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27화 (27/307)

〈 27화 〉 26화.

* * *

효과음과 함께 구슬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게임이 말하기를 귀중한 재화를 인과율로 바쳐서 운명에 운명을 거듭해서, 그 끈을 잡은 위대한 영웅들과의 인연을 이어 주는 위대한 절차라 하니

“떴다 수영복 네로짱!!!”

“와! 한정 얼터가 와 줬어!!”

이를 두 글자로 ‘가챠’라고 한다.

일본 국민들이라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 봤을, 일본 모바일 게임 매출을 견인하는 유명한 국민 게임 페이트 그랜드 오더, 줄여서 페그오

두 명의 버츄얼 유튜버들이 자기 결과 창을 보고 환희를 지른다.

“에? 유리아짱도?”

“에? 클레짱도?”

반면 채팅창의 분위기는 험악하기 그지없다.

­아니 씨* 이게 말이 돼?

­어떻게 30연 만에 둘이서 나오냐고

­해명해라 딜라!!! 이 말도 안 되는 확률을 설명해!!!

­6만엔을 쓴 난…뭐지?

­바보네 ㅋㅋ 그거면 빨간 슈퍼챗 여섯 번 쏘는데 멍청이ㅋㅋㅋ

­말도 안 돼

­OMG

­여러분 수영복 네로짱이 뭐냐면~

­역시 똥겜이었어 ㅋㅋ 내가 하는 건 똥겜이었다고 ㅋㅋ

특히 유리아의 애청자들은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악운 공주님 어디 갔어?

­280연에 픽업 하나 못 먹던 우리 공주님 어디 갔어요?

­악운 공주님이 띄우다니 오늘은 나도 성공한다!

­응 아냐 악운 공주님이 운 다써서 오늘은 금기야

악운 공주

가챠 운이라고는 정말 말도 안 되게 끝장나게 안 좋아서, 430연 동안 캐릭터를 뽑지 못해 한 때 트위터에 조작 논란이 일어났는지 의심된다고 불타오른 적이 있었다.

마계 공주는 운이 없어­라고 중얼거리는 그 모습에 악운 공주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는 그녀이기에 더더욱 지금 일어난 30연의 기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유명 만두집을 기대하고 갔지만 나온 건 냉동 만두가 나온 셈이니 말이다.

그만큼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그들의 반응은 격렬했다.

사실 이러한 뽑기 방송 쇼, 즉 가챠쇼는 게임 커뮤니티에 자주 올라오는 광경 중 하나지만, 그 대상자가 버튜버라면 또 새롭기 그지없다.

물론 시도하는 버튜버들은 있지만 대형 기획사에 속한 이들이 올린 적은 드물기에 커뮤니티는 후끈 달아올랐다.

“클레짱, 사람들이 못 믿는데?”

“신의 가호를 받는 제 가챠운과 비슷하다니 믿을 수 없어요.”

“파파가 힘 써 주었나 봐.”

­그런 일 없습니다

­아? 모델러 씨 왔다 ㅋㅋㅋㅋ

­헉 진짜 팝콘 선생님이잖아?

­본인등판ㅋㅋㅋㅋ

마침 방송을 보고 있던 유리아의 3D 캐릭터를 만드는 모델러가 등장했다.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 사람을 엄마, 모델러를 맡은 사람을 가끔 아빠라고 부르는 이 바닥 분위기에 갑자기 등장한 모델러의 채팅에 사람들은 더더욱 열광했다.

“근데 클레짱, 이게 그렇게 좋은 거야?”

모바일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유리아가 물었다.

클레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당연하지. 유리아가 뽑은 게 어떤 거냐면…”

“나, 이게임 잘 몰라.”

“과연 비기너즈 럭은 마계에서도 있구나…”

그렇게 말한 클레가 쉬운 어조로 게임에 대해서 설명한다.

간결하고 확실한 소개, 게임이 어떤 배경이고 우리가 왜 가챠를 뽑는지 알려 준 클레는 센스있게 설명했다.

“쉽게 말해 유리아가 뽑은 건 전에 했던 게임의 ** 같은 거야!”

“헉! 내가 그런 걸 뽑은 거야?”

­역시 비기너즈 럭인가

­가챠는 욕망을 품는 순간 망한다! 이건 유리아가 증명해줬어!

­유리유리~~귀여워~~

­클레짱 설명 알기쉬워서 좋아~~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클레가 알려주는 게임 방송으로 흘러갔다.

기본적인 시스템 이해는 빨리 한 유리아는 클레가 알려주는 온갖 팁들을 메모장을 켜서 옮겨 적었다.

