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23화.
* * *
버튜버가 산다는 것 빼고 특별할 것 없는 사이타마의 쉐어 하우스에 비극이 찾아왔다.
그날은 조금 특별했다.
평소라면 휴대폰을 끼고 사는 유나가 실수로 휴대폰을 충전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여름 방학을 맞아 친애하는 언니 집에 놀러 온 버튜버 동료 미우 덕분에 집에 마실 것이 좀 많이 필요해진 점.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좋은 미우가 뼈를 깎는 노력으로 빠른 시간 안에 일본어가 좋아진 말리아와 잡담을 나누는 게 보기 좋아서, 그녀들을 방해하지 않고 휴대폰을 충전 해 둔 채 유나가 혼자서 집 앞 편의점에 나갔다는 것.
그리고 좋아하던 제품이 없어서 집 앞 편의점 보다 조금 더 먼, 10분 편의점에 놀러 가는김에 이웃과 만나서 잠시 수다를 떨었다는 것
휴대폰을 두고 간 유나의 30분 외출
그 30분 안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뚜두룻 두두 뚜두룻 둥]
유나는 주로 통화를 하거나 라인 토크를 한다.
하지만 카카오 톡의 보이스토크는 잘하지 않는다.
주말에 가끔 자기가 걸지, 그녀의 한국 지인들은 카톡을 남기고 날을 잡아 연락하는터라 이렇게 먼저 전화는 잘 걸지 않는다.
본래 대로라면 타인의 통화를 받는 것은 무례지만, 나름 친근한 편이라고 자부하기도하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올라서 이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소통하려고 하는 나에는 통화를 받았다.
누가누가 전화했다고 메모를 남기면 유나가 좋아하겠지라는 발상을 하며 말이다.
일반 전화인 줄 알고 유나의 휴대폰을 바라본 나에에게 불행히도, 한국어를 읽을 줄 모르는 나에는 초록색 통화 수락 버튼만 얼떨결에 누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거기에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서 스피커처럼 보이는 버튼을 눌렀다.
[@@@@?]
“꺄아아악!”
알 수 없는 한국어
하지만 그 음성은 남성이었다.
유나에게 남친이 있었어?
나에의 머릿속에 전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비명을 듣고 온 다른 두 사람들도 유나의 휴대폰에 울리는, 그 휴대폰의 주인을 찾는 남성의 목소리에 놀랐다. 유나를 찾는 남자의 목소리가 주택에 울렸다.
[유나 @@@@ @@@@? @!@@@!]
한국어로 무언가를 하는지 모르지만, 유나를 저렇게 친근하게 부르다니?
그래 남자친구…
솔직히 유나 같이 잘나고 멋진 사람이 남자 친구가 없을리가 없지.
본인이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저렇게 이름을 편하게 부르는 건 남자 친구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하고,="" 아름답기="" 그지없으면서="" 누구에게나="" 친절한="" 자신들의="" 친구="" 유나는="" 남자에게="" 당연히="" 인기가="" 많다=""/>
<그런 유나에게="" 일본에서="" 만나는="" 남자="" 친구는="" 없어도,="" 한국에서="" 남자친구가="" 있다고="" 생각되는="" 건="" 당연하다=""/>
<유나에게 남자친구가="" 있다.=""/>
<유나에게 남자친구가="" 있다.=""/>
<유나에게 남자친구가="" 있다.=""/>
어마어마한 정적이 그들 사이를 멤돌았다.
표정이 경악에서 슬픔, 분노로 이어진다.
그래, 사실 유나 같은 사람에게 남자가 없는 게 이상하지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흐름.
그녀들 사이에 차가운 바람이 분다.
‘사실은 자신들을 위해 남자 친구와 연락을 기피하고 많이 배려해주었으니, 그녀에게 비밀을 지키는 게 맞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나에와 말리아
‘유나 언니를 꾀어서 이번에 합동 방송에 같이 출연을 제의하고 그다음에 좀 더 친해진 다음에 겸사겸사 어머니에게 패션 모델 알바 자리 슬쩍 제안한 다음에 옷같이 가져다주고…좀 더 유나 언니랑 이것저것 하려고 했는데에….’
원대한 목적을 가지고 온 미우의 머리가 멈춘다.
[유나, 누나, 있어요?]
어설픈 일본어가 들린다.
그래, 연하 남친 좋지…
각종 오타쿠 매체에서 나오는 연하남친 연하누나의 달달한 연성을 가슴 아프게 떠올리면서 그녀들은 낙심했다.
[그, 여보세요?]
일단, 남친에게 인사하자.
그리고 지켜보자
그가 유나의 곁에 있을 만한 사람인지
만약 제대로 된 직장가령 세전 수입이 1억엔이 안된다거나
여자를 후리고 다니는 인상이라 나중에 유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거나
신체 건장하고 자기관리를 완벽히 해서 이웃에게서 모범이 되고 더 나아가서는 지역 사회에 존경받을만한 인사인지 아닌지 하나하나 다 따질것이다!
[누나…괜찮으려나?]
유나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에는 심각한 걱정이 깃든다.
