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의 정부로 환생한 심정을 서술하시오-153화 (153/171)

153화. 카스타냐 일족의 최후 (1)

“어디서 이런 가짜 신문을 만들어!”

도리스가 곰팡이가 핀 빵 접시 위로 구겨진 신문을 내던졌다.

이가 빠진 접시는 그 정도 충격도 이기지 못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거기 누구 없어? 거기! 거기 너! 2황자 로아드네스를 불러오라니까?!”

“소란피우지 마십시오.”

“감히 누구보고 입을 닥치라 마라야?”

오늘은 도리스의 재판 날이었다.

도리스는 어머니인 카스타냐 공작부인이 은밀히 보낸 서신을 통해, 서부에서 그녀를 구제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지 꽤 오래된 참이었다.

곧 빠져나갈 감옥에서의 이미지 따위 도리스가 알 바가 아니었다.

“이런 가짜 신문 말고, 진짜 소식을 가져다줘! 로아드네스를 보게 해 줘! 사람들은 지금 속고 있어!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 수 있을 리가 없어! 블리에 아카시아를 데려와! 그 멍청한 게 언제 그런 수를 생각해냈는지 몰라도, 내 눈은 못 속여!”

제대로 먹지도 못한 몸엔 악밖에 남지 않았다.

감옥 문을 지키던 간수 둘은 오늘도 시작된 도리스의 행패에 귀를 틀어막다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자리를 피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사라지는 간수를 노려보던 도리스가 뒤에다 소리쳤다.

“로아드네스를 불러와! 로아드네스를 불러와!! 블리에 아카시아를 불러와! 내 시녀들도!”

갇혀 있던 며칠 동안 얼마나 악을 썼는지 목에 핏물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몸에 한기가 돌았지만, 이만하면 괜찮은 대우였다.

재판을 받기 전까지 완벽한 죄인이 아니었기에 이 빠진 식기에 신선하지 않은 식사를 받아도, 그녀는 꽤 깨끗한 방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노라 주세타…… 이 배은망덕한 년 같으니라고…… 나가기만 해 봐. 블리에 아카시아와 함께 족쳐줄 테니.”

“누구 마음대로?”

“!”

침대에 걸터앉아 치욕을 곱씹던 도리스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쇠창살 밖으로 화려한 차림새의 여인 2명이 서 있었다.

“노라 주세타!!”

노우라와 아이린이었다.

“감히, 주인을 물어놓고 무슨 낯짝으로!”

“누가 내 주인이야?”

노우라가 콧방귀를 꼈다.

적반하장이었다.

도리스는 격렬히 뛰는 심장을 이기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창살 가까이 다가갔다. 오늘따라 유달리 화려하게 꾸민 노우라의 뒤로 아이린이 입을 틀어막고 울먹이고 있었다.

“난 주인 같은 거 없어, 망할 년. 너한테 휘둘리며 살아온 내 시간이 아까워. 오늘 있을 재판, 아주 기대해도 좋아.”

사나운 목소리에 도리스는 눈이 빠질 것처럼 노우라를 노려보았다.

사교계를 휘어잡던 그 눈빛 그대로, 노우라가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했다.

본래 저런 여인이었다. 도리스는 기가 눌리려는 분위기를 겨우 제 쪽으로 가져오려 애쓰며 눈을 더 부릅떴다. 노우라는 그 얼굴을 보며 코웃음 쳤다.

“서부에서는 이미 당신을 버렸어. 라파엘라 카스타냐를 아무리 에페로 황자님께 갖다 붙여도 이번엔 씨알도 먹히지 않을걸? 황후께서 네 아비가 저지른 만행에 대해 아시고 분노하셨거든.”

도리스의 미간이 왈칵 일그러졌다.

“감히…….”

“네 남편이 종용하고 네 아비가 실행했던 암살들. 이미 다 까발려져서 내일이면 온 신문에서 다 그 얘기뿐일 거야. 내 남편을 망가뜨린 짓거리도 내가 다 말하고 다닐 거야. 기대해.”

분노에 차 있던 도리스가 잠시 멈칫했다.

“노라…… 당신이 그걸 어떻게……?”

“잊었나 본데. 나 네 시녀였어. 내가 누군데 그 정도 눈치도 없을까 봐. 황후께서 신경 쇠약으로 쓰러지실 때마다 가증스럽게 웃던 네 면상을 똑똑히 기억해. 내 남편을 걱정하는 척 싸구려 약을 주며 자비로운 척하던 표정도.”

