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22화.
* * *
“유나 씨 사랑해요.”
“직장내 연애는 금지 아닌가요 여기?”
“여자끼리 사귀면 허락해 줄 걸요?”
그게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처음의 퍼펙트 카리스마 오피스 레이디는 어디 가고
이제는 대놓고 날 편하게 보는 코이즈미씨가 회사 로고가 그려진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채로 말했다.
이거 회의 맞지?
다음엔 나도 대충 입어야겠다고 다짐하며 자료를 넘겼다.
“제가 한 영어 교습이 밈이 되었네요?”
“평소에 서구권 유입자가 많은 3기생에게는 꽤 강조하고,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 시도하긴 해.”
“그래도 언어를 배우는걸 조롱하거나 가벼운 이미지로 소모가 안 됐으면 좋겠네요.”
나만 해도 콩글리쉬 발음을 고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글로벌한 시대에 타 문화권을 비웃는 그림이 고착되는건 나쁘다고 생각한 나는 적극적으로 어필했고 코이즈미씨 또한 잘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코이즈미씨도 하실꺼죠?”
“에? 제가 왜요?”
“언니 총괄이잖아요.”
“유능한 매니저 동생이 있는데?”
“파업할 거야.”
“돈으로 때릴 거야.”
사실 회사 차원에서 서구권 커뮤니티에 버튜버의 존재들을 알리기 위해 노력을 했는데, 우습게도 혀 짧은 유리아의 영어 교습 영상이 퍼져나가면서 꽤 유명해졌다.
그렇기에 기존에 준비하던 마케팅을 폐기하고, 주요 커뮤니티에 광고를 좀 거는 걸로 비용절감을 많이 했다고 했다.
사실 유리아는 글로벌을 노린 이유로 영어 방송을 진행했다기 보다는 그녀 스스로 성장하고 싶어서 영어 공부를 선택했는데그 노력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떴다.
물론 나는 그런 사실을 굳이 입에 담지 않았다.
대신에 유튜브 통계 수익을 보면서 말했다.
“저희 이러다가 라이브 슈퍼챗 후원쪽 순위는 저희 소속 버튜버들이 다 먹는 거 아니예요?”
“그러게… 사장도 몰랐을 거야.”
유튜브 생방송의 도네이션 내역을 쭉 훑어본다.
말 그대로 하루에 억 단위로 정산금이 쌓이고 이러한 바닥이 유명해지면서 요즘 들어서 개인 버튜버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었다.
바야흐로 전국 버튜버 시대, 솔직히 말해서 소름이 돋는다.
“그리고 유나야 이건 뭐니?”
“아, 아무래도 차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공무 목적으로 말이죠.”
내가 지원한 업무 지원 요청서에 쓰인 ‘자동차’내역이다.
“흐으음…”
“그래야 제가 콜라보를 다니겠죠?”
예전부터 내가 나에 언니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방송에 게스트로 참여하거나 콜라보 방송의 진행을 맡기를 원하는 코이즈미씨의 부탁이 잦았기에 나는 무적의 대답을 냈다.
“혹시 면허증 시험 공부 필요하니?”
역시 코이즈미씨는 날 굴릴 생각밖에 없어
그 질문에 나는 손가락을 세 개 들어 올렸다.
“아 한국에서 아버지 때문에 1종 보통면허 1종 대형면허 2종 수동면허를 가지고 있어요.”
“…?”
“아, 한국하고 일본은 조금 다르려나요? 몰 수 있는 차종이…”
대충 승용 자동차부터 버스까지 몰 수 있고 자동기어까지 다룰 줄 안다고 말하니 그녀의 표정이 다이내믹하게 변했다.
“… 아버지가 뭐 하시는 분이야? 자동차 재벌?”
“아 중고차 딜러세요.”
그것도 꽤 잘나가시는
남자의 가치를 몰고 다니는 자동차로 판단하는 과격한 자동차주의자시다.
그러니까 그 나이에 장난감 자동차 모으다가 혼나셨지.
국제 면허증만 발급받고 몇 번 운전 연수하면 금방 적응하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무더운 여름에 땀내 나는 사람들 사이에 껴서 이동하는 전철은 지옥이다.
하지만 자동차는?
원하는 음악이 나오며 때에 따라서는 노래방도 되고 무엇보다도 움직이는 에어컨이다.
그래 움직이는 에어컨.
하지만 나에게 진심으로 자동차를 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이래저래 재무지표를 보던 코이즈미씨는 일단 거절했다.
