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감당하기 힘든 진실
올리비아는 그날을 떠올리기만 하면 아직도 살이 떨렸다.
공작의 부재중, 피레타 공작부인이 예정일보다 한 달이나 일찍 출산을 시작하던 날.
늘 맑았던 하늘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진통은 이틀이나 계속됐다.
아내를 지극히 사랑했던 피레타 공작이 일정을 취소하고 돌아왔을 때, 산실은 온통 피 냄새로 진동을 했다.
절대 들어오지 말라는 말을 듣지 않고 산실로 들어선 공작은, 곧 핏덩이 같은 조그마한 아이와 차갑게 식어가는 아내의 시신을 목도했다.
“헬레네…… 헬레네. 헬레네가 왜 숨을 안 쉬지?”
산파는 입을 다물었고, 공작부인을 어릴 적부터 모셨던 시녀 올리비아는 울음을 터트렸다.
“헬레네, 헬레네!”
연녹빛 눈동자에서 꺼져버린 빛을 찾던 공작은, 곧 죽은 사람의 눈도 감기지 못하고 오열했다.
산파는 익숙한 광경인지 침묵을 깨고 공작에게 깨끗이 씻기고 감싼 아기를 건넸다.
“안아보시지요. 어여쁜 공녀님입니다.”
공작은 거듭 권하는 산파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공작의 시선은 죽은 헬레네에게만 머물러 있다가, 아이가 미친 듯이 울기 시작하자 그곳으로 향했다.
공작은 진득한 피 냄새와 언뜻 보이는, 자신을 닮은 금발을 일그러진 표정으로 응시했다.
“……어미를 죽인 아이는 필요 없다.”
“!”
산파는 저도 모르게 핏덩이를 꼭 끌어안았다. 눈도 뜨지 못한 핏덩이에게 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말들이 공작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버려라.”
공작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는 아이를 돌아보지 않았다. 공작의 호위가 산파에게서 아이를 빼앗아 들고 산실을 나갔다.
“각하! 이러실 순 없어요! 아직 핏덩이이신 공녀님을 버리시다니요! 헬레네 님께서 아바델리아에서 보시고 통곡을…….”
“죽고 싶지 않으면, 그 입 닥치게.”
“각하!”
“어미를 죽이고 태어난 아이에게 피레타를 줄 순 없다.”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공작을 쏘아보며 두 뺨을 눈물로 적시던 올리비아가 곧 아이를 찾으러 산실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을 때.
“아, 아기씨가 한 분 더 나오십니다!!”
헬레네의 손을 붙잡고 무너졌던 공작의 눈이 일순이나마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이런 기적이!! 쌍생이었나 봅니다!”
아이를 뺏긴 채 넋이 나가 있던 산파가 죽은 사람의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힘을 주지 못하는 산모의 몸에서 나올 준비를 하던 아이의 머리통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토록 어미를 고생시켰던 첫 번째 아이와는 달리, 산파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단번에 헬레네의 몸 밖으로 나왔다.
산파는 흐느끼며 아이를 씻겼다.
“공녀, 공녀님이십니다. 쌍둥이 자매예요!”
아이가 울지 않자 산파는 엉덩이를 때리다가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공작은 멍하니 아이를 살리기 위해 엉엉 울면서도 일을 계속하는 산파를 응시했다.
“아버지. 아기…… 죽어요……?”
고요하고, 동시에 필사적인 산실에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레고리.”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간 아비를 따랐던 아이가 계속되는 소란에 참지 못하고 산실 안으로 자그마한 발을 들였다.
“내, 내 동생…… 죽어요……?”
커다란 연녹빛 눈동자에 물기가 어리자 공작이 낮게 신음하며 휘청였다.
어린 그레고리의 눈에서, 헬레네를 본 게 분명했다.
“아드리안이에요, 아드리엔이에요?”
“…….”
“사내아이면 아드리안. 여동생이면 아드리엔.”
그레고리는 창백한 헬레네와 그 곁에 있는 공작에게 다가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랑 같이 지은 이름이란 말이에요…….”
“흐으으으으으애애애애애앵!!”
곧이어, 아이의 울음소리가 산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레고리가 부리나케 산파에게로 달려갔다.
산파는 아버지인 공작 대신, 어머니와 함께 아이 안는 연습을 했다던 어린 소년에게 아기를 안겨주었다.
얼마간 더 울어대던 아기는 오빠의 품이 퍽 편안한지 곧 조용해졌다. 그레고리는 눈도 뜨지 못하는 빨간 아기를 보고 그제야 배시시 웃었다. 어미의 죽음에 대해 아직 모르기에 보일 수 있는 미소였다.
