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21화.
* * *
나에 언니가 긴장한 두 손으로 책을 잡고 말한다.
“압풀!”
“따라 해보세요. 애플.”
“앗풀!”
절망적이다.
근데 귀엽다.
그런데 이게 일본인에게 먹히려나?
발성 체계가 다른 언어로 힘겹게 발음한다고 이러는 건 차별이다.
사실 외국인인 나만 귀엽게 여기고, 일본인 구독자들은 일본어를 비웃는다 생각해서 이걸 불쾌하게 여길…
잠깐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초급 영어 회화 교재와 컴퓨터, 그리고 나를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나에 언니를 본 나는 꽤 괜찮은 방송 기획이 떠올랐다.
이전이라면 제안서를 쓰고 허락을 맡겠지만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코이즈미씨 최근 글로벌 프로젝트를 하는건 알겠는데 제가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있어요.”
나는 내 머릿속에 번뜩이며 지나간 아이디어를 살짝 가공해서 말했다.
내 제안에 그녀는 살짝 의아했지만 받아들였다.
이 귀여운 건 모두가 봐야 해.
나는 방송 타이틀을 만들기 위해서 프로그램을 키고 다음과 같이 입력했다.
[마계 공주 유리아의 영어 공부 방송]
그리고 옆에는 영어도 추가를 했다. (Makai hime Yuria’s English Study)
그동안의 유튜브 분석으로 일본어가 되는 외국인들이 제법 본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혀 짧고 애기 발음이 나는 나에 언니가 최선을 다해서 하는 발음이
그들에게 귀엽게 들린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떨까?
영어를 공부하는 일본인 하면서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로의 언어에 대해서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지 않을까?
나도 일본의 귀여운 버튜버들이 한국어를 배운다고 하면 당장 눌러볼 용의가 있다.
물론 한국인인 나라도, 한국어 보다는 영어를 배우는 방송이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킬거라는 사실은 잘 알고있기에 외국어 공부 방송은 ‘영어’로 확진했다.
물론 문화적 갈등이 생기지 않게 오해를 방지하는 안내 문구 정도는 작성해야겠지
유리아는 놀려도 공부하는 다른 사람들은 놀리지 마! 라고 유리아가 직접 살짝 화내는 표정의 캐릭터의 얼굴을 그려서 강조했다.
도발적인 채팅으로 어그로를 끄는 트롤러 시청자들보다는 온화한 시청자들이 훨씬 많은 유리아의 방송이기에 일이 크게 번지지 않을 것이다.
다문화주의 코드를 건드리는 방송 주의 문구에 만족을 하고, 커뮤니티에 홍보글을 올렸다.
아쉽게도, 혼자 진행해도 되지만 그녀의 교육 의욕을 높이기 위해서 나도 옆에서 돕는다고 홍보했다.
방송 시간 동안 말리아가 아쉬워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녀의 존재나 목소리는 데뷔전까지 최대한 숨겨야 하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오픈 영어 교습 지원 사이트에 들어가서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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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에 대한 존중은 어디에서 오는가?
존중은 타인에 대한 배려에서 기인해서 상대방을 정중히 대하는 걸 존중이라 한다.
이게 인간 단위가 아니라 문화 단위로 확장하게 되면?
타 문화권의 상대방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한 가장 획기적인 방법은?
바로 ‘외국어 공부’다.
관광지에 가서 자기들의 언어가 무조건 최고라고 생각하여 언성을 높여 이야기하는 외국인들의 무례를 보며 불쾌감은 가지는 이들은 글로벌 시대에 결코 작지 않다.
그래서 일본인이 영어를 배우려고 하는 주제의 방송은 영어권 시청자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기획이다.
이거면 먹힐 거다, 라고 생각한 미국인 리암 스콧은 바삐 출근하는 아침에 버스 안에서 자기 최고로 좋아하는 버튜버를 위해 열심히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홍보를 했다.
비록 자신이 출근하는 시간대에서는 삼십 분 정도의 시간만 즐기고 출근을 하기에 실시간 방송을 볼 수는 없지만, 여자 친구의 불륜으로 남녀 관계에 상처를 느낀 그에게 있어서 현실 여자가 생각나지 않는 비음이 섞이지 않은 차분한 목소리에 놀리는 맛이 있는 유리아의 방송은 마음의 치유가 되었기에 가능하면 실시간으로 보려고 한다.
아무튼, 그런 유리아가 영어를 배우는 영상이라니?
이전에 유리아가 영어로 쓰여진 게임의 텍스트를 읽지 못해서 이야기는 스킵했던 기억이 떠오르지만…이제서라도 영어 공부를 시작 한다니 왠지 뿌듯함이 들었다.
특히 일본인들은 영어를 잘 배우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그런 따스한 배려가 기분이 좋았다.
