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17화.
* * *
결국, 내가 고른 건 메이드복을 입은 라짱이다.
솔직히 말이 집사지, 하는 일은 그녀의 메이드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짧은 메이드복은 용납이 가지 않아서, 빅토리안 메이드복으로 부탁을 했더니 거기에 프릴을 달아서 귀여움을 더했다.
짧고 어색한 천박한 메이드가 아닌 전문적인 메이드 느낌이 나서 좋았다.
그리고 나의 물귀신 작전에 코이즈미씨 또한 캐릭터를 디자인하게됐다.
사장에게 보고를 해 피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사장이 디자이너에게 계약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코이즈미씨와 나는 아라이즈 소속의 집사부 소속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거 괜찮을 거 같은데?”
버튜버끼리는 합동 방송이 잦다.
그러다 보면 어지간히 오래한 버튜버들은 유리아같은 특이한 케이스를 제외하고 건너건너 아는 사이가 된다.
실제로 오프라인 모임을 자주 해서 결속력을 강화시키고 그녀들끼리 이야기하게하면 방송주제가 금방 나오니까 말이다.
“이참에 계정을 분리하죠. 대형 이벤트 같은 것은 회사 공식 계정이, 신제품 홍보나 좀 가벼운 홍보는 코이즈미씨가”
그렇게 되면 자기 최애 버튜버 의외의 소식도 쉽게 접하고, 흥미가 생긴 이들이 쉽게 링크를 타고 갈 것이다.
“그럼 유나는?”
“전 그냥 메이드 라짱인데요?”
나는 언니만 관리하기도 바쁘다.
코이즈미씨는 나의 대답에 내연녀의 존재를 깨달은 여주인공의 시선으로 나를 노려봤다.
“… 너!?”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억울하시면 코이즈미씨가 저보다 먼저 캐릭터 성을 확립 하셨어야죠.”
그녀는 극 초창기, 즉 회사의 설립 원년 멤버로서 0기생 대선배들의 서포트하면서 그녀들과 접점을 가졌지만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개개인의 관리보다는 매니저들을 총괄하는 총괄로서 근무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분명히 캐릭터성이 있었지만 나처럼 한 사람만 관리하는 게 아니기에 그녀는 나처럼 여유 있게 활동하지 못했고, 결국 지금은 더 바쁘고 일선에서 물러난 조율자가 되었기에 나처럼 캐릭터 성을 가지고 등장하는 건 관리인력이 늘기 전까지는 힘들 것이리라.
그렇기에 그녀의 일이 전성기로 바쁠 때 업무를 떠넘긴셈이 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편리한 메이드 비스무리하게 생각해서 다른 버튜버들에게 막 보내려는 건 좀 심했다.
가사활동을 좋아하는 나라고는 해도 타인의 집에 메이드를 가는 건 싫다.
자주 하면 손톱도 상하니까 말이다.
“그러면 유나가 좀 더 다른 멤버의 매니저를 겸하는 건?”
“싫어! 유나는 내거야!”
“아 저 일본어 몰루겟숩니다.”
나에 언니가 거절했고 나는 능글맞게 넘겼다.
그녀에게는 아직 보살핌이 필요했고 (아직 회사가 지정한 건강 수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아직 나의 일본어는 완벽하지 않았기에 (의학 레포트를 보면 모르는 한자가 태반이 넘는다) 거절했다.
일반적인 회사라면 상상도 못 할 사건이지만 아쉽게도 이 회사는 지나치게 자유로웠다.
하지만 난 알지 못했다.
돈과 이상과 직감만 가지고 일은 잘 벌리지만 그것의 내실을 수습해가면서 회사를 키운 이 젊은 천재적인 코이즈미씨의 저력을 말이다.
“후, 후, 후 그렇다는 거죠 유나 씨?”
갑자기 씨(さん)를 붙이는 게 무섭다.
“오늘, 오후, 스케줄,비워요.”
직감했다.
이거마저 거절하면 난 잘린다.
“넵.”
한국인 커뮤니티에 이런 말이 있다.
덕 중 덕은 마이너를 파는 양덕이다.
왜일까?
일단 험난한 언어의 입문 장벽이 있다.
일본 문화권에 자란 사람이 아닌 이상, 일본어의 습득은 언제나 그러하듯 큰 관건이다.
그렇기에 덕질을 하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재미를 찾아서 스스로 일본어를 공부해서 일본어를 습득하는 사람과
다양한 것을 덕질할 뿐 번역되는 정보만 받아서 덕질을 하는 사람으로 말이다.
근래 들어서는 유명 장르, 즉 메이저 장르에 쌓인 막강한 덕질 데이터베이스를 탐방하는 것 만으로도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마이너 최전선 분야의 덕질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외국어를 터득해야만 했다.
가령 점프의 신간에 나오는 만화가 재미있는데
국내에 이것을 번역하는 사람이 없으면 자기가 언어를 공부해야 했다.
잘 알려지지 않는 만화를 알리기 위해서 불법으로나마 번역을 하고 해적판을 배포한다.
없으면 자기가 만들어 먹어야지 뭐.
그런 의미로 버츄얼 유튜브쪽은 서양쪽에서 극히 생소한 장르였다.
그렇기에 여기에 매료된 불쌍한 사람들은 반쯤 타의로 열심히 언어를 공부해서 왔지만…
몇 명의 이들은 다른 이들과 비교해서 놀라운 결단력과 행동력을 보이기도한다.
