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4화 (4/307)

〈 4화 〉 3화.

* * *

아침에 나는 괜히 깨끗한 1층을 한 번 더 청소했다.

밤을 새우고 아침부터 컵라면을 찾는 나에 언니를 말리고

든든한 밥심을 안겨 주었다. 솔직히 간장 계란밥에 한국에서 가져온 참기름 약간과

마치 햄버거처럼 밥을 절반만 담은 다음 후리카케를 살짝 뿌리고 마저 덮어서 맛이 없을 수 없는 궁극의 식단

우유…는 싫어하는 것 같아 오렌지 주스를 주니 잘 마셨다.

이제부터는 전투의 시간이다.

샤워를 해서 몸을 씻는다.

흘러내린 샴푸가 행여나 얼굴에 자극을 주었을까 싶어 얼굴을 공들여 씻어내고,

유학 생활의 유일한 사치인 비싼 바디 워시를 쓴다.

머리를 말리고, 오늘 방문하는 나에 언니씨 회사 사람에게 어느 이미지를 줄 것인가 고민한다.

단정한 이미지가 좋을까

아니면 알바 면접 볼 때의 화사한 이미지가 좋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냥 되는대로 하기로 했다.

그냥 좋게 보이고 싶으니까… 라고 생각하고 심플한 패턴의 투 피스를 꺼낸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가꾼 몸에 자신이 있기에 과감하게 어깨와 허리라인을 노출하는 과감한 패션

인상이 세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치마 대신에 청바지를 입었다.

화장하면서 땀이 나는 건 싫기에 머리부터 고데기를 말아 세팅하고, 피부 톤을 고르게 잡은 후 정성스럽게 메이크업을 한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한 시간 반.

일 층에 내려가니, 자기 어린 체형에 어울리게 귀여운 버블 모양 캐릭터가 그려진 원피스와 짧은 바지를 입었는데, 별다른 코디 없이 있는 그대로 귀여운 모습을 보이는 그녀를 보고 내가 괜히 빡세게 세팅한 것 같아 부끄러워진다.

왠지 헤에­하고 입을 벌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나에 언니를 보고 물었다.

“지금 오시는 분은 어떤 분이에요?”

“아, 선라이즈 소속사의…”

이야기를 듣자 하니 선라이즈 소속사는 최근 유튜브에 떠오르기 시작한 버츄얼 유튜버들을 영입, 육성, 관리하는 일종의 프로덕션 같았다.

마치 J*P같이 아이돌을 육성하는 그 시스템을 보고 나는 떠올렸다.

실제로도 일본 유명한 아이돌을 목표로 한다고 하고…

아니 아이돌?

머리에 망치를 맞은 듯 충격이 왔다.

확실히 '귀엽다'라는 카테고리로 보면 나에 언니의 아바타?

그러니까 3D 그래픽 아바타를 보면 보편적으로 귀여운 소녀의 모습이기 때문에

'귀엽다'라는 아이돌이 떠오르는 게 맞긴 하지만...

어느 세상의 아이돌이 야밤에 키보드에 샷건을 치고 소리를 지른단 말인가?

애교가 가득 담긴, 누가 보더라도 연기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아니고 정말 진심으로 내지르는 그 모습에….

아이돌?

이 회사 괜찮은 거야?

아니, 아이돌에 대한 이미지가 아무리 한국하고 일본하고 다른 건 있는데

오히려 이쪽은 일본 쪽이 더 엄격하지 않던…. 가?

하지만 이런 자연스럽게 떠오른 태클을, 내 앞에 생긋생긋 웃는 나에 언니 앞에서 못 꺼내겠다.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한 나는 인턴 활동을 위해 학교에서 가져온 '유학생을 위한 회사 안내서'를 꺼내 읽었다.

아무래도 회사 사람하고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기본적인 비즈니스 매너를 지켜줘야 하는 게 예의니까 말이다.

아무튼, 지금 오는 코이즈미씨는 대단한 사람이다.

회사 출범 당시부터 사람들을 영입하고… 지금 떠오르는 사업

일명 잘 나가는버츄얼 유튜버 아이돌 사무소의 사장 오른팔이라고 한다.

아니 그런 대단한 사람이 온다고?

하지만 낯을 가리는 편인 나에 언니가 편하게 이야기하는 거 보고, 딱히 까다로운 사람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이쪽 업계는 생으로 부딪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약속된 아침 9시가 되자 현관문의 벨이 울린다.

약속 시간을 정확하게 지킨 사람에게 호감이 있는 나는 문을 열고 인사했다.

“처, 처음 보겠습니다. 쿠로가와 나에씨의 룸메이트 김유나라고 합니다.”

“아, 처음 뵙겠습니다. 코이즈미에이야라고 합니다.”

정중하게 두 손으로 건네는 명함을 받았다.

양손으로 받으면서 허리 살짝 숙이기

일본 비즈니스 매너 교본에 나온 동작을 그대로 따라 했다.

내 완벽한 매너가 마음에 들었는지 서른 초반으로 보이는 멋진 비즈니스 우먼인 코이즈미씨가 미소 지었다.

그녀가 사 온 화과자를 보고, 나는 차가 어울린다 싶어서 주방으로 가서 급하게 녹차를 내왔다.

이미 과자를 까서 우물거리는 나에 언니와 코이즈미씨의 모습은 마치 어린 딸과 어머니 같았다.

“드시지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혀가 굳는 게 느껴진다.

