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19화 (19/307)

〈 19화 〉 18화.

* * *

이국에서 격리된 기분

세상에 나 혼자 된 기분

고향으로 돌아갈 길이 막혔다는 공포

가장 힘든 시기에, 나를 지탱해주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에 언니와 친해지기 전까지 우울증을 앓았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렇기에 역에서 길을 잃은 클라크양을 도운 건 측은지심이 아닐까 싶다.

내 사회가 넓어진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 내가 겪은 고난은 학교 성적의 고민과 빠지지 않는 허벅지 살에 대한 고민이 다였고

나에언니나 클라크양처럼 험한 환경에 자라지 않았음을 축복으로 여긴다.

나의 노력은 부모님의 재력으로 만들어진 환경의 노력이라는걸 알게 되었고

이전에는 ‘너무 나대면 보기 나빠’같은 자기 평판 관리를 위한 겸손이 아닌

세상에는 나처럼 사는 이가 적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오는 ‘겸손’이 몸에 깃들었다.

통역관 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장과 코이즈미씨의 면접 질문 차례가 지난 후

나는 몇 가지 질문을 직접 그녀에게 던졌다.

구수하고 터프한 영어가 낯설다.

내가 친하게 지내는 학생들은 대게 미국식 영어 혹은 이탈리아식 영어

교수님이 하는 영어는 혀를 꼬는 불어식 영어다.

그렇기에 저 강한척하는 소녀의 호주식 영어를 흥미깊게 들었다.

퉁명스러운 영어가 느껴진다.

그렇다고 비음이 지나치게 섞이지 않기에 듣기 거슬리지 않으며

귀를 기울인다면 충분히 매력적이게 들린다.

일단, 본인의 목소리가 아름답다.

저 목소리로 노래를 들어 보고 싶은데…

“혹시 자신 있는 노래가 있나요?”

“어, 음 근데 제가 카세트를 들고 오지 않아서요.”

카세트를 들고 녹음했다는 건가?

디지털 시대에 묘하게 아날로그하다.

내가 물었다.

“곡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Hotel California 입니다.”

생긴 건 말랑뽀작한 말티즈인데 노래는 할아버지들이 좋아할 법한 노래잖아.

아름다운 멜로디와 해석하기 따라서는 제법 비관적인 노래인데… 한 때 시대를 풍미한 명곡이다.

“코이즈미 씨 기타 있나요?”

“네?”

“사장님 괜찮죠?”

처음 보는 사장님이지만… 수많은 키리누키 영상을 통해 카리스마가 유리아 언니의 카리스마보다 박살이 나 원자 단위로 분쇄된 그 사람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다.

다른 스태프 분이 가져온 통기타를 내가 메고 가볍게 조율했다.

관리가 잘 된 기타다.

“준비됐어요?”

“…네!”

몇 번 내가 손이 미끄러져 삑사리를 내긴 했지만

퉁명스러운 영어와 달리 감정이 느껴지는, 마치 싱어송 라이터 특유의 애환이 담긴 노래가 울려 퍼진다.

언어는 모르고 노래도 모르고 가사도 모른다

하지만 이 소녀의 목소리에 감정이 움직이는걸 느꼈을까

살짝 울먹이는 코이즈미와 코를 훌쩍 거리는 사장이 그녀의 합격을 선언했다.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그녀를 보고 말했다.

“고생했어요. 최선을 다 했나요?”

“있는 힘껏.”

그 말을 내뱉는 그녀는 마치 오랜 전투에서 살아남는 듯한 노병의 외침이었다.

나는 그녀의 작은 몸을 안아주었다.

등에 그녀의 울음이 터지는 걸 느끼고, 나에 언니에게 그러하듯 달래주었다.

“고생하셨어요.”

그녀의 귀에 작게 일본어로 속삭인다.

나는 그녀가 울음을 멈추기 전까지 그렇게 안아주었다.

아니 사장님

당신이 우시면 어떻게 해요.

나는 코이즈미씨에게 사장을 손짓했고 그녀가 콧물을 푸는 사장을 데리고 퇴장했다.

