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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정부로 환생한 심정을 서술하시오-125화 (125/171)

125화. 바르데날도의 흔적

“아, 오셨습니까. 부인!”

너무나도 당당하고 환한 얼굴로 맞이하는 아카시아 백작의 모습에, 나는 할말을 잃었다.

백작은 늘 노에비안 때문에 스트레스만 받았던 지난날보다 되려 낯빛이 좋았다.

수수한 차림의 그가 로아드네스를 보고 조금 겁을 내는 듯하다가 내게 예를 갖추었다.

“방문하신다는 전서구를 받고, 어제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또 놀랄 일이 남았나 보군요.”

나는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걸 깨닫자마자 탄식처럼 내뱉었다.

내가 아드리엔인 줄은 꿈에도 모를 백작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멋쩍게 자신의 얼굴을 쓸었다.

“부인께서 시키신 일을 하느라 얼굴이 좀 상하기는 했습니다만…… 그리 놀라실 정도입니까? 그나저나 갑자기 이렇게 방문하신다고 하셔서 놀란 참입니다. 게다가 마물까지 이렇게 해치워주시다니…….”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눈만 둥그렇게 뜨고 있는데, 로아드네스가 곧장 에페로 일행을 향해 먼저 아카시아 영지의 성안으로 들어가라 일렀다.

엄청난 인원이 조금 멀찍이 보이는 성문 안으로 줄지어 들어갔다.

이어 성문 앞에는 로아드네스와 나, 롯시만이 남았다.

***

엘라콘과 인접한 곳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뾰족하게 솟은 돌산이 성벽 뒤로 여럿 보였다.

아카시아 백작은 성안이 아닌, 성벽을 돌아 거대한 돌산 앞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가시덤불이 우거진 돌산 입구는 언뜻 보면 스치기만 해도 상처가 날 것 같았지만 로아드네스가 검집으로 몇 번 치자 움츠러들 듯 길을 내보였다.

그 길을 따라 한참 걷자, 산의 크기에 비해 사람 서넛이 겨우 들어갈 만큼 좁다란 동굴 입구가 나왔다.

백작의 작고를 알렸던 그의 호위와 기사 몇 명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이 자그마한 동굴 안에 깊숙이, 아주 많은 양의 마나석이 매장되어 있습니다. 워낙 깊고 미로 같은 길이 많은지라 적은 인원으로 비밀리에 관리하려면 시간이 꽤나 걸립니다.”

“……백작님. 여태 살아계셨던 건가요, 그럼?”

백작에게 내가 블리에가 아니라는 걸 알려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거듭하다 던진 질문이었다.

백작은 마치 내가 자신의 생존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질문에 백작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했다.

“부인께서 제게 지혜를 나눠주셨지 않습니까? 황태자 전하나 대공께서 분명 제가 거슬리는 순간 죽이실 거라고요.”

“제가요?”

“……이건 새로운 놀이인가요, 부인?”

입구에 있던 횃불을 들고 입구가 좁은 동굴로 들어가면서, 나는 노쇠한 백작이 놀라지 않도록 설명하느라 진을 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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