생각해 보니 현관에도 말 더듬었지

아무래도 학교 선배나 교수님들과는 이야기한 경험이 많지만

고이즈미 씨 같은 사회인은 본 적도 없고, 대화한 경험도 없기 때문에 저 예절이 뚝뚝 묻어나오는 사람을 보니 나도 모르게 몸이 굳는 것 같았다.

그런 나의 사회 초년생 같은 모습이 귀여워 보였는지, 나에게 미소를 짓던 코이즈미씨가 묻는다

“유나 씨?”

“네.”

“혹시, 버츄얼 유튜버 도전하실 생각 없어요?”

“에?”

.

.

.

어제 오후, 눈여겨보던 소속사의 유튜버에게 전화가 왔다.

쿠로가와 나에

혼자서 방송하고 있던 걸 내가 발견했고, 사장이 영입을 허락했다.

안 그런 아이들이 어디 없겠지만, 요즘 시대에 드문 네 명의 동생을 둔 그녀는 도쿄를 동경해서 막연하게 상경한 흔하디흔한 지방의 아이였다.

지망하던 대학도 없는 상태로 부모의 지원도 없는 상태로

그야말로 무일푼으로 지방에서 도쿄로 올라와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생하면서 살아가다가

평소 좋아하던 유튜버에 도전해보고 싶다면서 지원한 그녀였다.

버츄얼 유튜버 중 중요 시청자층인 오타쿠들이 즐겨보는 콘텐츠들에 대한 이해

무엇보다도 어느 성우에 비교해 봐도 꿀리지 않는 조곤조곤하고 귀여운 목소리와

때 묻지 않는 청초한 분위기가 이쪽 바닥에 잘 먹힐 것 같아서 계약했다.

그녀의 고생담을 듣고 있자면

그녀의 가능성을 보고 집이라도 한 채 계약해주고 싶었지만

회사에서도 밀고 있는 유튜버들과 여러 프로젝트로 자금이 없어서 그러지는 못했다.

애초에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까지 좋은 조건으로 첫 계약을 하지 못하니 말이다.

그래도 내가 생각하기에 그녀는 상당히 운이 좋았다.

항상 바쁜 유명한 캐릭터 디자이너가 디자인하기로 했고, 그녀와 친분이 있는 유명한 모델러가 흥미 위주로 작업해서 비교적 저렴하게 캐릭터를 만들었다.

기존에 이쪽 업계에 있던 사람도 아니고 가난한 생활을 해서 장비가 없던 그녀는

계약금 대다수를 장비에 투자했다.

거기다가 나이도 어리고 신용 등급도 낮아서 좋은 조건으로 대출을 받지 못해

결국 도쿄에 벗어난 사이타마의 쉐어 하우스로 들어간 그녀였다.

집세가 싼 쪽이 아무래도 저축하기도 좋으니 말이다.

본디라면, 하나의 기숙사를 운영해서 사택 복지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사장 놈의 욕심으로 사택이 리모델링 되느라 들어가지 못하고

코로나로 인해서 그 공사 작업이 지지부진하였다.

인부들 사이에 코로나가 두 번이나 돌아서 질질 끌려버렸다.

아무튼 누가 보더라도 사회성이 떨어져 보이는 그녀가 룸 쉐어에 살 게 돼서 걱정했지만…

걱정이 무색한 듯, 마의 구간인 10만을 돌파해, 순식간에 20만을 돌파하고, 코로나 시대에 30만을 돌파했다.

밖을 다니던 많은 사람이 방에 있게 되면서, 전반적으로 유튜버 업계가 커지는 그 기류를 잘 타고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녀에게 이사를 제안했다.

비록 대출을 더 하게 되겠지만 그래도 예민한 편인 그녀는 혼자 사는 편이 더 좋으니까

하지만, 한국인 룸메이트와 헤어지고 싶어 하지 않다며 그녀가 거절했다.

방송에 대한 의견을 제외하고는 어지간해서는 자기 말에 따르던 그녀가

내 제안을 거절한 건 처음이기에 그녀의 변화를 만든 사람을 보고 싶어서 찾아갔다.

한국인

사실 사장은 일본의 기업을 보고 아이돌 시장을 생각했지만

전문적인 육성은 역시 한류의 중심인 한국의 엔터테인먼트가 최고라 생각된다.

한국의 걸그룹들이 일본의 아이돌들 사이에 빛나고

10대 소녀의 소망이 한국인 여자 아이돌처럼 되고 싶다고 소망 되는 시대에

눈앞에 어지간한 한국인인 척 흉내 내는 여성 잡지 모델들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사람이 문을 열고 나왔다.

자기 몸을 아끼고 가꾸고, 엄격한 자기 통제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

170을 살짝 넘는 신체에, 걸크러쉬라고 불리는 힙한 패션과 어깨라인과 허리라인을 과감히 노출하는 섹시한 패션에 어울리는 모델 같은 몸

자연스러운 화장과 자신감 넘치는 머리 스타일

온몸에서 느껴지는 강한 활력이 참으로 멋진 여성이다.

나는 비록 아이돌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사람이 아니었지만 저런 사람을 보니 자연스럽게 회사로 초대하고 싶어졌다.

아무렇지 않게 혼자 빛나는 저런 여성을 놓치면 엔터테인먼트 업계 사람이 아니다.

반드시 그녀를 옭아매리라.

나와쿠로가와의 눈에 어린 열망을 읽지 못한 채, 살짝 서툰 일본어로 그녀와 대화하는 유나를 보며 나는 입맛을 다셨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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