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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1화 (21/307)

〈 21화 〉 20화.

* * *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는 빨리 친해진다.

그게 외국인이라고 해도 말이다.

이것은 중국인들과 같이 게임하면서 호흡을 맞추고 있고 꽤 성적이 좋은 동생이 한 말이다.

진짜다.

버튜버를 동경해서 먼 땅에 혼자 도달한 말리아 클라크와 버튜버 활동하는 나에 언니가 친해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눈치를 받으며 자란 두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게 보여서 문화적 차이를 뛰어넘은 상냥한 커뮤니케이션에 무심코 웃음이 나온다.

어느 사이엔가 6월이 되었다.

작년과는 다르게 에어컨을 방마다 틀면서 방에 뒹굴며 살아도 걱정이 없는 직장인의 삶이라니… 나는 축복받았다.

특히 작년에 일본의 건식 사우나 같은 더위에 지쳤음에도 불구하고, 관리비가 아까워서 에어컨을 아끼면서 살았던지라 지금, 이 공간이 천국 같았다.

옆방에 새로운 버튜버 (지망생)가 들어오긴 했지만 내 삶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웃기게도 매니저이자 휴학생인 나보다도 데뷔 연습생인 말리아씨가 더 바쁘게 산다.

일찍 일어나 씻은 그녀는 나와 같이 아침 빵 산책을 한 다음 밥을 먹고 나와 두 시간 정도 일본어를 공부한다.

체계적인 것은 회사에서 연계하는 일본어 학원에서 가르치는 과정이 있어서 문법이나 청해는 그쪽은 맡기지만…

나와는 주로 회화를 한다. 심리적 거부감을 무너트리는 역할이래나 뭐래나?

교사 경험이 적은 내가 주입식을 시키는 게 정상 아닌가? 라고 문의를 해 보았다.

그러더니 사람이 계속 공부하면 의욕을 잃어 버리고, 오타쿠에게 친숙한 소재로 일본어로 차근차근 접근하게 하면 학습 능력이 올라갈 것이라는 회사의 명령 아래에 나는 납득했다.

이후 그녀는 12시에 회사로 가서 트레이닝을 한다.

춤과 노래, 발성을 연습한다.

연기는 아직 그녀의 캐릭터 디자인이나 기획이 없으므로 기본만 기른다는 게 지침.

그 후 6시 반에 집에 온다.

반면 나에 언니는 8시 기상후 빵을 먹고 꾸벅꾸벅 졸면서 재미있는 유튜버 동영상을 보다가 잠에 깬다.

이후 혼자서 방송 소재를 찾아 서칭을 하고 나와 같이 12시쯤에 밥을 먹는다.

그 후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낮잠을 한 다음 나와 즐거운 운동시간을 보낸다.

이제는 초등학생 6학년 정도와 비빌 만한 몸 상태가 된 언니는 아직도 울상이며 나와 운동하지만 별수 없다.

내가 나쁜 게 아니라 체육관을 안 여는 일본 정부가 나쁘니까.

네 시 쯤 되면 그녀는 때에 따라서 6시에서 8시에 시작하는 방송 전에 식사를 하거나 아니면 나와 같이 장을 보러간다.

이제는 나에 언니도 먼저 인사를 걸어오는 이웃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지…는 못하지만 내 옆에서 같이 인사를 받으면서 눈도장을 찍는다.

이 정도면 인사도 못 받아주던 옛날에 비하면 낫지 암.

나에 언니는 근래 들어서 합동 방송 제의가 많이 들어오는 편이기에 인기가 서서히 올라가고 있다.

방송 시간대가 좀 더 빨라지고, 이전과는 달리 말을 해도 잘 들어 주고 잘 말해주기 때문에 차분한 분위기의 대화가 길게 이어진다.

물론 폭주하는 선배들을 막긴 힘들지만, 그래도 워낙 상냥한 사람이라 그녀와 대화하는 걸 즐기는 버튜버들이 늘어났다.

저녁은 때에 따라서는 세 명이서 식사, 경우에 따라서는 따로따로 식사한다.

그래도 7시 30분의 티타임은 다들 어지간하면 참가하는 편이다.

그 이후 말리아씨는 부족한 공부를, 언니 같은 경우는 방송을 나는 스스로 운동을 하거나 회사에 쓸 주간 보고서, 그리고 공용 가계부를 작성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게임을 한다.

