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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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유명한 게임
상금 금액은 조금 밀릴지는 몰라도, 인지도 하나만큼은 세계 정점에 달하는 레전드의 프로 게이머 김세호는 근래에 누나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걱정했다.
매일 두세 개의 포스트를 올리는 그녀였다.
동생인 자신이 봐도 아름다운 셀카
언제나 소재가 튀는 아이템 선정
다양한 패션을 소화하면서도 그 하나하나에 자기 퍼스널 패션을 자연스럽게 표현해 우아하기 그지없는 자기 누나.
들어오는 광고들을 공부에 집중하고 싶다고 거절한 인스타에서도 알아주는 멋진 누나였다.
방구석 폐인 오타쿠였고 게임밖에 모르던 자신에게
게임 따위는 패배자나 하는 거라고 혼내던 어머니에게 도망쳐 울고 있는 자기 뺨을 어루만져 주며 프로가 돼보라고 권해준 누나
그녀의 응원 덕분에 프로가 된 그는 자기 누나가 늘 고마웠다.
거기에
프로가 되고 나서도 고등학생인 누나에게 끌려가서 얼마나 호되게 운동하고 몸을 가꾸었는가 로션은커녕 스킨의 존재도 몰랐던 자신에게 화장품을 바르게 하고 피부를 관리하게 했다.
그것만으로도 게임만 하느라 외모를 가꿀 시기를 놓쳐 지금 고생하는 동료들에 비해서 자신이 얼마나 축복받았는지 아는 그는 늘 누나의 근황을 알게 모르게 챙겼다.
철없던 학생 시절이 아닌 성인이 된 그는 알고 있다.
프로 게이머 김세호는 그의 누나 김유나가 빚어낸 우상이다.
그러기에, 대게 친누나들과 다툼이 잦은 많은 남매사이와 달리
그는 누나가 저보다 잘난 인간임을 인지하고, 존경을 받고 그녀를 대해서 그런지 서로의 우애는 좋다고 자부한다.
자존심 강한 그녀는 동생이 번 돈을 받지 않는다.
오타쿠인 자신과 인싸의 삶을 살아가는 누나를 이어줄 만한 것은 게임 뿐이기에 동생은 중국에 누나는 일본에 있어도 게임으로 자주 교류를 했지만.
바빠진 자기 일정과 누나 또한 바쁜지 게임에도 잘 들어오지 않아서 알게 모르게 걱정되었다.
평소라면 자존심을 지키면서 누나가 먼저 연락 오길 기다렸지만…
이 주일 동안 인스타그램이 업데이트되지 않는 걸 보고 결국 먼저 연락했다.
전화를 받은 건 누나의 일본인 친구인 것 같았다.
그런데 한국어가 들렸다고 저렇게 놀라 하다니…
당황해서 일본어로 자기소개를 했다.
누나 때문에 들키긴 했지만, 자신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단련된 일본어였다.
그 순간 들린 숨소리와 정적
이후에는 오히려 누나의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어디선가 들어 본듯한 목소리들과 말로만 듣던 일본어 배우는 외국인의 톤을 듣고 역시 인기 많은 누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게 다라고?”
“응, 그냥 누나 걱정도 됐고, 코로나로 향수병 걸린 친구 생각나서 누나도 혹시나 해서 했는데… 코로나인데 친구들 사이에 있나 봐?”
“나 쉐어 하우스잖아, 거기에 네 명 모인 거야.”
“오, 사회적 거리 두기 무시해버리기~”
“응 네 명이야~”
시시콜콜하게 잡담을 나누다가 결국 묻는다.
“누나 요즘 인스타는?”
“… 명품이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그 뻔해 보이는 거짓말을 모를 리가 없다.
“이전에는 그런 거 없이 잘 올렸잖아? 인스타 중독 누나 어디 갔어?”
묘하게 추궁하는 듯한 동생이 평소와는 다른 것 같아 유나 또한 목소리를 진지하게 깔고 물었다.
“… 넌 내가 바뀐 게 신기하니?”
“아니 신기한 건 아니야.”
“…?”
“누나는 늘 자기에게 엄격했잖아, 물론 누나가 인싸 성향인 건 알겠는데 타인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해서 그런지… 왜 내가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늘 엄격하게 단련했잖아.”
