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30화 (30/307)

〈 30화 〉 29화.

* * *

레크레이션 룸에서 나와 마츠시타씨, 코이즈미 언니는 좀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뭐 어차피 업무 지원 차량은 ‘글로벌 팀’에만 지급하는 거로 하고, 두 사람이 해외의 매니저 인력들이 구해지기 전까지 힘을 내줘야 하는 게 많긴 한데.”

돈을 더 줬으니 널 더 부려먹겠어

라고 말하는듯한 언니의 위세에 난 저항할 수 없었다.

구체적인 업무에 대해서는 마츠시타씨가 설명해주었다.

“심플하게 말하자면 글로벌 실시간 업무는 제가, 아닌 쪽은 유나 씨가 하는 걸로.”

“그게 무슨 말이죠?”

“그러니까 제 업무 시간대는 미국 시간대가 되고, 유나 씨 업무 시간대는 지금 그대로가 된다는 거죠.”

"아하, 시차가 있군요."

일본의 아침에 방송하면, 저쪽은 이미 저녁 시간대다.

커뮤니티에 흘러가는 새로운 정보나 밈은, 주로 방송 직후 생성되기 때문에

결국 미국과 일본의 흐름을 동시에 잡으려면 24시간 모니터링을 하거나 연락이 닿을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에 나는 납득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갓 뽑은 새로운 조직 편성도를 보고 말했다.

“드디어 매니저 인력들을 많이 구했나 보네요?”

“응 겨우 다 구했어. 해외 쪽 매니저 인재들은 이제 면접만 보면 끝이지”

회사 출시 초창기는 자본이 부족해서

회사 도약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거나 더 필요한 파트로 밀렸기에

회사 성장기에는 오히려 많아진 지원자들을 걸러내느라

다양한 이유로 매니저 채용이 늦춰지게 되었고, 회사 출범 당시에는 현재의 사장과

사장의 친우라는 이유로 많은 노동한 코이즈미 언니

그리고 소속된 버튜버 본인들이 자신들의 일정을 관리하고 소화했다.

그야말로 맨 땅에 시작하는 스타트업 기업과도 다를 바가 없었기에

그들은 버튜버라는 새로운 시장을 일에 대한 애정과 노력만으로 해쳐나갔고

새로운 물결이라 불리는 인터넷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선두 주자로 달려 나가는데 성공했다.

이제는 그 달콤한 과실을 수확할 시기가 도래했다.

회사는 전문 경영인의 조언으로 체계화 되어가고, 조직화 되어 간다.

일의 효율성이 올라가고 돈의 흐름이 투명해져 가며 사내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화 되어서

이전보다 더 긴밀하게 시스템을 구축하고 대형 기획을 편하게 언급할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대다수의 버튜버들은 1인당 1명씩 매니저를 배정받고 방송 본연의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게 바뀌었다.

음, 유능한 사람들이 늘면 내 업무도 줄어지겠지?

나에 언니가 아무리 콜라보가 적고 대외활동이 적긴 해도, 50만 구독자를 넘긴 시점에서 다양한 게임이나 미디어에서 콜라보 제의가 회사의 제안을 거쳐서 전달되는 빈도가 많아졌다.

건강이 회복되어 이전보다 일정 소화력이 늘어나서 이전이라면 지나쳤을 게임 회사 콜라보를 수락했다.

아무래도 일본에서 순위권에 자주 오르는 인기 게임에

동기들이 전원 참여하는 콜라보이기 때문에 빼기도 싫었으니 말이다.

언니는 이제 좀 더 유명해지고 더 활발하게 움직여야하니 말이다.

“하아, 이제 숨 좀 돌리나 싶었는데…”

“그렇게 거절하기에는 너무나도 큰돈이었지?”

“으, 치사해요.”

“유나야 데뷔하면 끝이라니까? 너의 일정을 관리해 줄 사람도 생겨서 일도 줄어들고, 너도 부담 없이 미디어에 노출되어도 문제없어, 고정 팬들도 생겼어, 그야말로 버츄얼 유튜버를 시작하기 위한 모든 조건이!”

“싫어요!”

그건 절대로 싫다!

아무튼 명함 의외에도 개인적인 친분과 비상연락망을 겸해서 마츠시타씨의 라인 아이디를 교환한 후, 나는 회의실에 나왔다.

그나저나 이제부터는 나도 좀 더 바빠지겠구나… 무심코 학교의 메일함을 체크한다.