거기다가 (비록 자신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같이 버튜버 덕질을 하는 레딧의 친구들이 좋아하는 섹시한 서큐버스 집사, 최근에는 메이드로 디자인이 바뀐 메이드 라짱이 나온다하니 목소리만 듣고도 그녀에게 반한 사람들도 방송에 꼬시기 위해 홍보글을 투척했다.
분명히 영어 문화권에서 버튜버를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커뮤니티가 커짐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존재를 잊은것마냥 행동하는 다른 버튜버 기획사들과는 다르게
선라이즈 프로덕션은 알게 모르게 신경쓰는 요소들이 많아서 버튜버를 덕질하는 대다수는 선라이즈쪽에 강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커뮤니티의 시초부터 열심히 활동을 한 리암은 이게 외국인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첫 행보라고 제멋대로 판단했다.
‘이참에 버튜버를 보는 미국인 팬들을 늘려서 슈퍼챗을 유도 해야겠다.
외국인 시청자 수와 도네이션 금액이 늘어나면 센스 있는 선라이즈 프로덕션이 우리를 위한 버튜버를 내주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하며 말이다.
빵빵!
평소에 막히면 짜증 나는 정체 구간이지만 오늘만큼은 이 정체구간이 축복스럽다고 생각하며 방송에 집중했다.
방송에 들어가니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주의 문구였다.
“일본의 발성 구조로 영어를 발음하기 어렵습니다. 문화의 차이를 이해해주세요.”
그리고 그 밑에는 유리아의 서툰 영어로 또 다른 문구가 보인다.
물론 권속들은 내가 서툰 모습을 보인다고 놀려도 상관없어, 대신에 다른사람에게 그러지 마!
자신은 놀려도 된다니… 역시 유리아는 천사다.
아무튼 영어 사용자로서 일본어를 공부한 그는 이 말을 이해했다.
확실히 모음이 부족한 일본어로는 힘들긴 하지
거기다가 외국어를 자기 멋대로 변형하는게 어찌나 심한지 이전에 번역을 할 때
빌딩(Building)을 비루(ビル)라며 제멋대로 부르는걸 보고 얼마나 어이없어했던가
아무튼 주의 문구가 사라지고 그의 최애 버튜버인 유리아가 나온다.
콘유리~ 라고 말한 그녀는 경위를 설명했다.
최근에 메이드의 권유로 영어 배우는 방송을 시작한다고 했고, 영어를 잘 모르니 봐달라고 했다.
방송 화면으로 보이는 사이트는 난이도에 맞게 영어 단어와 문장이 나오는데, 정확한 발음을 해야 기계가 인식을 하고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구성이었다.
먼저 나온 단어는 Apple
가장 기본적인 단어다. 유아용 알파벳 익힘에도 나오는 그런 단어.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정확한 발음의 [애풀] 을 들은 그녀가 그 단어를 따라 발음했다.
[앗푸루]
[애플]
[앗푸루]
[애플]
[압푸루]
엄격한 인터넷 인공지능은 그녀의 발음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녀는 같은 단어를 열심히 발음하고 있었다.
그래
사과를 말이다.
…
알고 있다.
A는 아로 발음되고 A와E를 이어 에이 플 이라고 발음하지 않는 이상, 일본식으로 읽으면 이런 발음이 난다는 걸.
하지만 어떻게 하나, 앗푸루, 압푸루 하면서 웅얼 거리는 게 조카 생각이 난다.
당황하는 게 느껴진다.
미국의 악센트로 메이드라가 얌전히 말한다.
[자 따라 해보세요. 에이]
[에이]
[플]
[플]
확실히 메이드는 영어를 공부한 사람이다. 발음의 기본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이어서 말할게요 에이플]
[에이플!]
[자 이제 다시 애플!]
[에입풀!]
탁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마를 탁 치는 소리일 것이다.
다행히도 영어 사이트는 그것을 인지했는지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그녀의 영어 발음이 계속된다.
Suit
[수이트!]
정장이 과자(Sweat)가 되는 과정을 보니 속이 답답하다.
아니 귀엽긴 하고 노력하는 게 느껴지는데
자꾸 원하는 발음이 안 나와서 답답해하는 그녀가 결국 혀를 베베 꼬면서 [에이레이베이]같은 귀여운 소리를 내면서 혀를 푸려고 하는데 듣는 귀가 즐겁기만 하다.
마치 아기의 옹알이를 보는 기분이 자꾸만 든다.
영어 사용자로서 속이 답답한데 일단 귀여우니 본다.
그래도 저렇게 열성적으로 영어를 배우려고 한다니,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게다가 혀를 꼬는 게 무슨 조카보다 귀엽단 말인가?
방송에 열중하던 그의 어깨를 건드리는 이가 있었다.
“손님, 마지막 정거장입니다.”
그때야 리암 스콧은 버스가 자기가 내려야할 정류장을 한참 지나 종점까지 이동했다는걸 자각했고
자신이 망했다는 것을 알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