그렇다.

두 명을 맡게 되어도 아직은 할 만하다고 생각된다.

아, 그래도 최근 들어서는 트위터를 적극 사용하면서 내 존재감을 어필하면서 나에 언니의 방송을 홍보하거나, 내가 안면을 튼 다른 버튜버들의 굳즈도 홍보한다.

집사 이미지에서 메이드의 이미지로 변경이 되는 게 느껴진다라고 언니가 말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둘의 차이를 구분 못하겠다.

아직도 오타쿠 컬쳐는 어렵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미지 변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큐버스 이미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조선의 유교걸로서 치욕스럽기 그지없으나 어쩌겠는가, 이 인기 편승을 거절하는 건 이제는 이쪽 업계인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너무 큰 오만이다.

그래도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들을 유혹하는 그림을 보고 있자니 최근 들어서 절멸한 연애 전선이 떠오른다.

사실 딱히 연애를 해 봐야겠다­ 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오히려 남들이 하는 연애니깐 해 봐야겠다? 정도였는데

이제는 조금 귀찮아졌다.

이전이라면 제일 멋진 남자들과 연애 한번 해 봐야지­정도였는데

생각해 보니 나는 이제 돈도 제법 잘 버는 편이고 경력도 쌓여 가다 보니 매달리는 게 조금 아쉽다.

이게 안정적인 재력이 주는 가치관 변화인가?

가끔 스스로가 두렵다.

그래도 가끔 외출해서 학교 친구들을 만난다.

오늘만 해도 평소 자주 어울리던 그녀들 사이에 껴서 이전에 즐겨했던 인스타그램의 이야기나 최신 유행에 대해서 민감하게 토론했다.

가끔은 가슴 아픈 연애 이야기나 누가 누가 사귀다가 헤어진다는 이야기, 역시 캠퍼스 커플은 별로다­ 라는 의견부터 멋진 직장인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 등등을 말이다.

그렇게 이케부쿠로 거리를 걷고 있자니, 일련의 오타쿠 무리가 지나간다.

가방에 캐릭터 뱃지를 잔뜩 달고 자신이 오타쿠임을 티 팍팍 내는 눈을 찌푸리는 패션

눈알이 200개 달린 가방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어지럽다.

친한 친구인 아유미, 코토하, 아마네가 눈살을 찌푸리고 험담을 한다.

특히 꽤 시니컬한 아마네가 말했다.

“저런 쓸데없는 생활에 돈과 시간을 쓰다니 아까워.”

이전이라면 편히 흘려들을 그 말.

하지만 뭔가 속이 거북했다.

비록 같은 분야는 아니지만, 서브 컬쳐 장르에서 자신을 좋아해 주는 누군가를 위해 지금도 노력하는 그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들의 험담 사이로 내가 유식한 척 의문을 던진다.

“그래도 저런 분야가 돈이 되니까 그러지 않을까?”

이건 돈을 받는 나에게는 진리다.

“저런 사람들이 주는 돈을 받으며 사는 거 치욕스럽지 않아?”

살짝 눈덜미가 떨렸지만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긴다.

사실 이전에도 이런 대화에는 나도 분위기를 타서 열성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인간관계를 해치지 않고 이 거북함을 해소할 방법을 난 알고 있다.

바로 거짓말

“아 동생이 아무래도 게임?쪽 프로로 일하고 있다 보니까.”

“아­ 유나 씨의 그 잘생긴 동생?”

“응, 지금 중국에서… 연봉이 3억 엔 쯤 돼.”

사실이다.

연봉이 많은 중국리그에서 주전 선수로 뛰는 그는 돈을 많이 받는 편이다.

물론 그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0.001% 안에 들어가는 천재들이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천운을 잡아야 이루어 내는, 업계 정점의 이야기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뭐?!”

“그만큼 돈이 된다구.”

이스포츠와 서브컬쳐는 접점이라면 오타쿠스러운 게임 일러스트와 그 파생상품 정도의, 굳이 따지자면 10%의 유사성이지만 뭐 그들이 알겠는가.

그래도 프로 선수인 동생의 인스타에 들어간다.

