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40화 (40/307)

〈 40화 〉 39화.

* * *

오후 5시에 시작된 방송은 오후 7시 반에 마쳤다.

“수고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인사를 한 후 방송인 전용 휴게실에서 적당히 수다를 떨었다.

나긋나긋하고 듣는 사람들이 기분 좋아지게 하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담긴 장난기와 순진함

그리고 가끔씩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치에리씨는 방송 전후로 별로 변화가 없는 게, 본인의 성격 그대로 캐릭터에 반영이 된 거 같다.

“그러니까 유나 씨는 정말로 입덕을 하신지 얼마 안되신거에요?”

“아, 네 이번에 입사하게 되면서 하게 되었어요.”

“세상에… 스미모토양, 그러니까 용사님이랑 똑같은 케이스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 스미모토씨가 그랬어요?”

“음, 역시 쿠로가와양은 좀 더 동기분들하고 친하게 지내시는 게 좋으실 거 같에요.

아무리 코로나 시대라고 접점이 적더라도…”

나에 언니가 자신의 동기생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하자 치에리씨가 일본인 치고는 직설적인 말을 했다.

저렇게 상냥한 사람이 직설적으로 말하다니

지적에 의한 불쾌감보다는 그 어조에 담긴 걱정이 앞서서 되려 이쪽이 죄송했다.

“죄송합니다.”

“아,아뇨아뇨 죄송할 게 뭐가 있나요. 그냥 같은 동기끼리 친하게 지내야 나중에 같이 합숙도 편하게 하고, 여러 프로젝트나 큰 방송도 같이 할 수 있으니까요.”

100만 구독자 선배의 소중한 어드바이스다.

그녀들의 성공 이후 1기생이나 그 밑 기수들도 서로 친하게 지내는걸 회사 측에도 크게 권장하게 되었으니…

역시 버튜버는 혼자 성공하는 거보다 서로서로 이끄는 그런 관계구나…싶었다.

역시 현실 아이돌들도 그러하듯이, 개인이서 자신의 매력을 뽐내는 것과 유닛 단위로 매력을 뽐내는 건 크나큰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뭐 이제 나에 언니도 건강이 좋아지고… 코로나는 좀 소원하지만 그래도 합동 방송은 자주 하자.

너무 클레랑만 해서 다른 사람들도 질투하겠어?”

“응 힘낼게.”

“어머나 보기 좋아라…”

그때였다.

“치에리~ 또 바람피우는 거야?”

갑자기 다가온 여성이 장난스럽게 치에리씨의 볼을 찔렀다.

나에 언니만 한 체구의 여성, 하지만 목소리를 딱히 숨기지 않으려는 게…

“어, 다비씨?”

“하이, 다비야. 여기서는 리나라고 불러줘.”

장난스럽게 윙크를 하는 금발의 여성

그녀는 이내 나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거기 미인씨, 나랑 사귈래?”

“거절합니다.”

“우와 빨라. 치에리 나 차였어 위로해줘.”

이전이라고 생각하면 그 무례한 태도에 얼굴을 붉히며 고래고래 고함을 쳤겠지만, 하도 이상한 사람들을 많이 봐서 이젠 그러려니 한다.

나는 묘하게 삐친 얼굴을 지닌 나에 언니의 손을 잡아줬다.

역시 작은 인형을 껴안은 것처럼 힐링된다.

“하아, 우리의 다비가 늘 미안합니다.”

멀리서 이국적인 미모의 여성이 다가온다.

큰 키와 시원하게 뻗은 팔다리, 팔찌가 참 예쁘고 인상적인 단발의 여성이 다비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윽, 아파 샤디아 너무해.”

“아그니의 샤디아입니다.”

“유리아의 쿠로가와 나에에요.”

“메이드의 김유나라고 합니다. 유나라고 불러주세요.”

“정말 한국인이셨군요?”

뭐랄까

누가 보더라도 일본 혼혈인 분이 그렇게 물어오니 나도 좀 당황스럽다.

“어… 네!”

“어쩐지… 게임을 잘 하시는 게…”

이건 좋은 칭찬이다.

나는 갑자기 샤디아씨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흠…흠!”

“유나 너무 쉽게 넘어가는 거 아냐?”

언니가 그렇게 말하니 찔리네

“아무튼 세 분 합동방송 잘 봤어요.”

“메이드 씨 다음번에 내 쪽 방송에 나와서 같이 음식 방송하자. 선배인 시스터 사­님이 오시는데…”

네?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그, 어, 응급차 불러드릴까요?”

“보험은 들었지?”

“혹시 회사에 부당한 압력을 받고 있으면…”

“제가 일본 노동청에 신고를…”

나에언니, 샤디아씨, 나, 치에리씨가 돌아가면서 걱정을 했다.

시스터 사

0기생의 대선배이자

초창기에는 청순가련한 여고생 컨셉으로 잡았다가

남미로 유학을 하러 간 후, 코로나로 인해 항공편이 끊겨 돌아오지 못한 후

청순가련 따위 집어치우고 광기의 방송을 이어갔다.