이어지는 무례한 언행에 도리스가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카스타냐는 날 버릴 수 없어. 주인을 문 개 주제에 입 놀리지 마! 재판이 끝나기만 해 봐. 내 기필코 네 목부터 딸 테니!”

“도리스 카스타냐.”

노우라 주세타가 쇠창살 가까이 얼굴을 가까이 갖다 붙이곤 씹어뱉었다.

“내 이름은 노라가 아니라, 노우라야. 이 멍청한 여자야.”

“!”

“자기 개 이름도 제대로 못 부르는 게, 주인 행세는…….”

경멸을 담은 눈동자가 멀어졌다.

도리스는 감옥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소리를 치다가 이를 악물고 남아 있는 아이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이린! 아이린! 시스코메틴 백작님께서는 어쩌고 계시나요? 당연히 내 가문과 함께 나를…….”

“정말, 실망이에요. 비 전하.”

아이린이 결국 아까보다 한층 더 굵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저는 비 전하께서 진정 선량하신 분인 줄 알고, 아버지께 비 전하를 구제해달라 수도 없이 부탁드렸어요. 제게 보여주신 그 다정한 모습들을 철석같이 믿었었다고요!”

“아이린!”

“그런데 이게 뭔가요? 저번에 성녀 추대식에서 보여주신 모습은요? 전하께서는 그동안 전하를 따르고 아버지와 싸워가며 전하를 끝까지 지켜드리려 했던 저를 배신하신 거예요! 블리에 님께 독을 보내시다니…… 심지어 그분께선 이제 진짜 성녀가 되셨다고요!”

“아이린, 내 말을 좀 들어 봐요!”

“아뇨. 저는 더 이상 전하를 돕지 않겠어요. 전하의 ‘개’가 되고 싶지도 않고요. 그리고 혹시 모르잖아요?”

아이린은 젖은 뺨을 손으로 눌러 닦으며 도리스를 원망스레 노려보았다.

“전하께서 제 아비를 죽이라 사주하시거나, 제게도 그런 독을 보내실지도요.”

“아이린! 아이린!”

상처받은 어린 영애가 눈물을 흩뿌리며 등을 보였다.

노우라 주세타에게는 비밀을 들켜 어쩔 수 없다지만 도리스의 가장 큰 지지 세력이던 시스코메틴 백작이 등을 돌리는 건 심각한 문제였다.

도리스는 쇠창살을 쥐고 격렬하게 흔들었다.

“풀어줘! 풀어줘!! 아이린! 아이린!!”

제게 그토록 충실하던 아이린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공간을 벗어났다. 도리스는 엄습하는 불안감에 잠시 할 말을 잃고 덩그러니 서 있었다.

그때였다.

그림자가 사라졌던 복도에 여인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아이린이야!’

마음이 여린 아이린을 잘만 구슬리면…….

하지만 곧 희망으로 차오르던 도리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날 찾았다며? 꼴에 마중 나와 있었어? 이제야 주제 파악을 한 거야?”

몸짓만은 귀부인의 표본이던 블리에가 건들거리며 다가왔다.

껄렁껄렁한 걸음걸이.

숨 쉬듯 욕설을 씹어뱉는 모습은 시정잡배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도리스는 훅 불어닥치는 위화감에 할 말을 잃고 블리에를 응시했다. 비명을 지르려던 입술이 형편없이 달싹이기만 했다.

“쳐다보는 꼴 좀 봐. 아무것도 안 먹은 거 맞아? X나 팔팔해 보이네. 미친.”

분명 보자마자 저주라도 퍼부어야 했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눈 깔아, 난쟁이 똥자루 같은 계집애야.”

이전의 맹한 얼굴이 모조리 사라져버린, 말도 안 되게 무례한 여자가 내뿜는 무시무시한 살기 때문이었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던 걸음이 멈췄다. 아니, 멈춰 세워졌다.

망설임 없이 쇠창살 사이를 가르고 들어온 하얀 손이 도리스의 멱살을 콱 잡아 비틀어 당겼다.

억! 하는 소리와 함께 마른 몸이 차가운 쇠창살에 거칠게 부딪혔다.

“네가 내 동생 괴롭힌 년이지?”

얄망궂게 휘는 연녹빛 눈과 정면으로 마주하자 도리스의 다리가 발발 떨리기 시작했다.

“가, 감히. 감히…… 블리에, 네가 감히…….”

“내가 묻잖아 이 XX아. 네가, 감히 내 동생 죽이려고 손 쓴 년이지?”

숨 막히는 긴장감을 느낄 새도 없었다.

