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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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튜버들의 콜라보 방송 중 뺄 수 없는 콘텐츠는 바로 게임이다.
특히 코로나 시대 이후 급격하게 줄어든 오프라인 모임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이 가벼운 룰로 즐길 수 있는 사교용 게임이 대세가 되었다.
프로젝트 윈터 또한 다수의 인원들이 만나서 하기 좋은 온라인 게임이다.
플레이어들은 추위와 허기에 신경 쓰며 설산에 고립된 산장으로부터 탈출한다
하지만 항상 이들 사이에서 존재하는 배신자의 존재를 신경 써야 한다.
다수의 생존자 사이에 숨어진 소수의 배신자
이러한 마피아류 게임은 큰 인기를 얻고 있으며
방송 참여자들끼리 이루어지는 치열한 정치와
실수나 랜덤 요소로 이루어지는 온갖 새로운 에피소드는 좋은 방송 소재가 되어준다.
선라이즈는 그런 인터넷 방송계의 흐름을 알기에 적극적으로 게임이 주력이 아닌 멤버들에게도
게임을 좋아하는 멤버들의 디스코드 채널에 들어가 합방하기를 권장하는 추세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선라이즈 내에서도 인지도는 낮아도 경력 자체 가긴 코모레비의 게임 방송 참가는
회사에서도 크게 반기었다.
물론 소문의 대선배급 인원의참여는 이전에도 없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음악 방송만을 고수하던 코모레비가 참여하는 점은 신비로웠다.
도쿄 외곽의 한 저택에서
합동 방송에 등장하게 된 코모레비를 연기하는 츠유는 비장의 각오로 방송을 켰다.
이전에만 하던 음악 방송과 소소한 잡담 방송을 벗어나,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어필해서 조명을 받기 위해서 그녀는 합동 방송의 빈자리에 지원을 했다.
딱히 까다로운 조건은 없지만… 8명 사이에서의 방송에서 자신의 개성을 잘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아이돌은 이미지를 파는 직업이에요’
유나의 직접적인 조언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버튜버의 자신이나
아이돌로의 자신이나
결국 대중에게 자신을 각인시켜야 했다.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아이돌
그래 스스로를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아이돌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렇고.
아이돌이라면 이래야 해
아이돌이라면 귀엽게 웃고
아이돌이라면 상냥해야 해…
그건 자신이 바라던 아이돌이 아니다.
어느 사이엔가 자신은 자신이 피하고자 했던
그런 아이돌 존재가 되었던지도 몰랐다
유나가 말했다.
아이돌이라면 자신이 코를 파는 모습이라도
코 수술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팬들에게 보여지는 이들이라고…
그녀가 보여준 은퇴한 아이돌들의 게임방송
항상 자신감을 가지고 사람들을 당당하게 매료시키라던 그 말
유능한 매니저의 그 말들을 종합하자면…
‘광기를 해방하렴’
물론 유나가 들었으면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펄쩍 뛸 말이지만
츠유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돌다워야 한다’라는 강박 관념 아래에 참고 있던 무언가를 해방하라고 말이다!
각오를 다진 그녀의 게임 화면에 배신자의 마크가 떠올랐다.
붉은 자신의 이름
이번 게임에서 그녀는 살인자다.
누가 보면 경찰에 신고할 법만 한 영화 속 연쇄살인범 같은 냉소를 지은 그녀가 게임에 임했다.
“유나야 솔직하게 말해, 너 우리 회사 우습게 보고 있는 거 맞지?”
“…언니 제가 그럴 리가요.”
이만한 복리후생과 월급, 인센티브를 주는 회사는 잘 없다.
“아이돌 회사라고 아이돌!!! 그중에서도 코모짱은 가장 아이돌스러운 사람이었다고!!”
휴대폰 너머로 열변을 토하던 그녀는 하나의 동영상 링크를 나에게 보내왔다.
‘레비코패스’라는 그 동영상에는…
화제의 게임인 프로젝트 윈터에서 ‘아이돌 필터’를 빼버린 코모레비가
참가자들을 속이고 사냥을 하러 가자며 꼬신 후 죽인 다음 시체를 은닉한다거나
신들린 컨트롤로 살해 현장을 들키는 순간 혼자서 둘을 제압한다거나
죽은 시민의 심장을 다른 시민에게 먹인 후 ‘그거 동료의 심장이었어, 고기는 맛있었어?’라고 한다거나
같은 배신자를 팔아넘긴 후 신용을 얻은 다음 최후의 뒤통수로 살아남아서 후후후 웃는다거나
피 묻은 도끼를 휘두르고 다니면서 ‘우리 모두 죽자’라고 귀신처럼 말하는 플레이가 스산한 배경과 함께 편집되어 있었다.
그 강렬한 광기를 잘 담아낸 코모의 플레이 영상은 게임 분야의 급상승 순위에 올렸다.
그중 가장 강렬한 장면은 생존자의 탈출 경로에 캠프를 차려두고, 천천히 도끼를 갈면서 멜로디를 흥얼거리는데
느릿하고 스산한 분위기의 멜로디와 게임 내의 눈보라 소리가 적절하게 겹쳐져서 공포감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음악 멜로디가 듣기 아름다워서 듣는이를 홀리게 했다.
버튜버를 둘러보는 사람들의 뇌에 코모레비라는 버튜버의 강렬한 존재감에 제대로 새겨졌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솔직한 감상 소감을 말했다.
