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화 (2/307)

〈 2화 〉 1화.

* * *

커버보기

이런저런 생각에 시달렸던 나는 결국 깊게 자지 못했다.

하우스 메이트면서 5개월 동안 얼굴도 잘 마주하지 못하다 보니

성이 쿠로가와고이름이 뭐더라…?

딱 한 번 소개를 받았기 때문에 아무리 얼굴을 기억 잘하는 나라고 해도

이 정도로 접점이 저렇게 없어서야 금세 까먹는다.

간만에 9시까지 늦잠을 자서 멍하니 커피를 내리고 있자니 윗방에서 쿠로가와씨가 내려온다.

긴 머리카락은 관리를 안한 듯 부스스하고 숱이 많았고

5월임에도 불구하고 겨울옷 마냥 소매 긴 파란 물방울이 귀여운 잠옷을 입고 있다.

피곤해 보이는 두 눈과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위태한 모습으로 계단에 내려오는 그녀는 날 보고 고개 숙여 인사한다.

“어젯밤에 폐가 많았습니다.”

폐가 많긴 했지

새벽 세 시에 고함 지르는 건 이웃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선물 받은 마시멜로가 들어간 코코아와 내가 마실 커피를 식탁에 내려 두고

나는 쿠로가와씨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려고 분위기를 잡고 입을 열었다.

“쿠로가와씨”

“네, 네!”

나는 그녀의 이름만 불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누가 보더라도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하고

커다란 두 눈동자에 겁을 잔뜩 머금은 채

자신의 츄르를 빼앗긴 고양이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무리 내가 외국인이라고 해도 겁먹은 눈길로 바라보면 상처받는다.

아니 내가 피해자인데

이웃으로서의 수면권을 방해받고 밤잠을 설친 건 나인데

그녀의 겁먹은 태도를 보니 압박할 마음이 사라진다.

어제 가다듬은 투지와 깡이 지금 커피에 타는 설탕처럼 녹아 없어져 버린다.

“아무튼 어젯밤 일에 대해서 말인데요. 혹시 이전에도 밤에 그렇게… 소리를 내면서 게임을 하시나요?”

“아, 게, 게임만 하는 게 아니고 방송을 하는 건데…”

인터넷 방송인

인스타에서 가끔 넘어오고 유튜브 추천 영상에 가끔 보이는 그런 사람들이다.

관심은 없지만

그래도 동생이 유사 업계에 일해서 대충 무슨 일 하는지 안다.

“그러니깐 그, 리액션하면서 별풍선 유도하고 게임 재미있게 하거나 멋지게 하는 거 보여주고 가끔 일상 브이로그 올리는 그런 거 맞죠…?”

“벼, 별풍선이요? 브이…로그?”

아 문화 차이인가

하긴 호시(?)바룬(バル ン)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내가 가진 인터넷 방송인에 대한 이미지들을 알려주었다.

그래도 직업 이야기가 나왔는지

그녀의 눈에서 점점 두려움이 사라진다.

내 이야기를 다 들은 그녀는

내가 이 분야에 대해서 문외한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좀 더 정확하게 자기 직업에 관해서 설명해줬다.

“그러니깐 유튜버들… 그러니깐 저처럼 생방송 방송을 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면서 시청자들과 소통하면서 모두가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에요.”

어디선가 카탈로그를 읽는 듯한 소개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그녀가 자기 일에 대해서 차분하게 설명을 해줬다.

비음이 섞이지 않고, 맑고 고운 음색이 자아내는 본연의 귀여운 목소리

말 습관인지, 의도적으로 어조마다 혀를 귀엽게 말아서 귀엽게 말하는데 예능 방송 특유의 가식적인 톤을 싫어하는 내가 듣기에도 거부감이 없다.

처음에는 어린 고양이처럼 보이던 그녀가, 조리 있게 나를 설득했다.

“아 미안해요. 제가 오해했네요. 한국에서, 제가 인터넷 방송인들을 접할 때는 그 좀… 욕을 거칠게 하거나 타인을 괴롭히는 영상을 전시하거나, 고인을 모독하면서 어그로­아 그러니깐 안 좋은 의미의 관심이에요­ 를 모으는 좀 천박한 이미지라서요.”

“오, 오해가 풀려서 다행이네요.”

“그래서 쿠로가와씨.”

“네.”

“언제 이사하실 건가요? 제가 그날에는 집을 비워드릴게요.”

“에?”

에?는 무슨

내 수면권은 소중하다.

유학생이 타지에 나와 잠이라도 잘 자야지

울먹이는 눈으로 날 보는 게 참… 가슴 아프지만 그래도 나는 내 일상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

“말씀을 들어 보면 쿠로가와씨는 인터넷 방송인으로서 심야에 그런 콘텐츠를 진행하시게 되고 소음이 발생하게 되는데… 제가 이전이라면 모를까, 코로나 때문에 수면 시간이 늦춰지게 되어서 잠드는 시간이 늦게 되는데 이런 생활이 계속되면 제가 잘 잘 수 없어요.”

