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41화.
* * *
국내 최대 아이돌 프로덕션의 댄스 강사로 일한 적 있는 이진아는
가끔씩 선배들과 이야기하다가 나오는 소문의 연습생을 일본의 한 기업에서 보게될 상상도 못했다.
김유나
가장 불쌍한 원석
흔하디 흔한 이야기였다.
좋은 아버지를 둔 딸이 아이돌이 되고싶어서 지망을 했다가
실력으로 절대 넘볼 수 없는 한 연습생에게 질투해서
그녀를 괴롭히다가, 그것을 버티지 못한 소녀가 떠난 이야기
그 이후 프로덕션에서는 절대로 관계자의 혈연 관계에 있는 이들은 사촌까지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 희생된 아이와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세상을 떠난 아이에게는 소용이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프로덕션 내에서 성공에 조급함을 느끼는 연습생들에게 들려주는
‘성공에는 운이 필요하다’라는 교훈에 등장하는 비운의 인물이 바로 유나였다.
그래도 내심 ‘에이 한 연습생이 대단했다면 얼마나 대단했겠어?’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 지나는 그녀가 가졌던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전설의 연습생’ 김유나의 소문에는 일말의 거짓도 없었다.
타고난 아름다움과 가꾸어진 아름다움이
자신만의 센스를 받아 하나의 매력이 되는 외모
그것은 아이돌이 되기 위한 출발선이었다.
아이돌 프로덕션은 단순히 예쁜 연습생들로만 데뷔시키지 않는다.
그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퍼포먼스
타고난 재능과 끼를 타인에게 내보이는 그 퍼포먼스를 온전히 떨칠 수 있는 이들만 데뷔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유나의 춤은 아이돌 프로덕션이 지향하는 목표점에 도달한 인물이었다.
멜로디와 비트에 따라서 춤이 바뀐다.
허리의 부드러운 웨이브와 함께 흔들리는 머리칼은 우아한 아름다움을
그에 대비되는 하체의 흔들리지 않는 스텝은 단정한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긴 체형을 가진 연습생들이 으레 보이는 ‘흐느적 거리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게 하는
아이돌 트레이너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근육이 절제미를 더한다.
이어지는 동작에 숨은 흐트러지지 않으며
단 한순간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게 하는 올곧은 자세에는 감탄이 절로인다.
춤을 잘 추는건 백댄서도 가능하다
하지만 춤을 추면서 자신의 매력을 살리는건 아이돌의 영역이다.
그 점을 두고 보면, 김유나라는 사람은 당장 어딘가의 센터에 집어넣어도
타인을 매료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연습실의 싸구려 조명 아래와 춤에 어울리지 않는 오피스룩 만으로도 증명이 가능했다.
음악이 멈추고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로 미소를 짓는 그녀는
누가 보더라도 완벽한 아이돌이었다.
한창 성장기에 있었던 중학생의 신체 조건과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하게 관리가 되어 신체의 절정기에 도달한 성숙한 성인의 몸으로 추는 춤은
완전히 다른 감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물지 못한 근육이 아닌 완전히 자리잡은 근육이 자세의 떨림을 가라앉히고
허리 라인과 몸을 부각시키는 웨이브 동작에는 성인만이 풍길 수 있는 섹시함이 묻어나온다.
춤을 추면서도 내심 걱정을 많이 했는데
춤이 끝난 뒤 나에게 박수를 치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아니
다른 사람들의 감탄어린 표정보다
나에게 입을 벌리면서 매료된 나에 언니의 모습을 보니
그 무엇보다도 기분이 좋았다.
“꺄아아악 유나씨 너무 멋져요!”
리나씨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땀 범벅으로 흐르는 내 목덜미 위로 치에리씨가 수건을
샤디아씨는 나에게 시원한 물병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언니는…
“유나 수고했어!”
마치 대형견을 쓰다듬는 손짓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어, 음 주로 내가 쓰다듬는 포지션이었는데
이번엔 그녀가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저 멋졌죠?”
“응,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게 아까울 정도로 멋졌어.”
그녀의 미소를 보고나니 그간의 긴장이 사르륵 녹는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이라 걱정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었네요.”
비록 아이돌 데뷔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지만
그래도 내가 흘린 땀과 노력의 눈물은 거짓을 하지 않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몸에 때려 박아넣은 노력은 쉽게 배신하지 않는 법이다.
다행히도 나에 언니 앞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어서 나는 안심했다.
숨을 고르고 있던 나는 2기생의 선배들과 지나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지켜보았다.
“유나씨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서,선생님 혹시 저런 걸?”
“저희도 저런 댄스를 하나요?”
그녀들이 걱정, 혹은 기대감을 가지고 지나씨에게 질문을 쏟아부었다.
그말을 들은 지나씨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말씀 하시는거에요? 유나씨의 퍼포먼스는 현역 중에서도 차트에 들어갈 만한수준이라구요..”
“일본 기준이요?”
“아뇨 한국 기준으로요.”