“간, 간수! 간수는 어디로 간 거야! 간…….”

아무리 몸을 비틀어도 꼼짝도 할 수 없는 힘이 도리스의 흰 뺨을 향해 사정없이 쇄도했다.

***

재판은 아주 늦은 오후에 시작되었다.

본래 정오에 시작되어야 했던 재판이 늦어진 건 2황자 로아드네스 때문이었다.

로아드네스는 재판을 법원이 아닌, 성녀 추대식을 진행했던 중앙 광장에서 하라는 명을 내렸다.

황제가 동의했고 황후가 적극 지지했다.

귀족, 특히 황족이었던 도리스에게는 다신 없을 치욕이나 마찬가지였다.

성녀 추대식보다 더 화려하고 웅장하게 꾸민 공개재판장은 마치 작정하고 벌이는 축제 같아 보이기도 했다.

도리스는 공개재판이라는 말을 전해 듣고 절대 참석하지 않겠다며 발을 구르다가 결국 간수들에 의해 끌려 나왔다.

블리에에게 얻어맞은 뺨이 아직도 얼얼했다.

안타깝게도 죄를 물릴 블리에는 이미 간수를 매수했는지 누구도 얻어맞은 도리스의 증인이 되어주지 않았다.

퉁퉁 부어오른 뺨도 방금까지 거하게 울어 젖혔던 바람에 그저 울어서 얼굴이 부은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갈 만큼 꼬집어대던 억센 손길을 떠올리자 다리가 발발 떨렸다.

재판장에서 누가 줄줄 읊어대는 카스타냐 공작과 그녀의 죄명이 남의 것인 듯 낯설었다.

놀랍게도 모두 그녀와 그녀의 아비가 한 짓이 맞음에도 도리스의 단전은 억울함으로 들끓었다.

“로아드네스……!”

초췌하고 가련해진 얼굴로 아무리 상석에 앉아 있는 로아드네스를 바라보아도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아. 원래 저런 남자였지.

관능적인 미소 뒤에 칼을 숨기고. 신사인 척하는 몸짓 속에 진심을 숨긴 매력적인 악마.

허탈한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상. 모든 증인들의 진술들이 일치하고 증거가 명명백백 밝혀진 바. 본 재판장은 다음과 같이 선고를 내린다.”

로아드네스의 붉은 시선이 그제야 제게 돌아왔다. 도리스는 눈물을 뚝뚝 떨구며 간절히 그를 올려다보았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토록 그가 사랑하던 형님의 아내였던 지위를 이용해 동정심이라도 이끌어내고 싶었다.

“재판장들은 만장일치로, 여섯 분의 황자 전하를 암살한 카스타냐 공작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뿐만 아니라 황태자 바르데날도 전하를 암살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고, 트로비카 대공비 전하를 암살했으며 시녀 블리에 아카시아를 죽이려 한 도리스 카스타냐에게도 사형을 선고한다. 그리고 이후 카스타냐 공작가는 황실에게 피해 보상으로…….”

재판장의 말도 안 되는 선고에 이어 황제를 대신해 상석에 앉은 로아드네스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가문의 전 재산을 몰수하고 카스타냐 공작가의 영지 전체를 정확히 절반. 황실에 귀속한다. 또한 카스타냐에 내려진 공작의 작위를 회수한다.”

재판을 지켜보던 서부의 귀족들이 연달아 졸도했다. 그제야 로아드네스가 도리스를 향해 안 짓느니만 못한 미소를 보냈다.

인간으로서의 애정이 단 하나도 담기지 않은 껍데기뿐인 미소였다.

“전하! 전하!!”

롯시의 도움으로 겨우 정신을 차린 지 얼마 안 된 카스타냐 공작의 입에서 쇳소리가 튀어나왔다.

로아드네스가 대답 대신 가볍게 턱짓했다.

재판장들이 순식간에 물러가고 그 자리를 단두대가 대신했다. 성녀 추대식 때 못지않은 인원들이 악마의 최후를 보기 위해 구름떼처럼 단상으로 몰려들었다.

카스타냐 공작은 딸이 보낸 독에서 깨어나자마자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단두대에 매였다.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없어!! 다 도리스가 한 짓이야! 전하! 전하 저는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울부짖는 소리가 처절할수록 환호성은 더 커졌다.

로아드네스 곁에 앉아 있던 황후 그레이스가 조용히 그 순간을 눈에 담았다.

마침내 서부의 왕의 목이 바닥을 구르자 에페로가 황후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그레이스가 아들의 품에서 흐느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