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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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룸 쉐어 하우스는 공동 거주 공간인 거실, 부엌 등이 상당히 구리기 때문에 거주자들은 요리나 식사 시 빼고는 방에 잘 안 나와서 접점이 작다는 걸 들었는데…
이 집은 사실상 방문 키를 따로 가질 뿐이지 워낙 공동 거주 공간이 뛰어나서 일반 주택 같다.
나의 삶은 혼자서 시간을 보내려고 이것 저것 시도하던 탓에 불규칙적이었던 과거에 비해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가령 지금만 하더라도 나에 언니는내가 해주는 맛있는 식사를 같이 즐긴 후
식후 차를 좋아하는 나를 따라서 언니도 차를 마시고 있다.
아늑한 거실에서 우리 둘은 페퍼민트 차를 마시면서 심신을 달래고 있었다.
이러다 보면 나에 언니와 나는 마치 그냥 한 지붕 아래 사는 친구 사이 같다.
아니 이제는 비즈니스 파트너인가?
아무튼 이상한 표현이지만 조건 만남에서 그대로 골인을 해 아직은 서먹한 신혼부부 사이처럼,
한 집에서 국적이 다른 두 사람이 좀 더 친밀한 신뢰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는 건 좀 드문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나에 언니는 차를 마시면서 온갖 질문들을 나누었다.
나는 오타쿠 문화에 대해서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언니에게 다양한 '덕질'방법들을 물었고
언니는 나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들을 했다.
유독 내 애인 유무를 묻는 나에 언니의 집요한 질문을 받으면서 어 정말 없어? 아 네 없어요. 없다구요. 진짜야? 믿어도 돼? 언니 저 놀리는 거죠?우리는 서로를 좀 더 이해했다.
유학생 입장을 떠나서 봐도 이것은 또한 독특한 경험이었다.
가족과 아닌 개인과 이렇게 거리감을 좁히게 되다니, 이런 건 연애를 하지 않는 이상 드물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연스럽게 작년의 기숙사의 삶과 비교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왁자지껄해서 좋고 재밌긴 했는데, 그때 워낙 정신없이 살아서 그런지
차분한 분위기의 여동생 같은 나에 언니와 사는 건 꽤나 힐링이 되었다.
아무튼
최근 애니메이션에서 실수가 잦은 캐릭터를 도짓코라고 하는 걸 알았는데
나는 그게 만화적인 과장된 표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가사를 도우려 하던 나에 언니가 걸레를 못 보고 넘어질 뻔한걸 안아주고, 작은 책장을 힘주어 닦다가 넘어트릴 뻔한 걸 잡아주고, 설거지에서 머그컵을 깨트리는 걸 보고 가사일을 시키는 것을 그만 두었다.
어떻게 일을 하면 할수록 주변이 망가지지?
도짓코는 진짜로 존재하는 단어였다.
그녀는 몸을 쓰는데 파멸적으로 재능이 없다.
아이돌을 지향한다면서요.
춤을 춰야 하는데 언니 괜찮아?
아무튼 잘못했다고 우울한 그녀에게 비행기를 태워주고
가볍게 서로의 과거를 이야기하고 몇 개의 생활 규칙을 정한 우리들은 업무 이야기에 들어갔다.
“음, 그러니깐 캐릭터에 이입을 한다는 거네요?”
“응 그래, 혹시 유나가 최근에 본 작품이 있어? 거기에 따라 설명해줄게.”
“음 조지 오웰의 1963,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제인 오스틴의 오만… 미안해요. 음, 최근에는 러브…라이브를 봤네요.”
인터넷 커뮤니티를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그들만이 쓰던 용어로 주류 문화를 즐기는 ‘인싸’인 내가 일본에도 가져온 나의 ‘최애’ 문학 작품을 말하자 그녀의 동공에 초점이 사라져가는 걸 보고 다급히 동생의 추천을 받아 본 애니메이션을 말했다. 이름하여… 러브라이브.
나에게 거나한 치욕을 안겨준 니코니코니가 뭔지 검색하다가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니코라는 소녀가(고3인데도 어려 보이는 게 마치 쿠로사와씨같은 캐릭터였다) 귀엽게 자기 어필하는 걸 봤다.
솔직히 여자아이들끼리 막 껴안고 서로 보며 얼굴 홍조를 넣는 건 여고 출신인 내가 봐도 지나치게 작위적이라 기분 나쁘긴 한데… 화려한 톤의 캐릭터와 만화 캐릭터로 연출하는 음악 스테이지가 조금 흥미로웠다.
“거기서 나오는 캐릭터를 이해하고, 그 캐릭터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하는 식으로 행동하는 거야. 유나가 좋아하는 캐릭터는 누구야?”
아홉 명의 다채로운 캐릭터를 생각하다가 내가 고른 캐릭터는
“음, 역시 호노카요.”
무한한 긍정의 힘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만약 유나가 그 캐릭터가 되어서 말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품 행동을 보면… 늘 활기차고 고난을 극복하는 당찬 모습을 보이면서도, 부족한 면모를 보여서 타인에게 의지할 거 같아요. 작품 내에서 다양한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그런 호노카라는 캐릭터가 방송을 하면 어떻게 할 거 같아?”
“음… 어려운 게임 같은 걸 골라도 힘낼게! 하면서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 아 그렇다고 잔인한 걸 할 것 같지는 않네요. 그러면서도 음악도 부르고 춤도 추겠죠?”
“와, 유나 대단해! 바로 감을 잡네?”
