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36화.
* * *
“언니들 백합이 뭐예요?”
“풉”
“커헉, 쿨록쿨록”
본사의 회의실 안
나에 언니와 나는 오늘 있을 스튜디오 내에서의 촬영을 들어가기 전에 분기 보고를 하기 위해 코이즈미 총괄 매니저와 상담을 나누었다.
본디라면 방송 진행 및 컨설팅을 따로 맡는 팀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맞는데 아직 대형기획에 참여 안 하는 나에 언니니 자기면 된다나 뭐라나…
아무튼 나는 그렇게 조사를 하다가 [백합]이라는 단어가 유리아의 유튜브 유입 및 2차 창작에 차지하는 지분이 높아진 데이터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그런 나의 질문에 코이즈미 언니는 마시던 물을 뿜고, 나에 언니는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그냥 꽃 아니에요?”
“그그그그 유나야? 어,어,언니가 잘 말해줄게.”
“아니 나에 씨는 가만히 있어요 좀!! 제가, 제가 설명할게요.”
무언가 두 사람의 반응이 격렬했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구글에 백합을 검색해도 보이는 건 꽃이 많았다.
가끔씩 보이는 백합꽃을 든 소녀가 보이는 정도.
“그, 그, 그 이런 거에요.”
코이즈미 언니는 나에게 여성 둘이서 친밀한 구도로 찍힌 사진이나 그림을 보여주었다.
“어… 여성간의 우정? 같은 건가요?”
나는 서로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아니, 손 잡고 데이트를 하러 가는 게 단순히 우,우,우정이야?”
“친한 사이면 둘이서 노래방도 가는데요?”
“그,그,그, 그럼 유,유,유나는 매일 아침에 나 깨,깨우고 빗겨주고, 같이 운동하고 그런 건 다 뭐였어?”
“음… 간호에 가깝죠? 언니의 몸 상태는 의학적으로 좋다고 말할 수 없는데 입원을 할 만큼 심각한 건 아니었으니 말이죠.”
안 그래도 코로나 이후 병실이 줄어든 일본이다.
건강 상태가 안 좋긴 해도 입원을 할 만큼 나쁘지도 않았고, 이렇게 집으로 재활 훈련과 올바른 영양분 보급만으로도 건강이 회복되는데 병실을 차지하는 건 실례다.
“가, 간호…”
나에 언니는 책상 위로 엎어졌다.
“나에 씨 정신 차려요!”
코이즈미 언니가 기겁한다.
“나…조, 좋아한다고… 했다는 거는?”
“당연히 언니를 좋아했으니 제가 정성을 들여서 식사를 차려 주고 같이 운동하고 그리했겠죠? 다른 사람이었으면 이렇게까지 안 챙기죠.”
이건 진짜다.
동생 놈이라면 대충 닭가슴살 샐러드와 군고구마만 주면서 식단 관리를 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나에 언니를 좋아하는 건 틀림없는 거고.
“백, 백합, 짝, 짝사랑, 일, 일방통행…”
“나에 씨 정신 차려요! 잠깐만요 냉수 한 컵 급히 떠올게요!”
나에 언니는 나와 견해의 차이가 좀 있는지 그 대답을 듣고 넋을 내보냈다.
언니의 반응을 보니 나와 언니 사이가 ‘백합’이라는 건데…
여자 둘이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검색 유입이 활발하게 된다고?
확실히 아옹다옹하는 유리아와 클레,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텐션이 높아져만 가는 유리아와 아카리 조합은 캐릭터 간 궁합이 좋아서 보는 재미가 있는 건 알겠는데…
이게 왜 백합으로 여겨지지?
나는 일단 모르는 걸 직접 해보기로 했다.
“나에 언니?”
“으, 으응…”
힘이 쭉 빠져 보이는 언니를 난 벽에 세웠다.
그러고 그녀를 감싸듯이 벽으로 밀어붙인 후 벽을 쾅 쳤다.
벽이 쿵 하고 울림과 동시에 나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게 아까 사이트에서 본 벽꿍인데요. 어때요?”
“유,유,유,유나야?”
“이러면서 막 서로가 서로에게 설레한다고 하는데…”
만화적 연출의 과장인가?
나는 그렇게 그녀를 상대로 다양한 만화의 순간들을 재현해보았다.