그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귀여운지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이제 다시 가챠로 가자아아

­끝까지 가보는 거야!

­나만 망할 수 없다 나만 망할 수 없다

­오늘의 운세는 당신의 편입니다 유리아님 부디 건투를

당연히 가챠를 더 부추기는 사람들도 나왔다.

“흠흠, 종복들이 부탁하니까… 이번 만이야?”

최근 들어서 귀엽기만 한 그녀의 말에 살짝 색기가 들면서 천연스럽게 요망한 이미지를 가진 유리아가 그렇게 말하자 채팅창은 또 불타올랐다. 물론 수위가 넘는 이야기들은 컷 당했지만.

“아사다 교단의 성녀로써 질 수 없죠. 승부 다시 갑시다!”

승부의 내용은 누가누가 좋은 카드를 뽑냐의 대결인데…

그들의 손이 비장하게 뽑기 버튼으로 향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 합동 방송에는 예능신의 가호가 깃들었다.

30에서 40연 사이에 픽업을 먹으면서!

중간중간에는 게임을 원활하게 굴러가게 해주는 게임 커뮤니티에서 1티어 캐릭터와 밸런스 조절에 실패한 사기 캐릭터들이 종종 등장했다.

이 말도 안 되는 행운 릴레이에 합동 방송 방의 분위기가 격렬하게 달아오른다.

지나치게 흥분하는 팬들을 제지하는 클레조차도 그들의 울분에 가득 차 발광하는 채팅창을 관리하는 걸 포기했다.

오늘은… 안티 팬이 생겨도 납득이 갈 정도다.

이 말도 안 되는 강운의 흐름에, 모바일 게임을 열심히 하는 클레의 목소리가 진심으로 떨렸다.

“마, 말도 안 돼. 신님 이거 괜찮은 거 맞죠?”

“헤에, 이게 대단한 거구나?”

“으응!! 이게 뭐냐면!!”

다양한 모바일 게임을 섭렵한 클레가 유리아가 했던 게임의 캐릭터로 또다시 비유한다.

그 말을 듣고 있는 유리아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 또한 포인트

그렇게 그들은 채팅창을 읽으며 적당히 대꾸하며 활발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방송 템포를 조절하던 클레가 말했다.

“여기서 우리 메이드라짱을 부르자!”

“에?”

­헉

­메이드라짱! 주위에 있구나

­메이드는 언제나 공주님 곁에 있어

­뭐야 그게 ㅋㅋ 둘이 동거하는 사이였어?

­메이드의 운 보고 싶다!

클레가 부른 기름에 시청자들이 불붙는다.

­저 말입니까?

채팅창에 등장한 메이드 라짱의 반응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가즈아아아아!

­마왕성 종자의 대표의 힘을 보여줘요!

­가즈아아아아아!!

­싫습니다.

“에이 그러지 말구 우리 메이드 씨도 한번 해 보자? 어때?

교태 가득한 목소리로 권유하는 클레

“라 짱… 안 돼?”

울먹이는 얼굴로 동정심을 유발하는 목소리로 묻는 유리아

그 둘의 애교로 채팅창은 후끈 달아오르고, 이런 흐름을 거부하면 흐름이 망가지는 걸 우려한 메이드는 수락했다.

방송을 진행한 나에의 방에 들어온 유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헤드셋을 썼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오케이 수신 양호”

“라짱 힘내!”

그렇게 유나는, 메이드 라짱은 떨리는 손으로 소환 버튼을 눌렀다.

방송이 끝난 후 아침, 방송 녹화본과 방송 중 쓴 메모를 말리아에게 넘기고 분석을 지시한 미우는 졸린 눈으로 커뮤니티 반응을 보다가 물을 뿜었다.

[멸운(??)의 메이드]

멸망할 멸(?)에 행운의 운(?)을 합쳐서 멸운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칭호를 얻은 메이드

다름 아닌 유나다.

­아니 ㅋㅋㅋ 300연 만에 나온 게 똥캐라는 게 말이 되?

­유리아님의 악운은… 메이드가 다 가져갔구나 그 충심 잊지 않으마

­이거 봐 ㅋㅋ 이 부분에 메이드 목소리 떨리는 게 느껴져

­주인과 주인의 친구의 돈을 갉아먹는 메이드상ㅋㅋ 이건 귀하군요

­역시, 신은 공평하다

정말 예능신이 깃든 걸까?

방송 초기에는 엄청난 운이 두 사람에게, 그리고 방송 중반에 부른 유나는 최악의 운을 보여주었다.

오죽하면 그 강철 같은 멘탈을 가진 사람이 아직 침울해 있을까

미우는 유나의 볼을 쿡 찔렀다.

