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10화 (10/307)

〈 10화 〉 9화.

* * *

신앙이 메마른 시대에 신앙심을 생기게 하는 디자인과 목소리

그리고 절대로 신성하지 않는 파격적인 방송을 하는 컨셉으로 인기를 끌어 방송 데뷔 3개월 만에 30만의 벽을 돌파해서 선라이즈 소속의 4기생 중 가장 두드러지는 성장세를 보이는 아사다 클래스타인

을 연기하는 사케이 미우는 택시 안에서 휴대폰을 바라보며 화를 내고 있었다.

‘아니 코이즈미 씨도 참, 일이 바쁜 건 알지만 나에 언니 일을 그렇게 처리하면 어떻게 해!’

쿠로가와 나에

급격히 상승한 인기만큼이나 그에 따른 어그로로 멘탈이 터져 있을 때 나를 위로해준 소중한 언니

방송인 주제에, 낯가림 심하고 현실에서는 말까지 심하게 더듬지만, 마음씨 하나만큼은 정말로 따스한 언니

불안정한 정서와 타인에게 집착을 보이면서 인기 있는 소위 ‘멘헤라’로 착각할 만하지만 몇 번 실제로 만난 그녀는 멘헤라 따위가 아닌 정말로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언니였다.

그런 주제에 외로움을 많이 타, 방송 시간이 긴 이유는 방송이 끄고 집에 있으면 외로워서 그렇다니…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울었던가

가족과 사는 자신이 얼른 독립해서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그녀였다.

밝고 상냥한 컨셉의 나에 언니의 방송, 그리고 그에 대비되는 나에의 정신적인 피폐함을 알고 있기에 평소에는 잘 신경 써 주는 자신이지만… 근래 급성장을 했기 때문에 바쁜 스케줄을 소화한 자신을 자책했다.

‘언니에게 이상한 사람이 들러붙다니 있을 수 없어’

이미 고소할 준비까지 했다.

만약 멘탈어린 언니에게 접근해서 돈을 뜯어내려는 사람이라면 바로 고소를 할 것이리라.

일단은 그녀의 집에서 분위기를 봐야 한다.

혹시 언니를 향한 학대나 정신적인 착취의 조짐이 보이면 그때는…

“도착했습니다.”

택시 트렁크에는 회사 측에서 택배로 보내려고 한 컴퓨터가 있다. 택배로 보내려는 걸 직접 들고 왔다.

호화스럽기 그지없는 컴퓨터 부품이 담긴 상자, 필히 조립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리라

그동안에 집을 꼼꼼히 조사해야지.

쿵­하고 상자를 내려 둔 그녀는 다짐했다.

만약 매니저라는 사람에게 조립을 시키고 못 하면 못하는 대로 능력을 의심할 거라고

언니에게 달라붙어서 돈을 뜯으려는 도둑고양이는 내가 쫓아내리라고

본디 예정된 방문 시각은 오후 4시이지만, 일찍 출발한 그녀는 오전 11시에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고 보니, 언니 집에 방문하긴 처음이지.

문을 열고 맞이한 사람은…

어?

훤칠한 장신의 미녀가 나왔다.

지극히 평범한 분홍빛 티셔츠와 허벅지까지만 내려오는 검은 바지

목덜미 아래까지 흘러내리는 라이트 블론드 머리카락이 큰 존재감을 자랑하는 가슴 위에 올려져 있는데

그 모습이 얼핏 보면 천박했으나, 시원하게 뻗은 다리와 환상적인 몸 선이 우아함을 더한다.

사람의 일상 패션이 어찌 저렇게 예술일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도 자신감이 넘치는 듯한 저 미소

오타쿠에게 볼 수 없는 숨 막히는 듯한 인싸의 빛에 눈이 부신다는 걸 느낀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힌 그녀가 자신이 어느 사이 엔가 쿵­하고 내려 둔 컴퓨터가 들어간 상자를 들어 올리면서 말한다. 미우가 용을 써가며 벌벌 떨면서 들어 올린 상자를 매니저는 가볍게 들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들어온 매니저 이유나예요. 유나라고 불러 주세요.”

“호,호,호,혹시 트***??”

“아, 그런 이야기 좀 듣는 편인데 아니에요. 일단 들어오세요.”

얼핏 듣기에는 외국인이라 생각되지 않는 유창한 발음으로 그리 말한다.

바보같이 자기소개도 안 하고 말까지 더듬었다.

하지만 평범하게 집을 열었는데 동경하던 한국 아이돌이 나오는 게 어디란 말인가

던전 입구부터 라스보스가 나오는 게 어디 있어?

깨끗하게 관리된 집 안에 들어가니 소파에 꾸벅꾸벅 졸고 있던 쿠로사와가 인사를 한다.

“클레짱안녕.”

“어, 언니도 안녕.”