같이 손잡기, 어부바해주기, 언니의 뒤에서 무릎 숙여서 내 턱을 그녀의 어깨 위로 올리기, 서로의 허리에 손 올리기…
하지만 그냥 친구끼리 좀 친하게 지내면 허용할 스킨쉽이 아닌가?
그러던 나에 언니가 나에게 눈을 빛내며 말했다.
“좋아, 유나야 언니가 좋게 설명해줄게.”
“오…”
“다시 벽꿍 해줄래?”
그녀의 말대로 나는 그녀를 벽으로 상냥하게 민 뒤 벽을 쾅 쳤다.
“유나가 지금 하는 게 벽꿍.”
“네.”
그리고 그녀는 까치발을 해서 내 뺨에 뽀뽀했다.
쪽하는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그녀가 좋아하는 포도와 월하향이 섞인 숨이 내 앞을 지나갔다.
그녀는 더 이상 내 눈을 피하지 않는 채 붉게 상기된 얼굴로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천천히 그녀가 남긴 입술 자국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이게 백합.”
그녀의 숨결과 뺨에 남긴 흔적은 참으로 따스했다.
“너,너,너희들…!”
어느새 온 코이즈미 언니가 방금 사 온 물 패트병을 떨어트리며 우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사,사무실에서 사내 연애는 금지야 금지!!”
“언니 이건 연애가 아니라 그 백합 체험.”
아니아니 동성끼리 연애라니!
게다가 매니저와 (버추얼 유튜버)아이돌과 연애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시끄러! 유나는 시말서 써와!”
왜 나만?
그리고 내가 뭘 했다고?
친한 친구끼리는 이러는 거 아냐?
나는 몹시 억울한 눈으로 코이즈미 언니를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나를 바깥으로 밀어냈다.
아니 언니 오늘 스튜디오 촬영 스케줄은요???
우리 그거 상담하러 온거 아니에요???
쾅! 하고 문이 닫혔다.
정말로 억울했다.
“어머나 반가워요.”
시말서를 제출하고(사무실에서 언니와 지나친 스킨쉽을 해서 죄송합니다를 한 장에 걸쳐서 풀어 적었다) 도착한 선라이즈 스튜디오에는
이미 110만 구독자를 보유한 마녀 무라사키 미야를 연기하는 치에리씨와 인사를 나누었다.
같은 여자들도 한 번쯤은 감탄하게 되는 그 엄청난 크기의 가슴
나는 그것을 보고 어마어마한 가슴을 유지하는 대흉근에 감탄했다.
“쿠로가와 나에입니다.”
“김유나라고 해요. 유나라고 불러주세요.”
그렇게 통성명을 나눈 우리는 가볍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나저나 이제 모든 4기생 후배들을 다 만나보게 되었네요. 기뻐요.”
치에리씨는 사람 좋은 미소로 그렇게 말했다.
“아…”
“아무래도 유리아는 부끄럼쟁이다 보니 만남이 적어서 늘 아쉬웠어요”
나는 그때서야 마녀라는 캐릭터가 아이를 돌보기 좋아하는 속성을 가진 게 떠올랐다.
아무래도 사람 돌보기를 좋아하는 건 치에리씨의 개인적인 기호가 반영된 거구나.
“그래도 이제는 건강이 회복되었으니, 아무래도 좀 더 자주 활발하게 움직일 거 같아요.”
“어머나~ 좋아라. 이번 도츠마치 방송 기대할게요?”
“…네! 와주신다면 좋을 거 같아요.”
늘어나는 구독자들을 기다리는 방송을 도츠마치방송이라고 하는데
대게는 다른 방송인들이 오디오 방에 들어와 축하해주고 떠나는 걸 말한다.
이런 도츠마치 문화를 통해서 가볍게 인사를 할 거리를 주고
음성만으로 축하 인사를 하므로 성대모사 장난이 잘 통해서 나름 인기 콘텐츠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유나 씨를 보게 되어서 기뻐요.”
“저도 2기생 분들을 직접 만나는 게 처음이에요. 와.”
그녀가 이번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 처음에는 방송인이신 줄 알았어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서로에게 가벼운 인사를 한 우리들은 약속하기라도 한 듯 동시에 물었다.
