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44화.
* * *
한 번 생각한 적이 있었다.
만약에 차 안에 탄 전원이 같은 취미를 공유하고 있고
그들이 정체된 자동차 안에서 무슨 행동을 할까?
그 대답을 우리는 시원하게 해소할 수 있었다.
“강해질 수 있는 이유를 알았어.”
“나를 데리고 나아가~~”
일본인 셋 외국인 셋이 정겹게 애니메이션의 명곡을 부른다.
일본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타이틀을
블루투스와 페어링 된 곡에 나오는 음악에 맞춰서
우리들은 신나게 불렀다.
하나의 문화를 향유하는 일본인, 한국인, 호주인, 독일인 소녀들이 흥겹게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마음속의 무언가를 자극했다.
그건 내 옆에 앉은 마츠시타씨도 마찬가지인지 그녀 또한 노래를 부르는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면서 그녀들을 행복하게 관찰했다.
누군가가 진심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걸 즐기는걸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저렇게 즐겁게 진심으로 노래를 부르는 그녀들을 보니 나 또한 광대뼈가 올라갔다.
컴퓨터 앞에 앉건, 버튜버의 탈을 쓰건 아니건
그녀들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소중한 아티스트들이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선택해주는 음악이 바뀌자 그녀들은 편한 어조로 대화를 나누었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만화가나 성우가 누구인지, 좋아하는 게임이 무엇인지
애니메이션 업계의 사람에게 들은 제작 비화를 푸는 미우
오랜 덕질 경력으로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계보를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나에 언니
유독 음악에 관심이 많아서 게임과 애니메이션의 음악 프로듀서의 소개와 명곡들을 소개하는 말리아
해외 오타쿠 사이트에서 오랜 활동으로 쌓은 서양인들의 인식과 그들 사이에서 유명한 밈을 소개하는 코토나시
그 모두가 자신들이 좋아하는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일본어로, 혹은 영어로, 때로는 손짓 발짓을 섞어가면서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 사이에서말을 가장 유창하게 하는 건 당연히 미우였지만,
일본계 독일인, 일본에서 닛케이라고 부르는(??人) 코토나시 아사히는 유창한 일본어를 선보이며 대화의 분위기를 만들어나갔다.
중간중간 말을 더듬는다거나, 무의식적으로 독일어를 입 밖에 꺼내긴 하지만, 동양인인 내가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것과 누가 보더라도 서양인인 코토나시가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건 느낌이 달랐다.
아직 일본어가 완벽히 숙달되지 않은 말리아나 일본인이지만 커뮤니케이션이 서툰 나에 언니는 그녀들의 말에 호응하면서 재미있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각양각색의 매력을 가진 여성들이 유카타 차림으로 대화하는 것만 지켜보아도 입가에 미소가 생긴다.
최근에 보았던 러브 코메디 만화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들이 재잘재잘 떠드는 모습을 보는 그 장면이 오버랩 되서 그런지
나는 그녀들이 작품속의 인물들이 아닌 실재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도 그녀들의 매력에 흠뻑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다.
이게 저번에 나에 언니가 말한 ‘백합’이라는 모에 요소인가?
운전의 피로도 느낄 새 없이, 나는 그녀들을 축제 장소로 이끌었다.
“우와아 Subarashi!”
말로만 듣던혹은 만화나 애니메이션 속에서만 보던 일본 축제
그 생동감 넘치는 광경을 눈앞에 마주한 두 외국인은 버킷 리스트의 목표를 달성한 사람마냥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윤기가 흐르는 금발 머리를 말아 올려서 단아하게 정리를 한 말리아는 푸른 두 눈으로 정신없이 움직이는 등불을 구경하고 있었고
생기 넘치는 붉은 머리카락을 두 갈래로 땋아서 정리를 한 코토나시는 말리아의 손을 꼭 잡고 음식을 파는 노상 매점을 가리켰다.
미우는 그런 두 서양 소녀들의 반응을 보고 웃음을 터트리고, 사람이 많은 공간이 부담스러운지 나에 언니는 내 뒤로 몸을 숨겼다.
폭주하기 시작한 두 사람을 마츠시타씨가 허겁지겁 쫓아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내 주위에는 미우와 나에 언니 둘만 남았다.
어느새 내 곁에 남은
마스크로도 감추지 못할 귀여움의 나에언니
일행중 미성년자면서 누구보다도 성숙한 매력을 뽐내는 미우
그녀들은 인파속에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인지, 내 양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가장 의외의 모습으로 나를 놀래킨것은 다름아닌 나에 언니였다.
“유나유나, 저기 봐봐 말로만 듣던 쿠시야끼(일본식 고기 꼬지)야!”
“유나유나, 카키코오리 먹자! 언니가 사줄게!”
“유나유나, 저기 봐 한국 요리야!”
“유나유나, 저기! 선라이즈 프로덕션 공식 굳즈를 차고있는 사람이 있어!”
일본인으로 태어났지만 단 한번도 축제에 참여한 적이 없다고 말했던 나에 언니
축제 현장의 북적북적한 인파에 적응한 나에 언니는
고등학생인 미우보다 더 어리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들뜬 모습을 보였다.
어느 사이엔가 힘이 붙은 그 작고 여린 육체로 그녀는 나와 미우를 잡아 이끌면서 평소에 상상으로만 즐기던 활기찬 축제 거리를 거닐었다.