“좋은데요?”
“너는!! 아이돌이! 피 묻은 도끼를 휘두르면서!! 식인을 권장하는 게!! 정상이냐!!”
으음
언니의 상식적인 절규에 할 말이 사라졌다.
“그래도… 인기가 올랐잖아요?”
회사 프로그램을 통해서 검색 유입 및 구독자 증가 추세를 확인한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이거면 실버 버튼도 금방 받겠는데?
특히 그 합동방송의 인원 중에는 우리 회사의 1기생이자 가장 구독자 수가 많은 ‘이나리’가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구독자중 많은 인원이 코모레비의 채널로 향했다.
게임을 잘하고 즐기는 이나리의 시청자 중에서는 게이머들이 많았는데
그중 많은 이들이 코모레비가 부른 유명 게임 타이틀을 듣고 코모레비의 구독자가 되었다.
오래전에 녹음한 그녀의 동영상들의 조회 수가 급격히 올라간 것은 분명히 이번 방송의 결과다.
“안 그랬으면 넌 해고야 해고.”
“그, 그래도 이건 다 계획된 설계였어요.”
“무얼 보고?”
“음, 츠유짱의게임 실력?”
사실 틀린 건 아니다.
게임을 잘하고 승부욕 강한 그녀에게 힘을 숨기지 말고, 아이돌이라도 게임을 잘하는 건 흠이 되는 게 아니니 그냥 시원하게 그녀의 거친 게임 폭력성을 들어내라고 한 건 사실이니 말이다.
그게 이런… 광기의 사이코패스에 이어질 거라고는 나도 생각 못 했다.
아무래도 쌓인 스트레스가 내 생각보다 많았나 보다.
“너… 유리아도 그렇고 코모레비도 그렇고 왜 이리 광기 이미지를 못 만들어서 탈이야?”
“제, 제가 잘못한 게 아니라 저는 그저 그녀들의 어둠 속의…”
“우리 회사의 아이돌들에게 어둠이 있다는 잔혹한 말을 회사 임원인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 말아줘!!”
“언니 받아들이면 편해요… 결국 늘어나는 구독자 수와 회사 메일에 쌓여가는 콜라보 기획서나 투자 제안서가 늘어나는 게 최고라고요?”
“그래도 당분간 광기는 멈춰줘!! 멈춰 달라고!!”
일반 아이돌도 아니고 인터넷 방송계의 아이돌인데 너무 이미지를 빡빡하게 지키려는 게 참 안쓰럽다.
이미… 사장의 꿈은 박살이 났건만, 청초함을 집착하려는 그의 의지가 너무나도 안타깝다.
이제 이쪽 바닥에 적응한 나는 ‘청초’ 는 곧 ‘광기’라는 것을 알았다.
사실 순수함으로부터 나오는 광기야말로 진짜 광기지…
“어쩐지 유리아로 사이코패스 살인마 캐릭터를 만들 때부터 알아봐야 했었어…”
“아니, 나에 언니 일은… 저도 몰랐어요.”
이건 진짜다.
“너, 진짜, 파릇파릇한 5기생들에게 손 뻗으면 가만히 안 둔다.”
“… 제가 무슨 전설의 카사노바에요? 회사 소속 버튜버들에게 다 손 뻗고 다니게.”
정명 정당한 대한민국의 유교 계보를 잇는 김해김씨의 45대손쯤 하는 조신한 유교 소녀 김유나는 쉽게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다.
“너 2기생들에게…”
2기생들?
그녀들에게 내가 뭘 했더라?
나는 무심코에 쓰레기통에 내다 버린 치마를 보았다.
그리고 그 날의 기억과 옷 찢기는 환청을 들을 수 있었다!
“아아 아악!!! 그거 제발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너 몰랐니? 어제 마녀 씨 방송에서 댄스 레슨 이야기가 퍼져서…”
아…
설마 그 에피소드가 방송으로 풀린 거야?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얼굴 색깔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의 매니저이긴 해도 타인의 옷이 찢어지고 본의아니게 속옷을 노출하게 된
부끄러운 에피소드를 방송에서 풀어버리다니!!
그래도 마녀씨는 이런 성희롱적인 이야기를 방송에 풀지 않아서 방심하고 있었는데!
“언니, 그거 진짜, 진짜 진짜 오해에요.”
“너… ‘메이드 라짱’으로 당분간 R18 태그 걸고 에고 서치 하지 마렴….”
“…네.”
자신의 이름으로 팬아트를 검색하는 에고 서치
평소라면 나는 유리아의 곁에 있는 메이드나
내 캐릭터를 멋지게 그린 팬아트를 열심히 찾으러 돌아다니겠지만
이 에피소드가 풀린 시점에서 그런 검색을 해버리면…
당분간 얼굴을 들고 사람을 만나러 다닐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다.
“그래 유나야, 당분간 그 광기 전파는 참아줘.”
“저 그런거 퍼트린 적 없다니까요? 사람들이 광기 = 성공이라고 착각하는 이들 없도록 좀 전달 잘 해주세요.”
“그래그래, 아 통화 끊기전에 잠시만… 그래서 뭐 하나만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뭔데요?”
“그래서 그 날 팬티 색깔은 뭐였니?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 하고있단다.”
“언니 성희롱으로 고소할거에요.”
진짜
코이즈미 언니를 한 대 패버리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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