한국기준 차트 안에 들어갈 실력이라…
솔직히 그 정도 까지는 아니지만, 동향 사람의 노골적인 칭찬에 미소가 지어지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그래도 이제 막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그녀들에게는 너무 머나먼 목표겠지
그녀들은 평범한 아이돌 연습생도 아니고, 신체 조건은 평범한 일반인에 가깝다.
아니지
모두가 100만 버튜버라는 점에 있어서 그녀들의 살벌한 방송 스케줄이 있기 때문에
그녀들이 나처럼 춤을 추는데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들어갈것이다.
그녀들의 대화를 듣던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저는 중학생부터 식단을 조절을 하고 하루에 두 시간 이상씩 꾸준히 운동을 했어요. 고등학생 때는 줄기는 했어도, 제 건강 지표는 아마 최상위일걸요?”
적정 운동량을 넘어선 퍼포먼스를 보이는 아이돌이나 한계를 시험받는 운동 선수와는 달리
나는 아이돌의 꿈을 접고도 나의 아름다움을 포기한 적이 없다.
그리고 한 번 근육을 만들어 두니 자꾸만 관리하고 싶어지는게 여자의 본능 아니겠는가
“예쁘게 보인답시고 식사 안하고 굶다가 하루에 한 끼 자기가 원하는 영양 파괴된 음식을 먹으면서 건강관리한다고 자부하는 애들과는 차원이 다르죠.”
내 말에 자극을 받았는지 2기생 선배 버튜버들이 격침했다.
찔리는 게 있는 듯 자신들의 가슴 혹은 배를 만지면서 주저앉았다.
나에 언니도 찔리는게 있는지 상처받는 표정을 지었다.
“하, 하하 대단하시네요.”
“굶어서 이뻐지는건 일순이지만 근육은 영원이죠 영원.”
“하…하하…윤희쌤 밑에 구른 사람들은 다들 헬창이 된다는데 진짜네요.”
“근ㅇ”
“그 이상 이야기를 하면 제 학생들의 의욕이 박살나버려요!!”
아무튼
일본에는 평균적으로 마른 몸매의 여성들이 많은데
운동이 아닌 식단 조절로 이루어낸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사람이 식사를 하면 밥을 든든히 먹어야지
젓가락으로 깨작깨작 거리면서 이뻐보이려고 노력하고있어 라고 말하는
빼빼 마른 일본의 동성 친구를 붙잡고
같이 헬스장에 가고싶다는 충동을 얼마나 참고 있었던가!
평소라면 참을 수 있던 이 충동을
내 오랜 마음을 짓누르던 무언가가 사라져서 그런지
나는 참을 수 없었다.
벌떡 일어선 나는 가볍게 다리를 찢으며 몸을 보이면서 열변했다.
“딴건 다 괜찮아요. 하지만 방송을 오래하는 여러분들은 이 허리! 이 허리를 잡아주는 운동과 허벅지…”
찌이익
불길한 소리가 댄스 연습실 사이에 흐른다.
그리고 나는 허벅지에 시원한 느낌이 든다 싶더니
한계치 이상으로 움직인 옷이 내 동작을 버티지 못하고 찢어진다.
평소에 짧은 치마를 선호하던 나의 옷은 시원하게 수명을 달리헸고
순발력있게 찢어진 부위를 가렸지만 이미 수명을 다한 치마가 흘러내리는 것을 참아낼 수 없었다.
놀란 그녀들의 시선이 나를 집중한다.
그녀들의 시선에는 시원하게 죽어버린 내 치마와
그 사이를 막으려는 내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졸지에 옷을 찢고 몸을 노출하게 된 나는…
아
죽고싶었다.
대한민국 유교걸 김유나 인생 최대의 치욕의 순간이다.
어느 정도냐면 내가 동생에게 속아서 나에 언니 앞에서 ‘니코니코니’를 했을 때 이상의
치욕이
부끄러움이
쓰나미처럼 닥쳐왔다.
“오야? 오야오야오야? 이건 무슨 퍼포먼스일까나?”
“유,유나 보지 마세요! 제 매니저에요!”
두 눈을 빛내는 리나씨와
두 팔을 벌려서 나의 모습을 가리려는 나에 언니의 모습은
마치 사생팬들에게서 아이돌을 지키려는 매니저의 모습 그 자체였다.
완벽한 주종역전의 세계!
“너,너무 선정적이에요.”
평소라면 리나를 말릴 샤디아씨가 두 눈을 가리는 척 손가락 사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어머어머”
비교적 상식인 선에 속한 치에리씨도 사람 좋게 웃을 뿐이지 말리진 않았다.
“다,당신들 다 성희롱으로 고소할거에요!!”
“유나야 움직이지 마 진정해! 옷이 더 찢어져버려!”
“색깔! 색깔을 보자!”
이 일련의 소동은
사색이 된 얼굴로 여벌의 운동복을 지나씨가 가져올 때 까지 계속되었다.
아아
부끄러워 죽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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