아무래도 일반 매니저인 나에게 차를 지원하면 다른 매니저들에게도 지원을 해야 하는데 차별이 되니 말이다.
하기사, 내가 좀 잘나간다고 해도 결국 100만 버튜버들을 관리하는 다른 매니저분들의 도움도 있기에 회사가 큰거지.
조직생활에서 지나치게 튀는 건 금지다 금지.
사실 자동차를 지원 받을거라고는 생각은 안했기에 어쩔 수 없이 어깨를 으쓱인다.
더군다나 요즘은 3D쪽 제작 단가가 올라가고 전문적인 연출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며 지출이 나간다는걸 아는 나는 납득했다.
“대신 업무 지원비로 좀 넉넉히 줄 수 있을 거 같은데… 어때?
가령 메이드 출장비 얼마얼마 라거나 하는식으로 말이야.”
“으, 가사지원 안 해요 방송지원 해요.”
“그나저나 예전엔 나에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던데 갑자기 왜?”
“이제 언니는 저 없이도 잘하니까 전 가끔 돕고 다른 분들 돕는 게 좋지 않아요?”
“아니 회사적으로 보면 이득인데… 나에씨가 허락할까?”
최근에 웃는 빈도가 늘어나고 누가 보더라도 불안증이 사라진 그녀의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이제는 중학생 1학년과 겨루어 볼 만한 신체 조건이 된 것도 이전에 비교하면 고무적이었다.
그리고 허락이라니, 나는 상식적으로 말했다.
“어… 사람이 애도 아니고 어떻게 저만 보면 들러붙고 놓아주지 않을 리 있을까요? 그래도 저보다 언니인데.”
“음… 유나 씨가 이런쪽으로는 아직 둔감하네, 아직 오타쿠력이 부족해서 그런가?”
“전 그 오타쿠 감성에 거리두기가 제 매력이라고 보는데요.”
누가 뭐래도 난 쿨한 메이드다.
하지만 그녀는 무언가 다른 걸 읽었는지, 이마를 짚는다.
“에휴, 일단 수당 정산해서 줄게. 회사 법무팀 가서 모르는 거 묻고.”
“그럼 새로운 분들과 콜라보하게 되면 말씀드릴게요.”
사람은 늘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성장을 해야 한다.
그게 나의 지론이다.
날 믿어 준 그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일단 국제 운전 면허를 따기 전까지 시간이 꽤 있어서 천천히 생각해 볼 문제다.
작열하는 7월의 무더위를 뒤로하고 전철로 향하니 정말로 기운이 빠진다.
집에 돌아온 나는 에어컨 밑에 더위를 식히는 언니를 보았다.
일정한 생활패턴으로 찾은 건강한 몸
적당한 영양보급과 운동으로 이제는 중학생 1학년과 겨루어도 될 만한 신체조건을 갖춘 언니다.
최근에 가슴도 조금 커지기도 했고 음
그래도 아직은 애처럼 보이는 언니에게 소다맛 아이스크림을 물렸다.
일본에서 저렴한 아이스크림인 가리가리 군이다.
“난 딸기 맛이 좋은데.”
“딸기 맛도 있지요~”
소다맛 아이스크림을 빼고 딸기 맛을 물렸다.
버리기 아까우니 내가 먹어야지.
“유나 더럽지 않아? 내가 먹던 건데?”
아 이건 너무 한국 감성이었나?
그래도 더럽다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는데
아, 확실히 이런 게 좀 깬다는 의견을 작년에 들은 거 같은데, 뭐 어때
“더럽다뇨 딱히?”
뻔뻔해지는 게 답이다 이런 건
“그, 그 간접키스.”
“풉, 언니 진짜 초등학생 4학년 남학생이예요? 그런 거 하나하나 신경 쓰는 게 애 같다구요.”
“아니거든! 유나에게만 이러거든!”
그래도 이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맛을 나에게 말하기도하고
만화나 게임 관련된 주제가 아닌 것에도 어조를 높여서 말을 한다.
표정이 풍부해지고 몸짓에 활력이 드는걸 보니 역시 육체의 건강이 정서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
애초에 심각한 증세였으면 회사측에서 이미 신경 안정 약을 처방했겠지?
근래 들어서 방송 때 만큼이나 표현이 다양해진 나에 언니와 보내는 시간이 더욱 즐거워졌다.
아, 이럼 큰일인데
“유나 이거 어쩌지?”
스마트폰을 보던 그녀가 키리누키를 보여 준다.
전설적인 사과 발음 방송, 일명 압뿌루 영상이군.