역시 이 회사 뭔가 이상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영미권을 노린 아이돌 버튜버 말리아 클라크의 데뷔는 늦춰졌다.

나는 통역관은 건당 페이기 때문에 돌려보내고 내가 대신 통역을 해주었다.

의기양양하게 웃는 코이즈미씨의 얼굴을 보고, 나를 숨만 쉬면 착취하려는 역시 총괄 매니저는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다른 분들은 코로나 이전에… 입국하는 데 실패한 분들이 계시거든요.”

“이해할 수 없어요.”

­이해할 수 없다는데요?

­아니 저도 그 정도는 알아요. 그… 유닛에 대해서 설명해 줘요.

“왜냐면 선라이즈는 아이돌 ­여기서 헛기침이 나왔다­ 유닛을 지망하기에 솔로 데뷔는 힘들어요.

당신도 아시죠? 다양한 같은 기수 버튜버들이 편하게 합방하는 거요.”

“아…”

아무래도 바로 데뷔를 원했나 본데…

아쉽게도 세상이 그렇게 쉽지 않다.

특히 요즘에는 사옥에서 트레이닝을 시키면서 어느 정도 노래나 춤을 소화시킨 후 데뷔하기를 원하는 모양이다.

점점 더 프로화가 되어야 잘 먹힌다는 걸 이해하는 사장이다.

사람은 어설픈데, 그 어설픈 사람이 포인트는 조목조목 잘 찌른다.

행동은 치매노인인데 그 치매노인이 두는 체스 하나하나가 체스의 거장의 느낌이 난다.

물론 그 의도를 실체화 시키는 건 코이즈미씨지만…

지금도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그녀를 보고 살짝 애도했다.

아무튼, 그런 사장의 취지에 따라

이미 인기를 끈 2기생 버튜버들이 열심히 훈련도 하기도하고, 이래저래 100만을 달성하는 2기생 유튜버들이 늘어나기에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우리 회사는 바로 데뷔는 어렵다.

잠깐만

인력 부족?

불길한 생각이 번뜩인다.

“유나야 알지?”

“저기 코이즈미씨? 이건?”

“그러게 적당히 했어야지.”

“아 코이즈미씨? 코이즈미 언니?”

“애교 부려도 소용없어요.”

일본어로 이야기가 빠르게 오가자 클라크양이 불안에 떤다.

“유나가 일본어 교육 담당해. 글로벌을 노리는 건 당연한 건데 일본쪽도 노려야지.”

“에휴……”

“제가… 클라크양의 매니저가 될 것 같네요. 일본어 교습과 더불어.”

“정말요?”

“네, 유나라고 합니다. 잘 부탁 드려요.”

“…네!”

그녀가 내 손을 굳세게 붙잡는다.

박력 넘치는 악력이다.

일단 영문 계약서에 싸인을 한 건 봤는데…

“근데 숙소 남는 곳 있어요? 클라크양이 일단… 비자도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온 거 같은데.”

일단 취업비자를 찍고 재류카드라는 일본식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아니면 해외에 중계소를 차린 레­ 부동산을 통해서 계약하는건데…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런 건 안 하고 온 지 싶다.

에이 설마?

“비자 이슈로 대출도 안 되고 우리는 연습생인 그녀에게 계약금의 일부만 지급이 가능한데 마침 3인 룸쉐어에서 사는 일본어와 영어가 되는 유능한 매니저가 내 앞에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바는?”

“하, 월급이나 더 줘요.”

“우리 회사 돈 많아.”

졌다.

자본주의에 졌다!!

어떻게 하지? 낯선 동양인이 18세 금발백인의 미인을 한 지붕 아래에서 재운다고 하면 누가 승낙할까?

“저기 클라크 양?”

“네?.”

“그… 당분간 기숙사 건축이 완료 될 때까지 제집에서 지내게 될 건데 괜찮으세요? 아니면 호텔이나 캡슐…”

그녀가 나를 박력있게 껴안았다.

“좋아요! 좋아요!”

“유나 씨 인기 좋네?”

“으, 그런 편이긴 한데…”

그녀와 문화적 갈등이 안 일어나길 바래야지.

“그나저나 나에 언니는요?”