기다란 줄로 장식되어서 참가자들의 머리 위에 온화하게 빛나는 등불
유카타 차림의 사람들이 걸으면서 터트리는 웃음소리
고기와 야채가 달콤한 소스를 만나서 볶는 과정에서 나오는 맛있는 향기
딱딱한 조리 아래에서도 느껴지는 돌길의 시원함
입 안에 달콤하게 굴러다니는 사탕의 달콤함
이전에도 겪은 적 있었지만, 다시 한번 느끼게 된 축제의 분위기에 나는 다시 압도 당했다.
평소라면 뉴스에서나 볼법한, 코로나에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리는 사람들을 경멸하던 나였지만
그들이 왜 전염 확산과 감염의 위협을 무릅쓰고 왜 축제를 즐기는지
나는 이제 알 것 같았다.
나는 나를 다시 이 매력적인 세계로 이끈 사람을 바라보았다.
축제의 흥겨운 음악과분위기에 취했는지 붉게 들떠오른 나에 언니의 미소는 같은 여자가 보더라도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방금 상점에서 산 백합꽃이 그려진 군청색의 유카타와 앙증맞게 메여진 리본 매듭
아름다운 검은 비단 같은 머리카락에 칸자시(일본식 비녀)로 말아 올린 그녀의 목덜미 사이로 흐르는 땀
마스크를 착용해서 그런지 더운 듯 부채질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축제를 즐기는 밤의 요정처럼 귀여웠다.
미우도 그런 나에 언니가 귀여웠는지 연신 엄지를 치켜세우며 감탄했다.
“역시 나에 언니가 제일 귀여워요!”
“응, 미우도 섹시하고 화려해!”
“꺄아악 언니 너무 귀여워 제 동생 해요!”
“더, 더워!”
나에 언니의 귀여움을 참지 못했는지 미우가 언니를 집어삼킬 듯 껴안았다.
미우 또한 일본 공항의 포스터에 등장해도 어디 꿀리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매력을 유카타 차림으로 뽐낸 아리따운 소녀였기에
그들의 감정 표현을 멍하니 지켜보던 나는 필사적으로 표정이 망가지려는 얼굴을 통제했다.
아름다운 소녀들이 저렇게 감정 표현을 하는 것 만으로도 방금 씹어삼킨 사탕보다 더 달콤한 감각이 입 안에 퍼졌다.
이게 바로 현실 버전의 모에 구나
그런 내가 얼을 타고 있어서 그런가?
어느새 다가온 미우와 나에 언니가 내 손을 붙잡고 새로운 장소로 나를 이끌었다.
“유나유나, 이거 먹어봐!”
“유나 언니, 사격해봐요. 사격!”
“유나유나! 저거같이 하자 저거!”
“꺅 언니들 저 대길 뽑았어요!”
양념치킨을 파는 한국 노점상에서 그 주변의 사격 게임 하는 곳으로
그 후 금붕어 건지기를 한 우리는 신사로 가 참배를 한 후 오미쿠지를 뽑았다.
나는 소흉, 언니는 중길, 미우는 대길을 뽑았다.
그리고 무슨 우연인지, 우리는 신사의 나무 아래에서 글로벌 쪽 인원들과 기적적으로 재회했다.
단정하던 마츠시타씨의 모습이 크게 흐트러진 게, 두 외국 소녀들에게 이끌려서 고생한 흔적이 보여서 나는 아까 사격 경품으로 받은 맥주 한 캔을 그녀에게 건넸다.
“아, 고마워요. 유나씨.”
“어때요? 정장 입고 왔으면 안 될 뻔했죠?”
그 숨 막히는 정장이 분위기를 깰 것이라는 걸 확신한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패배를 받아들였다.
그러고는 이참에 아예 즐기려는 듯 안경을 벗어 가방에 집어넣은 그녀는 내가 건넨 맥주 한 캔을 따고는 시원하게 마셨다.
“후아, 그나저나 코로나인데도 사람이 많네요.”
“뭐어 사이타마에 즐길 거리가 많지도 않은데 축제마저 멈추면 사람들이 진짜로 슬퍼할 걸 지방 정부도 잘 알고 있지 않을까요?”
“우와 그거 사이타마 주민들이 들었으면 우울해하겠는걸요?”
매니저들끼리 시덥지않는 헛소리를 하고 있을 때, 버튜버들은 자신들이 사 온 음식을 신사의 벤치에 앉아서 서로에게 음식을 먹이면서 정겹게 놀고 있었다.
미우에게 타코야끼를 먹이는 나에 언니, 그런 나에 언니에게 젓가락으로 솜씨 좋게 야끼소바를 먹이는 말리아, 방금 사 온 멜론 소다에 빨대를 꽂고 말리아에게 건내는 미우…
잠깐, 코토나시씨는?
“유나 매니저씨?”
이 축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차갑고 딱딱한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렸다.
어느 사이엔가 내 옆으로 다가온 코토나시씨가 축제에 어울리지 않는 결연한 표정으로 내 소매를 잡았다.
마치 승부의 날 고백을 하기 전에 나에게 응원을 받으러 온 후배가 떠오르는듯한 그녀의 분위기를 읽은 나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으슥한 곳으로 향했다.
* * *