작품 캐릭터의 분석은 문학 파트의 단골이다.
은유와 비유, 시대상 파악이 필요한 문학 파트도 마스터 한 나인데,
캐릭터의 매력을 다양하게 느끼게 해주는 애니메이션에 캐릭터를 이해 못할 리가 없다.
“음… 나에 언니는 방송 할 때 매번 이런 페르소나 연기를 하시는 건가요?”
“음… 아무래도 그런 편이지? 솔직히 말해서 이런 정해진 약속을 어기면 분위기가 달라지니 말이야.”
요컨대 성숙한 몸을 가진 캐릭터가 어정쩡하게 어린아이를 연기하면 기괴하다는 그런 거군
나의 니코니코니를 떠올리고 바로 납득한다.
“그래서 내가 버튜버로 활동할 때는 진지하게 임해.
쿠로사와 나에가 아닌 마왕성에 있는 공주, 쿠로시로 유리아가 되어서
따분한 마계에서 벗어나서 인간의 문물을 접하면서 방송을 하게 되는거지.”
아, 그런 설정이구나
사실상 마왕성의 공주 같은 컨셉은 잘 모르지만 여기서는 눈치껏 호응한다.
즉 언니는 공주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기로 마음먹었고, 사람들은 그런 캐릭터의 연기를 기대하면서 오는구나
“어… 정해진 대본이 없는 거네요?”
“응 그렇지, 그래도 그 태도를 유지하면서 청취자들에게 이입해 주려고 하는 거지.
내가 유리아가 되는 순간, 그들은 마계 공주의 카리스마에 짓눌려서 나를 찬양하게 되는 거고.”
신이 나서 캐릭터 연기나 자신만의 방송관, 즉 자신의 본업을 이야기하는 나에 언니가 처음으로 멋져 보였다.
이미 자신의 길을 정하고 거기에 매진하는 게 정말로 어른스러워 보였다.
부러웠다.
아직도 불안한 미래에 헤매는 나에게 당차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나에 언니가 부러웠다.
실제로도 버츄얼이긴 해도 유튜브에서30만의 구독자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그래도 예의를 잃지 않게, 무례하지 않게 그들에게 말을 하지. 그들은 진심으로 나에게 충성을 바치는 시종들이니까,
그리고 내 방송을 봐주는 사람들이니까, 역할에 몰입하면서도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조절하는 거야.”
“어… 그게 되요?”
“응! 나 채팅방 분위기는 정말 잘 파악하거든.”
나는 보이지도 않던 빨리 올라가는 채팅을 캐치하다니
나에 언니에 대한 평가를 조금 더 올렸다.
“근데… 카리스마(였던것)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이 놀리는데요? 언니 방송에 카리스마가 있어요?”
“그, 그, 그건…”
“… 그냥 사람들이 놀리기 좋아하는 거 같은데요?”
“아냐! 아냐 아냐 아냐!! 그냥 놀리는 거 좋아하고 그게 밈으로 유행돼서 그렇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리스너들이 ‘잘못했어요. 유리아님!’ 하면서 내 말에 따라줄 거야!”
솔직히 방송을 총 세 시간 분량 본 나도 그녀의 시청자들이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거 안다.
그래도 이 말을 하면 진심으로 상처받아 할 것 같기에 나는 언니 말이 다 옳아요라고 말해줬다.
언니가 이쪽으로는 프로야 프로! 라고 말하며 콧대가 높아지는 걸 보니 참으로 다루기 쉬운 사람처럼 느껴진다.
“당분간은 언니 방송 보면서 제가 라이브로 교육을… 언니?”
높아진 자신감이 1초 만에 사라진 모양인지, 그녀는 갑자기 식탁 뒤로 숨었다.
“그, 그, 그… 내가 방송을… 라이브로 유나에게 보여주기엔 마, 마음의 준비가.”
“… 언니 프로라면서요?”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옆 방에 사는 예쁘고 멋진 이상형에게 보여주기에는 부끄러워!”
애초에 나, 세 시간 정도지만 언니 방송을 봤다.
나이를 때고 보면 언니의 캐릭터인 유리아는 있지도 않은 손녀 재롱 보는 느낌이라 힐링이던데?
가끔씩 소리 지르는 거 빼고 말이야
그리고 어물쩡하게 칭찬하면서 넘어가려 하다니
나는 언니처럼 쉬운 여자가 아니라구요.
“에이 뭐 어때요? 저도 언니랑 이제 비즈니스 파트너인데. 엄밀히 말하자면 언니가 선배려나? 나에 선배?”
나에 선배라는 말에 갑자기 기운을 차린 듯
이전에 언니라고 불러줬을 때의 그 강아지 같은 반응이 나온다.
저 소심한 얼굴에 서린 자신감을 봐라
얼마나 귀여운가
“다, 다시 한번 말해줄래?”
“네, 나에 선배.”
“다시 한번!”
“나에 선배~ 들리세요?”
“응, 응!”
“방송 봐도 되죠?”
“그, 그건 아직 안돼!”
언니 저 이래도 언니 매니저거든요?
일본인 오타쿠 언니하고 친해지는 건 참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어림없지
학교 과제는 열심히 하면 학점이지만
이쪽 업무는 열심히 하면 돈이 나온다. 돈
코로나 이전 유리창 너머로 보기만 했던 최신 휴대폰, 예쁜 옷, 주방 기구, 월세를 생각하며 다짐했다.
오늘 밤 그녀의 방송을 몰래 보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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