“무슨 운동 좋아하세요?”
“가슴 운동 뭐 하세요?”
헬스를 하는 남자들이 운동 루틴을 묻는 것처럼
운동을 하는 여자 중 미용에 관심 많은 이들은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게 된다.
그녀는 나의 복부와 다리를 보면서 물었고
나는 그녀의 엄청난 가슴을 보면서 물었다.
아무래도 치에리씨와는 빠르게 친해질 것 같았다.
나에 언니가 자신의 몸을 바라보면서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언니… 미안해요.
아무튼
오늘의 스튜디오 촬영 방송은 특이했다.
주로 이런 스튜디오 촬영 방송은 라이브 방송을 하거나
아니면 대규모의 오프라인 합동 방송을 하기 위해서 스튜디오 촬영 방송을 하지만.
오늘은 조금 특이했다.
실시간으로 요리를 하는 일명 쿡 방송
그것도 두 사람이 나와서 진행하는 방송에
버츄얼 그래픽까지 입혀서 실시간으로 진행하는 방송이었다.
실제로 요리하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진행자는 손만 나와서 진행을 하게 되는데
나는 요리를 못하는 두 사람을 지도하는 일종의 선생님 비슷한 역할이다.
그러면서도 중계방의 채팅을 보면서 질문도 하는, 진행 스태프 역할도 겸하고.
“콘마호~ 미야가 왔어요~”
“콘유리~ 오늘도 안녕~”
방송큐가 떨어지고 두 사람은 동시에 인사하면서 인사를 했다.
“오늘은 예고대로 어둠 연합의 도움을 받아 마왕성에 요리를 배우러 온 마녀예요~”
“흠흠, 유리아도 오늘은 같이 배우기로 했어. 신부 수업이야.”
“어머나~ 우리 공주님도 드디어 사랑을 깨달은 건가요?”
“그, 그런 거 아니야! 그런데 마녀가 요리를 못 한다니 뭔가 이상하지 않아? 과자집을 짓는 마녀는 어디 가고.”
“저, 저는 흑마술을 위해서만 요리를 하다 보니 아무래도 인간들의 기준에는 동떨어져 있답니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에 사람들이 재미있게 반응한다.
마녀의 캐릭터는
‘돌봐주기 좋아하는 마녀’
덜렁이면서 실수를 자주 하는 마녀’
‘가끔 엉뚱한 발언을 하는 마녀’
‘기본적으로 상냥하지만 화낼 때는 무서운 마녀’
‘세상 돌아가는 일에 밝은 마녀’
유리아의 캐릭터는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공주님’
악마라 쓰고 천사라 읽는다는 천사 성격’
‘가끔 통제를 잃어 화내는 게 귀여운 공주님’
‘최근에는 무서워진 공주님’
이런 이미지가 잡혀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상냥한 마녀씨가 장난기 있는 어조로 유리아를 놀리면서 가끔 날아오는 반격에 당황하는 전개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그럼~ 예고대로 오늘의 선생님인 ‘메이드 라’를 모실게요.”
“안녕하세요, 유리아님의 시종 메이드 라 입니다.”
나는 되도록 감정의 기복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가 허스키한 편인 나는 아무래도 귀여운 느낌을 줄 수 없기에
이렇게 된 이상 쿨한 톤을 유지하는 게 좋다고 다들 그렇게 합의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나가는 게 좋다고 본다.
어차피 나에게는 예능감이 없으니 두 사람이 휘두르는 대로 휘둘리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요리 방송에 나와달라고 해서 나왔는데… 뭘 하면 되죠?”
“저희에게 요리를 알려주었으면 좋겠어요.”
“음음 그러하노라~”
살짝 텐션이 오른 유리아였다.
“일단 마왕성 주방에는 재료들이 제법 있는데… 뭘 알려드릴까요?”
“네에! 여기서 리퀘스트! 소문의 메이드씨의 요리 실력을 견습 마법사들에게 알려주세요!”
여기에서 견습 마법사들은 마녀 미야씨의 구독자들을 말한다.
“에에? 마녀는 감히 유리아를 믿지 못하는 거야?”
