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3화 (3/307)

〈 3화 〉 2화.

* * *

요리 유튜버, 고양이 유튜버, 요가 유튜버, 홈 헬스 유튜버, 동생 놈의 유튜브 에 이어서 새로운 채널을 구독한다.

내가 보던 유튜버들은 주로 9분에서 14분, 가끔 20분짜리 영상을 보지만…

“여, 영상이 세 시간? 네 시간?”

유학 생활로 생긴 혼잣말 버릇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란다.

기가 차게도, 그런 영상들이 3~4만 조회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다행히도 1시간짜리 영상이 있었지만, 그 어마무시한 양에 짓눌려 볼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날 아침

내일 그녀의 소속사의 에이전트분하고 이야기하기로 약속을 잡고 울먹이는 그녀를 방에 돌려보낸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에 경악했다.

애니메이션

만화

그리고 게임

게임을 제외하고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길거리에서 인기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광고를 하거나 편의점에 자주 콜라보를 해서 유명한 장르의 이름을 알고 있지, 자세한 건 잘 모른다.

솔직히 자기관리가 안 된 오타쿠들하고 대화하는 건 질색이고, 자신이 아는 것만 나왔다 하면 절제 없이 자기 할 말만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누가 좋아하는가.

대학 가방에 이상한 그림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살짝 경멸하는 나로서는 영 반갑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쿠로사와씨는 귀여웠지만, 이 3D탈을 쓰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냥 쿠로사와씨 생얼로 방송해도 되지 않아?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런 잡생각을 하면서 비교적 짧은 1시간 영상을 본다.

마리오를 하는 그녀가 사라지는 발판과 높게 뛰어오르면 죽게 되는 스테이지에서 죽어 가며 으에엥 하는 모습은 솔직히 말해서… 귀여웠다.

3D 캐릭터에 찡그린 얼굴, 미소 짓는 얼굴, 울먹이는 얼굴 등 다양한 표정이 연출되고 사람들은 그녀에게 위로를 건네거나 비웃음을 날린다. 그러면서 가벼운 일상 이야기를 나눈다. 시청자들의 채팅을 읽으면서, 가끔 도네이션 채팅(여기선 슈퍼챗이라고 하는 것 같다)을 읽으면서 거기에 따른 반응을 한다.

촬영을 거부하는 일반인에게 휴대폰을 들이밀거나, 여자의 속옷을 뒤집어쓴다거나, 저속하고 거친 표현하면서 장난으로 사람을 때리는 영상이 아닌 차분한 방송을 보고 있자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래도 이런 건 전문인에게 물어봐야지.

동생의 경기 일정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채팅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야]

[야]

[야]

[야]

읽음 메시지가 뜨는 걸 확인하고 마저 채팅을 보냈다.

[야 뭐 하냐]

[물어볼거 있는데 통화 ㄱㄱ?]

[아 나 방송 중인데 ㄱㅊ?]

[시즌 중인데 방송을 해?]

[ㅇㅇ… 그냥 연습용 솔랭 돌리는데 아무래도 사람 있는 편이 무대 느낌 나니깐]

[오, 역시 프로. 나도 좀 바빠서 그러니 걍 하자]

헤드셋을 쓰고 마이크를 켜고 물었다.

“야 너 혹시 아직도 유튜브 운영하냐?”

“응, 뭐 구단에서 운영해 주고 있긴 한데… 관리는 잘 안 해. 그런 건 비시즌 때나 하지.”

하긴

프로 게이머로써 중국의 프로게임 팀의 1군에 속한 동생이다.

본업이 프로 게이머이니 유튜브 쪽은 잘 관리 안 하겠지.

“근데 너 아직도 애니 보니?”

“뭐… 뭐?? 누나 잠깐만 아니 난 그런 거 안 봐!”

“…너 저번에 내 방에 피규어 숨긴 거 봐준 게 몇 번인데 아직도 그러냐.”

