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옆방엔 버튜버가 산다-44화 (44/307)

〈 44화 〉 43화.

* * *

“축제요?”

“응.”

여름이 끝나갈 무렵

동기생과의 콜라보 방송을 멋지게 마친 언니가 다음 날 아침 어디선가 가져온 불꽃놀이 축제 포스터를 나에게 보여주면서 그렇게 말했다.

아니 이 언니가 코로나 시대에 무슨 소리래?

“언니? 코로나인데요? 굳이?”

“유나랑 가고 싶어.”

이 언니는 가끔가다가 아이 같은 면모를 보인다.

그래 지금처럼

무턱대고 ‘해 줘’라고 말한다.

“무리에요. 그냥 집에서 안전하게 보는 게 어때요?”

“나, 유나랑 같이 축제 가보고 싶어. 유나 개학하면 더 바빠지잖아.”

확실히

온라인 수업을 받기 시작하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렇게 되면 일정이 제법 빡빡해진다.

수업과 과제, 그리고 오후에는 업무라…

개강 날짜가 점점 다가오자 내가 과연 이 업무들을 소화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무리 취업을 한 이후로 일본어가 폭풍 성장한 나라고 해도

수업을 유지하면서 가사 일을 챙기고 매니저도 겸하게 될 것이니

아무래도 언니를 이전처럼 잘 챙겨주기 어려울 것 같았다.

유학생과 매니저 일을 겸업하는 일은 꽤나 힘들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언니는 그런 내 고민을 이해하는 듯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있는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누군가가 내 머리를 만지는 거 싫어하는데

언니가 만지는 건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언니의 손길을 받고 있자니 찌끈거리는 두통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이래저래 다양한 요소들을 생각한 나는 대답했다.

“좋아요. 가요.”

“정말?”

“네, 대신 안전 수칙 잘 지키고 마스크 잘 쓰고 돌아다니고…”

“응! 좋아!”

기왕 이렇게 된 거 즐길 건 제대로 즐겨야겠다.

나는 나에 언니의 좁은 인간관계 속에서 그나마 부를 수 있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작년에는 과 동기와 동아리 선배 그리고 친구와 같이 축제를 하러 갔지만…

올해에는 그러기 힘들겠지?

왠지 내 머리를 만지는 나에 언니의 손길이 멈춘 것 같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미우와 말리아에게 연락을 넣었다.

원래 이런 건 사람이 많아야 재밌지

안 그래요. 언니?

그렇게 불꽃 축제를 보러 가는 게 정해진 그다음 날

일본인인데도 그동안 불꽃 축제에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유카타가 없다는 그 말을 듣고 나니 내버려 둘 수 없었던 나는 축제에 가기 전에 쇼핑을 하러 가기로 했다.

겸사겸사 오랜만에 다른 사람들과 인사도 나눌 겸 말이다.

“언니들~~반가워요!”

이케부쿠로의 약속 장소로 유명한 ‘이케후쿠로’라는 부엉이 동상 앞에서 미우가 마스크로 가려져도 알 수 있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미우 잘 지냈어? 90만 돌파 축하해!”

전원이 100만 구독자를 보유한 2기생 선배들에 이어서 가장 빠르게 성장세를 보인 미우는 최단기간 내에 가장 뚜렷한 구독자 증가 추세를 보이면서 인터넷상으로 굉장한 인기를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 걸까 미우의 표정에는 뿌듯함이 가득 차 있었다.

“유나 언니 고마워요! 나에 언니도 잘 지냈어?”

“응, 미우 덕분에.”

정말 지극히 정상적인 안부 인사

하지만 그 말에 미우는 감격을 먹은 듯 대형견을 쓰다듬는 몸짓으로 나에 언니를 쓰다듬었다.

“아이고 언니가 이런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된다니 너무 감동이야.”

“부,부끄러워 미우.”

평범한 인사 받아주기에 나에 언니와 오래 알고 지낸 미우가 저런 반응을 보이다니...