유행하는 패러디 드립 따라 하기

주변에 자라는 잡초들을 알아보기…에 그치지 않고 집어먹고 맛을 평가하기

미량의 흙을 맛본 다음 소감을 몸으로 표현하기

캐릭터의 눈 안에 캐릭터를 넣고, 방송 중에 이중인격 분리연출을 하기

합성으로 목을 세 개로 유지한 채 광기 어린 표정으로 바닥을 기는 일명 케로베로스 연출…

자신의 야짤…을 검색해서 모자이크를 한 채 올리기

그리고 세상의 온갖 기괴한 것을 넣어 조리하는 요리방송이 있다.

인터넷으로 약을 했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심각한… ‘태초의 광기’라고 불린다.

특히 요리방송은 상당히 유명했으며, 흰 밥에 카레를 부으면서 NTR상황극 진행 같은 정신 나간 기획도 있지만… 식용 벌레나 소 불알…등의 괴기한 식재료를 넣는다.

“그, 그래도 모처럼 후배랑 하는 방송인데…괜찮지 않을까?”

그런건가

광기는 더 큰 광기에 집어 삼켜지는가

다비가 저렇게 겁을 먹다니, 스산한 공포를 깨기 위해서일까

나에 언니가 물었다.

“그, 그런데 선배님들은 여기에 왜?”

“아, 곧 댄스 레슨이 있어서 그래.”

“혹시?”

“응, 우리 라이브 프로젝트가 통과되어서 이제부터 열심히 라이브 준비 중이야.”

“헤에…”

의외로 나에 언니가 부러워한다.

그런 언니의 마음을 알아서 그럴까?

다비씨가 제안했다.

“유리아도 보러 올래?”

“네?”

“우리도 어차피 온라인 라이브기는해도, 팬들 앞에서 춤추는 거니까?”

“어… 근데 드래곤씨는요?”

“… 집에서 혼자 연습하다가 다쳤대.”

“아…”

“그러게 혼자 무리하지 말지 나이도 많은 게.”

“…”

“아무튼 보는 거 정도야 뭐 문제없을걸? 댄스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할 거 같고.”

댄스 레슨이라…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언니가 가고 싶어 하니 가자면 가야지.

저 눈을 보고 그냥 가자는 말은 안 나온다.

“그러면 잘 부탁합니다.”

“응, 우리도 언젠가 후배님이랑 같이 출 날이 오면 좋겠어.”

“저, 노력할게요!”

“와 역시 귀여워~!”

나에 언니는 치에리씨의 큰 가슴에 파묻혔다.

“자, 여기.”

탈의실 안에서

나에게 뜬금없이 연습복을 내미는 리나씨였다.

“… 저는 매니저인데요?”

“응? 같이 추는 거 아냐?”

“아, 저 춤은 별로…”

“우와 생긴 건 한국인 아이돌처럼 생겼는데…아, 미안해”

이런

표정 관리를 못했다.

우리 회사의 탈의실은 이렇게 생겼구나

잊혀진 줄로만 알았던 과거가 떠오른다.

과연 사장이 한국의 아이돌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보고 따라 했다고 하나…

이런 것 하나하나 까지 따라 할 줄이야

그녀들을 따라 들어간 연습장 또한 한국과 비슷했다.

거대한 거울들이 가득해서 한 면으로 자신의 뒤를 확인할 수 있는 방

기둥 없이 넓은 홀에 위에는 조명이 달려있으며

바닥은 스탭연습을 해도 미끄러지지 않을 만큼 저항감이 인다.

“유나 피곤해? 괜찮아?”

내 옆에 선 언니가 나를 걱정스럽게 물어본다.

이전이라면 표정 변화에 읽는 게 서툰 언니가, 이제는 내 표정을 읽어온다.

“괜찮아요. 언니.”

나는 언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래, 이제는 다 과거다.

내 인생에서 잘라낸 기억이다.

나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 다음엔 다리를 흔들게요. 오른쪽부터, 원 투 원 투”

“목은 45도로 자신의 발끝을 보는 기분으로 원 투 원 투”

댄스 전 스트레칭의 루틴을 푸는 운동이

짝 짝짝 짝 짝짝 짝 짝짝

“원 투 원 투 원 투”

박수 소리에 맞춘 소리 신호

“라이트 레프트 라이트 레프트 라이트 레프트 턴, 자 다시 라이트 레프트…”

한국인 출신이라고 말한 댄스 레슨 선생의 아이돌 스텝을 가르치는 리듬과 박자

그 모든 게

예고 없이 찾아온 무례한 불청객처럼

혹은

언젠가 버린 줄 알았던 신발이 다시 내 신발장에 나타난 것처럼

그때의 기억이 나를 찾아왔다.

언젠가 예상했던 일이다.

버츄얼 유튜버’아이돌’을 지망하는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내가 언젠가는 아이돌을 교육하는 장면을 보게 될 날이 오리라고는 말이다.

지금 홀린듯이 댄스 레슨을 보고있는 나에 언니가 저 그룹에 끼어서 춤을 연습하면서 노래를 연습하는 날이 오는것을 말이다.

하지만

오늘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저기 혹시, 괜찮으시면 잠시 대역 좀 부탁드려도…”

“죄, 죄송합니다. 화장실 좀 갈게요.”

심지어 댄스 선생의 땀을 닦아내는 모습조차

과거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에 나는 다급히 화장실로 도망쳤다.

짧지만 이쪽에 관해서 공부한 나는 내게 일어난 현상이 무엇인지 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다.

나는 가빠지는 호흡과 좁아지는 시야를 애써 의식하지 않으며 화장실로 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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