“아니, 씨, 그게 아니라!”

“뭐 너 커뮤니티에도 오타쿠인 거 들켰잖아.”

“아 누나 좀!! 잠깐만 방송 좀 끄고 올게.”

이미지 관리하고 있었구나

근데 애초에 프로 명도 게임에서 나오는 캐릭터잖아

1분이 안 돼서 통화가 다시 걸려왔다.

“그걸 시청자들 앞에서 밝히면 어떻게 해! 안 그래도 씹덕이라고 놀리는데 공인 당해 버리잖아.”

“뭐 어때? 그게 일종의 그 유행 아니냐.”

“… 밈 말하는 거 같은데 웬일로 누나가 그런 거 말하네?”

“응, 특정 커뮤니티 사람들끼리 교류하는 유행어 같은 거지?”

“좀 더 포괄적인데… 왜, 누나 갑자기 그런 거 신경 써? 우리 인싸 누님께서는 인스타나 하실 줄 알았는데? 잠깐만, 아까 통화에서도 애니 알려 달라고 했지? 웬일이야?”

“흠…”

“혹시 남친이 오타쿠야? 그래서 다가가려고?”

남친보다는 새끼 고양이에 가까운데…

“그게, 이웃이 오타쿠라서 좀… 잘 알고 싶어서. 코로나 기간 동안에 만날 사람이 그 사람밖에 없다 보니.”

그런 이유로

나는 일단 그녀의 추방을 보류했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 옆에 있는데, 코로나 시기에 모든 모임이 날아간 이후 사람 없이 지내는 건 쓸쓸했기 때문이다.

“오, 좋아. 일단 내가 추천해주는 작품하고, 작품 고르기 편한 레이버 블로그도 설명해 줄게. 그리고 그 사람에게 다가가려면… 솔직히 다른 사람들이 하면 극혐인데 솔직히 외모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원탑인 누나니깐 알려줄게. 이거 하면 단 한 방에 친해질 수 있어.”

“오 그게 뭔데?”

“이게 요즘 유행하는 인사법인데 그게 말이지…”

나는 그렇게 동생에게 속성으로 오타쿠 과외와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몇 편의 애니를 과제 비디오를 보는 느낌으로 보고 나서야 평소 식사 시간인 18­19시가 아닌 20시 30분이 됐다는 걸 깨달았다.

주린 배를 잡고 내려오니… 웬일로 쿠로가와씨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4인용 식탁에는 음식이 풍부하게 올려져 있었다. 보아하니 데마에칸(出??­일본의 배달의 민족)에서 시킨 인근 중국집 식사 같았다.

그리고 쿠로가와씨는 두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봤다.

코로나로 각막한 사회에 이사를 보내는 건 너무 정이 없는 행동 같아서, 일단 심야에 키보드를 내려치는 샷건과 비명을 조절한다는 조건 하에 같이 살기로 합의를 본 이후 그녀는 나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 식사는, 그녀 나름의 성의겠지…

“어, 안녕하세요쿠로가와씨, 혹시 쿠로가와씨가?”

“네, 유나 씨에게 아무래도 저녁을 대접하고 싶어서…”

“앗, 먼저 말씀해주셨으면 미리 내려오는 건데.”

“괘, 괜찮아요. 제 쪽에서 멋대로 한 거니까…”

대화할 때는 사람의 두 눈을 마주 보고하는 게 예의다.

왠지 모르게 내 시선을 피하는 그녀가 마음에 든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심 그녀가 어떤 불안증세를 안고 있다 멋대로 생각하는 나는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차가운 볶음밥과 교자, 야채 볶음과 유린기를 보며 생각했다.

이대로 먹는 건 맛이 없다.

“레, 레인지로 덥혀올게요.”

“아뇨,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좀 고쳐도 될까요?”

“고치신다고 하시는 건?”

“아, 요리를 다시 요리할게요.”

