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리자, 요나가 고장 난 시계처럼 삐걱거리며 다가와 침대 위에 서신을 두고 쏜살같이 벗어났다.
나는 손을 뻗어 서신을 살폈다.
나, 그러니까 블리에를 찾기 위해 수소문 중인 사람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다름 아닌 엘라콘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이름을 본 순간 나는 딱딱하게 굳었다.
여전히 뒤에서 나를 끌어안고 있던 로아드네스가 서신을 보기 위해 내 어깨에 턱을 괴었다.
“……올리비아 루치아?”
깊게 잠긴 로아드네스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귓가에 스몄다.
“아는 사람이야?”
“응.”
밤새 뜨겁게 타올랐던 몸 안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올리비아 루치아.
내 유모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