“그렇지만, 실제로 보는 건 다르다고요. 아 음식이 만들어지면 저나 스태프씨들이 먹게 되니 쓰레기는 걱정하지 마세요~”
“으음… 일단 그러면 유리아님이 좋아하시는 오므라이스를 해드리겠습니다.”
요리는 항상 혼자서 했는데 이걸 타인에게 보여준다니… 부끄럽다기보다는 그냥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양파와 당근을 칼로 잘게 썰기 시작했다.
“오~ 이게 요리를 하는 사람의 솜씨”
사실 평범한 칼질이지만 호들갑스러운 반응에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개인적으로는 볶음밥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녀씨가 좋아하는 야채나 재료는 뭐가 있나요?”
“음, 마녀의 느낌으로는 말이에요, 고기라던가, 고기라던가, 고기라던가!”
그녀의 말을 듣고 햄과 베이컨을 잘게 다진 후 큰 프라이팬에 야채와 고기를 볶는다.
그와 동시에 일본에 와서 감탄한 다양한 데미글라스 소스를 작은 프라이팬에 버터와 밀가루를 약간 넣어서 걸쭉한 소스를 만든다.
왼손으로는 계란을 깨면서 오른손으로는 소스가 눌러 붙지 않도록 살짝 젓고 열을 확인하고 불을 낮췄다.
그 후 재료가 익은 걸 본 나는 밥을 넣고 볶음밥을 완성, 그 후 계란에 우유를 섞어서 이제 제법 숙련도가 붙은 오믈렛을 얹어서 밥을 예쁘게 장식한 후, 유튜브에서 보던 대로 소스를 데코레이션, 그 후 오믈렛을 얹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15분
“음, 제가 요리를 하면서 말을 해본 적이 없어서 미안합니다.”
“와아 와아 메이드씨 대단해요!”
“엣헴! 유리아는 매일 같이 메이드의 이런 요리를 먹고 있지!”
오늘따라 의기양양하게 코가 높은 유리아였다.
나는 그녀의 모습에 이제 막 두 발로 설 수 있게된 조카의 모습을 잠시 떠올리고는, 칼을 들고 말했다.
“오믈렛을 제가 입혀드릴까요?”
“아니아니, 마녀가 해볼게!”
마녀 미야는 자신의 큰 가슴을 흔들면서 그렇게 말했다.
캐릭터나 사람 생긴 건 성숙한 여성인데 하는 행동은 뭔가 나에 언니 같았다.
“이걸 칼로… 이렇게…”
그녀는 칼로 오믈렛을 잘랐다.
그러자 적당히 익은 계란과 치즈가 파도처럼 볶음밥을 완벽히 덮었다.
휴, 살짝 불이 세서 걱정했는데 잘 될 줄이야.
힐끗 채팅창을 보니 반응이 좋다.
“우와 맛있어요!”
“칭찬 고맙습니다. 아 유리아님은 안 됩니다.”
나는 숟가락을 들고 다가가는 유리아를 제지했다.
“에엑 왜!?”
“다른 걸 드셔야 하니까요.”
“우으으으.”
“중간계에서 식사를 한 번 하시면, 저녁은 제가 해주는 걸 드셔야죠.”
어딜
외식으로 탄수화물을 지나치게 땡겼으면
저녁은 단백질이지 암
“역시 메이드씨의 소문은 명불허전이네요. 솔직히 마녀는 감탄했어요.”
“후후후, 이게 바로 마왕성의 엘리트 중 엘리트인 메이드지!”
마녀는 잠시 리액션을 하느라 숟가락을 내려놓는 사이에 음식을 치운 스태프를 원망하는 시선으로 잠시 바라보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자, 그럼 오늘의 메인 콘텐츠를 진행해 볼까요?”
“오!”
“오~”
그녀 특유의 기합을 넣는 포즈에
유리아와 나는 그렇게 반응했다.
그리고 문이 열리면서 의외의 사람이 등장했다.
아까의 오피스 차림이 아닌 ‘대충 모드’의 코이즈미 언니
그녀는 아주 사악한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에게, 정확하게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의 콘텐츠 ‘마왕성에서 요리를’의 본격적인 시작을 저 집사가 알려드립니다.”
만약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으면 코이즈미 언니는 전략 핵무기일 것이다.
그녀의 강렬한 안광이 나를 주시했다.
도대체 왜
내가 뭘 했다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