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7화.
* * *
오늘 방송 힘내라고 실력 발휘를 위해 장을 봤다.
사이타마 특유의 인심으로, 고기집에 가면 젊은 여자가 외국에서 고생한다고 다진 고기를 30그램씩 더 넣어주는 정육점 아주머니의 친절에 오늘도 감사를 표하고 돌아왔다.
그녀는 아주 신기한 눈으로 내 요리를 쳐다봤다.
“신기해요?”
다진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계량하며, 즐겨 보던 요리 유튜브 채널의 레시피대로 조리를 한다.
평소라면 배달 음식 리스트를 뒤적이던 나에 언니는 방에서 나와 휴대폰으로 나를 찍으면서 대답했다.
“응, 만화에서나 볼만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잖아.”
햄버그스테이크가 그 정도인가?
가끔 나와 그녀의 가치관이나 인식이 조금 다르다는 걸 느낀다.
아직도 내가 이해가 부족한 거겠지, 라고 속으로 툴툴하면서 샐러드를 장만한다.
“비, 브로콜리는 안돼!”
“언니? 어린아이에요??”
“하지만 맛이 없는걸?”
“하, 지켜만 보세요.”
어느새 조리된 햄버그를 드러내고, 남은 기름에 버터를 작게 올리고 브로콜리를 올린다.
그다음 맛소금을 쳐서 볶아낸다.
맛소금! 마이야르! 감칠맛!
이 고소하고 짭조름한 야채 조림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질펀한 바베큐 파티를 목격한 채식주의자의 몸짓으로 브로콜리를 입에 넣은 언니는 육식주의자가 되어 브로콜리를 막 퍼먹는다.
“맛있죠?”
“응!”
“언니 입맛은 대충 알았으니까 어지간하면 주는 대로 먹어요.”
프로게이머가 된답시고 인스턴트 음식만 먹다가 입맛이 애 입맛이 되고 골병든 남동생을 갱생시켜봐서 안다.
이런 사람들은 일단 익숙한 맛으로 야채를 조린 다음 먹여서 거부감을 낮추고 차근차근 야채를 먹인다.
뭐 그때 말 지독히 안 듣던 동생이 이제는 고맙다면서 나에게 용돈을 자주 보내주지만
그래도 그 경험이 나에 언니의 몸을 살리는 데 쓰이고 있다니 다행이다.
“자, 오늘은 이거!”
“으, 이상한 게임이면 안 할 거예요.”
휴학한 유학생이 고향에 못 돌아가면서 할 수 있는 일?
정말로 많이 없다.
코로나로 인해서 아르바이트도 구하기 어려워진 지금 집에서 취미 활동을 하고 운동을 하며 보낸다.
최근에는 취미에 일 영역을 섞어서 일본어 공부도 할 겸 업무 공부도 할 겸 나에 언니에게서 게임 소프트를 받아서 게임을 한다.
“파이널 판타지는 일본의 국민 게임이야. 유나도 본 적 있지? 신주쿠의 [파판 15가 나온다]는 광고.”
“네, 마케팅 측면에서 참 뛰어난 광고였어요. 그거 일본인 모두가 설명 안 해도 안다는 거잖아요.”
“응응 그치그치, 설마 유나가 파이널 판타지도 모를 줄이야.”
아쉽게도 이 한국인 유학생은 프로 동생에서 배운 경력으로 협곡에서 사람 죽이는 것 밖에 모르는 전투민족이다.
설거지하는 내가 심심하지 않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그녀가 방으로 올라갔다.
식후 저녁 시간
원래대로라면 공부하거나 친구와 라인으로 인스타그램 링크를 주고받으며 세상 흘러가는 걸 볼 시간이지만…
모니터 앞에 앉아 그녀의 유튜브에 들어간다.
작고 여린 쿠로사와 나에가 아닌
아름답고 당당한 마계의 공주인 쿠로시로 유리아가 나온다.
그녀가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콘유리!”
