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9화 (9/307)

〈 9화 〉 8화.

* * *

나는 누군가가 머리를 쓰다듬는 걸 안 좋아한다.특히 잘생기지도 않는데 자신이 잘생긴 줄 아는 느끼한 일본 선배가 머리를 쓰다듬는 적이 있는데 진심으로 불쾌감을 느낀 경험이 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어제 방송에서 그녀가 내 쓰다듬는 걸 좋아한다고 하니, 주로 밤에 방송을 마치고 늦잠을 자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에 일어나서 씻고 나온 그녀의 머리를 내가 대신 말려준다.

고양이 유튜브 채널에서 고양이들의 턱을 간질거려주면 좋아하는 영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양이만큼 귀엽게 내 손길을 받아들이는 나에 언니는 고양이가 아닐까­라고 문득 생각했다.

그녀의 머리로 트윈 테일을 만들었다가, 말아 올렸다가, 조금 땋거나 하는 식으로 장난을 치다가 꾸벅꾸벅 조는 그녀를 안고 식탁에 앉혔다.

두부 조림과 현미 밥, 미소와 고등어 구이로 이루어진 아침 겸 점심을 함께하고 꾸벅꾸벅 졸면서 닌텐도 스위치를 하고 있는 나에 언니의 머리를 계속 만져주었다.

불쌍한 사람

겁먹은 어린아이처럼 화들짝 놀라는 아기 고양이 같은 사람

측은한 감정이 절로 일어난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평소에 스스로 성격 나쁘고 독하다고 생각한 나 자신에게도 놀랄 만큼 느껴지는 선량한 마음과 측은한 마음이 그녀에게 향한다.

힘든 세월을 보내고, 지금이 돼서야 겨우 먹고 산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그러면서도 힘든 거 내색 안 하고 버티고 버티면서 살아간 거겠지.

그녀가 나에게 보내는 동경과 감정 어린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할 내가 아니다.

나는 그냥 환경이 좋아서 이렇게 자란 건데…

대단하기로는 나쁜 환경에서 자신의 길을 찾은 언니가 더 대단한데…

말을 해도 믿어 주질 않으니 그냥 그녀에 대한 존중을 태도로 보여주기로 했다.

아무래도, 어제의 방송은 나의 마음의 무언가를 바꾼 것 같았다.

그래도 바뀌기 위해 내 말에 잘 따라주는 나에 언니가 고맙기만 하다.

실제로도, 그녀의 생활 패턴 상당수를 조절하는 데 성공했다.

규칙적인 식사 습관과, 바뀐 수면 패턴으로 건강한 삶의 형태를 보이기 시작한 나에 언니의 혈색이 달라졌다.

그녀의 수면 패턴을 고치는 건 어려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쉽게 해결이 되었다.

예전과는 달리 새벽 1시에서 2시 사이에 방송을 마친 그녀가 세 시 쯤 피곤한 눈으로 내 방에 온다.

그러면 잠에 짐시 깬 내가 그녀를 내 침대에 눕힌 다음 등을 쓰다듬어주면 금방 잠에 빠진다.

솔직히 내 침대도 넓은 건 아니고 나도 제법 몸이 큰 편이라 제아무리 작은 그녀가 같이 누우면 불편함도 느끼지만, 온돌이 없어 싸늘하기만 한 유난히 추운 4월 늦봄의 추위가 물러나서 나 또한 전기장판 생각이 나지 않고 서로 윈윈 하면서 밤을 보낸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 품에 안겨서 자고있는 그 귀여운 고양이 같은 언니를 보고 있자니, 솔직히 여동생이 있으면 이럴까­하는 생각이 들며 따사로운 감정이 드니 말이다.

그래도 아마 여름쯤 되면 나 없이도 편히 자지 않을까? 그리 생각된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그녀가 하고 있는 게임을 보며 궁금한 게 생겨서 물었다.

“나에 언니, 서큐버스가 뭐에요?”

“ㅁ..뭐?”

“어, 그냥 그 단어를 봤는데 궁금해서요? 인터넷에 검색하다가 귀찮아서.”

“그, 그건 유나가 알면 안 돼! 유나 어린이는 알면 안 돼!”

어리게 부르는 방법의 하나인 이름 끝에 어린이(子)붙이기. 나를 유나코라 부른 그녀가 당황해서 말했다.

그리 말하니 더 궁금해진다.

“왜요? 이거 이쪽 언어 아니에요?”

“그, 그렇긴 한데. 아 안되 검색 하지 마 검색 하지 마!”

