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의 정부로 환생한 심정을 서술하시오-168화 (168/171)


168. 외전 2. 거슬리는 남자들 (4)
2022.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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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엔은 멍하니 있는 블리에의 볼을 쿡 찔렀다.

미간만 살짝 찌푸리고는 아무 반응도 없기에 몇 번 더 쿡쿡 찔렀더니 블리에가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을 잡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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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불지 말랬지, 아드리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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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킨 일은 왜 통 말이 없고 왜 그런 표정이야?”

출산일의 충격적인 사건 이후, 아드리엔은 로아드네스가 대공저에 방문할 때마다 촉각을 곤두세웠다.

로아드네스가 한 번씩 돌발행동을 하거나 앞서가는 경향이 있다는 걸 알기에 미리 알고 대비하고 싶었다.

청혼하기도 전에 웨딩드레스며 신부가 준비해야 할 것까지 다 준비해놓는 그런 상황은 더 겪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 대신 진통을 겪는 그런 기이한 일도.

결과가 좋다고 해도 미리 아는 것과 모르고 통보받는 것은 다르니 말이다.

그래서 아드리엔은 블리에에게 로아드네스가 대공저에 갈 때마다 감시를 해달라 시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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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킨’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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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한 일.”

블리에는 그제야 현실로 돌아온 눈을 하더니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았다. 그레고리가 그렇게 앉지 말라고 몇 번을 반복해서 말해도 고쳐지지 않는 버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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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남편은 너무 폭력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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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드리엔의 순진무구한 눈을 보고 입을 달싹이던 블리에가 말을 멈췄다.

여전히 대공저 출입이 잦은 에페로는 제정신을 차리고 형사취수제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지만 로아드네스와 마주칠 때마다 한 대씩 걷어차이거나 투명 인간 취급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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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그런 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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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그런 게 있다고 뭉뚱그릴 거면 내가 왜 부탁했겠어?”

블리에는 애써 손질한 머리를 짜증스레 흐트러트렸다.

그리고 아드리엔을 원망스럽게 한번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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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머리 아파. 내 생각엔 네 남편보다 네가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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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건 또 무슨 헛소린가. 아드리엔이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답을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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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몸으로 도대체 무슨 말이랑 행동을 했길래 그 황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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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인데 도대체?”

답답함에 아드리엔이 그녀 쪽으로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블리에는 괜히 말을 꺼냈다고 자책하며 망설이다가 ‘에라 모르겠다’며 중얼거리곤 참았던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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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로 황자가 네 남편에게 형사취수제를 폐지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어. 그 말 듣고 완전히 돌아버린 네 남편이 황자를 두들겨 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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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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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황자가 너를 아니, 나를…….”

블리에가 갈피를 못 잡고 횡설수설했다.

가끔 머리 아픈 일이 생기거나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으면 저런 식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했으므로 아드리엔은 참을성 있게 그녀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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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한대.”

정적.

로아드네스가 늘 따듯하게 유지하라고 명했던 아드리엔의 공간에 차가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아드리엔은 블리에의 말이 무슨 뜻인지 갈피를 잡지 못해 애꿎은 눈만 빠르게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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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좋아한다는 거야? 형사취수제라면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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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황자에게 우리 비밀을 알려야겠어.”

블리에가 말을 싹둑 잘라버렸다.

어쩐지 대답을 피하는 느낌이 들어 아드리엔은 눈을 게슴츠레 떴다.

대충 넘어가려던 블리에는 아드리엔의 눈치를 한번 살피고 짜증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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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아니라 날 좋아하는 것 같아. 정확히 내가 이 몸을 찾았을 때부터 이성으로…… 이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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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혀서 어쩔 건데?”

아드리엔은 혼란스러운 와중에 이성을 찾았다.

요나도 빈센토도 아는 일을 에페로가 모르게 한 것에 대한 죄책감은 있었다.

하지만 이런 비밀을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늘어나는 게 부담스러웠기에 굳이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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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어째. 피는 못 속이는지 누구 하나 좋아하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려고 하는데 네 남편 손에 죽기 전에 진실을 알려줘야 그 멍청한 짓거릴 안 할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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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히면? 밝히면 어쩌려고? 에페로와 잘해보기라도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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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엔. 내가 너한테 말 안 한 거 있는데.”

블리에가 의미심장하게 목소리 크기를 줄였다. 아드리엔이 몸을 점점 더 가까이하며 그녀에게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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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한 남자한테 코 꿰기 싫어. 즐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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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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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첫사랑한테 거하게 차인 아픔이 커서 누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싶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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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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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이야.”

이번엔 아드리엔의 얼굴에 짜증이 옮겨 붙었다.

