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13화.
* * *
“헉, 헉, 헉헉.”
“언니, 조금만 더 해요. 언니 할 수 있죠?”
땀을 흘리며 얼굴이 붉어진 나에 언니의 귀에 그렇게 속삭인다.
“무리, 더 이상은… 무리야…”
“에이, 언니 제가 도와줄게요. 힘 빼요 천천히 천천히…”
“무리이이!! 나 이상해져 버려!!”
“한 번만 더 해요. 자 호흡 길게 하시구요.”
결국, 나에 언니는 마지막 스쿼트를 채우고 바닥에 널브러진다.
음 좋아 자고 일어나면 다리에 근육이 조금 더 붙겠군
운동 시작 첫날의 처참함에 비하면 정말로 많이 나아졌다.
워낙 몸 상태가 나쁜 언니다.
원래대로라면 마스크를 쓰고 구보를 해서 체력을 길러야 하지만…
최근에 들려온 흉흉한 코로나의 소식에 외출은 꿈도 못꾸고
이렇게 집안에서 운동을 시킨다.
가뜩이나 몸이 약한 그녀가 코로나에 걸리기라도 하면 정말로 생사를 오가게 된다.
이미 짐 볼이나 바디 필러를 주문해서 유연성 기르기, 즉 일상생활로는 단련이 안 되는 근육들을 단련하는 운동 루틴으로 그녀의 몸을 조금씩 자극한다.
보아하니 오늘은 닭가슴살을 왕창 먹여야겠군.
입맛이 아이라서 또 적당히 간을 해야 하지만… 그래도 주는데로 잘 먹으니 기쁘다.
이전에 신세를 진 필라테스 강사 언니에게도 가끔 조언을 구하면서, 방구석 폐인 이웃 언니를 조금씩 갱생시킨다.
“유나, 이렇게만 해도 건강해지는 거 맞어?”
“물론이죠. 몸에 근육이 붙기 시작하면…”
“그, 그만…”
이제는 근육 애찬론 정도는 사전의 도움 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그녀의 매니저가 된 지 어언 한 달
회사의 지침대로 운동을 시켜라…인데 솔직히 너무 나에 언니에게는 힘든 수준인거 같아 내가 책임을 지고 운동을 교습했다.
이래보여도 내 부전공이 스포츠 과학과다.
물론 학부생 따위의 지식으로 그녀의 소중한 몸을 교습하는데는 부족함이 많기 때문에
교수님들에게 얼굴도장을 자주 찍어서 나름 인망을 쌓은 덕분에 교수님들에게 가끔 자문을 구할 수 있었다.
베스트 솔루션은 당장 체육관으로 데려가서 전문 강사의 교습을 받는 거지만…
아쉽게도 현 시국에서 운영하는 체육관은 사이타마에서 얼마 되지 않는다.
일본에 유학 생활을 한지 일년 반이 다되가고
세상 곳곳의 코로나 소식을 접하면서 많은 아쉬움을 느낀다.
특히 아쉬운 건 방역이다.
한국에는 대부분의 소비가 카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매장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명부로 인한 추적 및 카드 소비 내역으로 어느 정도 추적이 가능하지만
현금거래가 대다수로 이루어지는 일본에서 그런 시스템은 기대하기 힘들다.
왜 카드를 안 쓰냐는 질문에 친구들은 ‘개인 정보가 노출되는 게 싫다’라는 게 그 이유가 컸다.
그래서 확진자 혹은 코로나 의심자가 방문을 해도 한국처럼 정밀한 추적이 어렵다 보니
한국의 뉴스를 볼 때 마다 그런 방역 체계가 너무 부러웠다.
그나 카드를 쓰기 싫어하는게 국민적 정서라니...
맥도날드 같은 국제기업 조차도 카드 결제를 받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크리스마스 시즌이나 연말 시즌에 유동 인구 많은 지역의 ATM의 현금이 바닥나는 게 이쪽 사회라는걸 이제 알기는 했는데… 한국 애들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늘 이런 부분이 아쉽다.
그래도 뭐 내가 선택한 유학이다.
악과 깡으로 버텨야지
쿡
내 얼굴이 어두워지자 나에 언니가 내 볼을 찌른다.
요즘은 이 정도 스킨쉽은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처음에 나를 두려워하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이제는 나에게 가끔 장난을 치려한다.
“아 별거 아니에요.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가 좀 무거운 주제라서…”
“으응, 그렇구나. 유나에게는 친구가 많지?”
“그럼요~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친구들이 많아요.”
“으응 그래…”
초기에는 겁먹은 표정을 짓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그녀는 나에게 다양한 표정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토라짐이 심한 언니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면 금방 이렇게 삐친 표정을 짓는다.
아마 저번에 미우씨가 다녀간 이후로 더 그럴지도.
하지만 그녀의 가라앉은 기분은…
“오구오구 언니 걱정 하지마요. 언니가 이제 제일 친해요. 베프예요 베프.”
“베프?”
“아, 한국식 표현으로 베스트 프랜드 줄임말이에요. 언니가 이제 제일 편해요.”
“응!”
이렇게 금방 올라온다.
자존감이 너무 낮은 사람은 처음이라 걱정했는데, 그래도 그만큼 행복의 역치가 낮아서 그런지 금방 기뻐한다.
헤헤 웃는 언니의 얼굴에는 이제 혈색이 돌아서 귀여운 아이 같다.
감정 표현도 풍부해지고, 키도 조금 자란 것 같기도 하고… 이게 육아인가?