역시나, 학교에서 학교 내부 시설을 이용한 서클 활동을 거절한다고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확진을 당한 학생을 포함한 학생들이 내부에서 모임을 가진 덕분에 다시 한 번 코로나 유행이 캠퍼스 내로 돌았고...

이번에 아예 캠퍼스 건물 대다수를 닫아버렸다.

한 학기의 휴학 이후에는 온라인 수업으로 많은 수업이 진행되긴 해도

나름 스포츠 관련 학과인 우리 학과에서는 대면 수업을 진행할 거라고 예상했으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모든 수업들이 온라인 비대면 수업으로 바뀌었다.

즉 올해의 캠퍼스 라이프는 완전히 물 건너갔다는 소리다.

“으아아아…”

학업이 어렵긴 해도 그래도 이쪽으로는 재미를 느끼던 나다.

한국에서는 쉽사리 배울 수 없는 분야에 대해서 내가 파고들 수 있었고, 한때나마 내가 꿈꾸었던 길과 비슷하게 걸어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기에 나름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이런 예상을 뛰어넘는 고난에 긴장과 의욕이 풀려버린다.

이대로라면 우울해져서 울 것 같았기에 나는 발을 질질끌며 직원 휴게실로 향했다.

직원 휴게실에서 커피를 사고, 멍하니 티비를 시청했다.

[일본의 현대 청소년들은 문제의식이 없다.

무방비하게 들어온 한류로 인해서 흔들리는 일본 아이돌 문화, 이대로 괜찮은가?]

따위의 주제로 주저리 이야기를 하는 예능 프로를 본다.

BTS의 성공 요인에는 한국 정부의 막대한 로비 자금이 들어간 음모론을 제기하는 탈모 아저씨의 헛소리를 듣다가

머리가 아찔해져서커피에 단맛이 부족한 거 같아서 시럽을 넣었다.

음, 가끔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에 시럽이 땡긴단 말이지, 하고 몸을 돌리던 나는 누군가와 부딪치고 말았다.

시럽을 섞느라 닫히지 못한 아메리카노와 시럽이 내 옷과 타인의 옷을 적셨다.

“실례했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서로 약속한 마냥 커피를 옷에 묻힌 채 정중하게 사과했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이는 내 또래로 추정되는 여성이 젖은 옷과 떨어트린 자기 휴대폰을 보고 울상을 짓고 있었다.

녹색과 흑색의 체크 블라우스와 스키니진, 예쁜 갈색 머리카락에 포인트를 준 주황빛 모자와 거기에 걸친 선글라스가 어울리는 멋진 여성이었다.

나는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내 몸을 닦은 후 다른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카페 직원이 와서 이 소란을 도왔고 나는 그녀에게 미안 해서 다시금 사죄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는 바람에…”

“아니에요, 저야말로 걸어가면서 휴대폰을 보고 있어서…”

“아,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아무래도 회사에서 만난 사람이라면 같은 동료겠지, 라고 생각하고 명함을 건넸다.

“세탁비가 나오면 여기로 연락처로 이야기를 남겨 주세요.”

“아, 아니에요. 그쪽 분께서 입고 계신 옷이 훨씬 더 비싸 보이는데… 어? 유나…씨?”

“네, 유나라고 합니다. 한국인이에요.”

“호,혹시… 메이드…씨?”

기습처럼 날라오는 그 질문에 나는 멍청하게 대답했다.

“네.”

그리고 그녀는 시럽에 끈적이는 내 손을 개의치 않고 잡았다.

“만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제야 나는 내가 오늘 아침에 부른 동영상의 목소리와 눈앞의 목소리가 참 닮았다고 생각했다.

“카네나리 츠유입니다. 예명은 코모레비예요!”

두 눈에 빛을 내면서 나의 손을 힘차게 잡는다.

160정도로 보이는 키에 나오는 그 강렬한 기백에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코모레비

일본어로는 나뭇잎 사이에 비치는 부드러운 햇살을 의미하는 단어다.

마감을 앞두기 전의 공포감을 표현하는 독일 단어’torschlusspanik’처럼 일본에만 있는 특이한 단어를 예명으로 삼는 버튜버다.

아이돌을 지망하는 컨셉의 버튜버인 그녀의 주된 방송은 음악을 부르는 음악 방송, 카라오케 방송이었다.

하지만 좀처럼 늘지 않는 구독자 수에 힘들어하는 그녀는 내 앞에서 솔직하게 고민을 토로 했다.