블리에가 심술이 더덕더덕 붙은 얼굴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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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가 그런 표정 하면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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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사실을 밝혔는데, 에페로 님이 여전히 널 좋아한다면 어쩔 건데?”

아드리엔이 질문이 많은 입술을 꾹 다물고 걱정스레 되물었다.

형사취수제를 남겨두는 것과 블리에가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제일 중요한 건 에페로와 블리에의 마음이니까 말이다.

블리에는 붉게 물든 입술을 삐죽거리며 생각에 잠겼다가 산뜻하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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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같이 좀 즐기다 말겠지, 뭐.”

단순하고 명료한 대답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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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럴 줄 알았어. 괜히 말했다니까. 난 사실 그다지 찝찝하지도 않았어. 그저 거슬렸던 것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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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왔나. 오늘도.”

어리둥절한 빅토르를 앞에 두고 블리에가 신경질적으로 보고 있던 책을 탁! 덮었다.

블리에는 얼마 전에 있었던 옥사나의 환영식에서 에페로에게 진실을 털어놓았다.

조금 더 고민해볼 참이었는데.

빅토르와 몇 곡이나 연속으로 춤을 추고, 옥사나가 그 모습을 보곤 눈을 게슴츠레 뜨더니, 블리에에게 제 남동생과 잘해보는 게 어떻겠냐며 은근히 물어왔다.

블리에는 옥사나의 제안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빅토르를 훑어보며 ‘한번 생각이나 해보죠. 지금 제 곁은 비어 있으니까요.’라며 수완 좋은 외교관처럼 말했을 뿐이다.

주변을 맴돌던 에페로가 그 말을 주워듣곤 눈이 뒤집혀서 블리에를 테라스로 데려가 씩씩거렸다.

하지만 테라스로 그녀를 데려간들 뭘 어쩔 수 있었겠는가?

연애 경험이 없는 젊은 황자는 치기를 누르지 못해 그녀를 데려와 놓고도 연인도 아닌 자신이 뭐라 할 자격이 없다는 걸 깨닫고는 애꿎은 그녀의 이미지 걱정만 했을 뿐이다.

빌어먹을 성녀 이미지 이제 슬슬 버리려던 참인데 그 소리를 들으니 벌컥 화가 난 블리에는 곧장 에페로에게 쏘아붙였다.

‘황자님이 모르는 게 있다.’로 시작해 몇 개의 문장으로 그간의 모든 상황을 종결시켰다.

에페로는 처음에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다가 영혼이 바뀌었었다는 핵심 문장에서는 충혈된 눈이 튀어나올 만큼 휘둥그레졌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던 에페로에게 블리에는 ‘그래도 내가 좋아요?’라고 질문했고. 에페로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입술만 달싹이다가 뛰쳐나갔다.

그리고 일주일째 연락이 끊긴 지금.

열리는 파티마다 초대되며 신랑감을 물색 중인 옥사나를 감당하지 못한 빅토르가 블리에의 곁을 맴돌고 있었다.

거슬려서 한마디 했더니 더 거슬리게 연락을 끊어버린 에페로 때문에 중얼대던 블리에는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빅토르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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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걱정도 안 돼요? 나보다 친구나 찾으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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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하다. 에페로. 생각을 정리할 시간.”

블리에는 빅토르를 낯설게 보았다.

하녀가 멋대로 끓여 놓고 간 차를 호록 마시는 모습은 거대한 덩치에 비해 작은 잔을 들고 있었기에 조금 우스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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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찼다. 에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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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 봤는데, 눈치 한번 더럽게 빠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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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나. 에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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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싫데요? 여기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고요. 그 사정을 알고서도 날 좋아할 수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에요. 나는 오는 남자 막는 스타일은 아니거든.”

 

***

듬직한 곰 같은 매력의 빅토르가 한참 자신을 어필하다가 갔다.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인 신랑감인지에 대한 조용하고 묵직한 한 방이 여러 번 있었다.

제국어가 부쩍 늘었다는 그는 생각보다 말을 잘했다.

블리에가 엘라콘어를 유창하게 한다는 걸 알면서도 꾸역꾸역 제국어로 제 소개를 하는 것도 좀 귀엽고 말이다.

결국 날이 어두워져서야 제 누님을 챙기러 가는 빅토르의 마차가 멀어지자 블리에는 좀 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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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콘 왕자 출입이 잦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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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스승님.”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는데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던 롯시가 창문으로 빅토르가 나가는 걸 보았는지 때맞춰 나왔다.

중성적인 허스키한 목소리가 허공에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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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인기 많은 소공작의 삶이란 이런 거 아닐까.”

