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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41화 (41/307)

〈 41화 〉 40화.

* * *

‘유나 너는 재능이 있어.’

죽도록 노력했다.

‘다들 주목, 유나의 모범적인 스텝을 보면서 저 리듬을 따라 하도록’

부서지라 노력했다.

‘리듬감이 죽잖아! 유나를 좀 보렴, 춤에 리듬이 살아있어서 생동감이 넘치잖아.’

춤에 몸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어린 나이에 죽도록 몸을 가꾸었다.

무리한 운동으로 몸이 상하는 건 신경 쓰지도 않았다.

‘유나의 성량이 좋지는 않아도 호흡만큼은 철저하게 지키잖아, 왜 다들 유나처럼 못 하는 건데?’

성공하기 위해서 숨 쉬는 법도 바꾸었다.

‘유나라면 훌륭하게 데뷔할 거야’

‘유나같이 열심히 하는 애는 무조건 성공할 거야.’

‘아, 다른 애 중 두 명 정도만 유나처럼만 해도 성공할 건데’

‘유나라면 당연히 센터죠’

‘아니죠. 유나라면 차라리 단독으로…’

수많은 기대가 나를 짓눌렀다.

유나야

유나?

야 김유나

유나 언니

유나 선배님?

야 나대니깐 좋냐?

왜 너 같은 애가 내 동기인 거야?

재수 없어 정말, 자기만 잘나면 다 된 거야?

유나, 난 네가 정말 싫어

밉다. 유나 네가 밉다고!

유나!

유나!!

너 같은 애 차라리 없으면 좋았는데

그보다 많은 증오의 시선이, 한 맺힌 시선이 나를 짓눌렀다.

“우웨에에엑”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화장실에서 속을 비워내고 있었다.

귀가 멍하다.

생각이 없어진다.

아니다.

생각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찬물에 적셔진 것처럼 명료해진다.

나의 뇌가, 나의 의식이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도록 강제한다.

‘꿈을 접거라’

꿈을 접었다.

‘이제 네가 틀렸다는 게 알겠지? 그러니 얌전히 내 말에 따라라.’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고, 내 인생을 그 말에 맞추었다.

‘유나 너는…’

나는 그래… 나는

호흡이 가빠지며 다시 몸이 떨린다.

발작의 전조다.

“유나 괜찮아?”

그런 내 등을

작고 따스한 손이 쓰다듬어주었다.

토악질의 흔적을 변기에 흘러내렸음에도 숨길 수 없는 고약한 냄새에도 불구하고

나에 언니의 따스한 손과 걱정 가득 담긴 눈이 나를 바라본다.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네, 갑자기 속이 안 좋아져서요.”

“혹시…”

“아, 아니에요. 언니 요리 때문이 아니에요. 그냥… 그냥 좀 피곤했나 봐요.”

“미안해… 내가 괜히 댄스 레슨 보자고 해서.”

“아니에요. 제가 요즘 게임을 하느라 밤에 잠을 못 자서 그래요.”

처음으로

처음으로 장난이 아닌 목적으로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것을 알아차렸을까?

그녀의 걱정 담긴 두 눈이 나를 떠나질 않는다.

“흠흠, 어서 돌아가죠.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겠어요.”

그녀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유쾌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

조심스럽게 문 안을 열고 연습장으로 들어가자,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움직이는 그녀들이 보인다.

박수 소리에 맞춰서, 느리고 어설프지만

그 누구보다도 활기차게

자신을 기대해주는 팬들에게 호응하기 위해서 구슬땀을 흘린다.

방송 내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장난스러운 다비를 연기하는 리나씨는 진지한 표정으로

방송 내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자애로운 마녀를 연기하는 치에리씨는 엄격한 표정으로

방송 내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근엄한 아그니를 연기하는 샤디아씨는 해맑은 표정으로

세 사람 모두 이 일을 즐기면서 춤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자연스럽게 옛 지식이 떠오른다.