가끔 상식의 부재로 나오는 부족한 일본어가 늘 아쉽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웍에 기름을 조금 두르고 차가운 볶음밥을 다시 볶았다.

항상 야채가 적어서 아쉬운 볶음밥이기에, 양파와 쪽파를 좀 더 썰어 넣고, 약불로 덥힌 프라이팬에 교자를 올린다.

덥힌 볶음밥을 다시 분배하고, 열이 오른 웍에 야채 볶음을 다시 볶고 굴 소스를 약간 더 했다.

그 후 레인지에 유린기를 다시 가열했다.

향과 열기가 날아간 요리에 다시 향과 열기가 입혀진다.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볶음밥을 보고, 그때야 만족스럽게 웃을 수 있게 됐다.

한국인 유학생은 밥에 진심이라고

“우, 우와 유나 씨 대단해요!”

“자­ 그래도 쿠로가와씨가 사 준 밥이니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자, 잘 먹겠습니다.”

기존의 요리집의 음식을 다시 조리한 것뿐인데, 정말로 행복하고 맛있게 먹는 그녀의 모습이 참으로 귀엽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여동생이 있다면 저런 기분일까? 남동생은 말도 정말 안 듣고 누나를 놀리기만 좋아하다 보니…

“그, 그거 먹어봐도 돼요?”

“아, 김치요? 어… 저희 집은 매운 건데 괜찮아요?”

“그,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같은 한국인들도 매워하는 우리 가족 김치인데 괜찮으려나…하고 지켜봤지만, 역시 한 조각을 먹었음에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무, 물!”

“여기 있어요.”

“감사합니다…”

“근데쿠로가와씨 그거 알아요?”

“네?”

“매운 거 먹고 물 먹으면 중화되는 게 아니라 매운 게 더 강해져요.”

“네? 네??”

붉은 얼굴이 된 그녀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린다.

아 뭐야 이 사람 귀엽잖아

나는 냉장고에 우유를 꺼내 주었다.

“우, 우유는 싫어요!”

그 강렬한 자기주장에 냉장고를 열어 확인했다.

오렌지 주스…가 있긴 한데 매운 거 먹고 신 거 먹으면 속을 버린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그랬다.

마땅한 대체재가 안 보여서 나는 그냥 볶음밥을 그녀에게 먹였다.

밥의 전분기가 매운 걸 달래주겠지

뜨거운 밥을 살살 식혀서 그녀의 입에 넣어 준다.

밥의 반 공기가 사라지고 나서야 매운 게 가라앉았는지, 그녀는 당황을 가라앉히고 나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고, 고마워요. 유나 씨.”

“음, 우리 집 김치가 매워서 죄송합니다?”

“아, 아니예요 제가 호기심에 그만… 그런데…”

“네?”

“그, 밥, 저 혼자서도, 잘 먹을 수 있어요…”

어느새 옆에 앉아서 그녀에게 밥을 먹이고 있었다.

사슴으로 유명한 나라 공원의 사슴에게 밥을 먹이는 느낌으로 먹이고 있었는데

이거 생각해 보니 상당히 실례된 행동이지 참

“실례했습니다.”

“아, 아니예요. 기분이 나쁘지 않았어요.”

온몸에 땀을 흘리고 상기된 얼굴의 그녀가 그렇게 말하니 뭔가 이상했다.

평소라면 이런 생각하지 않는데, 보지도 않던 만화를 보고 와서 그럴까?

이 상황이 되게 어색한 러브 코미디의 한 장면 같았다.

왠지 무안해진 나는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본의 아니게 밥을 다 먹은 쿠로사와씨가 날 지켜보는 게, 살짝 부담스러웠다.

“유나 씨.”

“네쿠로가와씨.”

“그, 괜찮으시다면, 나에라고 불러 주셔도 돼요.”

일본인들은 대개 성으로 불린다.