블리에는 롯시의 목에 반짝이는 목걸이를 응시하다가 가볍게 답했다.

롯시는 한참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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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에페로 황자와 함께 여왕 일행의 수행을 맡았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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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귀찮긴 한데. 피레타 영지가 엘라콘과 인접하니 눈도장 찍어서 나쁠 게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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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엘라콘 여왕이 론타를 돌며 신랑감을 찾는다는 그 여정도 따라갈 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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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가까운 곳은. 아예 이곳을 비울 순 없으니까.”

블리에가 로비 소파에 털썩 몸을 묻으며 답했다.

론타 곳곳을 도는 그 여정에 블리에를 참여시킨 건 아드리엔이었다.

모국을 많이 돌아다닌 적 없으니 여왕과 친분도 쌓고 여행도 하고 오라는 취지였다.

아드리엔은 자유롭게 살던 블리에가 묶여 있는 게 안쓰러워 보이는 듯했다.

영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몰려드는 피로함에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는데 롯시가 조용히 다가와 그녀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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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가면 안 되나?”

미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공기를 롯시의 음성이 갈랐다.

블리에는 머리를 벅벅 긁다가 동작을 멈췄다.

푹 파묻었던 자세를 똑바로 하자 롯시의 적회색 눈이 그녀를 깊게 응시하고 있었다.

꽁꽁 닫아놓고 얼려두었던 마음이 순간 일렁였다. 약간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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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답지 않네. 내가 어디를 가든 막지 않았잖아. 심지어 내가 처음 론타로 올 때도.”

롯시는 바닥만 보고 있었다. 블리에는 잠자코 스승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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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목걸이. 거기 달린 그 마나석 말이야. 황태자의 마력을 담은 거. 그거 왜 받았어? 스승님은 아주 오랜 옛날에 초대 황제 칼데이온을 도와 론타를 세우고, 엘라콘 초대왕을 도와 엘라콘까지 세우곤 많은 마력을 잃었다며? 그 이후로는 연구만 했잖아. 마력이 많이 필요하다면 내게 도와달라고 하지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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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가면, 안 되느냐?”

무수히 많은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까와 같았다. 블리에는 롯시 답지 않은 모습에 잠시 말문을 잃고 스승을 응시했다.

한참 아무 말 없이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던 스승이 돌연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 순간. 블리에는 시간이 멈추었음을 인지했다.

멈춘 공기 속에서, 이상한 긴장감을 흘리던 롯시가 영롱하게 반짝이는 목걸이에 짧고 통통한 손을 가져다 댔다.

순간, 번쩍! 하던 목걸이의 빛 속에서 짧고 통통하던 손의 모양이 서서히 길어지고, 희게 변했다.

블리에는 믿지 못할 광경에 입이 떡 벌어진 채 눈을 키웠다.

두 눈에 의미 모를 눈물이 고였다.

빛이 사라지고 그녀의 맞은편에는 ‘진짜’ 롯시가 있었다.

눈처럼 희고 고운 피부.

한쪽으로 땋아 내렸던 빛바랜 은발은 보석처럼 반짝이는 은발로 변했다.

촘촘하고 기다란 은빛 속눈썹이 팔랑이자 적회색이던 눈동자가 본연의 붉은 빛으로 반짝였다.

섬세하게 조각된 보석 같은 유려한 얼굴이 우울한 빛으로 흐려졌다. 블리에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으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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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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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호수에서 건져진 물의 요정같이 청초한 얼굴의 ‘남자’ 롯시.

단 한 번 보여줘서 블리에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 모습이었다.

눈에 띄는 아름다운 남자의 얼굴보다 작달막한 노인의 얼굴로 사는 게 더 편하다던 스승이 본체로 돌아왔다.

그나마 남아 있던 마력을 다 소진하면서 유지하던 노인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완전히 지워졌다.

크면 스승님과 혼인하고 싶다던 그녀를 단칼에 거절했던 그 남자가 버렸던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은 것이다.

외양에 홀려 철없이 고백하던 어린아이를 보는 그때의 눈이 아니었다.

평생의 소원을 목숨 걸고 이루어준 은인이자 여인을 보는 눈이었다.

사내의 것도 여인의 것도 아니던 목소리가 물기를 머금은 완연한 사내의 것이 되어 귀를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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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가면, 안 되나?”

다정하고, 아름답고 잔인했던 그녀의 첫사랑이 아주 간절한 얼굴로 재차 물었다.

마치 그녀의 곁에 오기 위해, 스스로 버렸던 모습과 마력을 다시 찾은 것처럼.

그런 착각을 하게 만드는 표정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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