인터넷 검색 창에는 상당히 노출도가 심한, 란제리나 다름없는 가슴 큰 캐릭터가 악마 날개를 달고 있는, 아주 야해 보이는 캐릭터들이 자신의 섹시함을 어필하고 있었다.

솔직히 기분 나빴다.

섹시함에 대한 욕망으로 빚어낸 상징물 그 자체에 광기마저 느껴진다.

아니 부끄러운 건 이 캐릭터를 만들어낸 이 시대인데 언니가 왜 부끄러워하시지?

쓸데없이 부끄러운 게 많은 언니다.

그래도

핑크톤의 라이트가 블랙으로 대비가 되고

어깨 선과 종아리 아래를 과감하게 노출 시키면서 몸 선이 부각되는 디자인들의 캐릭터라니

기분 나쁜 감정과는 별개로 매력적이다는 생각이 계속 들긴 했다.

뭐라고 해야 하나, 기획 의도가 불손한 것과 별개로 색감, 컨셉, 디자인 하나하나가 굉장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노출이 심하잖아 이건.

흐음, 나에 언니가 나를 이런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는 거야?

아쉽게도 나는 조선 유교 걸이다.

이런 색정 맞은 컨셉은 사양이라고.

그렇게 검색을 하고 있자니, 우습게도 연관 검색어에 [서큐버스 집사]라는 단어가 보인다.

이때, 나에 언니가 내 휴대폰을 뺏으려 들기에 하늘로 쭉 올렸다.

뭐길래 나에게 숨기고 싶어 하는 걸까, 하고 그대로 검색어를 눌렀다.

그러자, 매혹적인 검은 머리카락의 미녀가 뾰족한 송곳니를 보인 채, 악마의 날개와 꼬리를 아주 큰 가슴이…부각되는 만화적 창작의 연미복을 입고 유리아의 옆에 점잖게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재미있었다.

현실의 나를 이런 형태로 그려낸 것 인가?

유리아의 방송에 나온 정보만을 가지고?

유명한 일러스트 사이트의 랭킹에 올라온 멋진 그림이다.

미술과의 누군가가 나를 모델로 써서 그림을 준 적이 있지만

이런 캐릭터 된 그림을 나에게 보내준다니, 참으로 신선한 경험이었다.

언니는 부끄러운지 키 차이 나는 나에게 휴대폰을 뺏으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언니가 선택한 오타쿠 길이야

악과 깡으로 버텨

그래도 집사라서 그런지, 남자를 홀리는 천박한 이미지보다는 정중함과 프로페셔널이 느껴지는 전문 시종인 느낌이 나 마음에 들었다. 이 사람 아이디 기억해둬야지.

친해지면 자꾸만 장난이 걸고 싶어 하는 성정을 지닌 내가 나에 언니를 자꾸만 괴롭힐 온갖 상상을 하고 있을 그때, 나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나의 직속 보스인 코이즈미씨다.

“여보세요? 매니저 김유나입니다.”

“아 유나씨, 일주일 다 돼가는데 어떠세요? 쿠로사와씨와 친해졌나요?”

“아, 그거 제가 주간 레포트를 보냈는데… 혹시 받으셨어요?”

“네, 그거 읽고 연락을 드리는 거예요. 실제로는 어떠하신가 싶어서.”

나는 리포트에 그녀의 생활 패턴을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고 적었다.

교정 전 그녀의 삶을 상기해보면, 조금 충격적이었다.

오후 5시 기상, 오후 6시 식사, 이런저런 방송 기획이나 아이디어를 기록하고 회사에 제출, 샤워를 해서 몸을 씻은 다음 자기만의 휴식을 한다.

그러고 오후 10시부터 방송을 진행해서 새벽 4시 5시에 끝낸다.

그 이후 자신의 유투브 채널에 올릴 하이라이트나 영상을 편집하고, 오타쿠 판의 유행과 뉴스를 확인한다. 특히 자신의 동기와 선배들의 하이라이트 영상인 키리누키(?り き)채널을 둘러보면서 취미 활동과 업무 활동을 같이 한다.

이 작업에는 정해진 시간이 없어서 졸릴 때 까지 한다고. 식사는 하루 한 끼 먹은걸로 충분하다고 했다. 이러니 사람이 발육이 안 되지.

그녀는 회사에서 정해진 업무량 보다 자기가 벌리는 일이 더 크다고 한다. 방송 아이디어를 늘 기록하고, 매너리즘에 벗어나고자 노력을 한다고 하니 그 노력에 걸맞게 실제로도 그녀는 동기생들 중에서 가장 성장이 빠른 버튜버다.