아직은 살짝 어설픈 일본어로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명확한 문제 해결을 제시하지 못한 시점에서 내 기준으로는 그녀는 나의 이웃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울먹이면서 소리를 지르는 리액션이 방송의 뭐라고 하셨더라 밈? 캐릭터 성? 같은 거라 포기하시지 못하시고”

“네에…”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인근 헬스장이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는데 제가쿠로가와씨 방송 시간에 푹 잘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이 점은 집 계약 당시에 보장된 권한이라서…”

이전이라면 나는 항상 피곤한 일상을 보낸 다음에 그대로 곯아떨어진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녀의 방송이 진행될 때는 깊은 수면에 빠져있어서 그동안에는 문제가 없었지

하지만 체력이 남아도는 코로나 시대에 방에 갇혀버린 외향성 인간은 괴롭다.

“그, 그래도… 저기…”

“네, 말씀하세요.”

“회, 회사하고 연락 한번 해볼게요.”

인터넷 방송인들은 혼자 진행하는 거 아니었어?

회사 소속이라니 놀라웠다.

하지만 울음을 삼키며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만지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죄책감이 든다.

그 모습을 괜히 눈에 담아두지 않으려 하며 나는 화제 전환을 위해 되는 대로 물었다.

“쿠로가와씨 방송 명이 어떻게 돼요? 그래도 이렇게 된 인연인데 응원할게요.”

“으, 응원이요? 가, 가. 감사합니다. 제 예명은…”

자신의 예명을, 즉 방송 이름을 말하려던 그녀가 갑자기 굳는다.

아니 왜?

이런 사람들은 무슨무슨 방송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식으로 자주 말하는 거 아니야?

내가 알기로는 그런데…

“그, 그, 그, 그!!”

“…?”

“서, 선라이즈 소속사의 버츄얼 유튜버 4기생! 쿠로시로 유리아입니다!”

커다란 결심을 내린 듯

긴장과 기합이 가득 찬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네 유리아씨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대답한 나는 휴대폰을 켰다.

그나저나 특이한 이름이었다.

쿠로시로(白)? 아니 쿠로시로(?)?... 유리아…

특이한 예명이네 하고 검색한 나는… 휴대폰의 검색 결과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구글에 보이는 채널

등록자수는 무려 35만

동생 놈 유튜브 팔로워가 몇 명이었더라? 하고 비교를 속으로 하며 채널로 들어갔다.

그리고 보이는 건…

달빛을 녹여 만든 듯한 기나긴 머리카락에 그에 대비되듯 붉고 커다란 두 눈

머리에는 앙증맞은 작은 두 뿔이 솟아 있고

뾰족한 송곳니에 맺혀진 자신만만한 미소가 귀엽기 그지없다.

추정 나이로 15세에서 17세로 보이는 이세계의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 아름다운 소녀가 조잡하게 그려진 게임 패드를 들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이세계의 것이 아닌 듯한 아름다운 소녀

왠 만화에서 볼 법한 3D 캐릭터가 조작하는 마리오가 용암 속에 빠지면서 울먹이는 소리를 내는 영상을 바보같이 보던 나는 멍청하게 말했다.

“그러니깐 이 캐릭터가.”

끄덕끄덕

“쿠로가와씨라구요?”

“저, 이, 이런 거 밝힌 거… 처음이예요…”

확실히, 목소리가 완전히 비슷했다.

저 목소리에서 내 눈앞에 있는 쿠로가와 나에씨가 유리아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겠는데

그래도

이런 3D 애니메이션 아바타라니…

이건 나에게 너무 낯선 영역이다.

일본에 유학을 와도 만화나 게임 쪽으로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큰 눈을 가진 캐릭터들이 간드러진 목소리로 ‘모에모에’ 라고 하거나 ‘냥냥’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나다.

불호에 가깝게 생각했던 분야의 종사자가 내 이웃이라니…

평소에 말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나라도 갑자기 말문이 막혀버린다.

더군다나 마치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한 소년의 모습처럼

얼굴을 붉히며 말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니 나도 정신이 멍해진다.

장면만 보자면 나는 사랑 고백을 받은 소녀인 건가?

서로 말없이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자 나는 이 이상한 기류를 깨기 위해서

언젠가 역 앞 신문에서 얼핏 본 듯한 단어를 반사적으로 내뱉었다.

“어, 버츄… 버튜버시군요?”

“네!”

그녀가 해맑게 긍정했다.

버튜버

버츄얼 유튜버를 줄여서 부르는 말.

본인의 모습을 감추고 3D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가상의 아바타로 유튜브를 통한 방송 콘텐츠를 제작하는 엔터테이너를 지칭하는 말

아무래도 내 옆방에 사는 사람은 초­희귀 직종인 버츄얼 유튜버인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어그러진 내 유학 생활에 찾아온

독특한 만남이었다.

나는 그렇게 그날

내 옆방에 버튜버가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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