사실 비지니스 파트너끼리 이런 감정교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뭐라고 해야 하나 이건 마치 최근 본 에니메이션에서나 보던 프로듀서와 아이돌같은
그런 관계인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나에 언니가 힘들어하지 않도록 정신적으로 보듬어 줘야 하기도 하니 말이다.
언젠가는 정서적으로 조금 거리를 둬야하지만 그건 그녀가 독립심을 갖출 때의 이야기다.
조금 이야기해 보면, 버려지는 것에 대해서 좀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어 보이기에 나는 그녀와 늘 밀접한 관계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최근에는 염색이 빠지기 시작한 머리를 빙글 꼬면서, 회사의 일정표와 그녀의 방송 예정표를 보여줬다.
나는 내 주제를 잘 알고 있어서, 방송에 자꾸 나오라는 나에 언니의 부탁을 상냥하게 거절하는 편이다.
오늘은… 그녀가 그리 걱정하던 공포 게임 방송일.
이전에 미우씨와의 대결에 패배한끝에, 기왕 할 거면 신작 공포 게임을 하자는 제안에 미루고 미루던 공약을 지키기 위해 준비하는 날이다.
공포 게임은 정말로 질색하는 그녀이기 때문에, 그녀는 내가 옆에 있어 주길 바랐다. 아무래도 무서우면 달래달라는 거겠지…
하는 수 없이 보스인 코이즈미씨에게 물어봤는데 제안서를 받자마자 수락했다.
뭐야 이거 이렇게 처리해도 되?
아무리 신 분야의 개척자 같은 스타트업 기업에서 벗어난 기업인데
이 놀라운 일 처리 방식은 늘 충격적이다.
아니 관료주의나 도장 똑바로 찍어와! 같은 드라마틱한 일은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저녁을 먹고 방송 준비했다.
꽤 큰 모니터를 사용하는 나에 언니이기 때문에 나는 부담 없이 언니 옆에 앉았다.
의자의 정점은 게이머 의자라고 주장하는 나 덕분에 바꾼 비싼 의자에 파묻힌 언니에게는 방송인의 포스가 드러났다.
그나저나 이런 장비를 쓰는구나…
방송하기 전 세팅을 점검하는 언니의 모습은 프로의 그것이다.
자그마한 사람에게 느껴지는 박력이 참 멋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서큐버스 집사와 함께하는 인간계의 공포 탐방]
음, 역시 내 이름은 매니저씨가 아닌 서큐버스 집사구나
나를 가지고 한 추악한 망상의 결정체같은 그림을 몇 장 보고 나서는 좀 기분은 별로지만
그것도 한 두장이 아니라 여러 장이 되어가니 이상한쪽으로 이름을 가지는 걸 보고 좀 놀라웠다.
뭐 내 몸을 도촬한 것도 아니고… 고등학교 때 내 얼굴과 연예인 몸을 합성한 사람을 고소해 본 적이 있는 나는 그 정도로는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나에 대한 상상만으로 이상하게 그런쪽으로 진화시키다니
동인의 욕망이라는 건 이제 알기는 알겠는데, 늘 예상을 벗어난다.
오히려 무관심의 시기가 제일 힘들다고 말했던 나에 언니의 말이 있어서 갑작스럽게 쏟아진 나와 연관된 [서큐버스 집사]에 대해서 나는 불평하지 않았다.
뭐 실제로 나에게 저런 욕망을 말하는 게 아닌데 뭐 어때~하는 기분
실제로 걸어오는 인터넷 채팅 배틀을 피하지 않았던 나는 고등학교 때 꽤 참신한 패드립을 한 대가로 아이디도 두 번 정지 당해 보고, 채팅 금지도 여러 번 걸려보았다.
나에 언니가 나에 대해서 걱정하는 게 느껴지지만… 솔직히 고등학교 때 온갖 정치에 휘말린 게 더 끔찍했기 때문에 언니의 호들갑 또한 오타쿠의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콘유리~ 유리아야. 오늘은 특별 게스트를 모셨어. 너희들이 그렇게도 나오길 소망했던 그 사람]
“콘유리 서큐버스 집사입니다. 유리아 공주님의 방송을 봐주셔서 언제나 감사합니다.”
맑고 곱고 어린 음성의 유리아 언니와 다르게 살짝 허스키한 내 목소리가 나온다.
채팅창이 너무 빠르게 올라가서 그들이 뭐라 하는지 모르겠는데, ?나 !가 나온걸 보아하니 정말 놀라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내 집사는 오늘 든든하게 곁을 지킬 거야. 그러니깐 오늘의 유리아는 무적이야.]
그렇게 말한 그녀는 신작 공포 게임을 실행시킨다.
음산한 분위기의 음악이 깔리고 화면이 어두워진다.
이름 높은 공포 게임 명가의 타이틀이 보인다.
아 벌써 언니의 손이 떨고 있다.
[그, 그럼 시작할게! 두고 봐 클레!! 다음엔 복수할 거야!]
빛은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 클레쨩 왔다
왔다 ㅋㅋㅋㅋㅋ
어서 와요
벌써 목소리가 떨리면 어떻게 해
그녀가 긴장하지 않도록 가볍게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럼, 시작할게!]
오우!
화이팅!
난 벌써 걱정이야ㅋㅋㅋ
키리누커들 기대하마!!
시청자들의 반응과 함께, 멸망해간 좀비 도시를 향해 유리아의 캐릭터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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