이름으로 부른다는 건 친밀함의 상징인데… 뭐 상관없나

애초에 알게 된 학교 동기들은 거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으니

“네 나에 씨.”

“그, 그냥 나에라고 불러 주세요.”

“아, 안 되죠. 그래도 호적상으로 저보다 한 살 연상이신데. 그럼 뭐, 나에 언니라고 불러드릴까요?”

“…네? 네!?”

“나에 언니.”

“조, 좋아요.”

“… 그렇게 좋으세요?”

“저, 저… 본가에서도 동생들이 취급을 잘 안 해주어서…”

하긴

아무리 좋게 봐도 20살은커녕 고등학생으로 보이면 다행인 발육 상태다.

얼굴도 눈이 커서 그런지 동안으로 보이고…

언니라는 호칭에 저렇게 좋아한다니, 참으로 행복의 역치가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그, 그리고… 유나…같은 예쁘고 멋진 동생이 있는 거… 꿈만 같아요…”

“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쿠로… 나에 언니.”

“으, 응! 이쪽이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한국인 유학생의 마음가짐

밥을 같이 먹으면 일단 친구다.

인터넷에서 온갖 까다로운 룸메이트 이야기를 보고 온 나에게, 나에 언니 정도면 참으로 괜찮은 룸메이트라 생각된다. 코로나로 인해 밖으로 나가는 게 부담스러운 지금… 그녀만이 내가 편히 볼 수 있는 이웃이니까.

얼른 코로나가 끝나고 학교에 가서 신나는 대학 생활을 마저 만끽하고 싶었다.

장갑도 안 끼고! 어설픈 손놀림으로 설거지하는 그녀를 밀어낸 나는 설거지를 하고 가볍게 청소한 다음 보다 만 애니메이션을 마저 보고 자야지… 라고 생각하고. 설거지를 마친 후 비워진 식탁에서 휴대폰을 하고 있던 나에 언니를 바라봤다.

“나에 언니, 안 가세요?”

“에? 응?”

“방송 밤에 시작하시는 거 아니에요?”

“아… 오늘은 쉬는 날이야.”

“그렇군요, 저는 그럼 이만… 좋은 밤 되세요.”

“응 그래, 유나 내일 봐.”

그렇군

이제는 매일 보는 건가?

하긴, 그동안 룸 쉐어를 하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접점이 없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다가, 나는 문득 동생이 가르쳐 준 인사가 떠올랐다.

“어, 동생이 만화를 보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사를 가르쳐 줬는데, 한번 해볼게요.”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인다.

역시 업계 프로들은 이쪽 이야기하면 눈이 바뀌는 건가?

“흠흠.”

양손으로 양쪽 머리를 잡아 트윈테일로 만든 다음

“니­코니코 니!”

“풋”

“어?”

나에게 늘 긴장된 태도를 보이던 나에 언니가 웃음을 터트린다.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는 그녀의 히죽거리는 웃음을 보고, 나는 동생이 나에게 빗 역을 먹였다는 걸 자각했다!

대학 오리엔테이션의 장기 자랑에도 붉어진 적 없는 내 얼굴이 달아오른다.

치욕

치욕스러움이 내면에서 차오른다.

이젠 참지 않고 웃음을 터트리는 그녀의 손에는, 내 인생 역사상 최고 흑역사가… 녹화된 그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저, 저기요?”

“미안해 미안해, 유나는 좋은 사람이었구나.”

그걸로 좋은 사람이 된 건가?

무섭다 오타쿠

이해할 수 없다!

“이건, 우리의 첫 만남으로 간직할게.”

아니 간직 안 하셔도 돼요.

“그럼 이만, 난 방송하러 가 볼게.”

오늘 방송 안 한다면서요

한국어라면 툭 튀어나올 그 말들이

당황해서 그런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언어의 뇌가 고장 난 듯, 말이 어버버 나오지 않는 날 재치고 그녀가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죽고 싶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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