“언니 가챠 운 실화야?”

“…말 걸지 마…”

평소라면 힘차게 아침을 하는 그녀가 죽은 동태눈으로 샐러드를 만지작거리며 비비고 있었다.

식탁 위에 샐러드 드레싱이 사방으로 튀는걸 보면서 미우는 사진을 찍었다.

저렇게 망가진 유나의 모습은 드무니까 말이다.

“3000엔… 9000엔…2만엔… 4만엔…. 나는 도대체 무엇을?”

방송의 클라이맥스는 이럴 수는 없다고 편의점에서 기프트 카드를 사와 결재를 미친 듯이 긁은 유나의 행보였다.

당연히 픽업은 물론이고 5성 또한 한 번도 뽑지 못했으니 오히려 이쯤이면 조작이 의심된다.

사람이 고장 난 듯 돈의 액수를 읊는걸 보고 미우는 유나의 양 볼을 만지작거렸다.

평소라면 에센스니 뭐니 피부 관리를 깔끔하게 하는 유나지만 맨들맨들한 맨살이 느껴졌다.

“으이구, 언니 운도 없을 수도 있지.”

“나흔 미들 수엄흐어”

얼굴을 잡아당겨도 반응하지 않는 유나라니 이건 또 귀했다.

“언니 게임 허접이라는데?”

그때 사람의 눈이 불이 들어온다 라는 표현이 진짜임을 미우는 깨달았다.

“뭐?”

흐리멍덩한 두 눈에 열기가 감돌았다.

이거 유나의 트리거구나, 미우는 속으로 메모했다.

“그, 그 그깟 뽑기에 운이 없다니 이건 너무한 거 아니야? 내 게임실력을!! 감히 내 게임 실력을!!”

아, 그러고 보니 예전에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게임의 랭커라고 자랑했던 게 기억이 난다.

아쉽게도 일본에는 아는 사람이 적으니까

“어… 언니 그러고 보니 에이펙스에서 랭크 높지 않아?”

“그게 게임 닉이 ‘유나유나땅’이라 아무래도 밝히면 좀…”

“닉변권은?”

“최근에 썼어.”

“예전에 콜라보때 쓴 아이디는?”

“아… 그거는 방송 용이라… 랭크를 안 돌려서 낮아.”

그 말을 들은 미우는 씨익 웃었다.

“그러면 3인큐 어때요 언니? 메이드 라­짱의 실력을 다시 전 세계에 증명하는 거야!”

“….”

“언니 게임 허접소리 듣고 가만히 있을 거 아니잖아.”

“당장 마우스 사 올게.”

언니 아직 컴퓨터 매장 문 안 열었어

아맞다 그랬지

언니 컴퓨터나 방으로 옮겨요!

살짝의 소란스러움 끝에 유나는 자기 컴퓨터를 나에의 방에 옮기는데 성공했다.

“우와 눈 무서워.”

투지가 흐르는 그 두 눈을 보며 미우가 말했다.

“일단 트위터에 예고 올려 둘게요. 메이드 라짱이 오늘 두 사람 합동 방송에 출연한다고.”

그 열성적인 모습을 보고, 미우는 그간 쭉 담아온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다.

“언니는, 그러니까 메이드 라­는 방송에 잘 안 나오려고 했잖아. 오늘은 괜찮은 거야?”

“저는 늘 생각했어요. 방송의 주인은 버튜버 본인이 돼야하고, 게스트는 어디까지나 게스트에 있어야 한다는 걸.”

아니 가끔 게스트가 소위 하드 캐리를 해서 방송을 한 번 씩 꽉 잡는 것도 있는 콘텐츠인데­라고 미우가 생각했다.

이 언니는 묘한데서 엄격하다.

덕분에 이미지가 소비되지 않고 신비주의 컨셉을 유지하는데 성공하긴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두 분을 보면 이제 제가 나온다고 해서, 하루 정도는 제가 날뛰어도 이미지에 타격이 안 간다고 생각해요.”

“오…”

“미우씨야 걱정을 안 했는데, 나에 언니는 좀 걱정 했으니 말이에요.”

사실 유리아의 이미지가 연약하기는 해도 캐릭터 분석적으로는 이미 50만 구독자를 보유한 시점에서 흔들릴 리가 없지만, 겁낸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로 신중한 유나의 배려를 읽어낸 미우는 딱히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저 부러워할 뿐

‘정말 배려심 깊은 언니야…’

자신이 만들어낸 식탁 위의 참상을 보고 묵묵히 닦는 유나를 보고 생각했다.

‘역시 함께하고 싶다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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