“……아드리엔.”
“아버지?”
“아드리엔 피레타란다.”
차마 그 모습을 보고 아이를 내칠 순 없었던지, 공작은 겨우 살아난 아이를 보지 않고 말했다.
제 어미를 빼닮은 그레고리의 미소가 그의 마지막 남은 이성을 지켜주었던 것 같기도 했다.
올리비아는 아드리엔이 살아 있음에 안도하면서도, 곧장 뛰쳐나가 다른 쌍둥이 아이를 찾았다.
***
“말도 안 돼.”
“알아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주신께서 아신다면 천벌을 내리실 만한 일이죠.”
겨우 비틀거리며 일어나, 의자에 구부정하게 앉은 올리비아가 손수건에 얼굴을 묻었다.
“아가씨도 아시죠? 제가 딸자식 한 명을 먼저 보낸 적이 있단걸요.”
“…….”
한미한 가문이지만 귀족 출신이던 올리비아가 평민이나 하던 유모 일을 자처한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첫째는 피레타 공작부인에 대한 무한한 충성심.
둘째는 공작부인과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갖고, 아이를 낳자마자 아바델리아로 떠나보내야 했던 슬픔을 이기기 위해서.
***
그 시기, 올리비아는 반쯤 미쳐 있었다.
임신 소식을 알리기도 전에 병으로 죽어버린 남편. 낳자마자 죽어버린 아이. 죽음의 기운이 자신에게 드리워져 주인인 공작부인마저 화를 입은 것이라 여길 만큼.
올리비아는 산실을 벗어나 미친 듯이 달렸으며, 곧 호위에게서 아이를 빼앗아 들고 소리쳤다.
“공작께서 공작부인의 심복인 내게 이 일을 맡기셨네!”
어린아이를 죽이는 일은 호위에게도 찝찝했던지라, 그는 순순히 올리비아에게 아이를 넘겨주었다.
올리비아는 이대로 산실로 돌아가야 할지, 혹은 아이를 숨겨야 할지 고민했다.
그레고리의 등장과 겨우 살아난 아이의 기적으로 공작의 마음이 잠시 약해졌지만, 그 자비가 이 아이에게도 닿을까?
그녀는 아이를 대저택 밖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 숨기고 때를 기다렸다. 아드리엔에게 젖을 물리느라 부족한 젖은 따로 유모까지 데려다가 제 딸처럼 길렀다.
하지만 아이의 뻘건 피부가 뽀얗게 빛이 나고, 두 눈을 번쩍 뜨고 헬레네 피레타와 똑같은 연녹빛 눈으로 사람과 눈을 맞출 때까지도…… 공작은 아이를 찾지 않았다.
올리비아는 아드리엔에게 젖을 물리며 늘 울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눈동자로 그녀를 올려다보는 아드리엔을 볼 때마다 피레타 대저택이 아닌 자신의 거처에 있을 그녀의 언니를 떠올리며 헬레네 피레타를 향해 속으로 울부짖기도 했다.
숨죽이며 공작의 눈치만 살피던 어느 날.
“호위가 그러던데. 자네가 그 애를 죽이겠다 했다고.”
“…….”
“아이를 죽였나?”
그녀는 공작이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제 딸을 데려오고 싶다 말하기를 기다렸다.
“확실하게 죽였겠지?”
그리고 그 무정한 말에, 마지막 믿음마저 산산이 조각났다.
“……어쩔 수 있었겠습니까? 마님께서 돌아가신 이상 제 주인은 각하신데요.”
그녀는 그리 대답하며, 혹시라도 공작이 확인이라도 할까 봐 아이를 옆집에 맡겼다.
아니나 다를까.
확인차 그날 밤 방문한 호위를 이끌어 땅에 묻고, 가슴에 묻었던 제 딸의 무덤을 파헤쳐 관을 넘겼다.
멀어지는 호위의 말.
그 안장 위에 얌전히 얹혀가는 딸의 작은 관을 떠나보내며 그녀는 가슴을 치며 울었다.
“이제부터 너는 내 딸이란다, 블리에.”
그리고 그 딸의 이름이었던 ‘블리에’라는 이름을 공녀에게 붙여주었다.
***
믿지 못할 이야기에 나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쉬이 말을 덧붙이지 못했다.