댄스를 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

박자 감각, 운동신경, 표현력, 동작 이해도, 그리고 자신감

보고만 있어도, 내가 배운 모든 게 떠오른다.

그리고

그리고

뭐더라?

내가 놓친 기억을 되짚고 있자니 묵힌 그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유나…언니…

귀신처럼 나를 부르는 그 기억

그날 죽어가던 그녀의 차가운 손이 내 뺨을 어루만지는 환각이 떠오른다.

한때 정말로 아이돌을 꿈꿨으나

그것을 포기하고 도망친 나에게 잊지 말라며 다가오는 그 기억이 말이다.

나는 여기에 있지만

자꾸만 과거의 악몽들이 나를 과거로 데려가려고 한다.

자꾸만 과거로 끌려가던 나를 잡아주는 것은

보고자 했던 댄스 레슨이 아닌, 내 얼굴만 걱정스럽게 바라봐주는

이 작은 여성의 따스한 손이었다.

그녀는 첫날 그 만남처럼 상처받은 어린 짐승의 눈길로 눈물을 머금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나는 여기에 있다.

여성끼리의 친밀한 신체 접촉을 백합이라 하였던가

나에게 열성적으로 백합을 가르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

부드러운 제비꽃 향 샴푸 냄새가 내 코를 기분 좋게 간질거린다.

그녀가 놀란 듯 내 품을 벗어나려 하자, 나도 모르게 그녀를 다시 껴안았다.

“미안해요.”

“…아냐.”

“이젠 정말로 괜찮아요.”

“…거짓말하면, 미워할 거야.”

음…

찔린다.

나는 화제를 전환했다.

“언니도 저렇게 춤추고 싶어요?”

댄스의 기본인 스텝을 연습하는 그녀들을 보면서 말했다.

한국 대형 소속사에서 데려왔다는 게 거짓이 아닌 듯

그녀의 레슨은 기본기를 병적일 정도로 중요시하면서 정확한 동작을 지키도록 지시했다.

“응, 유나 덕분에 나는 다시 저런 꿈을 꿀 수 있었어.”

그녀는 마치 별똥별에 소망을 비는 소녀처럼 자신의 두 손을 모으며 그리 대답했다.

꿈을 꾸는듯한 그 표정

나는 그녀의 얼굴을 홀린듯이 바라보았다.

꿈을 꾸는 소녀의 얼굴이란 이리도 아름다운가?

생전에 든 적이 없는 낯선 두근거림이 가슴에 울렸다.

그녀를 응원하고 싶었다.

그녀에게 내 비밀을 가르쳐주고 싶어졌다.

“춤을 출 때 뭐가 중요한 거 같아요?”

“음… 운동신경, 박자 감각, 센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자신이 무슨 동작을 취하고 있는지 파악하면서 몸을 다루는 운동신경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서 몸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박자 감각

그리고 센스라,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배운 춤이 절대적인 정답은 아니니까

하지만

가장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

“근육이에요.”

“뭐?”

“코어가 잡힌 근육과 그러지 않는 근육은 피로도 차이와 몸이 만들 수 있는 선이 달라져요.”

“농담 아니지?”

“화려하기만 해서는 아이돌이 될 수 없어요. 춤으로 만들 수 있는 근육과 그것들을 지탱해주는 근육은 달라요.”

기합과 열정만으로 버틸 수 없다.

누군가가 그랬다.

체력이 없는 정신력은 그저 구호일 뿐이라고

나는 그 말에 철저히 동감했다.

그렇기에 근육을 가지되 그것을 남자 아이돌만큼 키울 수 없는 여자 아이돌들은 힘들다.

그렇다고 근육을 포기하면 아름답고 절도 있는 동작이 가질 수 있는 절제력이 안 나온다

절제를 잃어버린 춤은 흐느적거리며

그것은 웨이브가 보이는 아름다움과 다르다.