이전에 동생에게 셀카 찍는 법을 미친 듯이 가리켜서 이제는 자연스럽게 얼굴이 멋지게 찍히는 각도로 올린 인스타를 보여 준다.

아 제발 동생아, 너머리 위로 올리지 말라니까? 너 이마 못생겨서 그 스타일 안 어울려

자기가 잘생긴 척 씩 웃는 그의 모습을 보니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아 씨 못생긴 사진이야.”

“어디어디? 꺄아악 이렇게 생겼다고?”

“예전에 만난 한국 남자는 기분 나빴는데 얘는 잘생겼네?”

잘생기기는 무슨

저거 다 보정이다. 자기들도 알면서 왜 그래?

그래도 같은 부모님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게 어디 가지 않는 모양인지 조오오오금 잘생기긴 한 건 맞았고, 무엇보다도 내 핏줄을 칭찬받는 건 기분이 좋은 일이다.

“내가 얘 사람 만들었지, 살도 빼게 하고 스타일도 맞춰주고.”

“하긴 유나가 스타일이 좋긴 하지.”

“그래서 요즘은 나에게 용돈도 자주 줘.”

뻥이다.

사실 내가 달라고 하지 않는다. 자존심도 상하고

그래도 자기가 상금을 받거나 할 때 주는 건 받는다.

내가 그래도 걔 곁에서 스타일링 해줬는데 이 정도는 받아야지.

사실 용돈이 아닌 월급으로 기존에 원하던 명품들로 슬쩍 바꿨지만 아무튼 동생이 준 돈은 내 지갑에 있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구체적인 돈 내역은 모르지만 바뀐 내 물품들이나 씀씀이를 보고 내 경제사정이 나아진 걸 아는 그녀들이다.

아마 3억엔의 동생은 진짜라고 그들이 믿는 게 느껴진다.

너무 진지하면 딱딱하고 잘난 체 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나는 분위기를 읽고 유머틱하게 과장했다.

“명심해, 돈이 모이는 곳에는 이유가 있어. 그걸 파다 보면 돈을 벌고. 이상 동생 잘 둔 누나의 명언!”

“푸합 유나 그게 뭐야”

“요즘 건방진 거 아니야~~?”

“유나는 좀 건방져도 돼, 꺅 네일 봐 또 어디서 했어?”

“아 거기 그그~”

우리는 그렇게 웃으면서 잡담을 떨다가 역에서 헤어지고 나는 사이타마로 향하는 전철에 탔다

평소라면 즐겼을 금요일 밤의 4인 외출이이전만큼 즐겁지 않았다.

거짓말을 안 해도 즐거운 모임이었는데

언제부터 인가 살짝 내 안의 좋고 싫음의 기준이 달라졌다.

이전이라면 지나칠 편의점의 애니메이션 콜라보 상품들도 보게 되었고

명품 지갑 가격과 한정 피규어 사이에 고민하는 나를 보고 놀랄 때도 있다.

사람관계 또한 그러하다.

가식 없이 얼굴이나 뱃살을 만져오는 나에 언니나, 서로의 허벅지 근육을 만지면서 놀리는 말리아씨와의 만남이 편하다.

마치 화장없이 민낯으로, 가족같은 분위기를 보이는 그녀들과 있자니 거짓말을 할 이유도, 난데없는 험담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다.

이제는 업로드 주기가 뜸해진 내 인스타그램을 잠시 보다가, 트위터로 들어가 어느새 나와 합방을 해 달라고 장난성 트윗을 보내는 고약한 버튜버 선배들에게 답장한다.

[다비 씨, 자꾸 그렇게 성희롱 걸면 에이펙스 부계정으로 저격해 버릴 거예요?]

[아그니 씨와는 콜라보 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공주님이 허락해주시지 않으셔서 ㅠ ­ ㅠ]

[네, 게스트 출연 정도는 가능해요. 아 공포 게임 분석가요? 본사에 연락 넣어볼게요.]

헤실헤실 입꼬리가 풀리는 오타쿠 미소를 참으며 전철 안에서 앉다가 생각한다.

이 정도면 차를 한 대 사서 이타샤…까지는 아니고 드라이브 용으로 몰고 다녀볼까?

마스크를 쓰고 다니다 보니 아무래도 마스크를 쓴 쪽 피부가 나빠진다.

자동차에 대한 여러 상상을 하며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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