“Shit, What the hell is that?
농가에서 자라 파리가 혀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입을 크게 벌리지 않는 일종 호주식 영어 톤
구수한 욕을 내뱉은 소녀 말리아 클라크는 도쿄 시내에 들어서 구수한 욕을 내뱉었다.
계기는 평범했다.
한 때 아이돌을 꿈꿨지만 아이돌 개념이 생소한 호주에서 그 꿈을 좌절 당했다.
집에서는 일을 잘 돕지 않고 컴퓨터만 바라보는 그녀를 한심하게 보고
먼 옛날 사귄 일본인 친구가 떠나서 같이 덕질을 할 사람이 없어서 외톨이처럼 자란 그녀가
일을 돕지 않는다고 화난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버튜버를 보던 컴퓨터를 던져 부수는걸 본 그녀는 그날로 집을 나온 건 어찌 보면 운명이었다.
겨우 성년이 된 그녀는 가출해서 험한 일을 전진하며 돈을 모으고 기적적으로 선라이즈 회사의 버튜버 모집에 붙은 다음 모든 돈을 끌어모아 최소한의 교통비만 남기고 입국했다.
분명히 이 인근임이 틀림없건만… 야속하게도 떨어진 배터리와 미약한 와이파이로는 지도 어플을 보는 것도 쉽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로 인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또한 막혔다.
그래도 어설픈 언어로 원하는 기차역까지는 찾아왔는데…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무거운 배낭을 좌석 옆에 내려 두고 지친 다리를 풀었다.
너무 힘들어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최종 목적지에 와서 풀려 버리다니… 감정이 격해진다.
그렇게개찰구에서 멍하니 있는 그녀는 한 때 소망했던 아이돌이 지하철역을 돌아다니는 걸 보았다.
정말로 완벽해 보이는 미인
염색한 머리에 색이 빠지면서 애쉬 블론드와 본연의 블랙이 조화롭게 섞인 머리가 바람에 따라 흔들거린다.
슬슬 더워지는 날씨에 과감하게 하의를 노출한 패션에는 부끄러움보다 자신이 가꾼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관능적인 미소가 아닌 순수하게 자신감이 넘치는 미소
분위기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였는가
그 말이 맞았다.
그녀의 모습이 좀 더 자세히 보인다.
자기 아름다움을 극대로 살린 그 센스가 멋졌다.
그녀의 모습이 좀 더 자세하게 보인다.
어딘가 마음에 안 드는 듯 살짝 찌푸린 인상마저 아름답다.
그녀의 아름다운 미간에 패인 골짜기를 펴주고 싶었다.
그녀의 모습이 차고 있는 팔찌의 보석을 확인이 될 정도로 가까이 보인다.
잠깐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거야?
그녀는 안내를 받으며 몇 번 들었던 친절하지만 어설픈 발음의 일본어가 아닌 미국식 영어로 물었다.
“Are you Miss Clark?”
“Y, yeop”
무심코 멍청하게 대답했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선라이즈 소속의 매니저 유나라고 해요. 당신을 마중하러 왔어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게 아닌 손을 내밀었다.
“바, 반가워요. 난 말리아 클라크예요.”
씨익 악수를 한 그녀는 내가 옆에 내려 둔 배낭을 대신 맸다.
아 저거 무거울텐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가뿐하게 들었다.
나름 농가에서 자라 힘쓰며 자란 자기도 힘들게 맨 배낭을 가뿐이 매다니… 뭐지 저 사람은?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요. 최종 면접하러 가야죠.”
그녀가 나를 이끈다.
저렇게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 매니저라니
선라이즈에는 괴물들만 있나?
“저 같은 게 버튜버가 될 수 있을까요? 아이돌이 될 수 있을까요?”
흑요석처럼 차분한 두 눈동자가 나를 바라봤다.
“당신은 정말로 버츄얼 유튜버가 되고 싶나요? 아이돌이 되고 싶나요?”
그 당연한 질문에
그간의 고생을 모두 억눌러 담아 말했다.
“당연하죠.”
“그럼, 최선을 다해야죠. 후회하지 않게.”
그래 후회하지 않게
내가 왜 여기로 왔는가
후회하지 않고 도전하러 오지 않았던가?
그녀의 단단한 말이 나를 지탱해준다.
독기라면 지지 않는다.
내가 해쳐나간 수라장은 가볍지 않다. 그걸 단지 이국에서 증명할 뿐
매니저라고 말한 그녀는 나를 면접장으로 안내했다.
나는 그 순간 비행기 안에서 수십번 시뮬레이팅 했던 일본식 면접을 떠올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 의자의 왼쪽에서 앉고…
아니다.
나는 그냥 터프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웃백의 거친 사막바람을 맞으면서 자란 나에게는 절제의 동양미보다 이런 터프함이 맞겠지.
그 안에는 통역을 위한 사람과
프로필에서 본 사장과 두 명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나를 이곳으로 안내한 그 아름다운 여성이 내 눈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지지 않겠다.
그녀가 매니저라면 나는 아이돌이 될 것이다.
나는 그 차분한 두 눈동자를 주시하며 머릿속에 되는 대로 말했다.
사장이 웃고 안경을 쓴 여성이 당황하고 아름다운 여성은 눈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나는 선라이즈 최초 영어 유닛의 버츄얼 유튜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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