정말로 친한 듯, 알 수 없는 한국어로 들리는 그 목소리
거기에 담긴 걱정과 상냥함 만큼, 그녀들의 마음은 철저히 찢어진다.
아 이 남자는 정말로 유나를 좋아하는구나라고 말이다.
[혹시, 누나에게, 무슨, 일 있어요? 전 남동생, 김세호라고 합니다.]
이어서 어설픈 일본어가 울린다.
남동생
혈연관계
부모님이 나은 자신보다 어린 혈연관계
즉
남자 친구가 아니다.
아
떠올랐다.
유나가 지나가듯 가끔 욕하는 남동생
잘생기지도 않는 주제에 인기 얻어서 까부는 게 한 대 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무슨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버는게… 프로게이머라고 하던가?
그녀들은 ‘남동생’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남동생이라고 하는것은 즉
가족이다.
도통 가족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유나의 휴대폰에 걸려온 남동생의 전화라?
그녀들의 머리속에 한 가지 문구가 떠올랐다.
‘장수를 쓰러트리려면 말부터 쏘아라’
지금은 말을 쏠 기회다.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선수를 친 건 미우였다.
[네, 안녕하세요? 유나의 친구 미우라고 합니다.]
일본어가 능숙하지 않는 그를 위해 또박또박 말했다.
그 목소리는 평소의 미우 목소리가 아니다.
그 목소리는 성스럽지 않는 성녀, 클레 방송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교태 가득한 남자를 홀리는 성녀님 모드의 남자 리스너의 마음을 지배하는 매력적인 여성의 보이스톤이었다.
갑작스럽게 변한 미우의 목소리 연기를 듣고 나에와 말리아는 깨달았다.
이건 전쟁이라고.
[저는 유나의 룸 메이트이자 베.스.트.프.랜.드 인 나에라고 해요.]
최고로 친한 친구라는 의미의 베스트 프랜드
일본에는 쓰이지 않는 표현이다.
나는 유나와 이런 한국식 친근한 표현을 나누었다고 증명하는 나에는 자신 있게 웃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일본에서 유나와 가장 친한것은 자신일것이다… 라고 믿는 나에였다.
[유나 씨의 룸메이트이자 운동 친구인 말리아 클라크예요.]
말리아는 일본에서 건너온 이후 최대한 자신의 두 뇌가 돌아가고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행히 상대도 일본어를 잘 모르는 대상!
당당하고 자신 있게, 외국인임을 숨기지 않는 혀 굴림으로 캐릭터 성을 잡는 그녀의 일본어가 나왔다.
그 인사를 시작으로
누가 유나와 친밀한가 경쟁을 나누는 대화가 오갔다.
먼저 나에
유나와 가장 친밀하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 그녀는 유나가 자신에게 해주는 온갖 정성을 설명했다.
가령 매일 아침 자신을 깨워주러 오는 친밀한 동거인이라거나
유나가 해주는 밥을 먹고 유나와 서로 머리를 말려주고 유나와 때때로 같이 밤을 보내는
마치 누가 들으면 장래를 약속한 사이라고 말하는 듯한 그녀의 말에는 일말의 망설임이 없었다.
여기에 있는 나에는 겁이 많은 평소의 쿠로가와 나에가 아니라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려는 쿠로시로 유리아였다.
그리고 말리아
사실 그녀는 유나에게 담고 있는 감정이 사랑인지 아닌지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건 자신의 인생을 구원해준 사람은 유나라는게 확실했고
매일 아침 그녀와 같이 운동을 나가면서 쌓은 ‘우정’은 이 두사람에 비해서 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른 건 몰라도 유나와 가장 친한 사람은 자신이어야만 했다! 라는 각오를 품은 그녀는
외국인이 가지는 그 직설적인 표현으로 ‘유나를 좋아한다’ 라고 솔직하게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미우
그녀와 유나의 접점은 작다.
만나 본 것도 한 번이 다고, 버튜버의 방송 주인은 그 본인이 되어야 한다는 답답한 신념때문에 유나를 자주 합동 방송으로 불러내지도 못한 그녀지만…
“네, 유나 씨가 말이죠.”
아직은 완벽히 벗어내지 못한 아싸인 나에와
일본어가 아직 숙달하지 못하면서도 아싸 기질이 있는 말리아와는 달리
미우는 정말로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녀와 함께한 업무 미팅은 잘나가는 4차 산업의 회사에서 이루어지는 즐거운 밀당 연애였고
그녀와 함께한 식사는 딱딱한 비지니스 식사가 아니라 한국에 대해서 강한 호가심을 가진 자신을 상냥하게 대해주는 친구 이상의 밀접한 데이트가 되었고
그녀와 함께한 방송 내용은 커플들의 브이로그 일상과 다름없는 식의 말도 안되는 선동과 날조가
한창 성장중에 있는 80만 유튜버의 입으로 포장이 되어 나왔다.
미우는 두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강했다.
경험을 압도하는 화술에 두 룸메이트는 손을 잡았다.
그리고
“너희들 뭐하는 거야? 내 휴대폰에서 떨어져.”
어느새 마실 것을 사 온 유나의 등장에 그들의 싸움은 막을 내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