“마님이 살아계실 적엔, 공작님은 영지를 쉬이 비우시지 않으셨지요. 하지만 마님이 돌아가시고는 영지에 붙어 있는 날이 손에 꼽으셨답니다. 그러니 저는 늘 그분이 원망스러웠어요. 감히 유모 주제에 그분께 가끔이나마 대들 수 있었던 것도, 제가 모든 걸 보아왔던 마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이지요.”
“조금 더 나중에라도 블리에가 살아 있다고 말했다면, 아버지가 죽였을까?”
“공녀님을 받은 산파는 곧 사고로 죽었어요. 저는 그게 사고가 아니리라 확신하고요. 저는 공작님이 무서웠어요. 설마 나중에라도 살아 있다는 걸 알고 저택으로 들이신다 해도, 각하가 블리에님께 줄 수 있는 건 싸늘한 시선과 상처뿐일 거라 여겼어요.”
“아니었을 수도 있잖아. 나를 보던 아버지의 눈은 그렇지 않았잖아.”
“그건 몸이 약한 아가씨에게서 헬레네 마님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아가씨가 건강해지길 바라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늘 연약한 화초같이 자라시길 바랐어요. 아픈 아가씨가 언젠가 각하에게 싸늘한 시선을 받기라도 하실까 봐요.”
“블리에는…… 블리에는 그럼 어찌 살았어?”
나는 마음속을 갉작이던 질문을 결국 꺼냈다.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불편했다.
“얼마간 피레타 영지 끄트머리에서 숨겨 기르다가 엘라콘에 사는 친척 집에 보냈어요. 블리에님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제게는 아드리엔 아가씨를 돌봐야 할 의무도 있었으니 휴가 때마다 찾아갔지요.”
“그래서 늘 엘라콘 출신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군.”
로아드네스가 불쑥 끼어들어 탄식했다. 그가 뒤에서 내 어깨를 단단히 잡아주었지만 나는 떨리는 몸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블리에 님이 가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당장 엘라콘으로 가려는데. 영지 끄트머리에 있던 제 저택으로 가출했다던 블리에 님이 찾아왔어요.”
올리비아는 그날을 떠올리다가 다시 눈물을 쏟아냈다.
“아드리엔 아가씨의 결혼 소식이 온 론타를 들썩이게 할 때였어요. 몇 개나 되는 신문을 끌어안고 와서는…… 제가 일하는 가문에 대해, 아드리엔 아가씨에 대해 연거푸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그때 저는 바보같이…….”
올리비아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바닥에 깔렸다.
“바보같이 다 말했답니다. 용서를 빌고 싶었어요. 내 딸로 삼기로 하고도 곁에 있어 주지 못했으니까. 블리에 님은 그길로 다시 돌아갔지만 돌아간 곳이 친척 집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가끔 제게 엘라콘에 있다며 안부 편지는 보냈었지요.”
올리비아는 기억을 반추하며 흠뻑 젖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냈다.
그리고 그때.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롯시가 입을 열었다.
“그 애가 가출하고 같이 산 사람이 나인 것 같은데.”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이제야 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해. 금발 아가씨. 아가씨가 그 마나석 관을 열 수 있었던 이유 말이야.”
롯시는 다소 후련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렸다.
“블리에 그것이 제 마력을 마나석에 담은 게 확실해. 그런데 그 마력이라는 건 타고나는 것이거든.”
나는 아직 충격이 어려 있는 눈으로 그녀를 멀거니 응시했다.
“아가씨가 몸이 약했던 것도. 블리에의 마력이 이상하리만치 강력했던 것도.”
“강력한 마력이요? 블리에가 어중이떠중이 주술사가 아니라 정말 그만큼이나 강력한 마력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수수께끼가 풀렸어. 피레타 영지는 론타가 고대 왕국이었을 시절의 수도였지. 지금은 마력이 깃든 사람이 많지 않지만 본디 마도국이었던 그 땅에 묻혀 있는 힘은 가끔 극소수에게 발현돼, 블리에처럼. 피레타의 피는 고대 왕족의 피가 섞여 있으니까 확률이 높지. 하지만 너희는 쌍둥이니 함께 자라며 나눠 가졌어야 했는데 말이야.”
“그럼…….”
“그 마력은 본래 너와 블리에가 나누어 가졌어야 하는 거야. 그러니 너는 본래 가졌어야 할 것을 가지지 못해 몸이 약했고 블리에는 힘이 넘쳤어. 서로의 영혼이 바뀌었어도 블리에가 마나석에 담은 마력은 널 주인으로 인식한 거야. 그러니 관은 열릴 수밖에 없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