그런 그녀의 삶을 되돌리는 데 노력을 많이 했다. 아침에 일단 일어나게 한 다음 밥을 먹이고 햇볕을 쬐게 한다. 그다음 낮잠을 자게 하면서 부족한 수면시간을 때우고 방송 시간을 오후 7시나 8시에 시작을 해서 새벽 1시를 넘어가지 않도록 조절한다.

방송 후 편집 지침방향 잡는 건 타협할 수 없다기에, 나는 그녀가 되도록 방송을 일찍 끝내고 그 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만 정리하고 뉴스와 유행을 확인하는 건 아침으로 미루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고, 고민하던 그녀가 수락했다. 사실 늦게까지 다른사람 영상 보는 것과 아침에 일어나서 보는 것에는 차이가 없으니까.

가급적 일일 두 번의 식사를 영양학적으로 챙기기 위해서 나는 그녀의 식사를 늘 찍어서 저장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주간 보고를 올릴 때 같이 작성했다.

“그래서 이런 식사들을… 매번 준비하신다구요?”

“네, 기숙사에서도 제가 친구들에게 돈 받고 요리 가끔 해줬어요.”

“그… ㅇㅇ 대학교에 조리학과가 있던가요?”

“어, 아뇨? 저는 디자인 쪽이 주전공이고 부전공이 스포츠 과학인걸요?”

“… 정말 유나 씨는 센스가 좋네요.”

센스가 좋다는 칭찬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나는 신나서 그 식품에 담긴 영양학적인 이야기를 한다. 비록 사전을 뒤져가면서 머뭇거리면서 말하지만 내 열정을 좋게 봐서인지 코이즈미씨가 기분 좋게 웃는다.

“정말 태생이 매니저시네요.”

“감사합니다.”

“다행이네요, 안 그래도 요즘 커뮤니티에서 유리아의 반응이 좋아서 말이지요. 구독자들도 늘어났고요.”

“제가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요!”

구독자 수당을 떠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아, 유나 씨는 컴퓨터 쪽 잘 아시나요?”

“물론이죠, 커스텀 컴퓨터도 조립 가능해요.”

동생이 지긋지긋하게 알려줘서 잘 안다.

“그럼 유나씨 쪽으로 업무용 컴퓨터를 보낼게요. 아 맞다, 그리고 그 날 합동 방송이 있을 거예요. 그녀가 컴퓨터를 들고 찾아 갈 거에요.”

“네?”

“자세한 건 업무 메일을 보냈으니, 확인해보세요.”

합동 방송

두 사람이 한 방송, 여기서는 캐릭터가 나와서 같이 만담을 주고 받거나 게임을 하거나 콘텐츠를 진행하는 방송이다.

근데 그걸 하라고요?

아직 유리아만 알기에 바쁜 나에게

새로운 버튜버를 공부하라니

저 아직 신참 매니저라고요!

“아, 그리고 그 방송 송출용 컴퓨터, 유나 씨가 써도 돼요.”

그간 여건이 되지 않아 잊고 있었던 화려한 그래픽의 신작 게임들이 우수수 지나간다.

공부 목적의 노트북인 사과 노트북이 아닌

책상 위에 올리고 화려한 조명과 최신 그래픽 카드가 혹사하며 그려내는 아름다운 게임 그래픽을 떠올린 나는

“맡겨만 주세요, 저 회식가면 술 게임 주최 잘해요.”

그런 내 대답에 코이즈미씨가 푸훕­하는 게 들렸지만 이미 중요하지 않다.

통화를 끝낸 나는 메일을 확인했다.

합동 방송

그것도 오프라인에서 진행하는 합동 방송은 같이 진행하게 될 버튜버는 같은 선라이즈 소속사의 동기생, 예명 아사다 클레스타인, 별명으로는 클레 라고 하는 사람이다.

이전에도 몇 번 유리아와 합동 방송을 한 경험이 있으며 선배 기수로부터 이어지는 판타지 컨셉의 캐릭터 중 성실한 성녀를 ‘지향’하는 캐릭터다.

오프라인에서도 잘 아는 사이인 탓에, 낯가림이 심한 유리아가 합방을 허락한 몇 안 되는 사람이고 실제로도 방송에서 유리아가 말이 막힐 때면 말이 잘 나오도록 호응을 해주거나 화제를 조절해준다고 한다.

뭐야? 좋은 사람이잖아

그리고 진행 날짜는…

뭐 오늘 여섯 시에 한다고?

아니 당일 통보가 어디 있어요 총괄님!!!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