도대체 언니는 어떤 사람이었던 거야?

그리고...

“유나님 오랜만이에요.”

“아, 말리아씨 잘 지냈어요?”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말리아양과... 두 명의 사람이 보인다.

한 명은 며칠 전만 해도 나와 같이 글로벌 회의를 했던 마츠시타 씨

그리고

“코토나시...씨?”

“...”

무언가 내가 마음에 안 드는지, 말리아의 몸 뒤에 숨어서 고개만 빼꼼 내미는 붉은 머리 외국인 소녀가 고개를 까딱였다.

아니 저 두 사람은 부른 적이 없는데...?

“코이즈미씨가, 유나 당신이 또 새로운 여자 꼬실까봐 감시하러 왔어요.”

“...네?”

“당신 요즘 요주의 대상이에요.”

“저 정말 건전하고 올바른 유교적인 연애관을 가지고 있는데요? 게다가 코토나시씨는 부른 적이 없는걸요?”

“글쎄요... 아사히가 '말리아가 너무 유나에게 빠져 있는 거 같다'고, 사내 불건전한 연애를 감시한다는 이유로 따라 나오신다고 했어요.”

도대체 회사 내의 나의 이미지란 무엇이란 말인가

애초에 말리아씨와는 그렇게 연애 감정이 생길만한 이야기도 있었던 게 아니다.

미우와는 연애 감정은 무슨, 미성년자에게 연심을 품을 만큼 한심한 사람도 아니고, 그냥 활발한 여동생 취급을 하는데 무슨 감정이 생긴단 말인가?

나에 언니와는... 음, 언니가 나에게 의존하는 감정이 있긴 한데 이걸 연애 감정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쇼핑센터로 향하면서 나의 변명을 들은 마츠시타씨의 얼굴이 살짝 굳어가는 게 보인다.

아니 저기요?

“어, 음 유나씨는 다른 의미로 굉장히... 무서우신 분이군요?”

“제가 도대체 왜요?”

“저기, 저에게 너무 다가오지 말아 주세요. 저는 아직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도대체 왜 제 이미지가 여자를 쉽게 꼬시는 경박한 바람둥이가 되었냐구요!”

“유나 씨... 당신의 상사이자 글로벌 담당의 프로듀서인 저로서는 당신의 불건전한 연애사정이 정말로 걱정이네요.”

여,연애사정이라니...

절로 한숨이 나오는 마츠시타씨의 대답이었다.

오해를 풀어야 하는데, 최근 있었던 일들 때문에 풀지를 못하겠다.

아니 애초에 내 말을 들을 생각조차 없이, 나를 대놓고 감시하는 내 윗사람을 보고 있자니

그저 행동을 바르게 해서 오해를 빨리 벗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의 진심어린 행동에 언젠가는 자신의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풀어주겠지?

이 이야기로 대화가 길어지면 두통이 생길거 같아 나는 화제를 전환했다.

“그런데 저 두 사람은 잘 지내는 편인가요?”

“네, 주로 코토나시양이 클라크씨에게 들러붙고, 클라크씨가 밀어내는 편이죠.”

“네?”

“코토나시양이 끊임없이 대쉬를 하는 쪽이에요. 첫눈에 반했다나 뭐라나.”

“와…. 우...”

저게 서양의 뜨거운 동성애인가?

직구로 호감을 표현하다니 대단하다.

“사내 연애는 금지 아닌가요?”

“글쎄요, 일단 저게 정말로 좋아하는 건지 캐릭터 몰입 역할을 위해서 장난식으로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고 보니 캐릭터 컨셉과 디자인이 잡혔다고 했었지

“캐릭터? 그러고 보니 글로벌 쪽은 좀 다른 컨셉으로 간다고 하죠?”

“네, 아무래도 서양권에서 좀 편하게 몰입을 하려면 모모타로에 나올법한 이야기나 일본 전래동화에 나올만한 이야기보다는 그쪽 전승에 맞추는 게 좋으니까요.”