식단조절, 운동, 네일관리 등 외모를 가꾸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인싸 중에서도 유난히 최고가 되길 원하는 그녀는 많은 시간을 패션 공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으로 유행을 따라가고 쇼핑에 긴 시간을 투자해 늘 뒤떨어지지 않기를 단련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그녀가 얼마나 치열하게 사는 것을 알고 있던 그였다.
“그렇지.”
“그런 사람이 언젠가는 풀어지겠지, 풀어지겠지 생각했는데 풀어진 거잖아. 오히려 누나가 어깨 힘 풀고 살아서 좋은데?”
“야, 내가 인싸로 사는 건 내 스타일이야.”
“근데 누나 취미가 결국 뭐야?”
취미?
이제는 버튜버 덕질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전에는…
쇼핑?
타인과 교류하는 건 재미있고 인간관계를 만드는 취미였으나 엄밀히 말하자면 인맥 관리의 수단 중 하나다.
특히 자신은 살 게 없는데 분위기에 타서 쇼핑은 싫어했으니 말이다.
모임?
즐거운 건 분명히나 모임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예쁘고 센스 있고 스타일 좋은 한국인 유학생’을 연기하는 그녀기에 즐거움보다는 사회적 평판 관리의 수단 중 하나다.
특히 남자가 낀 모임에서는 몸을 조심하느라 얼마나 긴장했던가
게임?
그나마 즐긴다고 말할 수 있는 범위지만 경쟁 게임을 즐기는 그녀는 이겨야만 성질이 풀리는데 타고난 재능이 높은 탓에, 행복의 역치도 높다.
천상계에 도달해서 뼈를 깎는 노력으로 승리를 쟁취해야 하는데
패배의 스트레스, 실력 유지를 위한 게임 공부 스트레스가 승리의 스트레스를 이긴 시점에서 즐기지는 않는다.
가끔 심심풀이로 하지.
다른 게임들도 하면 트로피 수집이나 효율적인 것만 추구하고 그 과정에 느끼는 잠깐잠깐의 재미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한 번 마음 먹기가 좀 힘들다.
근래 들어서는 좋은 컴퓨터로 해 보고 싶었던 것들을 건드리다가 말았기에 게임이 자기 진정한 취미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걸 빼면 즐기는 건 나에 언니 방송을 비롯한 버튜버 방송을 즐기는 건데…
동생에게 말하기 좀 부끄럽다.
별거 아닌데 왠지 말하기가 부끄러웠다.
“거 봐, 말 못 하잖아. 누나가 얼마나… 한국인스러운데, 내가 그걸 모를까?”
“…”
동생이 하는 말에 반박을 못 한 적은 처음이었다.
“누나, 번아웃 알지? 내 동료들이 가끔 보이는 그것들 말이야.”
번아웃 증후군
인생의 모든 것을 불태우며 살아가다가, 그 불이 꺼질 때 오는 탈력감
“난 누나가 걱정이야. 누나는 너무 모든 것을… 좀 피곤하게 살아. 사람은 늘 모든 순간에 이길 수 있는 건 아니고, 모범적으로 사는 게 스타일이라고 하지만 점점 힘들어하잖아?
물론 누나처럼 사는 게 성공한 삶이라는 건 알겠는데… 누나는 행복해?”
유나는 기가 찼다.
인터넷에서 옷 사는 법도 모르던 꼬마가 자신에게 행복을 묻는다니… 실로 건방지다고 생각했다.
“난 우아하고, 멋지고, 완벽하니깐.”
잘난 척 가득한 말이었지만, 그만큼 유나는 스스로 엄격히 대했다고 생각했기에 자신 있게 말했다.
그래도, 행복하다고는 말을 하지는 못했다.
“완벽해질 필요까진 없지 않아?”
“…”
“나도 그냥… 누나 통화 이후 오타쿠인 게 만천하에 알려진 이후… 그 뭐냐… 이쪽 판에선 오타쿠 대표 됐어. 예전의 천재 게이머 이미지는 날아간 지 오래야.”
“오타쿠 새키…”
“근데 그러니깐 편하더라. 괜히 어깨 힘 안 주고 다녀도 되고, 이전처럼 인터뷰하는데 천재 이미지 유지한다고 하나하나 말 안 꼬아도 되고, 진솔하게 살아가기로 하니깐 요즘 성적도 잘 나오더라.”
“아… 맞다… 우승 축하해.”