열심히 발음하는 그녀와 어느 미국 유아가 사과를 앱풀 하는 동영상을 더 해서 아기 발음하는 유리아의 이미지가 생긴 것 같다.
귀엽기만한데 뭐가 문제지?
“내 카리스마가”
“아, 언니 그건 저에게도 무리.”
카리스마를 찾으려고 하는 그녀의 상황과 설정이 귀여운 거지 눈꼽만큼도 없다.
실제로도 카리스마 있는 상황을 쥐어 주어도 10초만에 망치는 게 그녀지 않던가?
“그래도 영어권에 많이 알려졌네요?”
“응, 서양권 리스너분들이 꽤 많은 편이야 나.”
“언니의 영어는 못하는데…”
“키리누커들이 늘 힘내주니깐 말이야.”
그러고 보니 요즘엔 한국어로 된 키리누커 채널이 늘어났다.
실제로 한국어로 유리아를 치면 언니의 영상을 이쁘게 편집한 채널들이 잘 나오니 말이다.
뿌듯하다.
예전에는 혼자서 기획하고 방송을 하는 것만으로도 30만의 구독자를 끌어모은 언니다.
몇 번 화제의 파도와 밈을 타면 성장하는 게 당연할 정도로 방송 자체를 탄탄하게 하는 사람이니, 사실은 나 같은 거 도움 없더라도 성공을 했겠지.
이제는 메일에 온갖 기획 제안서와 광고 제안이 들어온다.
그녀는 점점 더 커져가는 버튜버 시장의 정점은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영역을 갖추고 성장을 하는 언니는 누가뭐래도 이 시대의 스타다.
무엇보다도 인간관계를 점점 넓혀 가는 게 보인다.
혼자만 진행했던 방송 빈도가 높은 예전과는 달리, 다양한 선배들이나 후배들과 합동 방송을 한다.
주로 진행하는 건 마인 크래프트지만
워낙 도전을 좋아하는 유리아는 다양한 게임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제법 진행된 합동 방송 중가장 유명한 건 100만 유튜버 선배와의 합동이다.
특히 게임을 못 하기로 소문난 유리아는그녀와 비슷할 정도로 처참한 게임 실력을 가지면서도
게임을 좋아하는 순수한 게임 바보의 고양이 컨셉의 아카리 선배와 일명 ‘아카유리’방송을 몇 번 진행했다.
성향이 맞는 두 사람은 게임 캐릭터가 움직이는 게 웃기다는 이유로 오 분간 말도 못 하고 서로 웃음을 터트렸는데 순수하게 게임을 좋아하는 그 모습이 다양한 영상으로 나왔다.
그 밝고 부드러운 분위기에 두 캐릭터가 행복하게 게임하는 수많은 그림들이 트위터를 점령했었다.
아마 트위터에 게임 개발자들이 자기 게임을 그렇게 웃으면서 즐겨 준다는 것에 감동해서 절절한 감사 인사를 남긴 것으로 안다.
각자 개성을 보이며 살아남기 위한 시대
아이돌 그룹을 위해 만든 선라이즈 프로덕션 이건만, 근래 들어서 외국에 자가격리로 정신줄을 놓아서 기존의 방송 컨셉을 집어치우고 본연의 광기를 보이면서 급하게 성장하는 ‘러브’선배를 필두로
선라이즈 프로덕션의 버튜버들은 본연의 ‘청초한 이미지’를 쓰레기통에 압착시키고 폭주하고 있었다.
분명한 유튜버의 성장세에 방송 또한 다양해지고 재미있었지만, 초반의 부드러운 분위기를 기억하는 이들이 유리아나 아카리 같은 버튜버들에게 몰리면서 새롭게 인기를 얻고 있었다.
아무튼 높은 톤의 아카리의 웃음소리와 차분한 톤의 유리아의 웃음소리만 따서 재생한 그 동영상만 26만 재생을 넘게 되면서 유리아의 이미지가 새롭게 생겼다.
선배들의 거친 광기의 방송에박살 난 자기 꿈을 붙잡는 사장의 우는 모습과
그것을 구원하는 듯한 만화 연출로 그의 멘탈을 치유해주는 유리아 혹은 아카유리 밈은 이 바닥에서 가장 유명한 밈이 되었다.
이전과는 달리 확실히 방송 외적으로도 성장한 언니를 보면서 나는 안심했다.
이 사람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언젠가는 내 도움 없이도 잘 나아갈 수 있겠지?
나에게 배를 드러낸 그녀의 몰캉한 뱃살을 만지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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