그러자 채팅창에도 [콘유리] 라면서 인사가 물결친다.
나도 그 흐름에 맞춰서 인사를 했다.
“있지있지, 오늘은 예정대로 마인크 방송이야.”
마인크래프트
네모난 블록으로 이루어진 세계에 플레이어가 세상을 깎고 물건을 만들고 모험을 한다.
수많은 인터넷 방송 문화를 만든 마인크래프트는 나도 잘 알고 있는 물건이다.
“오늘은 이전에 만들다 만 마왕성을 마저 지을 거야.”
검은색 블록을 잔뜩 채운 그녀의 캐릭터가 바쁘게 움직였다.
어느 정도 작업 된, 누가 봐도 성처럼 보이는 그 그림을 보고 나는 그녀가 새삼 프로라고 느꼈다.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게임을 진심으로 즐기는 듯 혼자 멜로디를 흥얼거리면서 즐겁게 작업을 하는 그녀를 보니 내 마음도 훈훈해진다.
마치 손녀가 찾아와서 재롱 피우는 걸 보는 할머니의 심정이라고 해야 하나
화면으로 보면 반복 작업이지만, 그녀가 기분 좋아하는 게 여기까지 느껴지니 자연스럽게 미소가 나온다.
그런 그녀에게 오늘의 도네이션 채팅이 시작된다.
[공주님, 서큐버스 집사 이야기 마저 해주세요]
유리아는 설정상으로 마계의 공주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그녀를 공주님이라고 부른다.
가끔 놀리는 의미로 카리스마 공주님이라고 놀리기도 하고
그나저나 서큐버스 집사라니
서큐버스가 뭐지?
그리고 집사라니…나?
“흠흠, 조금 부끄러운데.”
[미녀 집사 이야기 해 줘]
채팅창이 뜨겁게 반응한다.
뭐야 내 소재가 여기서 그렇게 인기야?
살짝 기겁한다.
[그게 뭔데?]
[콘유리! 저번 주에 바빠서 못 봤어요. ㅠㅠ 키리누키로 서큐버스 집사 이야기 나오던데 뭔가요??]
알록달록한 도네이션 채팅이 쌓인다.
나처럼 이 방송에 새로 정착한 서큐버스 집사라는 단어에 대해서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와 이게 얼마야? 방송이 시작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최근에 가입한 시종들도 있고, 최근에 밈이 된 거 같으니 이참에 설명해줄게.”
캐릭터는 끊임없이 성을 짓지만, 그녀는 이미 완벽히 채팅창을 파악한 것 같다.
멋진 멀티태스킹이다.
“음, 최근에 엄마 마왕님이 걱정해서 말이야, 유리아에게 충실한 집사를 파견했어.”
“근데 그 집사가 있지, 유리아보다 더 예쁜 서큐버스 집사인 거 있지.”
“놀랐다니까? 잡지… 그러니깐 마계 통신에서 보던 모델들보다 이쁜 집사가 왔어.”
“근데 그 사람 엄청 유능해, 요리도 잘하고 패션도 좋고 청소도 잘해. 말도 잘하고 유리아 잘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채팅창에는
그런 만화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없어
집사는 노년이 진리이거늘
아니야 오히려 백합 집사라니 좋을지도?
완벽하고 소쇄한 메이드 집사라니 나도 같이 살고 싶다
같은 채팅이 나온다.
그나저나 언니가 나를 이렇게 봐주고 있구나
그녀의 인정을 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막 첫날에… 자신의 가슴 만지게 하면서 유리아도 이런 몸 될 수 있다고 했어.”
“응 크냐고? 응… 커. 아니 유리아가 없는 거라 모른다고? 아니거든!! 유리아도 가슴 있거든!!”
미안하지만 나에 언니의 가슴은 초등학생 수준과 맞먹는다.
그나저나 그때는 근육을 느끼라고 만지게 한 거였는데 저렇게 말하니 무슨 내가 헤픈 여자 같잖아!