이전과 달리 윤기가 돌고 관리가 잘되는 머리카락

무엇보다도 뼈와 살밖에 없고 하얗다 못해 시체처럼 창백하던 그녀의 몸에 이전에는 찾을 수 없는 활기가 돈다.

확실히 건강해졌다.

평소 피골이 상접하다고 표현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해골처럼 마른 그녀에게 조금이지만 살이 붙다니… 믿을 수가 없다.

“언니, 조금 달라졌네?”

“응, 유나가 나 잘 돌봐주고 있어.”

돌봄 당하다니…

확실히 그녀에게는 돌봄이 필요한 게 맞긴 하는데 그 돌봄 하나하나에 정성과 사랑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주방에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

“점심 준비할 때 오실 줄 몰랐네요. 괜찮으면 드실래요?”

앞치마를 두른 미녀가 그렇게 말하면 누가 거절을 할까

만화나 망상에서 보던 그 수많은 장면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걸 느끼며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인테리어 가게에서 볼 법한 예쁜 식탁보 위에는 포크와 숟가락 그리고 수프와 샐러드가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앞치마를 맨 매니저가 파스타 접시를 내려놓았다.

당장 사진을 찍어서 커뮤니티에 올려도 괜찮은 완벽한 데코레이션의 토마토 파스타.

드문드문 보이는 야채와 소시지, 그리고 파슬리와 치즈 가루가 아름답게 장식되었다.

이런 거, 먹어도 돼?

“잘 먹겠습니다.”

“차린 건 없지만 드세요.”

“아, 잘 먹겠습니다.”

앞치마를 내린 그녀가 나에 언니 옆에 앉아서 샐러드를 먹는다.

그제야 미우는 알아차렸다.

내가 그들의 점심시간을 방해한 거구나 라고 말이다.

고기와 마늘 볶인 올리브유의 느끼함을 완벽하게 잡아내는 토마토의 신맛과 야채들은 분명히 평범한 파스타 집 파스타보다 맛있었으나 마음은 불편했다.

주인이 손님보다 빈약하게 먹는다니…

“저, 괜찮아요. 매니저 씨가 한 요리인데.”

“아이는 먹는 거 거절하는 거 아니에요.”

박력이 느껴진다.

이 식탁에서는 그녀가 절대 진리다. 그런 생각이 든다.

당장에라도 먹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기세에 눌려서 앉아서 다시면을 호로록 먹는다.

정말 맛있었다.

“그, 그나저나 아이라뇨. 저 이래 보여도 고3.”

“고3이면 아이 맞죠.”

샐러드를 우아하게 먹으면서 그리 대답한다.

확실히 저런 체형을 가진 사람이 자기를 아이 취급하는데 별수 없지.

그래도 자기 정도면 나름 학교에서 이쁘고 인기 있는 편인데…라는 생각도 저 압도적인 외모에 사라진다.

“매니저씨는 뭐 하시던 분이예요? 유명 엔터테인먼트 아이돌 연습생?”

“ㅇㅇ 대학교 유학생이예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휴학 중이지만.”

“와 와 ㅇㅇ 대학교요?”

부럽다.

1지망으로도 지원 못할 그 이름이 너무 빛나보인다.

저런 외모에 저런 학력을 가지고 있다니, 그야말로 한국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여주인공 느낌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이런 회사에 들어왔다고…?

“그런 클레씨도 50만 구독자를 곧 앞두고 있잖아요. 정말 대단하신걸요?”

“미, 미우라고 불러 주세요.”

“네 미우씨.”

문 앞의 전투적인 기세와 다짐은 다 어디 가고, 무장 해제 당한 마음가짐을 보여주듯 깨끗하게 비워진 파스타를 보며 자책감이 든다.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언니 도와주려고 온 건데…

“음, 그래도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원래는 바로 컴퓨터 조립하고 방송 할 줄 알았는데.”

차마 염탐을 위해 일찍 왔다고 말할 수 없다.

“서, 설거지 정도는 제가 하게 해주세요.”

“안 되죠, 입사 시기로 보면 미우씨는제 선배신데 그렇게 둘 수는 없죠.”

이 사람 왠지 모르게 완고해

연이은 배려와 상냥함에 양심이 자꾸만 간질거린다.

미인에게 대접 받는 것도 쉬운 게 아니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자니 어느새 거실에서 나에 언니와 차를 마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미우였다.

매니저 씨는 컴퓨터를 설치하러 갔고…

행복한 듯 차를 홀짝이는 나에 언니를 보며 미우가 묻는다.

“매니저씨 좋은 사람이네.”

“응, 나에게 있어서 과분할 정도로 좋은 사람이야.”

“저, 저런 분이 언니에게 니코니코니­를 해주셨다고?”

“응, 그때 엄청 부끄러워했어.”

“대, 대, 대단하구나.”