서머 시즌을 승리해서 또 다른 국제무대로 향하는 그를 향해
이전에는 동생 놈이라도 축하할 일은 내가 먼저 축하해주고 그랬는데…
유나는 자기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나사가 헐거워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동생은 그렇게 섭섭한 티를 내지 않고 고마워, 라고 말하고는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누나 누구 보고 있어? 나는 요즘 클레하고 아그니 보는데”
“나? 유리아랑 아카리랑 코모선ㅂ…잠깐만 너?”
자연스럽게 자신이 좋아하는 버튜버를 말했다.
당했다!
헐거워진 나사가 아니라 빠진 나사였다!
“어쩐지, 아까 통화 받던 사람이 클레 목소리더라.”
“너너너너너!!”
“누나 이전에 올린 인스타그램에 아그니 프리미엄 한정판 굳즈 손수건이 있더라?”
“!#@@#$!!@“
항상 완벽하고 우아했던 누나의 망가진 목소리에 그는 폭소를 터트렸다.
“너, 너 언제부터?”
“글쎄 일단 누나가 메이드라짱인 건 알겠는데.”
“어, 어떻게?”
“누나가 서큐버스 집사일 때 공포방송 영상 알지? 그 목소리 아무리 들어봐도 누나인데 내가 그걸 모를까?”
파생 영상들 합치면 수 백 개에, 그것들을 다 합쳐도 100만 재생 횟수도 넘어가고, 게임 쪽으로는 합성 요소로도 잘 쓰이는 그 영상이다.
꽤 예전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올 타임 레전드 집사라는 제목으로 오랫동안 재생되기도하고
“나는 누나가 일본 가서 행복하게 사는 거 같아서 안심했어. 어머니 피해서 유학 가서 좀 걱정했는데 그래도 누나는 누나네, 1학년에는 나름 유명세 타서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오고 2학년에는 선라이즈 입사라니?”
동생의 치밀한 빌드업으로 인한 결정타에 유나는 손을 들었다.
하기사 못 볼 꼴 많이 공유한 사이에 이런 것도 더 숨길 리가 있을까
무엇보다도 귀여운 유리아를 좋아하는 건 그다지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그냥 받아들였다.
“참 내, 니 걱정이나 하셔.”
“응 중국 프로 리그 인기투표 1위야.”
얄미웠다.
진짜 한 대 패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다.
“사실 누나 인스타그램이 뜸해진 이유 내심 짐작하고 있었는데, 본인 입으로 들으니 안심이야.”
“그래, 알고 일부러 그런 식으로 말했구나?”
“이게 중국 최고 정글러의 빌드업이다 이 말이야.”
“하아, 어찌 되었던 내가 이쪽 업계 일 한다는 거 말하지 마라.”
“왜? 사람들은 유행 민감하고 자기 관리 완벽한 유나가 아니라 그냥 유나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건데?”
동생 놈의 덕질의 커밍아웃을 유도하는 말에 코웃음을 치며 대답한다.
“아니 백정놈아, 내가 예쁘고 멋진 사람이라는 건 내가 잘 알고 다른 사람들 오타쿠 셔츠 입으면서 덕질할 때 브랜드 옷 입고 덕질하는 게 김유나 스타일인 게 밝혀져도 문제없는데.”
“그럼 왜?”
“멍청아, 우리 회사가 얼마나 애들 보호하려고 애쓰는데 매니저의 관계자가 함부로 입을 놀리면 쓰나?”
이 업계는 버튜버의 신변 보호에 아주 민감하고 진지하다.
괜히 빡빡한 조항으로 매니저들의 비밀 유지를 강조하는 게 아니다.
“아.”
“너 좀 건방지게 나 걱정하는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어오르지 마라.”
세호는 누나 그렇게 툴툴거리는 걸 우리는 츤데레라고 부르기로 합의했어요라고 튀어나올 법한 말을 꾹 삼키고 대답했다.
“넵 누님.”
“그리고”
“…?”
“그, 우리 유리아 좀 잘 봐줘. 귀엽고 열심히 노력하는 애란 말이야.”
동생 놈 수입이라면 슈퍼챗도 빵빵 쏘겠지
폭소하는 동생의 웃음소리가 짜증 나긴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담당하는 버튜버 홍보는 멈출 수 없었다.
그 후 시시콜콜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어코 프라이팬을 잡은 나에가 뒤집기를 하다 오믈렛을 천장으로 붙이는 놀라운 기예를 본 유나는 다급히 통화를 끊고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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