“잘 알고 있네요. 혹시 다른 기수의 버튜버세요?”

어느 순간 다가온 댄스 트레이너가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쿠로가와 나에의 매니저인 김유나입니다. 유나라고 불러주세요”

“선라이즈 소속의 댄스 트레이너 이진아입니다.. 지나라고 불러주세요.”

한국인들만이 나누는 인사

그것은 일본인들이 발음하기 편하게 그들의 음성에 편하게 부를 수 있도록 이름을 살짝 고쳐 부르는 문화다.

내 이름을 듣자 흠칫 놀란 지나 씨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나에게 물었다.

“혹시 유나 씨… 제가 아는 그 유나 님이…맞을까요?”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역시 그녀의 전 소속사와 내가 중학생 때 몸담은 소속사는 같은 모양이다.

아니라고 대답을 할까… 하는 생각이 빠르게 지나갔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거짓말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한다면 미워한다고 했다.

“네.”

“…실례했어요. 그, 설마 소문의 그 연습생을 듣게 될 줄…”

“…인성 파탄 난 연습생에 사람 죽게 한 살인자로요?”

“아뇨. 아뇨, 아뇨! 그럴 리가요, 비운의 연습생으로… 그래서 아이돌의 성공에는 운이 필요하다고…”

반면교사가 된 거겠죠. 라는 말이 들리는 거 같았다.

“위약금을 물어내느니 마느니 했는데… 의외로 일이 커지지 않았네요.”

“알 사람들은 다 아니까요… 그리고 저 윤희쌤에게 교육받았어요.”

“아니 그 할머니가 아직도?”

“… 윤희쌤을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라니”

아…

제법 시간이 지났지 참

나를 가르친 윤희 선생님은 수많은 아이돌들을 길러냈다.

소위 A반인 엘리트 반을 담당할 만큼 실력이 넘친 분이시니 오랫동안 일하시겠지.

아무래도 그녀는 좀 더 엄격해진 모양이다.

한국어로 진행되는 대화가 신기했을까?

버튜버들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선생님 쿠로가와씨의 매니저와 아는 분이세요?”

“아…”

그녀는 대답하기를 주저하는 모양이다.

나는… 도망간 과거와 마주하기로 했다.

나는 내 옆에 선 나에 언니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제가 한때는 여러분이 아는 그 기업의 연습생이었어요. 뭐 중학생 때지만요.”

“오!”

“역시 아이돌이잖아요!”

“아니요, 연습생이었어요.”

나는 엄격하게 둘을 구분했다.

아이돌과 아이돌 연습생은 엄연히 다르다.

“그래도 같이 춤추자!”

연습 중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즐기면서 춤을 추던 리나씨가 말했다.

내가 도망친 그 무대

거기에서 다시 내 춤을 펼쳐달라고 순진하게 묻는다.

“저기, 유나씨는 그…”

“할게요.”

내 과거를 말하려던 지나씨가 춤을 추겠다고 대답한 나를 보고 두 눈을 크게 뜬다.

하지만 내 시선은 지나씨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떨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나에 언니에게 향했다.

그녀의 떨리는 그 두 눈을 매료시키고 싶다고

나의 재능으로 타인을 매료시키고 싶다는 아주 오래전 해묵은 욕망이 되살아났다.

만약 내가 누군가를 춤으로 매료시킨다면…

그 대상은 무조건 그녀여야만 했다.

내 몸은 그때보다 완성되어있다.

멋진 춤은 훌륭한 피지컬에 나온다는 가르침을 이어받은 나는 그때보다 완성되어있다.

나는 다짐했다.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언니의 두 눈에

한 때는 한국 최대 아이돌 프로덕션에서 최고라고 불리던 연습생의 춤을 보여주겠다고

언니가 나아가야 할 길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겠다고 말이다.

나는 그렇게 오 년 만에 다시 조명 아래 타인의 시선을 받으며 춤을 추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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