사실은 악질 동생에게 낚여서 인싸 들끼리 하이파이브 하는 것 정도로 생각해서 일어난 일이지만

다행히도 유나는 2층에서 컴퓨터를 조립하고 있어서 영원히 묻힌 사실이다.

“있지, 매니저 씨는 대단해. 나에게 맨날 맛있는 요리 해주고, 머리도 말려주고, 청소도 대신에 해주고, 계속 대화해 주고, 그러면서도 나 얕보지 않고, 상냥하게 대해 줘.”

행복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하는 나에 언니를 보고 안심을 한 미우였다.

매니저가 오고 난 이후 달라진 일상을 말해 준다.

특히 볕이 드는 테라스에서 적당하게 햇볕을 받으면서 낮잠 자는 취미가 생겼다고 하면서 기쁘게 이야기하는 언니는 여전히 귀여웠으나, 이전에 없는 활기가 느껴져서 안심이 간다.

언니 정말 행복하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맨날 힘들게 이상한 운동 시키게 하는데, 아프긴 해도 기분이 좋아. 그리고 밤에 잠이 잘 안 오면 자기 침대에서 같이 자게 해 줘.”

초인적인 방송인의 인내심으로 뿜어나오는 유자차를 삼킨다.

“뭐, 뭐 뭐 뭐???”

그게 무슨 문제라는 듯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 나에 언니를 보며 미우는 자존심이 상했다.

아니 이 언니가???

미우에게는 다행히도, 이 집에는 정상인이 한 명 더 있다.

“나에 언니 내가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했죠? 요가는 가장 기본적인 스트레칭 운동이라구요.”

어느새 내려온 매니저가 찌그러진 상자로 가볍게 나에 언니의 머리를 콩 치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아픈걸.”

“나에 언니 몸이 지나치게 굳은 거예요. 매일 자극 해서 기본적인 근육은 만들어야지 나중에 운동 제대로 하죠.”

그리 말한 매니저는 나에 언니의 손을 잡고 자기 허리에 올린다.

저런 모델 라인의 허리에 손을 올리다니, 부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때요. 이 허리 근육, 단단하죠? 이런 근육 있으면 네 시간 앉아서 방송해도 허리 안 아프다구요.”

매니저의 허리를 만지는 나에 언니의 손짓이 뭔가 이상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인가?

아 매니저와 눈 마주쳤다.

“미우씨도 자기 관리 해 보셔서 아시죠? 이런 근육 만드는 거 쉬운 거 아니라는 걸요.”

이 사람 왠지 모르게 자기 몸에 대해서 자부심이 강하다.

충분히 강할 만하긴 한데 뭔가 무섭다.

“저, 저도 만져봐도 돼요?”

“네? 물론이죠.”

여자끼리 가슴을 만지는 시추에이션은 애니메이션을 오래 본 오타쿠로서 꿈에 그리는 장면이지만 사실은 그런 일이 학교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미우였다.

하지만 자기 근육을 만지게 하는 시추에이션?

그것도 허리의?

잘 모르겠다.

이게 어른의 세계라는 건가?

손을 들어 매끈한 허리를 만져 보니 뱃살 하나 없이 탄탄한 매니저의 근육이 만져진다.

굶어서 억지로 몸을 만들어서 말랑말랑하고 금세 살이 붙는 허리가 아닌, 엄격한 자기 관리로 만들어진 근육의 단단함이 잡힌다. 무심코 부럽다­라고 생각했다.

“머, 멋져요. 매니저씨”

“고마워요. 미우씨도귀여우세요. 아 맞다 그리고.”

그렇게 말한 그녀는 자신이 들고 온 부품 상자 하나를 들어 올렸다.

“이거 관리가 잘못된 지 몰라도 파손돼있더라고요. 다행히 비싼 부품은 아닌데… 컴퓨터에 꼭 필요한 부품이에요. 그리고 견적이 좀 이상하던데… 메모리를 넉넉하게 써야지 나중에 문제가 없다구요.”

아, 몇 번이고 상자를 떨어트린 기억이 났다.

아마 그때 파손된 건가?

이러면 오늘의 합방이 어떻게 되지?

이미 커뮤니티에 마왕성 잠입가는 성녀님으로 공지를 했는데… 수정을 해야 하나?

“다행히도 이 정도면 그냥 앞의 작은 백화점에서 구매할 수 있어요. 저녁거리도 사야 하니 제가 다녀올게요.”

“유나 나도 같이 가도 돼?”

미우는 경악했다.

‘언니가 먼저같이 나가자고 한다고?? 항상 자신과 있을 때는 계속 권유해야 나가던 사람이??’

“음, 날이 적당히 풀리는데 그럼 같이 나갈까요? 아, 미우씨도혼자 있기 뭐 하시면 같이 가실래요? 아니면 잠시 쉬셔도 되구요.”

“아, 저는 멀쩡해요! 네 같이 가요.”

미우는 얼떨결에 수락해 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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