“아무래도 매니저하고 이야기해보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언젠가 안면 인식뿐만 아니라 전신을 인식해서 가상의 공간에서 자기 춤을 선보이고 싶다며 혼자서 댄스 연습을 하는 그녀는

커피에 젖은 상의를 벗고 회사내의 사물함에서 적당한 연습복으로 갈아입은 상태로 그리 말했다.

나 또한 언젠가 코이즈미 언니가 입은 적 있는 회사의 로고가 새겨진 셔츠를 입은 채로 그녀의 고민을 들으며 공감해주었다.

“아무래도, 경쟁해야 할 분야가 조금 크다 보니 말이죠.”

음악 콘텐츠는 수요가 많은 것처럼 공급이 크다.

같은 곡을 불러도 그것을 부르는 수많은 사람을 제치고, 유튜브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야 했다.

그렇기에 제아무리 전문가가 개인적으로 잘 부른다고 말한 사람이라도, 유명세나 흐름을 타지 못하면 영상이 뜨지 못하고 묻힌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서 그녀의 노래는 유튜브 세계의 가수들을 사이에 돋보일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지지 못했다.

그렇기에 본인도, 회사도, 나 또한 아쉽다고 생각했다.

노력만큼 보상해주지 않는 게 이 세상의 원칙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사실을 눈앞에 다시 마주보는 건 마치 내 우울한 과거와 같았기에

“오늘도 사실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 회의를 하러 왔어요.”

그리고 그녀는 아이돌 프로젝트, 즉 동시기에 같이 데뷔를 시켜서 기수에 따라 그룹을 만드는 ‘n기생’의 시스템의 혜택을 받아 데뷔한 게 아니라

개개인이 아바타를 만들어서 시작한 여타 다른 0기생 멤버와 같이 험난한 시장을 개척한 초창기 버튜버의 일원이다.

기존에는 노래만 부르고 가벼운 이야기하다가 끄던 방송 패턴을 바꾸고 난 이후

음악에만 고집하지 않고 게임이나 리뷰를 주제로 방송을 진행하면서 다시 성장하기 시작한 그녀지만

다른 후배들에 비해서 구독자 수가5만이 되지 않는 성적은 진지하게 이 길을 포기할까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다고 토로 했다.

실제로 대형 레이블에 소속되어도 뜨지 못해 사라진 버튜버들의 사정을 알고 있는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나 보다 한 살 어린 그녀의 손은 참으로 따스했다.

“죄송합니다. 초면에 실례되는 말을 했네요.”

얼마나 스트레스와 고민이 심했으면 초면인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을까?

“아니에요, 저도 선라이즈 소속의 매니저 일원이고, 그래도 음… 버튜버들을 보듬어 주는 의무가 있다구요?”

“그건 유리아씨의 경우가 특이한 경우라…”

그건 맞다.

지금이라면 모를까, 초기의 그녀는 상처 입은 강아지보다 더 자존감이 낮고 위태로운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회사가 나에 언니의 멘탈 이슈가 심각했기 때문에 원격으로 정신과 의료 상담을 추진하는걸 심각하게 고려해본 적 있다고 할까?

아무튼 나와 나에 언니와의 관계가 특이한 거지, 본디라면 회사 소속 버튜버와 매니저는 비지니스 파트너 이상의 관계가 되지 않는다.

그편이 서로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일에 사적인 감정을 담지 않게 되니 말이다.

“그래도 저 이런 사람과 실제로 이야기하는 거 처음 봐요.”

“네?”

“유나 씨의 모습은… 제가 동경하던 그 사람들과 닮아 있으니까요.”

알고 있다.

나에게 영원히 떼어지지 않을 그 평가 ‘한국의 아이돌 닮았다’.

그게 어릴 적부터 아이돌을 꿈꾼 그녀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뭐라고 해야 할까, 어젯밤 읽은 만화 캐릭터가 제 눈앞에서 제 고민을 들어 주는 모습?”

그 오타쿠스러운 표현에 납득했다.

나 아이돌 판에서 코스프레 캐릭터로 느껴지는구나.

“그거 다행이네요.”

그리 대답한 나는 그녀가 벗어둔 옷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신의 길을 꾸준히 걷는 그녀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졌다.

“혹시 오늘 일정 있어요?”

“오늘은 제가 약간 일방적으로 사측에 찾아온 거라…”

즉 공식적인 스케줄은 비었다는거군...

나는 그 말을 듣고 결정했다.

오늘은 나도 잠시 즐기기로

“같이 쇼핑 가실래요?”

월급 오른 날 직장인의 마음은 무적이다.

나는 평소라면 부끄러워서 입고 나가지 않는 회사 로고와 캐릭터들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채로

당황해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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