“아 나에씨는… 간만에 선배들에게 인사하러 갔어.”

“아, 전설의 선배들이요?”

“응 나에 방송은 부드러운 방송이 많아서 선배들하고는 완전히 정반대라…”

“아…”

전설의 2기생

전원이 100만 구독자를 달성하고 선라이즈를 견인하는 3두마차다.

거기에 곧 한 명이 100만을 달성 직전에 있고 4두마차가 될법한 스타들이다.

사실상 나에 언니의 4기생은 2기생과 4기생이 공유하는판타지 세계관이니까

게임 콘텐츠 방송 위주인 3기생과 달리 겹치는 분야가 많다.

다들 스타일은 다르지만… 네 명이서 만나면 폭주기관차처럼 달리고

서로가 각자의 분야에 천재적인 재능과 끈적한 합동 방송을 통해서 많은 전설적인 기록들을 세웠다.

그중 아마 최단시간 방송 정지 사례가 있었지.

귀여운 목소리로 걸걸한 음담패설을 하는 누군가가 떠올랐다.

아무튼 그사이에 낀 나에 언니라?

괜찮으려나?

“유나 나 왔어!”

생각보다 괜찮은가 보다.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온 나에 언니의 품에는 온갖 선물들이 가득했다.

장아찌, 자기 캐릭터 상품, 성인용 장난감, 옷

언니 그거 성인용 장난감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

나는 그녀의 품에서 그걸 빼서 쓰레기통에 던졌다.

코이즈미씨가 이마를 탁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선배가 준 선물이!”

“이건 없어도 돼요.”

정말 짓궂은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이돌 이라는 사람이…

뜻밖에 선배들과 잘 어울리고 온 나에 언니가 자랑스러워서 그녀를 바라보니…

구석에 가 있다.

왜?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클라크양을 가리켰다.

“저,저,저 사람 누구야?”

“어, 오늘부터 후배가 된 말리아 클라크양이예요.”

“쳐움 벱겠습니다. 마리아 크라크라고 합니다.”

어색한 발음의 일본어로 그렇게 말한다.

그녀의 떨리는 눈동자를 보고 말한다.

“언니 혹시 제노포비아야?”

“그, 그게 뭐야?”

“외국인이 무섭냐구.”

“……응.”

유난히 영어에 쥐약인 일본인이 외국인을 두려워하는 건 뜻밖에 흔하다.

나는 클라크씨가 상처받지 않게 둘러 말하려고 했지만, 제노포비아라는 단어가 생각해 보니 영어지

이건 내 실수다.

눈앞의 귀여운 언니처럼 보이는 소녀가 자신에게 위협을 느끼면 슬프겠지…

나도 처음에는 나에 언니로부터 귀신 비슷한 취급을 받았으니까.

프라이벳 존에 민감한 외국인이 바디터치에 예민한 건 알지만

그래도 이미 나를 두 번 안은 그녀인지라 나는 가볍게 등을 쓰다듬어줬다.

“괜찮아요. 그 일본인들이 아무래도 외국인들을 무서워 하다 보니깐요. 어 저도 사실 외국인이예요.”

“어 정말요?”

“네, 저 한국인인데요?”

푸른 두 눈을 깜빡거리며 되묻는다.

“저, 정말 케이 팝 아이돌 아니세요?”

“네 아니예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클라크양의 외모에 겁먹은 언니가 돌아온다.

“언니 괜찮아요?”

“…응, 근데 그 사람 뭐야?”

“언니 제가 인사 받으면 뭐라 하라고 했죠?”

“아, 아임 쏘리… 마이 네임 이즈… 쿠로가와 나에!”

언니 이 정도 영어는 할 줄 알았구나.

감격스럽다.

“요로시쿠 오눼가이 시마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첨언했다.

“아 이 언니가 제 동거인이고, 유리아예요.”

언니에게도 말했다.

“오늘부터 빈 3호실을 쓰게 될 말리아 클라크양이예요. 서로 잘 지내봐요.”

두 사람이 경악하는 걸 보고 씩 웃었다.

아무튼, 그렇게 사이타마의 한 룸 쉐어 하우스에

일본인 한국인 호주인이 살게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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