그리고 서큐버스가 뭐야 도대체?
방송 끝나고 찾아봐야겠다.
드문드문 해석할 수 없는 일본어들을 넘겨 보면 그래도 방송에서 내 평가는 괜찮은 거 같다.
애초에 주인인 언니가 내가 들으면 부끄러울 정도로 저렇게 호감을 담아서 말하는데, 시청자들에게도 그런 호감이 잘 전해졌나 보다.
[그 무서운 이웃과 이야기는 잘 됐어요?]
“응, 사실 내가 일방적으로 무서워하던 거였고, 이야기가 잘 되었어.”
[집사분은 방송에 안 나오시나요?]
“흥, 이 집사는 내 거야. 나만 쓸 거라고. 이미 내 카리스마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해.”
[ㅋㅋ]
[ㅋㅋ]
채팅창에 웃는 이모티콘이 도배된다.
아 이게 밈이라는 거구나.
나는 바로 이해했다.
[근데 유리아 말대로라면 그 서큐버스 집사는 외모 능력 인싸력을 다 갖춘 사람인데 이미 애인이 있지 않을까?]
“본인 스스로 없다고 했어.”
[우효! 그럼 우리에게도 원 찬스가?]
“흥 너희들에게는 절대 안 줄 거야.”
이전이라면 사람을 희롱하는 그들의 태도에 길길이 날뛸 문장들이지만
이미 오타쿠 특유의 온라인에서 과장된 말투라 생각한다.
실제로, 학교에서 만난 오타쿠들은 내가 말만 걸어도 도망가니깐 말이야.
[근데 유리아님 커뮤력 정말 많이 좋아졌네요. 다행이에요. 이전에는 폭력 수녀님 빼고 친한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유리아는 선라이즈의 대표적인 아싸 버튜버로 유명했다.
“아니거든! 유리아 친구 많…지는 않아… 응, 그래도 집사가 많이 도와줘서 요즘에는 뇌가 굳지 않고 집사 앞에서는 말 똑바로 해.”
“있지 않지, 첫 만남에 어색해하니까 집사가 말이야. 캐릭터 적으로 보면 완벽한 OL과 한국인 스타를 섞은 듯한 그 사람이.”
화면 속의 유리아가 양 갈래로 머리를 잡는 시늉을 한다.
아, 이거 설마
“이렇게 니코니코니~ 하는데 얼마나 놀란 줄 알어? 나 같은 애 신경도 안 쓰고 살 사람인데, 만화나 애니메이션 모르는 사람이 나와 친해지고 싶어서 그렇게 리액션해 준 거, 너무.. 좋았어.”
“그녀는 날, 제대로 봐준 사람이야. 무서운 이웃인 줄 알았는데, 나 같은 거 무시해도 될 정도로 대단하고… 예쁜 사람이면서도 친절한 사람이었어. 응… 아냐 우는 거 아냐.”
내 니코니코니를 따라 하면서 울고 있다니
그나저나 자존감이 저렇게 낮은 사람이었구나! 언니
괜히 더 챙겨주고 싶어진다.
그런 내 마음과 동일한지, 갑자기 울먹이는 그녀를 향해 무수한 도네이션이 쏟아진다.
이, 이게 얼마야?
뭐야 이거?
“흠흠 아무튼 유리아는 이제 더 멋진 카리스마로 마계를 다스릴 거야! 파파 마왕님에게 꿀리지 않을 정도로!”
…파파라는 동심 가득한 단어를 해서 카리스마는 바닥에 구겨졌는데요 언니
그래도, 금세 텐션을 회복하고 말하는 언니가 대견스러웠다.
그 후 나로 추정되는 집사 이야기는 없었다.
나는 간간히 게임을 하다가, 모르는 단어를 사전에 찾아보고 기록하면서 그녀의 방송을 감상했다.
평소에 잘 하지 않는 트위터 계정을 활성화한 후 그녀의 계정을 팔로우하고 졸음이 오자 일찍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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