“아, 그래서 신화 쪽이군요?”

“그것도 다양한 컨셉이 나오는 그리스 쪽이죠. 뭐 설정상으로는 해당 신들의 자손이 신앙을 모으기 위해서 활동을 한다, 컨셉이니까요.”

"아 그래서 저번에 말씀하신..."

버튜버 네 명과 그 뒤를 걷고 있는 두 매니저의 구성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 이야기가 나와버렸다.

그나저나 글로벌 쪽 출범도 코앞이구나.

앞으로 일이 두 배로 늘어날 걱정을 잠시 했지만, 그래도 얼른 말리아가 자신의 꿈을 펼쳤으면 좋겠다.

비교적 희귀한 직종에 속한 네 사람이라서 그런가

그녀들은 금새 서로 친해진 거 같다.

사교성 좋은 미우와 코토나시씨가 대화를 활발하게 하면서

나에 언니가 조용하게 호응하고, 말리아가 폭주하는 코토나시를 말리는 조합이었다.

나에 언니의 아이같은 외형과 반응이 귀여웠는지 코토나시가 참지 못하고 나에 언니를 껴안는 게 보인다.

말리아는 그런 그녀를 떼어내려고 노력하고 있고 미우는 그 모습을 보면서 깔깔거리며 웃고 있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조합이 바로 저런 거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나의 눈에는 마츠시타씨의 옷차림이 밟혔다.

“그런데 마츠시타 씨.”

“네?”

“왜 당신은 유카타가 아니죠?”

“에?”

멍청하게 되묻는 마츠시타 씨는 자신의 정장을 바라보며 무슨 소리냐는 듯 나에게 되물었다.

“오늘 말리아씨가 불꽃 축제에 참여하는 건 아시죠?”

“그렇죠.”

“그리고 말리아씨가 따라오면 코토나시씨도 따라오는 거고.”

“네, 클라크양에게 다가오는 여자들을 쳐낸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마츠시타씨는 그녀들을 감시 차원에서 함께 축제에 참가하는 거고요.”

“그렇죠?”

“외국인인 두 사람이면 모를까, 일본인인 당신이 유카타로 축제에 참여하지 않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그런 내 대답이 황당했는지 침착한 편인 마츠시타가 말을 더듬었다.

“그, 그게 무슨 논리인가요?”

“설마 당신의 유카타 차림을 기대하고 있는 저 두 외국인에게 실망감을 부여하실 건 아니신 거죠?”

“아니, 아니아니, 유나씨 지금 당신의 논리 심각하게 이상해요.”

“축제를 즐기러 온 외국 소녀들의 심정을 짓밟지 마세요.

저 한국인이라 아는데 제 일본 친구가 유카타 차림으로 참여하지 않았을 때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받은 줄 아세요?

외국인을 바보 취급하는 일본인의 잔인한 비유카타차림의 여름 축제 참여는 절대 반대에요.”

사실 나도 이게 말이 안되는 억지 논리인건 알지만

외국인인 내가 이렇게 주장하는데 일본인인 그녀가 어찌 반응할까

“그,그, 그런가요?”

자꾸만 빼려는 마츠시타의 손을 잡은 나의 눈에는

‘4인 단체 손님 50% 세일’이라는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저 문구를 본 순간, 휴일임에도 숨막히는 회사인 분위기를 풍기는 마츠시타씨의 딱딱한 정장을 벗겨내고 축제 분위기로 몰입시켜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외국인들이 이렇게 축제에 기대하고 있는데 현지인이 전통복을 안 입어서야 모양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엄격한 모습만 고집했던 마츠시타씨의 가벼운 차림도 보고싶었기도 했고

그렇게 우리들은 서로에게 어울리는 유카타를 맞추면서 즐거운 쇼핑 시간을 보낸 후

나의 자동차를 타고 불꽃 축제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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